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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리산 종주기
8월 염천에 지리산 연봉을 잇는 41.5km의 능선길을 종주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종주를 한번은 꼭 하고싶었는데
몇몇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더이상 늙기 전에' 해야한다며
2박 3일 일정으로 간다기에 따라나섰지만
무더위와 경험부족까지 보태져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 JP가 다시한번 같이 가자고 조르는 걸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SH, JB 두 친구를 더 해 3명을 인솔해서 또 다시 장도에 오른 것이었다.
바다같이 넓고 깊은 지리산에 반하여 그 당시의 감개무량함을 정리 해 본다.
* 첫날 (2006. 10. 14.)
지리산 단풍을 본다는 일념으로 60객 네 친구가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소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천릿길을 달려 도착한 구례에서 하룻밤 편안히 자고, 일찍 여관을 나서니 청명한 가을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가슴까지 후련하게 해 준다. 산 아래에 비단 옷자락을 두른 듯 감도는 운애(運靉)위에 우뚝한 지리산의 웅자(雄姿)가 눈앞인 것처럼 가까워 보이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하여 ‘ 智異山 ’ 이라 했다던가? 최고봉인 천왕봉(1915m)과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등 3대 주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리에 걸쳐 자리한 지리산은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하동·함양을 아우르며,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흘러 지리산 12동천 을 이루고,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유서 깊은 가람(伽藍)이 광대한 지리산 품속 요처요곡(樂處樂谷)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택시에 몸을 싣고 화엄사를 슬쩍 비켜 성삼재까지 단숨에 올라, 신발 끈을 조여 맨 뒤 등 뒤에 매달리는 배낭을 추스르며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100리 길 지리산 종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7부 능선 쯤 내려온 단풍사이로 난 길을 40여분 휘적휘적 오르니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탁 트이는 눈 아래 계곡 끝 울창한 숲 사이로 반쯤 숨어있는 호남의 유서 깊은 대찰 화엄사!
서쪽을 향해 힘차게 달려온 섬진강이 구례를 앞에 두고 크게 회 돌아 남쪽으로 구비 친다.
20여분을 더 올라 노고단에 이르러 배낭을 벗고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식히며 시원한 냉수를 마시니 마침 불어오는 10월의 가을바람이 청량음료처럼 시원하다.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준봉(峻峰)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걱정으로 압도되어 일행 모두가 말을 잃었다
老姑壇!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이 되는 한편,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던 영봉(靈峰)으로 지금도 제단이 남아있고 지리산국립공원의 남서부 끝에 있으며 백두대간에 속한다. 노고단이란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仙桃聖母)를 일컫는다고 한다. 서쪽으로 내려다보니, 청명한 햇빛 아래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계곡 을 덮고 능선을 휘감아 돌다 섬진강변 들녘까지 온통 하얀 비단폭을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운해(雲海)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잠시 선계(仙界)에 머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노고운해(老姑雲海)가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꼽힌다니 이 장관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정신을 차려 인간세계로 돌아온 우리는 잡목 사이로 뚫린 오솔길을 따라 돼지평전을 가로질러
임걸령을 향했다. 임걸령(林傑嶺 1,320m)은 남쪽으로 피아골에 이르는 길이 갈리는 곳으로서, 물맛 좋기로 이름난 임걸령 샘이 고갯마루에 자리하여 반가이 맞아준다. 그 옛날 여기에 출몰하던 도둑의 무리가 마셨을 시원한 이 물을 수백 년 지난 오늘엔 산이 좋아 이곳을 지나는 우리가 마신다.
시원한 샘물로 숨을 돌린 일행은 떼쓰는 아이처럼 매달리는 배낭을 메고 또다시 걷고 걸어 뻐근해오는 다리를 이끌며 노루목에 도착하니 북쪽으로 우뚝 솟은 반야봉이 위압적이다.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인 반야봉(盤若峰, 1732m)은 전라남북도의 경계이며 걸출하게 솟아오른 봉우리로, 노고단에서 바라보면 마치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을, 토끼봉에서 바라보면 여인의 엉덩이를 닮았다고 한다. 노루목을 출발하여 구상나무 숲 사이로 뚫린 가파른 길을 30분가량 오르면 “盤若峰”이라 새겨놓은 표석이 서있고, 동쪽 끝으로 아스라한 천왕봉에 이르기 까지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의 장엄한 모습이 세파에 찌든 가슴을 활짝 열어젖혀준다.
