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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周紀 1-6. 赧王(난왕) 1-6-1 ~ 1-6-15. | ||
1-6-1. 赧王 名延이요 愼靚王子니 在位五十九年이라 | 1-6-2. [丁未]元年
| 1-6-3. [己酉]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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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庚戌]四年 | 1-6-5. [辛亥]五年 | 1-6-6. [壬戌]十六年 |
1-6-7. [癸亥]十七年 | 1-6-8. [乙丑]十九年 | 1-6-9. [丙子]三十年 |
1-6-10. [戊寅]三十二年 | 1-6-11. [壬午]三十六年 | 1-6-12. [辛卯]四十五年 |
1-6-13. [辛丑]五十五年 * | 1-6-14. [壬寅]五十六年 * | 1-6-15. [癸卯]五十七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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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滅六國(진멸륙국) |
戰國時代의 中國 |
1-6-12. [辛卯]四十五年 (신묘 45년, BC.270)
韓盧(한로: 名犬) | 魏范睢(범수: 應侯)-遠交近攻 | 范睢 彫塑(秦나라의 爲客卿) |
魏人范睢(注1)亡入秦하야 說秦王曰 以秦國之大와 士卒之勇으로 以治諸侯는 譬如走韓盧[頭註]盧는 田犬也니 韓國盧는 天下之駿犬이라 而搏蹇(注3)兎也어늘 而閉關十五年에 不敢窺兵於山東者는 是穰侯(注4)爲秦謀不忠이요 而大王之計 亦有所失也로소이다 王跽(注5)曰 願聞失計하노라 睢曰 夫穰侯越韓魏而攻齊는 非計也라
(위인범수(注1)망입진.하야 설진왕왈 이진국지대.와 사졸지용.으로 이치제후.는 비여주한로[두주]로.는 전견야.니 한국로.는 천하지준견.이라 이박건(注3)토야.어늘 이폐관십오년.에 불감규병어산동자.는 시양후(注4)위진모불충.이요 이대왕지계 역유소실야.로소이다 왕기(注5)왈 원문실계.하노라 수왈 부양후월한위이공제.는 비계야.라)
魏나라 사람 范睢(범수)가 逃亡하여 秦나라에 들어가서 秦王을 說得하여 말하기를 “秦나라의 强大함과 士卒의 勇猛(용맹)함을 가지고 諸侯를 다스리는 것은 譬喩(비유)하면 韓盧(名犬)盧는 사냥개이니, 韓나라의 盧犬은 天下의 잘 달리는 개였다. 를 달리게 하여 다리를 저는(蹇건) 토끼를 잡는(搏박)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關門을 닫은 지 15年동안 敢히 山東 地方에 軍隊를 出動시켜 엿보지 못하는 것은 穰侯(양후)가 秦나라를 위하여 圖謀함이 不忠하고 大王의 計策(계책)이 또한 잘못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니, 王이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失策을 듣기를 願합니다.” 하였다. 이에 范睢(범수)가 말하였다. “穰侯가 韓·魏를 넘어 齊나라를 攻擊하는 것은 좋은 計策이 아닙니다.
今王은 不如遠交而近攻이니 得寸이면 則王之寸也요 得尺이면 則王之尺也라 今夫韓魏는 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니 王若欲霸인댄 必親中國하야 以爲天下樞[釋義]猶言出入來往所由라 하야 以威楚趙니 楚趙皆附면 齊必懼矣요 齊附則韓魏를 因可虜也리이다 王曰 善타하고 乃以范睢爲客卿하야 與謀國事러라
(금왕.은 불여원교이근공.이니 득촌.이면 즉왕지촌야.요 득척.이면 즉왕지척야.라 금부한위.는 중국지처이천하지추야.니 왕약욕패.인댄 필친중국.하야 이위천하추[석의]유언출입래왕소유.라 하야 이위초조.니 초조개부.면 제필구의.요 제부즉한위.를 인가로야.리이다 왕왈 선.타하고 내이범수위객경.하야 여모국사.러라)
지금 王께서는 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攻擊하는 것만 못하니, 〈가까운 나라를 攻擊할 경우〉 한 치의 땅을 얻으면 王의 한 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王의 한 자 땅이 될 것입니다. 只今 韓·魏는 中國의 中央에 該當(해당)하는 곳이고 天下의 中樞(중추)이니, 王께서 萬若(만약) 霸者(패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中國(韓·魏)을 가까이하여 天下의 中樞를 삼아서(잡아서)出入하고 往來할 적에 經由(경유)하는 곳이라고 말함과 같다. 楚와 趙를 威脅(위협)해야 할 것이니, 楚와 趙가 모두 따르면 齊나라가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고, 齊나라가 따르면 韓과 魏를 因(인)하여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王이 “좋다.” 하고는 마침내 范睢를 客卿(객경)으로 삼아 함께 國事를 圖謀(도모)하였다.
