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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6장12~23절
제목 : 언약궤의 예루살렘 입성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려던 첫 번째 시도는 불순종으로 인해 웃사가 죽고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갔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고 있던 언약궤를 다시 다윗 성으로 옮기는 내용입니다.
오벧에돔 집에 머물던 언약궤가 다윗성에 입성하자, 다윗과 온 백성이 환호하고 기뻐합니다.
하지만 사울의 딸 미갈은 이를 보고 다윗을 업신여김으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1. 언약궤를 운반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12~15절)
1)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메고 다윗 성으로 올라 갑니다(12절).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다윗은 언약궤 운송에 실패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 못을 알았습니다.
*민4:15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운송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렸던 때가 왔습니다.
그것은 법궤를 옮겨 놓았던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거절하던 하나님을 아시듯이,
오벧에돔의 집에 축복을 네리시는 것을 보고,
이제 이전을 허락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내용을 더욱 자세히 기록한 대상 15장에는 다윗 왕이 이번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순종하여 법궤를 운송했음을 보여 줍니다.
*대상15: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즉, 그는 이번에는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레위인들로 하여금 몸을 성결하게 하고 모세의 법대로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대상15:14,15 “[14]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15]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여기서 우리는 다윗 왕이 베레스 웃사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율법을 상고(詳考)한 후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 위에 굳게 선 것을 보게 됩니다.
2)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립니다(13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대상15:11).
대상 15:11에 의하면 이들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레위인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암미나답 이렇게 8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상15:11“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2) 여섯 걸음을 가매.
혹자는 '여섯 걸음을 행할 때마다'로 해석하나, 결코 지지할 수 없는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이 견해를 따를 경우 다윗이 드린 제물의 총수는 엄청난 것이 될 것인데 대상15:26에는 그 수가 모두 수송아지 일곱, 수양 일곱 마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15: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또한 이러한 증거가 아니더라도 이 견해는 다윗이 약 5m 간격으로 제물을 잡아드렸다는 주장이 되므로 그 제물의 수로 볼 때 너무나 상식 밖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여섯 걸음을 가매'를 의미함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섯 걸음을 행한 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즉 이번에는 출발부터 하나님이 레위인들과 함께 하심을 본 까닭입니다(대상 15:16).
법궤를 옴기는데 시작하는 시점과 마지막 시점에 감사로 제의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 형식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틀을 깨고 궤를 멘 레위인들이 처음 여섯 걸음을 아무 탈 없이 옮기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법궤 운반을 허락해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법궤의 정확한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인 동시에 법궤 이동을 허가하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린 것도 되기도 합니다.
(3)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혹자는 본절과 관련, 다윗이 직접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집전(執典)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 당시 하나님께 대한 공적 제사를 집전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제사장뿐이었습니다(레 1-6장).
그러므로 이는 다윗이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제사를 드린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본절의 평행 구절에 '무리가...제사를 드렸더라'(대상 15:26)는 언급이 있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합니다.
더욱이 과거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된 결정적 이유도 사무엘의 직분을 월권(越權)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때문임을 기억한다면(삼상 13:8-14) 이는 보다 명백해집니다.
법궤의 방향이 다윗 성으로 결정된 것을 확신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춥니다(14절).
3)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춥니다(14절).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 다윗의 종교적 열정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고 넘치는 감격적인 기쁨을 잘 드러내 주는 행동입니다.
즉 그는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언약궤를 수도 예루살렘에 모시게 된 데 대하여 감격하며 온 몸과 마음으로 이를 기뻐한 것입니다.
한편 국경일이나 종교 절기, 기타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여 춤추며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5, 15절)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몸에 배인 풍습 중 하나였습니다(출 15:20;삿 11:34;시 149:3;150:4).
베 에봇을 입었더라. - 베 에봇(linen ephod)은 본래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할 때 입던 것으로 엉덩이까지 내려오며 소매가 없는 일종의 겉옷입니다. 출 28:4 주석 참조.