반야봉을 떠나 천천히 40분을 걸어 도착하는 삼도봉(三道峯 1,550m)에는 경남, 전북, 전남 3도의 경계표지가 서있는데 두 손으로 삼각형 표석을 감싸 쥐니 3도가 내 손안에 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화개재-토끼봉-연하천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에 이르는 1km남짓한 내리막길은 거의 가파른 600여 계단으로 이어져있어 지친 다리를 몹시 괴롭힌다.
화개재를 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끼봉(1,537m)에 도착하니 낮12시를 조금 넘겼다. 토끼봉 정상에 서서 아침부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멀리 노고단이 까마득하게 보이고, 가까이로는 나를 내려다보는 반야봉이 마치 엎드린 엉덩이를 닮았다. ‘토끼봉’은 지리산 서편의 주봉 격인 반야봉에서 볼 때 정 동쪽으로, 24방위(方位)중 묘방 (卯方, 3시방향)이고, 묘(卯)는 12간지(干支)에서 ‘토끼’이므로 ‘토끼봉’이라 했단다.
토끼봉에서 푹 쉬며 미리 준비한 점심식사를 하고, 또다시 동으로 동으로 능선을 오르내리며 명선봉(1,586m)을 거쳐 오늘의 목표인 연하천 산장을 향했다. 봉우리에 올라설 때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끝없이 이어진 산줄기와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만 보일 뿐, 사방 어디를 봐도 바다같이 넓은 산과 산의 연속이다. 나는 지리산의 웅장함에 한번 반하고,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결코 빈약하지 않은 우렁찬 산세에 또 한번 반하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희귀한 초목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그 속 어딘가에 반달곰, 멧돼지, 고라니 등등 수많은 산짐승들을 품어 안았을 지리산의 넉넉함에 반했기에 불과 두 달 만에 또 다시 여기를 찾아 막 시작한 형형색색의 가을잔치에 흠뻑 취한 것이다.
산등성이에 오를 때마다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을 고마워하면서 성삼재로부터 15,3km를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지리산의 다른 산장에 비해 시원한 물이 풍족한 편이다. 처음 지리산을 찾은 친구들이 시원한 샤워를 기대하며 도착했으나,
샤워는커녕 비누와 치약사용도 금지라는 내 말에 아연 실색하면서도
지리산을 깨끗이 보호하기 위하여 라니 흔쾌히 수긍한다. 구석진 곳을 찾아 수건을 물에 적셔 대강 씻고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으니 그런대로 괜찮기는 하지만 안락한 내 집과 아내의 따듯한 보살핌이 더욱 그리워진다. 산장 매점에서 구입한 밥과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어둑어둑 해 지면서 종일토록 괴롭히던 늦더위는 간 곳이 없고 옷깃을 파고드는 밤바람이 차다. 전기가 없는 산장에서는 발전기를 돌려 9시 까지만 불을 켜준다고 한다. 밖은 변변히 앉을만한 의자도 없고 바람조차 쌀쌀하여 이곳에 머물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숙소로 들어가고, 우리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숙소에 들어가 깔개와 침낭을 펴고 자리에 누우니 이제 겨우 6시다. 각자에게 배정된 침상은 40년 전 병영의 내무반보다도 좁아 반듯하게 누울 수 조차 없고, 땀 냄새와 발 고린내가 뒤섞여 쉽게 잠들 수 없기에 덧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오니 청량한 밤공기가 상쾌하고, 까만 하늘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가득하다. 얼마가량 지난 후 추위를 견디지 못해 또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냄새와 탁한 공기는 여전하고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까지 요란하였지만 나도 어느새 정신없이 곯아 떨어져 잤나보다. 나이 탓에 찾아온 새벽 불면증이 잠을 깨워 밖에 나오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데 머리 위에선 반쯤 사윈 하현달이 은하수에 빠져있고, 북두칠성 일곱 별들이 서로의 밝기를 다투어 빛을 발한다.