赤色 圓: 戰國時代 天下의 中樞라 하는 韓나라와 魏나라 |
林之奇曰 六國之於秦에 其地則六倍之地요 其兵則六倍之兵이요 其食則六倍之食이로되 所以卒幷於秦者는 蓋秦知天下之勢하고 而六國不知故也라 秦之所以知之者는 其謀出於范睢遠交近攻之策이라 取韓魏하야 以執天下之樞하야 旣在我矣면 則齊楚安得而不滅哉아 其遠交齊楚也라 故로 二十年不加兵於楚하고 四十年不加兵於齊하며 其近攻韓魏也라 故로
(임지기왈. 육국지어진.에 기지즉륙배지지.요 기병즉륙배지병.이요 기식즉륙배지식.이로되 소이졸병어진자.는 개진지천하지세.하고 이륙국부지고야.라 진지소이지지자.는 기모출어범수원교근공지책.이라 취한위.하야 이집천하지추.하야 기재아의.면 즉제초안득이불멸재.아 기원교제초야.라 고.로 이십년불가병어초.하고 사십년불가병어제.하며 기근공한위야.라 고.로)
林之奇가 말하였다. “六國이 秦나라에 있어서 그 嶺土(영토)는 여섯 배의 땅을 所有하였고, 그 兵力은 여섯 배의 軍隊를 保有하였고, 그 食糧은 여섯 배의 糧食이 있었으나 끝내 秦나라에게 兼幷(겸병) 當한 까닭은 秦나라는 天下의 形勢를 알았고, 六國은 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秦나라가 이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計策이 范睢의 遠交近攻(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攻擊)하는 計策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韓나라와 魏나라를 取하여 天下의 中樞를 잡아서 이미 自身에게 있게 한다면 먼 齊나라와 楚나라가 어찌 滅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멀리 있는 齊나라와 楚나라와는 親交를 맺었기 때문에 20年 동안 楚나라에 侵攻(침공)을 加하지 않고 40年동안 齊나라에 侵攻을 加하지 않았으며, 가까이 있는 韓나라와 魏나라를 攻擊하였기 때문이다.
蠶之食葉 |
今年伐韓하고 明年伐魏하야 更(注6)出迭入하야 殆無寧歲라 故로 韓魏不支하야 終折而入於秦하니 韓魏旣折而入于秦은 此燕齊楚所以相繼而亡也라 秦之取六國에 謂之蠶食이라하니 蓋蠶之食葉이 自近而及遠이라 六國이 不知天下之樞在於韓魏하야 秦人伐之로되 而齊楚不救하니
(금년벌한.하고 명년벌위.하야 경(注6)출질입.하야 태무녕세.라 고.로 한위부지.하야 종절이입어진.하니 한위기절이입우진.은 차연제초소이상계이망야.라 진지취륙국.에 위지잠식.이라하니 개잠지식엽.이 자근이급원.이라 육국.이 부지천하지추재어한위.하야 진인벌지.로되 이제초불구.하니)
올해에 韓나라를 征伐하고 다음해에 魏나라를 征伐하여 번갈아 出兵하고 번갈아 들어와서 자못 便安한 해가 없었다. 이 때문에 韓나라와 魏나라가 支撑(지탱)하지 못하고 끝내 꺾여서 秦나라에 들어갔으니, 韓나라와 魏나라가 이미 꺾여서 秦나라에 들어간 것이 燕나라와 齊나라와 楚나라가 서로 뒤이어 滅亡하게 된 理由인 것이다. 秦나라가 六國을 取할 때에 蠶食이라고 말하였으니,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른다. 六國은 天下의 中樞가 韓나라와 魏나라에 있음을 알지 못해서 秦나라 사람들이 韓나라와 魏나라를 攻擊하는데도 齊나라와 楚나라가 救援(구원)하지 않았으니,
* 蠶食잠식: 누에가 뽕잎을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것처럼, 점차 조금씩 침입하거나 차지함을 이르는 말. |
是는 以天下之樞로 而委之於秦也니 六國이 安得而不亡哉리오 大抵欲平天下者는 必先知其難易之勢니 自其易而攻之而後에 及其難이라 故로 唐憲宗이 欲平藩鎭에 張弘靖以爲先淮蔡而後魏博하고 周世宗이 欲平天下에 王朴以爲先江南而後河東이러니 卒如其言하니라
(시.는 이천하지추.로 이위지어진야.니 육국.이 안득이불망재.리오 대저욕평천하자.는 필선지기난이지세.니 자기이이공지이후.에 급기난.이라 고.로 당헌종.이 욕평번진.에 장홍정이위선회채이후위박.하고 주세종.이 욕평천하.에 왕박이위선강남이후하동.이러니 졸여기언.하니라)
이는 天下의 中樞를 秦나라에 내버린 것이니, 六國이 어찌 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저 天下를 平定하고자 하는 者는 반드시 먼저 어렵고 쉬운 形勢를 알아야 하니, 그 쉬운 곳부터 攻擊한 뒤에야 그 어려운 곳에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唐나라 憲宗이 藩鎭(번진)을 平定하고자 하자 張弘靖이 ‘淮蔡(회채)를 먼저 討伐하고 魏博을 뒤에 討伐해야 한다.’고 奏請(주청)하였고, 周나라 世宗이 天下를 平定하고자 하자 王朴이 ‘江南을 먼저 征伐하고 河東을 뒤에 征伐해야 한다.’고 奏請하였는데, 끝내 그의 말과 같았다.”
