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나기로 했어요!> 아신대 신성욱교수님의 글
[1] 우리나라에서 불신자들이 바라보는 기독교와 기독교인은 어떤 이미지일까?
아주 부정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를 ‘개독교’, ‘목사’를 ‘먹사’로 부르면서 손가락질 해왔다.
그런데 최근 그와는 비교가 안 되는 조소와 조롱의 내용이 회자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페북에 올라온 글이다(아래 사진1).
“한국교인들!!! 모두 십자가 목걸이 해주세요.
일반인들이 알아서 피해 다닐게요. 부탁합니다.”
[2]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할 정도로 굴욕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고 수치스런 글이 하나 올라왔다(아래 사진2). 어떤 내용일까? 바로 이 내용이다.
“하나님을 떠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나기로 했어요.”
굴욕을 떠나 모욕적이다.
‘하나님을 떠날 수 없어서 다시 교회에 나가기로 했어요’가 되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을 떠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나기로 했단다.
[3]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는 온상이란 말이다.
정말 부끄러운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반박할 뚜렷한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퇴촌에서 목회하는 한 친구 목사가 있다.
그는 전국의 무당들을 천 명 가까이 전도한 경험이 있는 특이한 사람이다. 지금도 무당들을 계속 전도하며 다닌다.
어느 날 그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무당들 전도해보니 50% 이상이 교회 다녔던 사람들이란다.
[4] 무당들 50% 이상이 교회에서 변화를 받지 못해서 무당이 됐다는 얘기가 아닌가!
2012년 북한한계선 2킬로와 남한한계선 2킬로, 총 4킬로 구간에 10cm 간격으로 매설된 지뢰를 하나도 밟지 않고 철책선을 넘어 탈북한 ‘노크귀순병사’가 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후 우리 학교 학부에 입학했다.
월요일마다 수업을 마친 후 내 교수실에서 내게 복음을 배우고 인문고전 독서에 빠지게 한 적이 있다.
[5] 어느 월요일 밤, 내 교수실에 온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 저는 신자가 된 이후 한 번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성경에 대해서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심히 의심스러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되물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째서 유명한 사람들이 자살하면 전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인지요?
교회가 그들을 자살하지 못하게 할 수 없는 곳이라면 문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
[6] 오래전 내가 가졌던 의문과도 일치했다.
실제로 유명한 연예인이나 가수들 자살하는 거 보면 거의 전부가 다 교회 다니던 사람들이 맞다.
교회가 어떤 곳이기에 그들이 거듭 자살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도움이 되질 못하고 있단 말인가?
오늘 우리 자신의 아픈 자화상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위에서 소개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소와 조롱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어쩌다 한국 교회와 교인들이 모습이 이 정도로 추락한 것일까?
[7]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내가 ‘노크귀순병사’ 임금학에게 해준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 말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교회 성도들 다수가 ‘반쪽 짜리 복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완전한 복음’이나 ‘온전한 복음’을 전수받지 못한 결과 ‘은혜의 복음’이 아닌 ‘율법적인 교리’에 의한 힘겨운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다.
[8] 이것은 신학교 교수들과 교회 목사들의 책임이다.
한국 교회가 세인들로부터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회복되려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은혜와 율법이 뒤섞여 혼돈된 복음이 아니라 은혜의 감격에 의해 이끌려가는 행복한 복음이 제대로 가르쳐져야 한단 말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의 설교 속에 율법적 내용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설교자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체도 큰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9] 내 강의를 들으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설교 속에 율법적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하고 놀라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다. 은혜의 복음에 의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기차게 일궈가는 성도의 모습이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이런 이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십자가 목걸이 해달라고 요청받지도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교회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런 기독교와 이런 기독교인의 모습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10] 성경이 가르치는 참 복음, 온전한 복음, 완전한 복음이 제대로 잘 가르쳐지고 전수되어 불신자들과 타종교인들이 인정하고 자랑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길 오늘도 간절히 고대한다.
나 자신부터 참 복음에 취함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답고 멋진 삶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만 받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