달 밝은 초가을 새벽하늘에 넘칠 듯 가득한 별들을 본적이 있는가? 처참하리만치 차고 맑은 별빛을 아는가? 연하천(烟霞泉) ! 연기처럼 아득하게 보여서 烟霞인가? 이렇게 맑고 밝은 이곳 풍광을 일러 그런 이름을 붙여준 선인들의 뜻이 짐작되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을 털어내고 달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차가운 새벽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니 밤새 오염(?)됐을 폐부 깊숙한 곳까지 깨끗이 정화(淨化)되는 느낌이다. 달아나버린 새벽잠을 다시 붙잡을 수도 없고, 탁한 공기 속으로 들어가기는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아 추녀 끝에 놓인 통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동쪽 하늘가로부터 별빛을 밀어내며 서서히 다가오는 새날을 맞기로 했다. 바위처럼 웅크리고 앉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지경에서, 희뿌옇게 밝아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 또렷해지는 숲 속의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인기척에 문득 정신차려보니 4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지리산 품속으로 깊이 들어온 내 가슴에 이 새벽, 한조각 시흥(詩興)이 일렁인다. 가을 밤
청청한 밤하늘에 보석이 뿌려지고 철새 한 무리가 높 하늬 끌고 올 때 은하수 사이에 두고 울고 있는 그리움
** 둘째 날 (2006. 10. 15.)
지리산에서의 첫 밤을 그렇게 지내고 이제 둘째 날이다. 오늘은 세석산장까지만 가기로 계획하였으니 9.9km를 걸으면 되는데, 문제는 오늘 걷는 구간 중 벽소령에서 세석산장 까지 6.3km가 길도 험하고 멀어 가장 힘들고 지루하다. 어제 산장에 도착해서 미리 사둔 밥을 따듯하게 데워먹고,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8시 가까이 되어서야 길을 나섰는데 벽소령이나 선비샘, 세석산장 등 모든 곳이 물이 부족하다하여 물병마다 가득채워 배낭에 넣으니 만만치 않은 무게로 어깨에 걸린다.
삼각봉-형제봉-형제바위를 지나 벽소령으로 가는 길이 험하기는 해도 불을 지른 듯 붉게 타 오르는 단풍과 구상나무의 짙은 녹색,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기암괴석의 아슬아슬한 모습들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는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바위 그늘에 앉아 물 한모금 마시며 산 아래로 번지는 붉은 물결을 보니 또 다시 시흥(詩興)이 발한다. 단풍
萬山에 붙는 불아 무엇을 태우려나 엎드린 계곡까지 남김없이 타는가 소나무 숲에 숨겨둔 그리움은 남는가
형제봉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 한쌍이 공제선에 투영되어 또렷이 자태를 드러냈다.
원래 한 몸이었던 바위가 두개로 나뉜 것이 마치 한 부모에서 몸을 나누어 태어난 형제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음이 짙던 지난8월에 잠깐 지나친 벽소령 산장에 다시 오니 까만 지붕이 먼저 반겨준다. 벽소령(碧宵嶺, 1,350m)능선은 하동군, 함양군의 경계로서 碧宵는 “푸른 밤”을 뜻하는데 벽소명월(碧宵明月)은 지리산 10경에 들 정도로 빼어나다고 한다.
초가을 밤,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기에 시인‘고은’은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 고 찬탄하였다 하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겨우내 이곳 북쪽능선은 고사목과 구상나무와 설경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란다. 벽소령 산장 앞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며, 철따라 바뀔 아름다운 비경을 상상하니 가슴이 설레고, 언젠가는 하얀 겨울에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해 본다. 이른 점심을 김치찌개로 맛있게 먹고 벽소령을 출발한 일행이 ‘덕평봉-선비샘-칠선봉(1,558m)-영신봉(1,652m)-세석산장(1,560m)구간의 험로를 수없이 오르고 내리면서 마주한 풍광은 실로 변화무쌍이다.
