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서울교구 주낙현 요셉 신부님께서 성공회신문에 연재하신 시리즈 [성찬례 해설]을 공유합니다.
주낙현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원문 출처: [성찬례 해설 2] 예배의 주체와 흐름 - 하느님의 초대, 교회의 응답 - 성공회신문 (skhnews.or.kr)
[성찬례 해설 2] 예배의 주체와 흐름 - 하느님의 초대, 교회의 응답
주낙현 요셉 신부
예배하는 인간(homo adorans)으로서 우리는 예배하는 주체를 자기 개인이나 우리 자신으로 생각하기 쉽다. 예배 '하다'는 동사의 주어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통은 오래도록 이에 관하여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주어의 변화를 요청했다.
예배의 주체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예배하도록 하신다. 예배가 근본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세계에 펼치신 구원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이 구원 사건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잔치에 하느님께서 초대하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예배, 특히 성찬례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구원을 감사하고 누린다. 신자는 이처럼 응답하는 일로서만 예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응답하여 예배하는 신자에게 성찬례는 무엇인가? 성찬기도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마침 영광송은 그 뜻을 잘 요약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 신자의 바른 응답으로서 예배다. 그런데 하느님은 신자를 개인으로 성찬례에 부르시지 않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로 부르신다. 여기서 전례와 교회의 근본적인 관계와 원칙이 드러난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이는 일이 없이는 전례가 없다. 전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전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훈련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교회 전통은 성찬례의 구조와 흐름 안에 이 믿음을 굳게 새겨놓았다. 지난 글에서 나눈 것을 되새기면,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선교의 특정 사건이었던 '성 목요일 마지막 만찬'의 단순한 기억이나 재현을 훌쩍 넘어선다.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진 구원 사건을 교회가 함께 축하하며, 교회가 다시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 응답하며 계속 구성하는 치밀한 구조물이다. 그 신비로운 건축 안에 모여들어 자신을 맡기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훈련하고 변화한다. 이렇게 훈련하고 변화한 몸으로서야 세상에 나아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선교가 성찬례와 연결된 이유다.
성공회 신자는 '말씀과 성사'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찬례의 두 핵심 기둥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금방 떠올린다.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펼치신 일들을 성서 안에서 다시 기억하여 오늘 우리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는 시간이다. 성찬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 안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일들이 우리와 세상을 변화하여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는 진실을 몸에 새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 안에서 '말씀'과 '성사'가 서로 관계하여 새로운 실천을 이끌지 못 하는 일이 많았다. 두 기둥을 서로 독립하여 대립하는 구조물로 오해하는 일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천주교회는 성사 중심이고,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이다'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예배, 특히 성찬례를 전체가 하나인 예배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현대 전례 쇄신 운동은 교회가 그동안 성찬례 구조 앞뒤에 있는 '모이는 예식'(개회 예식)과 '흩어지는 예식'(파송 예식)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겼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주님의 백성이 응답하여, '모여서' 말씀을 듣고 기억하며, 성사로 변화한 새 몸을 받아 모시고 세상에 '파송된다'는 흐름과 운동이 성찬례를 살아있게 만든다. 전례가 교회를 만들고 선교의 원천이라는 뜻이 여기에 들어있다.
출처 : 성공회신문(http://www.skh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