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부]: 달달이
[제1차 오마대전]을 사흘 앞둔 오늘은 화이트 데이이다. 나른한 하루가 끝나가고, 저녁에 애들하고 마누라한테 선물할 눈깔 사탕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을 무렵 오케이 사장한테 손폰이 왔다.
“저녁에 안양 베네스트로 오시게나, 할 얘기가 있다네.”
“오늘은 화이트 데이라서 좀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걱정 마시게나 내가 자네 집 선물도 다 사놓았으니까, 걱정말고 오시게나.”
“잠깐 ‘선물도’ 라니 자넨 아들밖에 없질 않나.누구 줄 사람이?”
“아까 점심때 마크를 만났었지. [오마대전]을 앞두고 한번 만나보아야 할 것 같아서 말야. 그래서 애들처럼 화이트 데이 핑계 대고 만나자 그랬지.
선물 주니까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더군. 남자한테는 처음 받아보는 화이트데이 선물이라면서 말야. 그러면서 자기한테 ‘사랑 고백’하는 거냐고 깔깔 웃더군.
그리고 덧 붙이는 말 ‘오사장님 머슴될 각오는 단단히 되셨겠죠’ 하더군. 캬~하 고것 참 맹랑하게도.”
“알았네. 회의시간이 다 돼서 그만 끊어야겠네. 그럼 이따 봄세.”
회의시간에 오케이 사장과 마크 사모가 만나서 주고 받는 일문일답의 장면을 생각하다 실소를 터트릴 뻔 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케이 사장이 마크에게 사랑고백을!, 그것도 눈깔 사탕으로 크~하]
오늘 일기는 아침부터 기다리던 봄비는 오질 않고 찌부두두 하루종일 흐리기만 하였다. 그래도 오케이 사장 일을 생각하면 마음속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었다.
[오마대전]의 오사장 측 장자방인 내가 좀 신경을 덜 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에 준비해 두었던 발안CC공략도를 준비하고 안양 베네스트 연습장으로 향하면서 혼자서 연신 터지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오사장이 여자에게 선물을 다하다니. 자기 부인 살아 있을 때 양말 한 짝 선물 안하던 벽창호가 크~흐, 마크한테 첫눈에 반한 모양이구먼.
혼자서 키득키득 웃으며 연습장에 도착해보니 오사장이 자리를 두개 잡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나 무싸, 그리고 여기 자네 딸래미와 마눌님께 줄 선물 일세. 그리고 전략연구소장 아니 장자방 전략은 다 세워 왔겠지.”
“물론이지, 여기 자료 다 있네. 발안 CC는 내 손바닥 보듯 훤하니 이대로 공략하면 틀림 없네. 이 계산대로만 자네가 쳐 준다면 1오바나 2오바는 문제 없네. 다만……”
“다만 뭐?,
……………………..그래”
오케이 사장은 바로 말꼬리를 잡더니 이내 뭔가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창피한 일이지만 자네 생각이 맞네”
“아니 내가 뭘 말했다고 그러는감, 난 한 마디도 안했는데”
“자네하고 나하고 십년지기 아닌 감, 자네 집 숟가락, 젓가락 몇 개인지도 다 아는 사인데 꼭 말해야 아는 감.
그럼 우리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공명과 손권이 했던 것처럼 손바닥에 써 보세나, 그리고 하나 둘 셋하고 펼치는 거야”
“갑자기 웬 삼국지 얘기인가. 그러지 그때는 그게 [火]자 였지.”
그랬었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춘추전국시대에 일약 스타로 떠오르던 유비의 장자방인 제갈공명이 손권과 손을 잡고 조조군을 물리치고자 할 때 화공(火空)을 구상하고 서로의 이심전심과 실력을 가늠코자 행했던 일화이다.
오사장은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자신의 손바닥에 뭐라고 쓰더니 이내 내게 볼펜을 넘겼다.
나도 세 글자를 뚜렷이 적었다.그리고 우리는 합창하듯 하나,두울, 세엣하고 손바닥을 펼쳤다.
[[ 달달이 ]]
그건 언제인가부터 내가 오케이 사장의 별명으로 지어준 이름이었다. 오케이 사장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별명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못 부르지만 그와의 내기에서 내가 궁지에 몰릴 때면 써먹던 작전 용어였다.
내가 돈 잃고 헤메다가 금쪽 같은 만회의 기회를 잡았을 때 오사장은 얄밉게도 벙커 샷을 핀 옆 60센치(오케이또는 기브거리)에 붙여 나의 꿈을 산산조각 낼 것 같은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비겁하게 써먹던 히든 카드였다.
“나이스 아웃! 제법인데, 달달이 마크!!”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달달이]와 [마크]이다.
나는 그를 잘 안다. 그는 이 [달달이! 마크!] 소리를 듣고 아직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이 말을 들으면 오사장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목에 핏대까지 올라 흥분한다. 그리고 하는 퍼팅은 해보나마나.
