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들어낸 ‘아메리카노’
송 국 범
한국수필등단(2008)
서산문화대상(2004)
서산문화예술대상(2013)
.저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
‘학생들은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등
수필 및 칼럼집
.현재
한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mail:
bindlle21@hanmail.net
.휴대폰:
010-6474-8481
.주소:
충남 서산시
남부순환로 767,
103동
1005호(죽성동,
삼성아파트)
우:32007
대학은 상아탑의 상징이요 지성의
산물이다.
낭만이 흐르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피 끓는 청춘들이 미래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불같은 열정을 내뿜는 곳이기도 하다.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자 현실과 미래의 담론들이 꽃피는 장소다.
꿈의 전당이자 꿈을 실현할 그 이상적인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임을 하자마자 다시 이어진 대학생활의 기대는 황홀 그 자체였다.
그러나 대학들의
고민은 상상 이외로 컸다.
낭만을
구가하기엔 꿈을 현실화하기엔 담론들이 들끓기엔 너무도 팍팍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교수는 어떤가?
교수들은
학문연구와 강의 준비,
학생
면담,
연구논문,
각종프로젝트
사업 수행,
학회참석 등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가면 끝이다.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찾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다.
그곳은 혼자만의
전쟁터다.
그곳에서
학문과,
연구와 강의를
위한 준비와 프로젝트 사업을 위한 구상과 실행 등등과 처절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웠다.
중등학교에서는
교무실이 열려 있고 교장실이 열려 있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늘 대화와 토론,
회의 등이
이루어지면서 함께 했다.
대학은 전혀
달랐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고 시스템에 의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수행하고 냉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전체 교수
회의도 몇 백 명이 되다보니 부처별로 전달사항에 그치고 만다.
이 낯선 세상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15년을
교장실에서 혼자 보내지 않았나.
그곳에서 때로는
고독과 싸우며 외로운 결단을 해야 하고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고통과 싸워 이겨내지 않았는가?
옷깃을 여미고
다짐을 해보지만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위로를 받기엔 허전했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더니 서광이
빛이기 시작했다.
따듯한 훈풍이
날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대학도 사람
사는 곳인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의 산물인데…….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나와 똑같은
중등학교에서 장학관 교장으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하고 교양학부로 명받은 외톨이 조 교수였다.
교수님은 바로
내 옆방에 연구실을 두고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며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1년 먼저 대학으로 온 중등출신 교장 김
교수가 유일하게 우리들의 친근한 안내자요 구세주였다.
셋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1년 동안
외로움과 씨름하며 적응했던 김 교수의 경험담은 우리에게 큰 위안과 함께 대학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나는 오래전부터 호형호재 하며
정을 나눈 교수 몇 명이 많은 도움을 주어 빨리 적응했지만 옆방 조 교수는 아는 교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외로움이 더
컸나보다.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근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고백도 했다.
그만큼 교수
사회가 닫혀 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데는 한 동안의 세월이 흐른 후다.
셋은 늘 함께
했다.
점심을
함께하고,
함께 커피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먼저 온 김
교수는 한 고장에서 30여년을 함께 정을 나눈 사이로 탐색의
과정이 생략 되었지만 조교수는 안면 정도 있는 사이였다.
약간의 탐색의
과정이 필요했다.
정이 많고
이해심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더욱 우리를
가깝게 만든 동기가 있다.
조교수는 특별한
기능이 한 가지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커피
애호가였다.
잘 내린 커피
한잔을 들고 아침 일찍 내 연구실을 찾았다.
커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동안
커피보다 녹차를 즐겨 마셨다.
녹차 예찬론을
펼치기도 하고 교장실에서 손님들에게 직접 녹차를 우려 대접했던 나였다.
하루
이틀..
커피 배달은
계속 되었고,
커피에 담긴
상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기도 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또 커피 향과 담론이 이어졌다.
1년여가 지나니
어느새 커피 맛에 취했다.
농담 삼아
‘내 바뀐 입맛을 이젠 책임져야
합니다’
셋은 그렇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교수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돌연변이가 되었다.
간간히 들리는
이야기로는 ‘셋이 똘똘 뭉쳐
다닌다’는 소문도
들어왔다.
그렇다.
커피는 삭막한
캠퍼스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어준 우정의 징검다리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우리 분위기에 한두 명의 교수가 함께 하기도 했지만 이어지지는 못했다.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교수 사회가 낳은 병폐중의 병폐가 관계의 기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혼자
결정하고,
홀로 결정을
내리고,
홀로
연구하고,
혼자 연구실에서
씨름하고,
간섭하는 것도
간섭 받는 것도 싫은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남을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어색해졌다고나 할까?
우리처럼 늘
그렇게 함께함이 어색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우정과 사랑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 명의 힘,
그 힘은
위대하다.
행복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