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 루벤스의 모델 ‘조선남자’를 찾아서 ... 2004-01-29지난 연말 국내 언론은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으로 유명한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1577~1640)의 드로잉 ‘조선 사람’(Korean Man)을 연이어 화제로 올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루벤스-반 다이크 드로잉전’(2003년 12월19일∼2004년 2월8일)을 통해 미국 게티미술관이 소장한 이 그림이 국내에 처음 공개되면서 각종 미스터리들이 다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 루벤스의 모델 ‘조선남자’를 찾아서지난 연말 국내 언론은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으로 유명한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1577~1640)의 드로잉 ‘조선 사람’(Korean Man)을 연이어 화제로 올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루벤스-반 다이크 드로잉전’(2003년 12월19일∼2004년 2월8일)을 통해 미국 게티미술관이 소장한 이 그림이 국내에 처음 공개되면서 각종 미스터리들이 다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 화제 중 하나는 이 전시를 위해 내한한 게티미술관 큐레이터 리 헨드릭스 박사의 말을 빌려, 루벤스의 이 작품이 ‘한국인’으로 명명된 것은 1934년이며, 그림의 주인공은 일본에 살던 영국인의 한국인 하인이었던 ‘미구엘(Miguel)’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는 ‘조선 사람’의 모델은 루벤스의 유화 대작 ‘성 프란시스 하비에르의 기적’에도 등장하며 바로 그 밑그림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논지였다.
하지만 역사 속의 그림을 둘러싼 논란들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국내 언론이 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 인근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 성씨들로 이루어진 집성촌이 있으며 이들의 조상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정착한 ‘안토니오 코레아’란 이름의 조선인이라는 보도를 냈다. 이어 4년 뒤 ‘조선 사람’(당시 제목은 ‘한복 입은 남자’)이 경매에서 고가로 팔린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고, 언론들은 안토니오 코레아와 그림의 모델일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관지었다.
그러나 지금도 속시원하게 그림의 비밀은 풀어지지 않고 있다. 과연 그림 속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는 어떤 사연으로 500년전 머나먼 이국 땅까지 갔을까? 그는 안토니오인가? 만약 그렇다면 루벤스는 어떤 경로로 모델을 만났고 왜 그렸을까? 부산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오랜 시간 자료를 수집했으며, 게티미술관 인근의 UCLA를 택해 1년간 방문학자로 갈 정도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루벤스의 ‘조선 남자’의 모델이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토니오를 알비 코레아 씨들의 조상으로 단정 짓는 것은 무리이며 절제되지 않은 민족주의가 낳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심증적으로 추정돼 온 것들을 저자는 18세기 이래 서양미술사학계의 자료와 해석들, 이탈리아와 일본, 한국 역사학계의 주장들, 그 외 언론보도 등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루벤스 드로잉의 주인공이 조선 남자이며, 또한 안토니오 코레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그림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서양 미술사학자들은 카를레티와 안토니오 코레아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구의 진전이 없었다. 반면 국내에선 주로 언론들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실증적 접근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곧 저자는 서양의 미술사가들이 모르는 카를레티와 안토니오의 존재와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이 접근하지 못한 루벤스의 드로잉에 대한 연구 성과를 합치는 작업을 보여준다.
책은 역사학의 범주를 넘어 미술사, 복식사, 국제관계사 등을 넘나들며 역사적 상상력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조선 청년 안토니오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앞으로 남은 과제다.
- 엄주엽 기자 (2004-01-29)
한겨레 | “그림속 조선남자 찾아 발품 좀 팔았죠” 역사학자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이탈리아사 전공자이고 주요 연구 영역은 16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다. 그가 흥미로운 책 한 권을 펴냈다.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기획한 ‘히스토리아’ 시리즈의 첫쨋권으로 나온 이 책은 역사 속의 작은 소재를 실마리 삼아 역사적 진실과 의미를 밝힌다는 이 시리즈의 ‘틈새 읽기’ 전략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선은 대중적 관심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6세기 초 처음으로 유럽에 간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10여년 전부터 신문·잡지 따위에 오르내렸고, 이내 사실로 굳어져 소설로 쓰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동시대의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1577~1644)의 드로잉 <조선 남자> 속의 그 조선인이 누구냐는 것과 관련된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인의 귀를 솔깃하게 한 이 두 이야기는 안토니오 코레아가 루벤스 그림 속의 그 조선인일 것이라는 추정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그 막연한 추측이 진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음을 입증해가는 책이다.