譯註] 1. 范睢범수: 戰國時代 魏나라 사람으로, 睢는 音이 ‘수’인데 雎(저)의 誤記라 하나 明確하지 않으므로 옛것을 그대로 따랐음을 밝혀둔다. 2. 睢: 물 이름 수, 부릅떠 볼 휴. 3. 蹇: 절뚝발이 건. 4. 穰侯양후: 秦나라 宰相 魏冉(위염)을 가리킨다. 穰邑에 封해졌기 때문에 穰侯라 稱(칭)하였는바, 秦나라 昭襄王의 母后인 宣太后의 배다른 오라비로 當時(당시) 秦나라의 權力을 獨占(독점)하고 있었다. 5. 跽: 꿇어앉을 기 6. 更: 고칠 경, 다시 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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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 [辛丑]五十五年 (신축 55년, BC.260)
趙括의 紙上談兵 | 沒有紙上談兵的趙括,長平之戰 | 趙括! 長平戰敗 |
秦左庶長王齕이 伐韓하야 攻上黨[釋義]地理志에 河東上黨縣은 屬幷州라 正義曰 潞州에 有上黨縣이라 拔之하니 上黨民이 走趙라 趙廉頗軍於長平[釋義]在上黨滋氏縣이라 하야 以按(遏)據[頭註]按은 抑也, 止也요 據는 依據也라 上黨民하니 王齕이 因伐趙한대 趙軍이 戰數(注1)不勝이라 廉頗堅壁不出이어늘 趙王이 以頗失亡多而更怯不戰이라하야 怒數讓之하다
(진좌서장왕흘.이 벌한.하야 공상당[석의]지리지.에 하동상당현.은 속병주.라 정의왈 노주.에 유상당현.이라 발지.하니 상당민.이 주조.라 조렴파군어장평[석의]재상당자씨현.이라 하야 이안(알)거[두주]안.은 억야, 지야.요 거.는 의거야.라 上黨民.하니 왕흘.이 인벌조.한대 조군.이 전삭(注1)불승.이라 염파견벽불출.이어늘 조왕.이 이파실망다이경겁불전.이라하야 노삭양지.하다)
秦나라 左庶長 王齕이 韓나라를 征伐하여 上黨上黨은 ≪漢書≫ 〈地理志〉에 “河東 上黨縣은 幷州에 屬한다.” 하였고, ≪史記正義≫에 “潞州(노주)에 上黨縣이 있다.” 하였다. 을 拔=攻擊해서 陷落시키니, 上黨의 百姓들이 趙나라로 走=逃亡하였다. 趙나라 將軍 廉頗(염파)가 長平長平은 上黨 滋氏縣에 있다. 에 軍隊를 駐屯(주둔)시켜按은 抑制(억제)함이고 그침이며, 據는 依據(의거)함이다. 上黨의 百姓들을 保護(보호)하고 살게 하니, 王齕이 因하여 趙나라를 征伐하였는데, 趙나라 軍隊가 여러 번(數삭) 싸웠으나 勝利(승리)하지 못하였다. 廉頗가 城壁(성벽)을 굳게 지키고 出戰하지 않자, 趙王은 廉頗가 亡失한 것이 많고 또 怯(겁)을 내어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怒(노)하여 여러 번(數삭) 꾸짖었다.
膠柱鼓瑟(교주고슬) | 傳世名琴鑒賞之唐代(전세명금감상지당대) |
雁足(안족) | 鼓瑟(고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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雁足(안족) | 鼓瑟(고슬) |
* 금휘(琴徽). 안족(雁足). 안주(雁柱), 금주(琴柱): 가야금의 줄을 괴고 있는 기러기 발 모양의 기구. 위아래로 움직여서 줄의 소리를 고름. |
應侯使人反間曰 秦之所畏는 獨畏馬服君之子趙括爲將爾니 廉頗는 易與요 且降矣리라 趙王이 遂以趙括로 代頗將하니 藺相如曰 王以名使括하시니 若膠柱鼓瑟[頭註]鼓瑟者는 絃有緩急하니 調之在於運轉其柱어늘 若膠其柱면 則絃不可得以調之라 이로소이다 括은 徒能讀其父書傳이요 不知合變[頭註]兵은 以正合하고 以奇變이라 也니이다 王이 不聽하다
(응후사인반간왈 진지소외.는 독외마복군지자조괄위장이.니 염파.는 이여.요 차항의.리라 조왕.이 수이조괄.로 대파장.하니 인상여왈 왕이명사괄.하시니 약교주고슬[두주]고슬자.는 현유완급.하니 조지재어운전기주.어늘 약교기주.면 즉현불가득이조지.라 이로소이다 괄.은 도능독기부서전.이요 부지합변[두주]병.은 이정합.하고 이기변.이라 야.니이다 왕.이 불청.하다)
應侯(范睢범수)가 사람을 시켜 反間하기를 “秦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馬服君(趙奢조사)의 아들 趙括이 將帥(장수)가 되는 것일 뿐이니, 廉頗는 相對하기 쉽고 將次 降伏할 것이다.” 하였다. 趙王이 마침내 趙括(조괄)로 廉頗를 代身하여 將帥를 삼으니, 藺相如가 諫(간)하기를 “王께서 名聲(명성)만 가지고 趙括을 부리시니, 雁足(안족)을 아교풀로 붙여놓고 瑟슬=琵琶(비파)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琵琶를 演奏(연주)하는 者는 줄에 느림(풀어놓음)과 빠름(조임)이 있으니, 이것을 고름은 雁足을 움직임에 달려 있는데, 萬若 雁足에 풀을 칠하여 固定시키면 줄을 고를 수가 없다. 趙括은 다만 그 아비가 글로 傳한 것을 읽었을 뿐이고 變化에 對應(대응)할 줄은 알지 못합니다.”軍隊는 正(正面 攻擊)으로써 合戰하고 奇(奇襲기습 攻擊)로써 變化하여 豫測(예측)할 수 없게 한다. 하였으나 王은 듣지 않았다.