그러나 여기서 다윗이 입은 베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 이었다기 보다 제사장이 아니라도 특별한 종교 의식에 참여할 때 입었던 예복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사실 때문인데 곧 다음과 같습니다.
(1)당시 다윗 뿐아니라 법궤의 운반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세마포 겉옷이나 베 에봇을 입었기 때문입니다(대상15:27).
(2)제사장의 적령(適齡)에 이르지 못한 어린 사무엘도 세마포 에봇을 입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2:18).
4)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옵니다(15절).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즐거이 부르며.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트루아'는 '환호성을 지르다', '갈채를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행위는 특별히 새로운 왕을 환영할 때 보여 준 행위였습니다(왕상 1:34, 39;왕하 11:12, 14;삼상 10:24).
따라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행동은 언약궤로 상징되는 하나님을 그들 신정 국가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는 기쁨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팔을 불고. - 대상 15:28에 의하면 이때 백성들은 비단 나팔(trumpet)뿐아니라 이미 5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제금, 비파, 수금 등을 함께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언약궤를 영접하는 다윗(16~20절)
1)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습니다(16절).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사울의 딸 미갈이...그를 업신여기니라. - 혹자는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긴 까닭에 대해 그녀가 아직도 전 남편인 발디엘(3:15, 16)을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The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이는 지나친 억측입니다.
왜냐하면 본절은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기게 된 동기를 그녀가 다윗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본 탓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미갈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다윗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신여기게 된 까닭은 아마 여호와의 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
던 사울 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대상 13:3).
본서 저자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소개하지 않고 '사울의 딸'로 소개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2)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립니다(17절).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 여기에서 장막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까지(7:1-17;왕상 6장) 임시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놓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이는 모세 당시 만든 성막(출 40장)과는 다릅니다.
다윗 당시 이 성막은 기브온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대상 16:39;21:29).
그러나 솔로몬 때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후에는 이 성막과 다윗이 만든 임시 장막은 모두 해체되고 맙니다(대하 5:2-10). 수 18:1-7
강해, '성막의 역사' 참조.
한편, 여기서 '장막 가운데'란 장막의 중앙을 의미하는데 이는 일종의 지성소(至聖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Keil).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 이 역시 다윗이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제사를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13절 주석 참조.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은 법궤를 모실 장소를 성별하기 위한 일종의 봉헌식(奉獻式)이었습니다(Keil, Lange).
한편 여기에서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의미를 가지며(레 1:3-17), 화목제는 그동안 소원(疎遠)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가 하나 되게 해달라는 간구의 의미를 지닙니다(레3:1-17).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참조.
3)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합니다(18절).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백성에게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고유 권한이자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민 6:22-27).
*민6:22~27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3]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따라서 일국(一國)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다윗 역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백성들의 평강을 간구하였겠지만 어디까지나 백성들에게 공식적으로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들을 시켜서 하였을 것입니다.
즉 이는 제사 집전의 경우와 마찬가지 경우였던 것입니다.
4) 모든 백성에게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19절)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떡 한 덩이씩. - 여기에 언급된 음식물들은 모두 제사용 음식입니다(출 29:23;레 8:26;아 2:5;호 3:1).
그런데 이처럼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고 난 후 함께 그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화목 제물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을 드린 후에는 제사 참여자들로 하여금 그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도록 규정하신 것입니다(레 7:15-18).
한편 백성들이 이처럼 제사드린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그들이 이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연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Wenham).
이는 곧 이제 이스라엘 온 백성이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하나 된 통일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5) 미갈이 다윗이 몸을 드러 냈다하여 비하합니다(20절)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 여기서 '방탕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크'는 '공허한', '가치없는' 또는 '가난한'이란 의미입니다(삿 7:16; 느 5:13;사 29:8).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 곧 신약의 '라가'('어리석은 자'란 뜻)입니다(마5:22).