“안토니오 코레아가 루벤스 그림의 주인공이냐 아니냐를 단정하는 것 자체는 학문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그것이 역사학의 대상이 되려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그 결론을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다 모아 논증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자평합니다.”
곽 교수 이전에 이 문제가 막연한 추정과 대중적 흥미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구체적인 사료로 입증하는 과정이 생략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안토니오 코레아에 관한 한국·일본의 역사학적 연구와 루벤스의 드로잉에 관한 서구 쪽의 미술사학적 연구가 서로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운 좋게도’ 이 양쪽의 연구 성과를 종합할 수 있는 자리에 곽 교수가 있었다.
“1992년께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느끼고는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습니다. 2000년에 1년 동안 미국 방문학자로 갈 기회를 얻었을 때 일부러 루벤스의 <조선 남자> 원화가 있는 폴 게티 미술관 가까이에 있는 캘리포니아대를 택하기도 했죠. 거기 대학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런 발품을 판 연구 끝에 그는 루벤스가 로마에 머물던 1606~1608년 사이에 그곳에 있었던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를 직접 만나 초상화에 담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미술사·복식사·국제관계사의 도움을 받아 그런 추정에 특별한 하자가 없음을 설득하고 있다. 책의 구성만 따로 이야기하면, 학자가 탐정이 돼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연구자의 고민과 추론 과정을 독자에게 다 알려주는 미시사 서술 방법론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이 유일한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작업이 의미가 있다면, 이 문제를 무책임한 ‘이야기’의 영역에서 끌어내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 고명섭 기자 (2004-01-31)
국민일보 | 400년전 그림속 모델…그는 누구? 미국 폴 게티 미술관에 소장된 루벤스(1577∼1640)의 드로잉 ‘조선 남자’ 속 모델은 누구인가. 각주와 찾아보기를 합쳐 150여 쪽에 불과한 소책자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는 한가지 수수께끼에 대한 긴 답변이다. 건너가야 할 강폭은 넓은 데 사실의 징검다리는 띄엄띄엄 놓여있고 가진 것은 추리와 역사적 상상력뿐이다. 이제 강을 건널 것인가. 거장이 남긴 한장의 스케치 속에 꿈틀대는 역사를 감지했다면 당신은 400년 전 드라마를 관람할 자격이 있다. 저자 곽차섭(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제기됐던 주장과 관련 자료 등에서 성과와 한계를 하나씩 짚어나가며 해답을 찾아나간다.
수수께끼는 서양 미술계와 국내 학계의 두 갈래 방향에서 진행되어 왔다. 20세기까지 서구 미술계의 정설은 이 남자가 ‘사이암(태국)의 사제’라는 것이었다. 근거는 동판 모사 작가인 윌리엄 베일리가 18세기 모사 작품에 남긴 ‘사이암의 사제’라는 기록. 하지만 20세기 들어 워틀리는 그 시기 사이암의 사절이 영국에 온 일이 없다는 점,얼굴 생김새가 몽골리안과 닮았다는 등의 이유로 그림 속 남자는 “하인 신분의 조선인”이라고 단정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루벤스의 그림과 무관하게 안토니오 코레아의 행적을 둘러싸고 논의가 활발했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유럽에 건너간 최초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16세기말 일본에 왔던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의 여행기 ‘나의 세계 일주기’를 인용한 일본 학자 야마구치의 논문에 처음 언급되는데 책에 따르면 그는 카를레티가 일본에서 사들여 1606년 7월 피렌체에서 풀어준 조선인 노예로 이후 로마로 건너갔다.
조선인이 유럽에 갈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유럽에 거주한 안토니오 코레아에 대한 기록은 자연스럽게 루벤스의 그림 속 모델이 안토니오 코레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제 두 이야기가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만약 루벤스가 안토니오를 그렸다면 두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만났을까.
루벤스는 1605년 11월부터 1608년 10월 사이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안토니오가 로마로 건너간 시점은 확인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1606년 피렌체 도착 이후라는 것. 따라서 두 사람이 만났다면 시점은 다시 1606년 7월에서 1608년 10월 사이로 좁혀진다. 이는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와도 배치되지 않는다.