* 反間반간: 두 사람 사이에 下吏(하리)=吏胥(이서)를 놓아 멀어지게 함. * 降내릴 강, 항복할 항. * 膠柱鼓瑟교주고슬: 비파(琵琶)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阿膠)로 붙여 놓으면 음조(音調)를 바꾸지 못하여 한 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①고지식하여 융통성(融通性)이 전혀 없음. ②또는 규칙(規則)에 얽매여 변통(變通)할 줄 모르는 사람. * 紙上談兵지상담병: 1.卓上空論 2.탁상공론하다. 종이 위에서만 兵法을 말한다. 실제의 일에는 밝지 못하면서 卓上空論만 일삼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趙括(조괄) | 趙括(조괄) | 趙括의 母 |
○ 初에 趙括이 自少時로 學兵法하야 以天下莫能當이라 嘗與其父奢로 言兵事에 奢不能難이나 然不謂善이라 括母問其故한대 奢曰 兵은 死地也어늘 而括이 易言之하니 趙若將括이면 破趙軍者는 必括也리라하니라 及括將行에 其母上書하야 言括不可使라한대 王曰 吾已決矣로라 母曰 卽有不稱(注2)이라도 妾은 請無隨坐[頭註]謂相隨而坐罪也라 하소서 王이 許之하다
(초.에 조괄.이 자소시.로 학병법.하야 이천하막능당.이라 상여기부사.로 언병사.에 사불능난.이나 연불위선.이라 괄모문기고.한대 사왈 병.은 사지야.어늘 이괄.이 이언지.하니 조약장괄.이면 파조군자.는 필괄야.리라하니라 급괄장행.에 기모상서.하야 언괄불가사.라한대 왕왈 오이결의.로라 모왈 즉유불칭.(注2)이라도 첩.은 청무수좌[두주]위상수이좌죄야.라 하소서 왕.이 허지.하다)
○ 처음에 趙括이 어렸을 때부터 兵法을 배워 天下가 自身을 當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일찍이 그 아비 趙奢(조사)와 軍隊의 일을 말할 적에 趙奢가 論難(논란)하지 못하였으나 잘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趙括의 어미가 그 故=理由를 묻자, 趙奢가 말하기를 “兵=戰爭은 죽는 곳인데 趙括이 쉽게 말하니, 趙나라에서 萬若 趙括을 將帥로 삼는다면 趙나라 軍隊를 破=敗亡시킬 者는 반드시 趙括일 것이다.” 하였다. 趙括이 將次 길을 떠나게 되자, 그 어미가 글을 올려 趙括을 시켜서는 안 됨을 말하니, 王이 말하기를 “내 이미 決定하였다.” 하였다. 어미가 말하기를 “卽=若=萬一 趙括이 제대로 任務를 稱=擧行=遂行(수행)하지 못함이 있더라도 妾(첩)은 따라서 連坐(연좌)시키지 마소서.”隨坐는 서로 따라서 罪(죄)에 連坐됨을 이른다. 하니, 王은 이를 許諾(허락)하였다.
* 稱일컬을 칭, 저울 칭: 1. 일컫다 2. 부르다 3. 칭찬(稱讚)하다 4. 저울질하다 5. 무게를 달다 6. 드러내다 7. 들다, 거행(擧行)하다. |
○ 秦王은 聞括爲趙將하고 乃陰使武安君爲上將하고 而王齕爲裨將하야 令軍中호되 有敢泄(注3)武安君將者면 斬하리라
(진왕.은 문괄위조장.하고 내음사무안군위상장.하고 이왕흘위비장.하야 영군중.호되 유감설.(注3)무안군장자.면 참.하리라)
秦王은 趙括이 趙나라 將帥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陰음=隱密(은밀)히 武安君(白起)을 上將軍으로 삼고 王齕(왕흘)을 裨將(비장: 武官職으로 副將)으로 삼고서 群中에 命令하기를 “武安君이 將帥가 된 것을 敢히 漏泄하는 者가 있으면 斬刑(참형)에 處(처)하겠다.” 하였다.
* 漏泄누설: ① (물·빛 따위가) 새다 ② (비밀을) 새어 나가게 하다 ③ 누설시키다 |
○ 趙括이 至軍하야 悉更(注4)約束하고 易置軍吏하고 出兵擊秦이어늘 武安君이 佯敗而走하고 張二奇兵[釋義]奇는 謂無窮이니 奇正(注5)還相生하야 如環之無端이라 하야 以劫之하다 趙括이 乘勝하야 追造秦壁하니 堅拒不得入하고 奇兵이 絶趙軍之後하니 趙軍이 食絶四十六日에 皆內陰相殺食이라
(조괄.이 지군.하야 실경(注4)약속.하고 역치군리.하고 출병격진.이어늘 무안군.이 양패이주.하고 장이기병[석의]기.는 위무궁.이니 기정(注5)환상생.하야 여환지무단.이라 하야 이겁지.하다 조괄.이 승승.하야 추조진벽.하니 견거부득입.하고 기병.이 절조군지후.하니 조군.이 식절사십륙일.에 개내음상살식.이라)
趙括이 軍中에 이르러 約束약속=規約규약을 모두 變更하고 軍吏를 바꾸어 두고는 軍隊를 내어 秦나라를 攻擊하였다. 武安君(白起)이 거짓으로 敗하여 달아나면서 두 奇兵(奇襲 部隊)을奇는 無窮함을 이르니, 奇와 正이 번갈아 相生하여 고리가 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풀어 劫겁=威脅(위협)하였다. 趙括이 勝勢(승세)를 타고 追擊(추격)하여 秦나라 城壁에 이르렀는데, 秦나라에서 굳게 抗拒(항거)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奇兵이 趙나라 軍隊의 後尾(후미)를 끊으니, 趙나라 軍隊가 糧食(양식)이 떨어진 지 46日만에 모두 (陣地진지) 안으로 陰=隱密은밀히 서로 잡아먹었다.
