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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5년(임신: 1572년)에 세운 문정공(휘 상충尙衷) 묘비 뒷부분에 나오는 公의 내외 자손록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입니다.
". . . . . 公男左議政訔 子觀察使葵 子司直秉文 子判書林宗 子正郞億年 子僉知縉 子護軍世則 右嫡派 . . . . . "(출처: 세적편 170쪽) (참고: 『 반양이선생유고 』도 마찬가지임.)
위의 인용에서 필자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嫡派"라는 말이었습니다. 도대체 "嫡派"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일반적으로 "派"라고 하면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와 그 가지에서 벌어져 나온 집단을 이르는 것이 보통인데, '적파'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상충) - 子訔(은) - 子葵(규) - 子秉文(병문) - 子林宗(임종) - 子億年(억년) - 子縉(진) - 子世則(세칙)>은 적장자(嫡長子)로 이어지는 반남박씨의 줄기, 즉 대종(大宗)인데 그걸 왜 '派'라고 했을까 . . . . . ?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문정공 원비(原碑)의 탁본(拓本)에서 드디어 찾았습니다. 다음은 문정공 묘비 탁본에 나오는 해당 부분의 원문입니다.
" . . . . . 公男左議政訔 子觀察使葵 子司直秉文 子判書林宗 子正郞億年 子僉知縉 子護軍世則 右嫡長 . . . . . "(출처: 문정공 묘비문 탁본)
즉 '嫡派'가 아니라 '嫡長'이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의문이 확 풀리게 되었습니다!!! 아래 첨부 자료는 묘비 탁본의 해당 부분입니다.
유의 사항:
탁본에 의하면, 문정공 묘비의 표제(제액?)는 "皇明高麗國行奉順大夫判典校寺事右文館直提學 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朴公 墓碑"로 되어 있고 이어서 "六代孫通政大夫工曹參議知製 敎朴承任撰 七代孫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朴應男書"라고 비문 지은이와 글씨 쓴 이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뒷부분에 가서 문정공의 자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 바로 앞에 다시 "皇明高麗國行奉順大夫判典校寺事右文館直提學 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朴公諱尙衷神道碑"라는 표제가 등장하고 바로 그 다음부터 자손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각 "墓碑"와 "神道碑"라는 서로 다른 표제를 쓰고 있어 별개의 비(碑)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자손록 첫머리 부분에 "碑陰(비음)"이라 적고 있어 같은 비로 추정됩니다.
비문을 지으신 소고공(휘 승임承任)의 문집인 『소고선생문집』에는 자손록 부분(음기)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음기(陰記) 부분은 (추측컨대) 남일공(휘 응남應男)께서 지어서 쓰신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한편, 현석공(휘 세채世采)께서 편찬하시고 인재공(휘 필명弼明)께서 간행하신 『반양이선생유고』에는 자손록 부분까지 모두 실려 있으나 뒤의 표제는 빠져 있고 묘비 탁본과 달리 "嫡派"로 기록하였습니다. 유고를 수집하여 편찬하는 과정에 잠시 실수한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만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임진보 세적편은 『반양이선생유고』의 비문을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19세손 승혁 근기
첨부 자료: <탁본의 해당 부분>
". . . . . 公男左議政訔 子觀察使葵 子司直秉文 子判書林宗 子正郞億年 子僉知縉 子護軍世則 右嫡"
"長 判官秉鈞 大護軍秉中 郡守秉德 副正耣 . . . . . "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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