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 최흥진
지난 10월 정부는 202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년보다 6.4% 줄어든 6억 5,622만 톤으로 확정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7억 2,700만 톤으로 정점을 찍은 후 2년 연속으로 감소했지만 2021년부터는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애초 35%에서 40%로 상향했다. 지난해 말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한 목표가 2030년까지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법체계를 갖췄다. 지난 9월 시행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은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지원에 관한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다. 법 제8장 녹색성장 시책에는 녹색산업 육성, 녹색경영 촉진, 녹색기술 개발, 녹색금융 지원, 순환 경제 활성화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다. 환경 기술의 개발부터 산업화와 보급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친환경 생활을 확산하기 위해 설립된 환경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녹색전환 지원 업무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녹색금융 기반 구축, 환경정보공개제도 운영, 중소기업의 ESG 경영 확산이다. 먼저 녹색금융 기반 구축은 한국형 녹색금융의 제도화를 위한 토대를 갖추는 일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후 정책 개발과 신규 예산 편성이 활발하다. 유럽연합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이미 2020년에 1조 유로를 투입하는 그린딜(Green Deal) 정책을 발표하고 녹색분류체계 법제화에 앞장섰다. 미국은 바이든 정권 출범으로 2050년 탄소배출 제로, 전기차 산업 집중 투자 등 친환경 정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투자의사 결정에서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개 선언했고,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대기업의 RE100 등 환경 프로그램 가입도 확대되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에 따른 저탄소 산업구조 전환을 위해서는 녹색 분야로의 대규모 민간 자본 참여가 필수적이다. 녹색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고 녹색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2020년 8월 환경부와 금융위원회 주도의 녹색금융 TF 발족을 계기로 녹색금융 지원체계 구축을 시작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20년 녹색 채권 가이드라인을, 지난해에는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환경 책임투자 지원의 근거를 법제화하는 법률 개정도 있었다. 2018년 6천억 원 수준이던 녹색채권 발행액이 2021년에는 12조 5천억 원으로 확대되었다. 녹색채권 비중도 유럽연합 수준인 12%까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환경정보공개제도 운영이다. 세계적 ESG 요구에 대응하는 수단이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를 통해 미국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 관련 리스크 정보를 공개토록 했다. 직접배출을 의미하는 Scope1과 간접배출인 Scope2는 의무 공시, 사업장 경계외 공급망에서 발생한 배출인 Scope3은 중소기업을 제외한 기업만 공시해야 한다. Scope1, 2 는 2024년, Scope3는 2025년부터 시작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1월 기업이 사람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채택했다. 2025년 시행된다. 유럽의 기업과 금융기관 5만여 곳이 대상인데, EU에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에도 적용된다. 우리 기업도 EU 공급망 또는 가치사슬에 속해 있거나 EU 시장의 자금조달을 원한다면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EU가 제한하고 있는 환경, 유해 물질, 노동기준 부합 여부 등을 파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 구축이 필요하다. 역으로 환경, 인권 등에 대한 실사가 가능한 기업만 EU 가치사슬에 포함될 것이 예상되므로 중국에 편중되었던 EU 공급망에 우리 기업의 편입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녹색기업, 공공기관 및 환경영향이 큰 기업 등에 환경정보공개를 의무화하여 환경경영을 유도하고 있다. 올해는 1,819개 기업·기관이 대상이다. 중앙 및 지방 정부, 공공기관, 국공립대학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일정 자산규모 이상의 주권상장법인도 추가되었다. 녹색경영 체계, 자원·에너지 사용량, 온실가스·환경오염 물질 배출량 등을 공개해야 한다. 글로벌 ESG 규제 대응을 위해 이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공개항목을 국제표준 공시항목에 맞게 개편하고 정보공개 대상도 점차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다. 셋째, 중소기업의 ESG 경영 확산이다. 기후 위기 확산으로 기업의 경영환경은 크게 변했다. 투자자의 ESG 요구 증대, 기업평가에 ESG 반영, 고객사 또는 납품처의 ESG 요구 등이다. 중소기업 중 ESG 대응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는 곳이 90%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중소기업의 환경경영 전환을 위한 맞춤형 전문 컨설팅, 통합 환경·안전관리 시스템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5억 원 규모의 예산을 들였으나 올해는 예산을 대폭 증액해 22억 원을 투입했다.
ESG 컨설팅은 제조 분야 중소기업 75개 사를 대상 업종별 공정특성에 따른 환경관리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ESG 경영체계 구축, 친환경 마케팅 지원, ESG 역량 강화, 환경정보공개제도 참여 지원 등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1단계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 관리를 통한 환경법 준수이고, 2단계는 환경경영체계와 ESG 교육, 생산공정 혁신을 통한 ESG 경영 내재화다. 3단계는 재무적·비재무적 리스크 관리, 녹색투자와 친환경 공급망 확대를 통한 환경경영 성과 창출이다. 올해는 도금업종을 대상으로 영세업체 환경관리 및 법규 준수 지원시스템을 구축해 시범 지원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이처럼 세 가지 지원사업을 통해 기업의 성공적 녹색전환과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돕고 있다.
일례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사업으로 녹색산업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엘디카본을 소개한다. 회사는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카본블랙을 개발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카본블랙은 타이어의 탄성을 강화하는 강화제와 착색제로 사용되고, 고무제품, 플라스틱 안료, 잉크 등에도 적용된다. 대체로 석유나 천연가스를 써서 만들지만 이 회사는 폐타이어를 열분해해 생산한다. 폐타이어는 매립이나 재활용 과정에서 토양·수질오염을 일으키지만, 재활용하면 탄소배출을 80%까지 줄이고 자원순환에도 기여한다. 지난해 환경부 지정 녹색혁신기업에 선정됐다. 사업화·연구개발을 지원받아 순환자원 국제인증인 ISCC PLUS 획득, 유럽 화학물질 안전기준인 EU REACH 허가, 환경부 환경성적표지인증 등을 받았다. 올해는 환경부 환경창업대전 입상을 시작으로 ‘도전! K-스타트업 2022 왕중왕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연말까지 200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계획하고 있고 생산설비 증설, 글로벌 회사와 제품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엘디카본은 2024년까지 연간 폐타이어 5만 톤 처리를 목표로 하고, 이를 통해 매년 탄소배출을 7만 톤 줄인다는 계획이다.
필자소개
연세대학교 화학공학 학사, 석사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토목환경공학 박사
(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부 초빙교수
(전) 기상청 차장
(전) 영산강유역환경청장
(전)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대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