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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전도서7장1~14절
제목 : 형통한 날에, 곤고한 날에
어제는 인생의 세 가지 폐단, 즉 있어도 누리지 못하는 재물,
애를 써도 만족을 모르는 수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전도자는 우리 삶의 불평 가운데서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전도자는 앞서 무엇이 더 나은지 알 수 없다(6:12)고 말했지만,
7장에서는 다양한 잠언 형식과 예를 통해 무엇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 지혜자의 마음(1~7절)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낳다(1절)
“[1]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좋은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간주했습니다(8:10;욥 18:17;잠 10:7).
*욥18: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잠10: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그리고 '기름'이란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경의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데, 이는 그 용도 면에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1) 식용(출29:2,23;레 2:1,2,4-7), (2) 등화용(출 25:6;27:20), (3) 의료용(사 1:6), (4) 화장품용(삼하14:2;시23:5), (5) 향유용(눅23:56) 등입니다.
특히 이는 팔레스틴 지역과 같이 건조한 기후 여건 속에서는
그 몸에 기름을 발라 향기를 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룻 3:3;삼하 12:20;시 45:7,8;암 6:6 참조).
*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또한 본절 후반절의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란 전반절의 의미와 연관되는 듯이 보입니다.
즉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지도 모르는 삶의 시작이 날보다 낫다는 것입니다(D.R. Glenn).
그러나 전도자는 삶보다 죽음을 더 애찬 하는 염세주의자로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3:13;5:!8),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2:13).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단지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명성을 얻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낳다(2절).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초상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애곡하는 집'(the house of mourning)입니다.
그리고 '잔치집'이란 술을 마시며 희락을 즐기는 곳으로서 암시되어집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 근거하여 본절은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보다 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하게 함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4절)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3절)
전후 문맥상 역시 앞절(2절)과 연관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슬픔'이란 단순히 고난이나 손해 등으로 일어나는 슬픔이라기보다는 2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죽음 또는 그로 인한 애곡을 보고서 느껴지는 숙연한 슬픔을 뜻하며,
'웃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보다는 육신적 희락을 즐기는 데서 얻어지는 쾌락적, 일시적 웃음을 뜻합니다(2:2-10).
따라서 본절은 인생에서 보게 되는 숙연한 슬픔은
육체적 쾌락에서 얻어지는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고하게 하여
더욱 진지하고 보람된 생(生)을 결단하게 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4절)
1-3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절로서,
지혜 자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늘 진지하게 상고하는 반면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어 단순히 순간순간 육체적 희락만을 즐기고 웃음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5절)
본절도 역시 앞절(4절)처럼 그 의미에 있어서는 계속 전문(前文)들과 연관된다 하겠습니다.
책망은 들을 당시에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종국적으로는 잘못되고 우매한 길을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반면 우매자의 노래 소리는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고 육감적으로 상쾌한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시적, 육체적 희락 속에선 헛되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실속이 없음을 암시합니다(6절)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나무가 희귀하여 가시나무나 풀, 보리, 그루터기 등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시 58:9;120:4;마 6:30 참조),
특히 가시나무는 쉽고 빠르게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타지만,
이내 사그라져 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소리는 헛되고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우매자의 웃음 소리가 겉으로만 요란할 뿐
실속이 없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합니다(7절).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문맥상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되 특히 5절 내용과 연결됨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다.
즉 본적의 원인 때문에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5절)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 반절은 출 23:8;신 16:19;잠 15:27과 유사합니다.
성경에서 '뇌물'을 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 또는 명철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뇌물이 그 하나님의 공의성을 훼손시키고 공정한 판단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2. 지혜자의 인내(8~10절)
1)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낳다(8절)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본절의 상,하반절은 내용상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 과정을 인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경우 그 끝은 처음보다 낫다는 뜻 혹은 어떤 일을 끝까지 마감하는 것이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서 중도에 그만 두는 것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한편 후반절의 '마음'('루아흐')는 '영'(spirit)을 뜻하며 '참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영 안에서 참음'과 '영 안에 거만함'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급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2)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9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본절도 문맥상 앞절(8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봅니다(G.A.Barton).
전반절에 대해서 대부분 영역본들은 '너의 영 안에서 급하게 노를 발하지 말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정의의 의분과는 달리 인격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으로서 결국 죄악을 낳고 맙니다(창 4:5;삼상 18:8).