그는 울그락 불으락 씩씩대며 퍼팅을 하는데 그 모습이 부르르 달달달 떠는 모습이어서 내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 별명 뒤엔 사실 아픈 과거가 묻어 있다. 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달달이]라 부르기 때문에 더 나쁜 놈이다. 하지만 오사장이 화내는 건 그때 뿐 뒤는 깨끗한 사람이다.
삼년 전 우리 [싱글회] 멤버는 발안CC 마지막 홀에 있었다. 우리 중에서 오사장이 60센치 거리에서 처음으로 칠자 싱글로 진입하는 싱글 퍼팅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다른 퍼팅 같으면 당연히 기브 오케이지만 그걸 넣으면 79타로 장군핸디가 되는 중요한 퍼팅이었기에 우린 마크를 외쳤고 오사장은 보무도 당당하게 퍼터에 키스까지하면서 그린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의 운명을 가르는 핸드 폰 소리가 울렸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이건 오사장의 핸드폰 벨소리다. 70년대 새마을 운동할 때 마을 마을 마다 울려 퍼지던 바로 그 멜로디이다.
그때 그는 그 전화를 받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었다. 그러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퍼터를 들고 싱글 퍼팅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오사장 왜그래 무슨일 있어. 얼른 퍼팅 하라고”
우린 모두 그의 칠십대 싱글 진입을 축하하기 위해 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동상처럼 서서 꼼짝을 안하고 있었다.
“아니 오사장 칠십대 싱글 되는 게 그렇게 감격스러운가! 얼른 치게나, 박수 칠 사람들 팔 아파.”
그는 잠시 후 추운 겨울 남자들이 소변 보고 나서, 온몸 떨 듯 경련 하더니 이내 퍼터를 움직였다. 공은 홀로 빨려 들어갔고 그의 두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아니 장군핸디 달더니 그렇게 감격스러운가, 눈물까지 보이다니, 오래살고 볼일이야”
“무싸 정말 미안하네.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집에 들어 가야하니 내 짐 좀 부탁하네. 미안하네”
“여보게 오사장, 무슨일이야….”
그는 바로 자신의 차로 뛰어가 버리고 말았다.
남겨진 우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어이 없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우린 오케이 사장 부인의 부음 소식을 듣고서야 그때의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사장 부인은 아침에 꼭 칠자싱글을 하고 돌아오겠노라고 나간 남편의 푸짐한 저녁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장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화물차에 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오케이 사장이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담당의사는 고개를 저었는데 오케이 사장이 부인의 손목을 잡고 [여보 늦어서 미안해]하자,
마지막 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부인이 잠시 의식을 되찾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여 여보 사랑해, 그리고 애들을 부탁해} 이 한마디 남기고 부인은 눈을 감았다고 한다.
너무나도 남편을 사랑했던 부인의 마지막 모습이 오케이 사장의 망막에 맺혀 지금도 60센치 퍼팅을 남겨 둘 때면 불현 듯 그때의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퍼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도 칠자싱글이 뭔지 마지막 퍼팅을 하려했던 자신의 이기심이 늘 오사장의 뇌리에 각인되어 아내에 대한 죄의식으로 숨통을 조여 숏퍼팅을 할 수가 없노라고 하였다.
[오마대전]에서 분명 마크사모는 이름 그대로 숏퍼팅에 모두 마크를 하라고 할 것이 분명하고, 오사장이 이기고 지는 것은 바로 마크사모의 [마크]라는 청천 병력 같은 말이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사장의 장자방인 나는 바로 [마크]라는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오사장이 어떻게 [달달이 병] 일명 입스 병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여보게 무싸, 자넨 문제도 찾아냈으니 답도 물론 찾아 주겠지?"
"제갈 공명이 제사를 지내 천지신명의 힘을 빌어 동남풍을 불렀듯이 자네도 참 마음으로 부인에게 제를 올려 용서를 빌게나, 그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그 [달달이 병]이 낳을 수도 있질 않겠는가."
"무싸! 역시 자넨 나의 장자방이야. 그렇게 하겠네. 그럼 내일저녁 우리집에서 특별제를 올릴터이니 제문 좀 지어 오게나"
"알겠네. 우리 부친께서 제사 지낼 때마다 제문 지으셨는데 어깨너머로 배워 둔게 있으니 걱정 말게나."
오케이 사장이 사준 화이트 데이 선물을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오니 딸래미가 제일 먼저 나와 반긴다.
"에고 철부지 녀석, 엄마는 어디 가셨니?"
"플릇 불고 있어요"
나와보지도 않는 마누라지만 저렇게 살아서 플릇이라도 열심히 불고 있으니 난 복 받은 놈이여...
[제6부] 부인이여, 용서하소서!!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