武安君(白起) | 武安君(白起)-上將軍 | 武安君 故里=故鄕 |
趙括이 自出銳卒하야 搏戰이러니 秦人이 射殺之한대 趙師大敗하야 卒四十萬人이 皆降이라 武安君이 乃挾詐而盡坑殺之[頭註]坑은 塹也, 陷也니 謂陷之於坑而殺之라 하고 遺其小者二百四十人하야 歸趙하다
(조괄.이 자출예졸.하야 박전.이러니 진인.이 사살지.한대 조사대패.하야 졸사십만인.이 개항.이라 무안군.이 내협사이진갱살지[두주]갱.은 참야, 함야.니 위함지어갱이살지.라 하고 유기소자이백사십인.하야 귀조.하다)
趙括이 스스로 銳卒=精銳兵을 내어 肉薄戰(육박전)을 하였는데, 秦나라 사람이 그를 쏘아 죽이니, 趙나라 師사=軍隊가 大敗하여 兵卒 40萬名이 모두 降伏(항복)하였다. 武安君(白起)이 마침내 속임수를 써서(挾협) 모두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고,坑(갱)은 구덩이요 빠뜨림이니, 구덩이에 빠뜨려서 죽임을 이른다. 나이 어린 者 240名을 남겨서 趙나라로 돌려보냈다.
譯註] 1. 數: 셈 수, 자주 삭, 촘촘할 촉. 2. 卽有不稱즉유불칭: 卽은 若과 같은 뜻, 假設하는 말이며, 稱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함을 이른다. 3. 泄: 샐 설, 흩어질 예. 4. 更: 고칠 경, 다시 갱 5. 奇正: 奇는 奇兵으로 變化無雙(변화무쌍)하게 出沒(출몰)하여 奇襲攻擊(기습공격)하는 軍隊를 이르는 반면, 正面으로 攻擊하는 軍隊를 正兵이라 한다. 6. 銳卒예졸: 매우 날래고 용감한 兵士. 7. 肉薄戰육박전: 서로 맞붙어서 치고받는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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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 [壬寅]五十六年 (임인 56년, BC.259)
燕雀處堂(연작처당) | 燕雀處堂(연작처당) | 竈突炎上(조돌염상) |
秦之始伐趙也에 魏王이 問諸大夫한대 皆以爲秦伐趙는 於魏에 便이라하야늘 孔斌[原註]孔子六世孫子順也라 曰 不然하다 秦은 貪暴之國也라 勝趙면 必復他求하리니 吾恐於時[頭註]猶言於此時也라 에 魏受其師也하노라 先人有言호되 燕雀이 處堂에 子母相哺(注1)하야 呴(注2)呴焉相樂也하야 自以爲安이라
(진지시벌조야.에 위왕.이 문제대부.한대 개이위진벌조.는 어위.에 편.이라하야늘 공빈[원주]공자륙세손자순야.라 왈 불연.하다 진.은 탐포지국야.라 승조.면 필부타구.하리니 오공어시[두주]유언어차시야.라 에 위수기사야.하노라 선인유언.호되 연작.이 처당.에 자모상포.(注1)하야 구(注2)구언상락야.하야 자이위안.이라)
秦나라가 처음 趙나라를 征伐할 적에 魏王이 여러 大夫에게 물으니, 모두 秦나라가 趙나라를 征伐하는 것은 魏나라에게 便利하다고 말하였으나 孔斌(공빈)孔斌은 孔子의 6世孫인 子順(자순)이다. 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秦나라는 貪慾(탐욕)스럽고 暴惡(포악)한 나라이다. 趙나라를 이기면 반드시 다시 다른 것을 要求할 것이니, 나는 이때 魏나라가 그 師=軍隊의 侵攻을 받을까 두려워한다.於時는 ‘이때에’라는 말과 같다. 先人이 말하기를 ‘제비가 堂에 살면서 새끼와 어미가 서로 먹여 주어 다정하게(呴呴) 서로 즐거워하여 스스로 便安하다고 여긴다.
