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와 소세양
글. 남진원
소세양(蘇世讓 1486 – 1562)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판서를 두루 거치고 좌찬성에 이른 고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글씨와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늘 여색(女色)에 대해 큰 소리 치며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사내대장부가 여자에게 빠지면 사람이 아니다!”
유교적 덕목을 실행하는 학자로써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말이었습니다.
소세양의 친구들은 소세양에게 재색을 겸비한 송도의 기생 황진이의 품에서 벗어나는 사내는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소세양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소세양은 다음과 같이 장담을 하였습니다.
“내가 이 계집하고 한 달을 함께 지내다가 헤어진다고 해도 내 마음은 미색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오. 만약 이 기간을 넘겨 하루라도 묵게 되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해도 좋소.”
소세양은 송도로 출발합니다. 이윽고 황진이를 만났습니다. 과연 천하절색이었습니다. 소세양은 황진와 더불어 정분을 나누었습니다.
어느새 머물기로 약조한 한 달이 지나는 날이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나야 할 판입니다.
소세양은 황진이와 더불어 높은 루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었습니다. 이때 이별의 선물로 황진이는 소세양에게 한 편의 시를 읊습니다.
奉別蘇暘谷世讓(봉별소양곡세양)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 아래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노란 들국화 서리 맞았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높은 누각은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에 끝없이 취해오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소리처럼 거문고소리 차갑기만 한데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피리소리에 스민 매화 향은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하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그대 향한 정,
저 물결처럼 흐르는 그리움 어쩔거나….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깊이 탄식합니다.
“이 소세양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황진이와 더불어 며칠을 더 머물고는 떠나갔습니다. 결국 소세양의 무색은 유색이 되어 진짜 무색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