또한 '그 신복의 계집종'이란 '그 종들의 종년'이란 말로서 가장 천한 자들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갈의 말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왕인 다윗이 마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처럼 가장 낮고비천한자들 앞에서 품위를 잃은 행동을 했다는 내용의 불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그녀가하나님의 언약궤와 관련된 다윗의 순전(純全)한 기쁨을 이해치 못한 데서 나온 불평에 다름 아닙니다. 16절 주석 참조.
*출20: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3. 다윗과 미갈의 불화(21~23절)
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합니다(21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 이 말은 다윗의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14,16절)이 미갈의 말처럼 비천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순전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행동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즉, 그는
(1)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하는 동시에
(2)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신 일(5:1-3)을 기억하며 그러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행동은 여호와 앞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지극히 겸손한 행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시 131:1;마 23:12).
*시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 하나님께 범죄한 사울을 내치고 대신 다윗을 택하신 결과(삼상 13:8-14;15장) 사울 가문은 몰락하고 대신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은 지금껏 우리가 충분히 살펴본 바입니다(1-5장).
주권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5:2; 7:8; 삼상7:16; 10:1; 13:14;25:30).
그러므로 다윗 자신을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라고 표현한 것은 곧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자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봉직(奉職) 되었다는 철저한 소명 의식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2)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높임을 받으리라(22절).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다윗의 행위가 미갈의 말처럼 저질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낮아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대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앞에서 겸손한 자만이 참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그의 확고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삼상 2:7;마 23:12).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3)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3절)
“[23]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혹자는 미갈이 이처럼 무자(無子)한 까닭에 대하여 다윗이 그녀와 동침하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Dake, Wycliffe).
이는 미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였음이 분명합니다.
즉, 그녀는
(1)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였고,
(2)하나님의 가견적(可見的) 보좌인 법궤에 대하여 무지하였으며
(3)자기의 입술을 가볍게 놀린 결과로 자식이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만한 자, 영적으로 무지한 자, 그리고 자기의 감정에 따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미갈은 자신의 아버지 사울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관계에 있어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한 다윗과 같은 기쁨이 있습니까?
자신을 가장 낮은 존재로 낮추고 하나님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드리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다윗은 오벧에돔 집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법궤 운반을 시도합니다(12~15절).
이번에는 율법이 정한 대로 언약궤를 ‘메고’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럴듯한 변명만 일삼던 사울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시정한 것입니다.
실패의 좌절을 자성으로 극복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규례를 따름으로 언약궤의 순전한 행진을 가능하게 합니다.
나도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거듭 주의 뜻을 물으며 순종의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까?
2) 마치 왕이 개선하듯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다윗과 온 백성은 나팔을 불며 크게 환호합니다(16~19절).
마음 졸이던 ‘걸음’(13절)은 흥겨운 ‘춤’으로, 두려움은 축제로 바뀝니다.
이처럼 온몸과 맘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를 낮추고 주를 높이는 곳에는 참 기쁨과 화목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열광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물 것입니다.
3) 언약궤 입성을 모두 환영한 것은 아닙니다(16,20,23절).
경배하는 자가 있고 경멸하는 자가 있습니다.
다윗은 온몸으로 맞이하지만, 사울의 딸 미갈은 창밖으로 내다보며 품위를 잃고 춤추는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이것은 체통을 잊은 왕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갈은 언약궤 입성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자신과 무관한 일로 간주하여 스스로 언약의 축제에서 소외시킨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는 신앙은 늘 체면을 중시하은 메마른 위선이나 경직된 경건을 낳습니다.
4) 다윗은 자신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지 않습니다(21~23절).
그래서 비천한 자신을 높이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이보다 더 낮고 천하게 보일지라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건지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지금껏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상고해보십시오.
당연하게 여겨 감사하지 못한 일상은 없습니까?
지금보다 더 나를 낮춘다면, 지금보다 더 진실한 예배와 찬양이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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