* 斌빛날 빈: 1. 빛나다. 문(文)과 무(武)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모양.(동의자 彬) 2. 뒤섞여 얽힌 모양. 아름답고 성하다. 겸비(兼備)하다. 훌륭한 모양. * 燕雀處堂연작처당: 참새와 제비, 또는 되새(花雀)가 처마 밑에 산다는 뜻으로, 安心하고 있어 災殃이 닥쳐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다. |
竈突炎上하야 棟宇將焚호되 燕雀이 顔不變하야 不知禍之將及己也라하니 今子不悟趙破면 患將及己하니 可以人而同於燕雀乎아 當今에 山東之國이 敝而不振하고 三晉이 割地以求安하고 二周折而入秦하고 燕, 齊, 楚已屈服矣니 以此觀之컨대 不出二十年하야 天下其盡爲秦乎인저
(조돌염상.하야 동우장분.호되 연작.이 안불변.하야 부지화지장급기야.라하니 금자불오조파.면 환장급기.하니 가이인이동어연작호.아 당금.에 산동지국.이 폐이부진.하고 삼진.이 할지이구안.하고 이주절이입진.하고 연, 제, 초이굴복의.니 이차관지.컨대 불출이십년.하야 천하기진위진호.인저)
부엌 굴뚝에서 불길이 올라와 집(棟宇동우=家屋가옥)이 將次 타려 하는데도 제비는 낯빛을 變하지 않고 禍화=災殃(재앙)이 將次 自身에게 미칠 줄을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지금 그대들은 趙나라가 擊破되면 患難(환난)이 將次 自身에게 미칠 줄을 깨닫지 못하니, 사람으로서 제비와 같을 수 있겠는가? 지금에 山東의 나라가 疲弊(피폐)하여 떨치지 못하고 三晉이 땅을 떼어 秦나라에 바쳐서 便安함을 求하고, 二周(西周와 東周)가 꺾여서 秦나라에 들어가고 燕·齊·楚가 이미 屈伏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觀察(관찰)하건대 20年이 못되어 天下는 모두 秦나라가 될 것이다.”
譯註] 1. 子母相哺자모상포: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 줌을 이른다. 2. 呴: 숨 내쉴 구: 3. 말이 부드러운 모양. 呴呴구구: 구구. 닭을 부르는 소리. * 突갑자기 돌: 1. 갑자기 2. 갑작스럽다 3. 내밀다 4. 쑥 나오다 5. 부딪치다 6. 구멍을 파서 뚫다 7. 굴뚝 8. 대머리 9. 사나운 말. * 棟宇동우: 집의 마룻대와 추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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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 [癸卯]五十七年 (계묘 57년, BC.258)
邯鄲之戰(감단지전) | 毛遂自薦(모수자천) | 毛遂自薦(모수자천) |
秦이 以王陵攻邯鄲하니 武安君[頭註]武安은 縣名이라 一說에 戰必克하야 得百姓安集故로 曰武安也라 曰 邯鄲이 實하니 未易攻也요 且諸侯之救日至하리니 破秦軍必矣라하고 辭疾不行한대 乃以王齕로 代王陵하다
(진.이 이왕릉공감단.하니 무안군[두주]무안.은 현명.이라 일설.에 전필극.하야 득백성안집고.로 왈무안야.라 왈 감단.이 실.하니 미이공야.요 차제후지구일지.하리니 파진군필의.라하고 사질불행.한대 내이왕흘.로 대왕릉.하다)
秦나라가 王陵으로서 邯鄲을 攻擊하자, 武安君[두주]武安은 縣의 이름이다. 一說에 白起가 싸우면 반드시 이겨서 百姓들이 便安하게 살았으므로 武安이라고 했다 한다. 이 말하기를 “邯鄲은 充實하니 쉽게 攻擊할 수가 없고 또 諸侯들의 救援이 날로 이를 것이니, 秦나라 軍隊가 틀림없이 擊破 當할 것이다.” 하고는 疾病으로 辭讓(사양)하고 길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王齕(왕흘)로 王陵(왕릉)을 代身하였다.
毛遂自薦(모수자천) | 毛遂 彫塑(모수 조소) | 毛遂之廟(모수지묘) |
錐 송곳 추 | 囊中之錐(낭중지추) | 囊中之錐(낭중지추) |
趙王이 使平原君으로 求救於楚한대 平原君이 約其門下食客文武備具者二十人하야 與之俱러니 得十九人하고 餘無可取者라 毛遂自薦於平原君이어늘 平原君曰 夫賢士之處世也는 譬若錐(注1)之處囊中하야 其末立見(注2)하나니 今先生이 處勝之門下 三年於此矣로되 勝이 未有所聞하니 是는 先生이 無所有也로다
(조왕.이 사평원군.으로 구구어초.한대 평원군.이 약기문하식객문무비구자이십인.하야 여지구.러니 득십구인.하고 여무가취자.라 모수자천어평원군.이어늘 평원군왈 부현사지처세야.는 비약추(注1)지처낭중.하야 기말립현.(注2)하나니 금선생.이 처승지문하 삼년어차의.로되 승.이 미유소문.하니 시.는 선생.이 무소유야.로다)
趙王이 平原君을 시켜 楚나라에 救援을 請하게 하였다. 平原君은 門下의 食客 中에 文武를 具備(구비)한 者 20名과 約束하여 함께 가려고 하였는데, 19名만 얻고 나머지는 取할 만 한 者가 없었다. 毛遂가 自身을 平原君에게 薦擧(천거)하자, 平原君이 말하기를 “어진 선비가 世上에 處함은 譬喩하건대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어서 그 끝이 당장 드러나는 것과 같소. 이제 先生이 나(勝)의 門下에 있은 지가 只今 3年이 되었는데 내가 들은 바가 없으니, 이는 先生이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오.” 하였다.
