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기적’
철학자들 중에는 ‘존재’라는 개념을 가장 중요한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희랍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위 디오니시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하이데거나 가브리엘 마르셀 등의 실존주의자 들이 모두 ‘존재’의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라는 개념은 철학사에서 가장 모호하고 불확실한 개념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철학의 ‘존재’개념은 마치 “무엇이라고 말해버리면 이미 ‘道’가 아니다”라는 도가사상의 ‘道개념’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존재를 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삼은 철학자는 엘레아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립하는 ‘존재하는 것’인데, ‘존재하는 것’만이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 -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고 하는 근본적 사유로부터 ‘존재하는 것’의 성질을 논리적으로 연역하는 것이었다. 그는 존재를 마치 모든 물체들의 기본 단위인 원자나 분자 같이 생각하였는데, 이 존재들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불가분(不可分)인 것이며,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것으로서 완결된 둥근 구(球)처럼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다. 즉 이러 저러한 사물들이 있기 전에는 이와 같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 무한한 존재들이 우주에 흩어져 있었으며,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결합하고 하면서 이러 저러한 사물들이 생겨났다고 본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적인 것 혹은 근본적인 것이 존재이기에 존재만이 진리이며, 존재로부터 발생한 생성·소멸·변화 등은 모두 감각적인 것으로 오류의 근원이라는 주장하였다. 이 감각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빛)’과 ‘존재하지 않는 것(어둠)’을 모두 가지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도 아니면서, 존재 아닌 것도 아닌 즉 ‘어느 정도 존재’인 것이다. 존재로부터 구체적인 개별적인 사물들(세계)이 생겨난 사건을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사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기적’의 의미는 ‘종교’에서 말하는 기적의 의미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음, 이해 불가능함이라는 의미로 ‘신비’의 의미에 더 가깝다. 어떻게 완결되고 영원한 존재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감각적인 사물들’ ‘서로 구별되는 개별자들’ ‘어느 순간 소멸될 것들’이 발생하였을까? 그 원인이나 이유 혹은 그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없으니 ‘기적’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기적’에서 ‘존재의 개념’은 거의 신화에 가깝고 그의 ‘존재의 기적’은 창조설화와 유사하며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철학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혹은 ‘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사상이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스콜라철학의 존재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의 존재 개념 그리고 레비나스의 ‘존재의 중립성’에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존재의 개념은 하나의 개념은 끊임없이 재 산출되고 변형되고 창조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