많이 닮은 두그루의 구상나무가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사이에두고 서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잡목들과, 고고한 기상을 간직하고 의연하게 서있는 구상나무,
온갖 풍상을 겪으며 영원 전부터 무한의 세월을 지리산의 뼈대로 남아있을 기암괴석들,
그사이로 넘나드는 다람쥐의 한가로운 모습까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범접하기 어려운 선경(仙境)을 이루고 있으니
어찌 조물주의 솜씨를 찬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지난여름 폭우를 만나 허둥대는 바람에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선비 샘에 당도하니 오랜 가을 가뭄으로 물이 줄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쉬엄쉬엄 느긋하게 걸었어도 오늘의 목적지 세석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15시도 되지 않아 그냥 걸음을 멈추기엔 시간이 아깝고, 더구나 샘까지 말라 한참을 내려가야 물을 받을 수 있기도 하여 내친김에 장터목 까지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널찍한 세석평전(細石平田)에는 수십만 그루의 철쭉이 해마다 5월부터 6월까지
온통 흐드러진 분홍색 물결 를 이루며, 황홀한 꽃의 축제를 벌인다는데,
이같은 화려함의 극치를 일러 어느 시인은
“남녘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 했다하지 않는가.
이를 상상하니 지리산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꼭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다.
* 지리산에서
지리산의 여름은 빛이 되어 머물지요
어쩌면 빛이 전설인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준령마다 서리서리 들어앉은
수천가지 전설인지도.....
노고단 위로, 반야봉 너머로
찌푸린 장마구름 밀려가고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가에
깨질듯 투명한 빛으로 계곡 깊숙이 머뭅니다.
폭염의 계절 한 복판에 서서
후텁지근함을 못 견디는 마음속으로
형형색색의 찬란한 가을빛을 부르면
이유 없이 외로움 앓는 가슴속으로
풀벌레 울음소리 되어 가을이 들어오려 합니다
계절은 밤에 바뀌는 게지요
유난히 달이 밝아 잠 못 이루는 새벽녘
한조각 바람소리에 업혀온 그리움은
싸늘한 달빛에 젖어 가슴으로 스미지요
지리산의 여름은 빛의 계절입니다
빛이 소리되어
창문을 흔들며 찾아 올 산장의 가을은
질퍽한 여름을 밀어내고
천왕봉 일출처럼, 빨간 단풍잎처럼
한 아름 찬란한 빛을
왈칵 !
토하고 말테지요.
(-지난 8월에 왔을 때 써두었던 글)
장터목 산장 앞에서 맞이한 반야봉 낙조의 황홀경
(반야봉 낙조는 지리산 10경중 하나라고...)
장터목산장에서는 60대라는 나이 덕에 어려움 없이 숙박예약이 되어
편한 마음으로 산장 앞 노천식당에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하는데,
때맞추어 반야봉 위로 일몰과 함께 펼쳐지는 낙조의 기막힌 장관을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가을 해질녘, 장터목산장에서 바라본 반야봉 위의 장엄한 낙조를 아는가?
이는 아마도 땀 흘린 산사람들을 위해 신이 마련하신 황홀하고도 경건한 잔칫상일 것이다.
시시각각 구름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듯 빠알갛게 타 오르고 서쪽하늘
아래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태양과 마주하는 순간 신과 인간의 경계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한번쯤 뒤로 시선을 돌려 붉게 타오르는 제석봉을 바라보라. 사람의 손으로 는 빚어낼 수 없을 온갖 색상에 석양의 붉은빛을 더해 채색한 나뭇잎들, 그들이 한데 모여 발산하는 매혹적인 자태, "온 산이 붉고 물이 붉어서 사람 마음도 붉다"는 남명 조식 선생의 삼홍시(三紅詩)가 절로 떠오른다. 숨조차 크게 토할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번 기울기 시작한 석양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반야봉 너머로 사라지고 붉은 여광(餘光)만이 조금 전에 막을 내린 황홀한 축제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것은 신이 내려 주시는 인생에 대한 어떤 계시(啓示)가 아닐까?