* 毛遂自荐모수자천: ① 모수가 자천(自薦)하다 ② 스스로 자기를 추천하다 ③ 자진해 나서다 * 錐處囊中추처낭중;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才能)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比喩的) 의미(意味)이다. |
毛遂曰 臣乃今日에 請處囊中爾니 使遂蚤(早)得處囊中이면 乃穎脫而出[釋義]脫은 突也요 穎은 錐鋩也니 言猶錐鋩銳上突然而出이라 이요 非特其末見(注3)而已니이다 平原君이 乃與之俱하니 十九人이 相與目笑之러라
(모수왈 신내금일.에 청처낭중이.니 사수조(조)득처낭중.이면 내영탈이출[석의]탈.은 돌야.요 영.은 추망야.니 언유추망예상돌연이출.이라 이요 비특기말현(注3)이이.니이다 평원군.이 내여지구.하니 십구인.이 상여목소지.러라)
毛遂가 對答하기를 “臣이 오늘에야 비로소 주머니 속에 있기를 請하는 것이니, 假使=萬一 제(遂)가 일찍(蚤조=早조) 주머니 속에 處할 수 있었다면 마침내 송곳 끝이 〈주머니 밖으로〉 빠져 나왔을 것이요,脫(탈)은 突出(돌출)하여 나온 것이고 穎(영)은 송곳 끝이니, 송곳 끝이 위로 突出하여 〈주머니 밖으로 빠져〉 나옴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어서〉 다만(特) 그 끝이 드러날 뿐만이 아닙니다.” 하였다. 平原君이 마침내 毛遂와 함께 가니, 19名이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다.
* 蚤벼룩 조: 1. 벼룩(벼룩목에 속하는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손톱 3. 일찍(=早). * 鋩서슬 망: 1. 서슬(날카로운 부분) 2. 칼날 3. 봉망(鋒鋩: 창, 칼 따위의 뾰족한 끝) * 穎 이삭 영: 1. 이삭 2. 뾰족한 끝 3. 빼어나다 4. 자루 |
平原君이 至楚하야 與楚王으로 言合從之利害할새 日出而言之하야 日中不決이라 毛遂按劍歷階而上하야 謂平原君曰 從之利害는 兩言而決爾어늘 今에 日出而言하야 日中不決은 何也잇고 楚王이 怒叱曰 胡不下오 吾乃與而君言이어늘 汝는 何爲者也오 遂按劍而前曰
(평원군,이 지초,하야 여초왕,으로 언합종지리해,할새 일출이언지,하야 일중불결,이라 모수안검력계이상,하야 위평원군왈 종지리해,는 양언이결이.어늘 금.에 일출이언.하야 일중불결.은 하야.잇고 초왕.이 노질왈 호불하.오 오내여이군언.이어늘 여.는 하위자야.오 수안검이전왈.)
平原君이 楚나라에 이르러 楚王과 合從의 理解를 말할 적에 해가 뜨면서부터 말을 하여 해가 中天인데도 決定하지 못하였다. 毛遂가 칼을 어루만지면서 階段(계단)을 지나 올라가서 平原君에게 말하기를 “合從의 利害는 두 마디 말이면 決定되는데 只今 해가 뜨면서부터 말씀을 하여 해가 中天인데도 決定하지 못함은 어째서입니까?” 하였다. 楚王이 怒(노)하여 꾸짖기를 “어찌 내려가지 않는가? 내가 다만 너(而)의 君主와 말을 하는데, 너(汝)는 어떠한 者인가?” 하니, 毛遂가 검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王之所以叱遂者는 以楚國之衆이어니와 今十步之內에 不得恃衆也리이다 王之命이 懸於遂手하니 吾君이 在前이어늘 叱者는 何也잇고 今以楚之彊으로 天下弗能當이라하나 白起는 小竪子[釋義]言其庸劣無智하야 若童竪然이라 爾로되 一戰而擧鄢郢(注4)하고 再戰而燒夷陵(注5)하고 三戰而辱王之先人(注6)하니 此는 百世之怨이요 而趙之所羞어늘 而王弗知惡(注7)焉하시니 合從者는 爲楚요 非爲趙也니이다
(왕지소이질수자.는 이초국지중.이어니와 금십보지내.에 부득시중야.리이다 왕지명.이 현어수수.하니 오군.이 재전.이어늘 질자.는 하야.잇고 금이초지강.으로 천하불능당.이라하나 백기.는 소수자[석의]언기용렬무지.하야 약동수연.이라 이.로되 일전이거언영.(注4)하고 재전이소이릉.(注5)하고 삼전이욕왕지선인.(注6)하니 차.는 백세지원.이요 이조지소수.어늘 이왕불지오(注7)언.하시니 합종자.는 위초.요 비위조야.니이다)
“王=君主께서 저(遂)를 꾸짖는 까닭은 楚나라의 많은 兵力 때문이겠지만 이제 10步 안에서는 많은 兵力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王의 목숨이 이 毛遂의 손에 달렸으니, 우리 君主가 앞에 계신데 꾸짖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제 楚나라의 疆(강)함을 天下가 當해낼 수 없다고 말하나 白起(武安君)는 철부지 어린아이(小竪子)小竪子는 庸劣(용렬)하고 智慧(지혜)가 없어 어린아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일 뿐인데 한 번 싸워 鄢과 郢을 占領(점령)하고, 두 번 싸워 夷陵(이릉)을 불태우고, 세 번 싸워 王의 先人(先親)을 辱(욕)보였으니, 이는 楚나라에 百代의 怨讐(원수)이고, 우리 趙나라에서도 羞恥(수치)로 여기는 바입니다. 그런데도 王이 미워할 줄을 알지 못하시니, 合從하는 것은 楚나라를 위한 것이지 우리 趙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 竪세울 수: 1. 세우다 2. 서다 3. 곧다 4. 짧다 5. 천(賤)하다 6. 더벅머리 7. 아이 8. 내시(內侍). * 小竪者: 言其庸劣無智若童竪然(용렬하고 지혜가 없어 어린아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