저자의 결론은 ‘조선 남자’ 속 주인공이 안토니오 코레아일 것이라는 학계 일반의 통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책의 의미는 결론 자체보다는 과정일텐데 저자는 카를레티의 여행기를 번역하고 17세기 이전 조선 의복인 철릭과 관모를 살피는 등 순서를 제대로 밟아 마침내 강 건너편에 당도한다. 덕분에 안토니오가 사제였다는 추측이나, 알비 지방 코레아 집단의 기원에 관한 논리 비약 등 그간의 허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정답을 찾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논의를 진전시키기에 밝혀진 사실(史實)이 부족하다는 기본적 한계 때문인 듯하다(곽차섭·푸른역사·8000원).
- 이영미 기자 (2004-01-30)
동아일보 |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국인의 비밀' 서양 예술가가 그린 최초의 한국인으로 알려진 루벤스(1577∼1640)의 드로잉 ‘한국인(Korean Man)’. 그러나 그림 속 사내가 조선인이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제목도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1983년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4000파운드(약 6억6000만원)에 팔렸을 때 제목이 ‘한복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사내는 과연 누구일까. 루벤스는 어떻게 이 사내를 그리게 됐을까.
부산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양 미술사학계의 사료와 한국 이탈리아 일본 역사학계의 연구 결과물 등을 근거로 루벤스가 그린 사람이 유럽 땅을 밟은 최초의 한국인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코레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드로잉 속 인물이 한국인이라고 믿는 이유는 이렇다. 사내가 쓰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 계층이 평상시 쓰던 방건(方巾)의 일종인 관모(冠帽)다. 옷은 한국의 철릭(天翼)이다. 철릭은 조선시대 사대부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 구별 없이 널리 애용되던 옷. 저자는 철릭의 모양새로 보아 17세기 이전에 유행하던 종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음은 사내의 얼굴. 서양학자들은 사내의 얼굴이 몽골리안 계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저자는 코가 낮지 않고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온 점으로 보아 남방계 아시아인은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조선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한 이유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다소 자신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루벤스가 그린 사내가 안토니오일 것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안토니오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후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팔려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저자는 △안토니오가 카를레티와 함께 1606년 7월 피렌체로 간 얼마 후부터 로마에서 살았으며 △루벤스가 1605년 11월∼1608년 10월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 등을 근거로 루벤스가 1606년 7월 중순경에서 1608년 10월 사이 로마에서 안토니오를 만나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저자가 안토니오에 대해 가졌던 또 하나의 의문은 이탈리아 남부 오지의 알비 마을에 사는 코레아 씨들이 1990년대 초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안토니오의 후손이냐는 문제이다. 저자는 그렇게 믿을 만한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알비 마을은 1505년부터 스페인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데 스페인에도 코레아라는 성씨가 존재하므로 스페인의 코레아 씨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유럽의 ‘쿠리아(Curia)’라는 성씨가 우여곡절 끝에 개명해 코레아 씨가 됐을 수도 있다는 것.
이상의 근거만으로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풍부한 사진 자료를 보며 저자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은 루벤스의 드로잉만큼 매력적이다.
- 이진영 기자 (2004-01-31)
서울신문 | "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지난 1979년 한 국내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는 코레아(Corea)씨가 모여살고 있다. 이들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정착한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이다. 1983년의 런던발(發) 기사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1577∼1640)의 ‘한복 입은 남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렸다는 내용이었다. 새달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루벤스-반 다이크 드로잉전’에 나와 있는 ‘조선 사람(Korean Man)’이 바로 이 그림이다. 당시 언론은 안토니오 코레아가 이 그림의 모델이었을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푸른역사 펴냄)는 안토니오와 루벤스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을 쓴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 역사학자.그는 지난 2000년 방문학자로 미국 UCLA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 ‘조선 사람’을 소장한 게티미술관이 이웃에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곽교수는 ‘조선 남자’의 모델이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안토니오를 알비에 사는 코레아씨의 조상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절제되지 않은 민족주의가 낳은 신화라는 것이다.
곽교수는 1792년 월리엄 베일리 이후 최근까지 서양 미술사학계가 이 그림을 꾸준히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번에 이들의 연구성과를 국내 학계에 제시한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성과다. 8000원. |
첫댓글 나는 이 그림과 사연을 보고 묘한 슬픔에 잠겼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잡혀 간 뒤 노예로 팔려가다가 인도에 떨궈진 사람,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데려가 안토니오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사람의 모습을 400년이 지나 보니 이런 아픔이 수십만이라고 생각하니 캄캄하다, 무능하고 어리석은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천대받다, 유민이 되고 노예가 되어야 했던 무수한 선조들을 떠올린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참 슬픈 역사를 살긴 살았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