*** 마지막 날 (2006. 10.16.)
오늘은 삼생(三生)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제1경 천왕봉 일출을 보는 날이다. 새벽5시에 졸린 눈을 부비며 달랑 물 한병만 가지고 랜턴에 의지하며 산장을 나섰다.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천왕봉에 오르기 전 마지막 봉우리인 제석봉(1,806m)을 내려가고
이제는 천왕봉 뿌리부분이다. 싸늘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힘차게 오르는 내 앞을 거대한 바위가 막아서니, 여기가 속세를 떠나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통천문(通天門)이다.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통천문을 지나 바위와 바위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등성이에 오르니 정상이 수십 미터 거리에 보이는데, 우리가 목표로 삼아 3일간 올라온 천왕봉 정상엔 나무 한그루 없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공제선(空際線)에 투영된 거대한 바위만 있고, 백 수십 명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며 찬바람을 피해 웅크리고 있다.
10월 16일 06시35분! 드디어 백두대간의 정기가 힘차게 솟구쳐 맺힌, 지리산의 주봉 천왕봉(天王峯) 동쪽 하늘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하늘과 땅까지 온통 붉게 물들이고 엷은 구름 속에서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태양은 한번 얼굴을 보이더니 급하게 급하게 솟아오른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연출하는 지리산의 대 파노라마를 보라. 저 멀리 서북쪽으로 노고단을 향하여 끝없이 출렁이는 지리산 정맥의 기라성 같은 봉우리들을...
저건 왕시루봉, 저기는 피아골, 아직 여명에 묻혀있는 저 아래 마을은 중산리...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저기가 달궁, 저쯤에 도솔암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번 산행이 완전히 종결되는 함양 땅 백무동...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는 노고단에서부터 반야봉을 거쳐 이제까지 걸어온 산줄기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기 천왕봉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있다. 참 많이도 걸었구나!
* 천왕봉에 올라
노고단, 반야봉은 서북쪽에 아련한데
섬진강 흘러내린 호남이 펼쳐있고
동으로 돌아서 보니 영남으로 이었네
파도치는 산줄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열병하듯 서있는 준봉들이 우람한데
그중에 으뜸 되기로 이름하여 천왕봉
산허리를 휘감는 골안개의 속삭임이
지친 몸 쉬어가는 나그네 위로하니
근심은 떨쳐버리고 새로운 힘 얻는다
골안개가 흰 구름처럼 피어올라 산줄기를 넘어가고, 가슴에 한 아름 안기는 바람이 찬데, 조금씩 걷혀가는 골짜기의 여명이 경이롭다. 햇살이 퍼지는 비탈길을 따라 깜깜할 때 올라왔던 천왕봉을 내려와 제석봉을 넘으니 마치 나무들의 공동묘지를 연상시키는 고사목지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당시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구상나무 숲에 30년 전 도벌꾼들이 방화하여 그리 되었다하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의 간악함은 그 끝이 도대체 어디까지 닿았을까?
지금 그 자리에는 새로 심어놓은 어린 구상나무 묘목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내 손자의 손자들은 검푸르게 우거진 구상나무 숲을 보게 되리라.
장터목산장에 돌아와, 3일동안 서로 의지하던 친구들과 조반을 먹으며 “우리 철쭉 필 무렵 다시 오자!” 하고 산행을 끝내는 아쉬운 마음을 서로 달래 주었다.
어제 하룻밤을 지낸 '장터목산장'을 출발하여 백무동을 향해 하산하는데
끝날 것 같지 않은 너덜길이 이미 지쳐있는 다리를 괴롭힌다.
* Epilogue * 이번 여행을 같이한 이성헌, 김종필, 이정복 세 친구는
아직도 튼튼한 다리와 젊은 마음을 가진 청춘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저 멀리 마포 하늘위로 펼쳐지는 도심의 낙조가 반야봉 낙조는 아니라도 그런대로 색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버스를 내려 터미널 부근 한 식당에 들어가
잘 삭은 홍어회에 막걸리를 쭈-욱 들이키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데, 추어탕으로 마무리를 하고 어느새 밤이 된 거리로 나와 각자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들이 씩씩해 보여서 좋다.
10月 中浣 잠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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