歃血(삽혈) | 歃血爲盟紀念碑(삽혈위맹기념비 | 《歃血結盟永跟黨走》 雕塑 |
楚王曰 唯唯라 誠若先生之言인댄 謹奉社稷以從호리라 毛遂謂楚王之左右曰 取鷄狗馬之血來하라 毛遂奉銅盤而跪進之楚王曰 王은 當歃(注8)血[釋義]盟者以血塗口旁曰歃血이라 師古曰 預盟者各歃血하고 餘者瘞之라 故云歃이라 索隱曰 盟之用牲에 貴賤不同하야 天子用牛馬하고 諸侯犬猳하고 大夫以下用鷄하니 毛遂請取鷄狗馬血來者는 蓋總盟之用牲也라 而定從하소서 次者는 吾君이요 次者는 遂라하고 遂定從於殿上하고
(초왕왈 유유.라 성약선생지언.인댄 근봉사직이종.호리라 모수위초왕지좌우왈 취계구마지혈래.하라 모수봉동반이궤진지초왕왈 왕.은 당삽(注8)혈[석의]맹자이혈도구방왈삽혈.이라 사고왈 예맹자각삽혈.하고 여자예지.라 고운삽.이라 색은왈 맹지용생.에 귀천부동.하야 천자용우마.하고 제후견가.하고 대부이하용계.하니 모수청취계구마혈래자.는 개총맹지용생야.라 이정종.하소서 차자.는 오군.이요 차자.는 수.라하고 수정종어전상.하고)
이에 楚王은 “옳소. 옳소. 誠=眞實로 先生의 말과 같을진댄 삼가 社稷(國家)을 받들어 따르겠소.” 하였다. 毛遂가 楚王의 左右에게 이르기를 “개와 닭과 말의 피를 가지고 오라.” 하였다. 毛遂가 〈짐승의 피가 담긴〉 구리 쟁반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跪 꿇어앉을 궤) 楚王에게 올리며 말하기를 “王은 마땅히 피를 마셔盟約(맹약)하는 者가 피를 입가에 바르는 것을 歃血(삽혈)이라고 한다. 顔師古가 말하였다. “盟約에 參與(참여)한 者가 各自 입가에 피를 바르고 나머지는 땅에 묻는다(瘞 묻을 예). 그러므로 歃이라고 한 것이다.” ≪史記索隱≫에 말하였다. “盟誓(맹세)할 때에 쓰는 犧牲(희생)은 貴賤(귀천)이 똑같지 않아 天子는 소와 말을 쓰고, 諸侯(제후)는 개와 돼지(猳: 수퇘지 가)를 쓰고, 大夫 以下는 닭을 썼으니, 毛遂가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지고 올 것을 請한 것은 盟誓할 때 쓰는 犧牲을 總括(총괄)한 것이다.” 合從을 定하소서. 다음은 우리 君主이고, 다음은 이 毛遂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殿閣(전각) 위에서 合從을 定하였다.
毛遂左手持盤血而右手招十九人하야 歃血於堂下하고 曰 公等은 碌碌하니 所謂因人成事者也로다 平原君이 已定從而歸하야 至於趙하야 曰 勝이 不敢復相天下士矣라하고 遂以毛遂爲上客하다 於是에 楚王이 使春申君으로 將兵救趙하다
(모수좌수지반혈이우수초십구인.하야 삽혈어당하.하고 왈 공등.은 녹록.하니 소위인인성사자야.로다 평원군.이 이정종이귀.하야 지어조.하야 왈 승.이 불감부상천하사의.라하고 수이모수위상객.하다 어시.에 초왕.이 사춘신군.으로 장병구조.하다)
毛遂가 왼손으로 쟁반의 피를 잡고 오른손으로 19名을 불러 堂下에서 피를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公들은 碌碌(녹록: 平凡하고 보잘것없음)하니, 이른바 ‘다른 사람을 因하여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였다. 平原君이 이미 合從을 定하고 돌아와 趙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勝)는 敢히 다시 天下의 선비를 相(상) 본다고 못하겠다.” 하고는 마침내 毛遂를 上大夫로 삼았다. 이에 楚王이 春申君(黃歇황헐)으로 하여금 軍隊를 거느리고 趙나라를 救援하게 하였다.
譯註] 1. 錐: 송곳 추. 2~3. 見: 볼 견, 뵈올 현. 4. 鄢郢: 언영 5. 夷陵이릉: 楚나라 先王의 墓號이다. 6. 辱王之先人욕왕지선인: 白起가 楚나라 宗廟를 부순 것을 가리킨다. 7. 惡: 악할 악, 미워할 오. 8. 歃: 마실 삽, 맛볼 합. |
出處: Daum, Goo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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