*창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삼상18: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스피드 시대에는 본절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습니다(욥 5:2;잠 12:16).
*욥5: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잠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3)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10절)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주어진 현실 감당해야 할 현 시대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삶의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Eaton).
한편 본절을 앞절 특히 8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때 그 나중이 처음 보다나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했던 옛날이 일의 결과를 낸 오늘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3. 지혜자의 유산(11~14절)
1) 지혜의 유익성과 보배로움을 언급한 말입니다(11절).
“[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여기서 '지혜'는 2:12-16에서 암시되어진 바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신성한 지혜를 말합니다.
본절에서 '유업'이란 '나할라'로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려받는 '기업'(출 6:8) 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 재산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처럼 귀하다는 뜻이며,
지혜는 그 자체로서도 귀하고 빛나나 유업 즉 재산과 함께 있을 때 그 재산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바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게 된다는 뜻이 입니다.
2) 지혜의 유용성의 탁월함을 재물과의 비교를 통해 밝히어 그려 내는 구절입니다(12절).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본절에서 '보호하는 것'에 해당하는 '첼'은 '그늘'(shadow)을 뜻하나 영역본들은 이와 연관시켜 '보호'(protection, RSV, NASB), '방어'(a eefence, KJV)를 뜻하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잠 3:18,22;8:35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어 주고 오히려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잠 2:20).
*잠2: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3)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13절)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이는 1:15;6:10의 말씀과 유사하며 내용상 8,9절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작정, 주관하고 계시는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에 대항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순응해야 함을 암시해 준다는 말입니다.
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14절)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본절은 내용상 앞절(13절)과 연관되며 그 의미 역시 인간사에서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형통한'에 해당하는 '토브'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의 뜻을 갖는다(2:1).
그리고 '기뻐하고'도 문자적으로는 역시 그 원형이 '토브'입니다.
또한 '되돌아 보아라'('라아')는 '보다', '관찰(주시)하다', '생각(숙고)하다' 등의 뜻을 갖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입니다.
혹자는 바로 뒷 구절 즉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나(Lange),
이보다는 하나님이 곤고하게 한신 목적, 이유 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D.R. Glenn).
한편 후반절의 '장래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아하라 메우마'인데 사람의 장래 일 즉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십니다(11~14절).
삶을 지킬 수 있을 만큼 형통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곤고함을 주십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두 일을 병행하게 하십니다.
해 아래 인생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만 경외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유산보다 값진, 햇빛보다 밝은 참 지혜는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명예와 재물, 죽음과 출생, 슬픔과 웃음, 초상집과 잔칫집, 책망과 노래의 실타래가 서로 교차하고 뒤엉켜 있습니다(1~6절).
삶이 그만큼 간단하지 않고 가볍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산 자는 인생의 참다운 실재를 잘 보여주는 거서에 마음을 두어야 하며, 이는 해 아래 삶이 전부인 자와 정반대인 선택입니다.
인생에 끝이 있음을 안다면, 오늘 내가 선택해야 할 ‘더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2) 지혜자의 책망은 어리석음을 몰아내지만, 우매자의 노래는 어리석음을 부추깁니다(5,6절).
겸손히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교만하지 않는 마음이 지혜의 출발입니다.
어떤 의도로 내 잘못을 지적하든지 달게 듣고 앙심을 품지 맙시다.
듣기에 좋은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3) 탐욕과 뇌물은 지혜의 장애물입니다(7절).
그것은 지혜로운 자를 어리석게 하고 그의 눈을 어둡게 하며, 그의 마음을 파괴합니다.
뇌물의 힘은 막강해서 거절하기란 매우 힘들고, 그것을 받고서 불의에 가담하지 않기란 더욱 힘듭니다.
그래서 더욱 결연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4)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습니다(8~10절).
이것은 결과에 따라 과정마저 판단 받는 결과론적 사고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는 마음’에 비추어보면, 인생길 고비마다 조금씩 진전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높이 사기 위한 것입니다.
조급히 결과를 만들어내려다 일을 그르치기보다 인내하는 마음의 근력으로, 과거에 천착하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조각하고, 지금껏 걸어온 인생길도 조망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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