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사입니다
프레시안은 최초의 협동조합형태로 만들어지는 신문입니다
서울 성북구 종암 네거리에서 고려대역 방향으로 큰 길을 따라가다 보면 홀리데이인 호텔을 지나 동물병원이 하나 나온다. 그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보이는 간판. '푸드카페 성북협동조합 웰빙수라간.' 가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깔끔한 인테리어의 이곳은 '아줌마' 7명이 모여 차린 반찬가게 협동조합. 지난 12일 오후 기자가 찾아갔을 때 이사장 백유미 씨와 감사 김효숙 씨는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볶음팬을 내려놓고 분당 50단어를 쏟아내는 이들과 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 만드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현재 바라는 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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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빙수라간 백유미 이사장(왼쪽)과 김효숙 감사(오른쪽) ⓒ프레시안(김하영) |
만남에서 개업까지이들이 만나게 된 곳은 구청. 백 이사장과 김 감사는 3년 전 성북구청에서 연 성북여성교실에서 요리 강좌를 듣다가 알게 된 사이. 요리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고,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할 게 없을까 찾게 됐다고 한다. 백 이사장은 요리 솜씨를 살려 블로그에 폐백·이바지 음식을 올려 팔아볼까 했는데, 허가 없이 블로그를 통해 음식을 팔면 불법이라는 얘기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협동조합'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요리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5명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역시 구청에서 알게 된 '언니들' 5명을 포함시켜 7명이 의기투합하게 됐다. '언니들'은 오세훈 시장 시절 '여행'(女幸) 프로젝트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면서 평소에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수다를 떨다 친분을 쌓아오던 사이라고.
결심이 섰다. 7명은 구청에서 여는 협동조합 강연들을 챙겨 들었다. 기초 과정부터 심화 실무 과정까지 섭렵했다. 사업 계획도 세웠다. 자신 있었다.
"한동안 아침식사로 빵이 유행했는데, 위장병 환자가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밥 해먹으려면 반찬 하는 게 귀찮아요. 생각보다 반찬 사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요즘 두 식구 사는 집도 많은데, 반찬 하려고 식재료 사다 만들어도 버리는 게 너무 많아요. 반찬 몇 가지는 사 먹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요. 저희가 도시락도 하는데, 요즘 자장면도 4500원이잖아요.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 5000원이면 괜찮지 않나요? 괜찮은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예산을 세우고 5명이 500만 원씩 출자해 2500만 원을 모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2명은 일단 10만 원씩 출자를 했다. 이렇게 모은 2520만 원으로 지난 7월 덜컥 가게를 얻었다.
협동조합 설립 전에 가게 문을 먼저 열었다. 운이 좋게도 권리금이 없는 자리가 났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사업은 타이밍"이었다. 가게 보증금 1000만 원을 내고 나머지로는 설비를 구매했다. 설비는 발품을 팔며 시장에서 중고로 들였다. 인테리어까지 마치고 가게 오픈까지 일사천리. 월세가 나가는데 하루라도 가게를 놀릴 수 없었다. 우선 개인사업자로 가게 문을 열고 협동조합 설립 업무는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
요리 자격증이 있는 백 이사장과 김 감사는 아침 일찍 나와 요리를 했다. 단체 도시락 주문이 들어오면 새벽 5시에도 나와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팔 요리를 다 만들면 조금 늦게 출근하는 다른 조합원들이 판매를 맡았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해 한 달 뒤인 8월 28일 협동조합 설립 신고필증을 받았다. 협동조합 설립 신고 업무가 기초단체로 이관된 뒤 성북구에서 신고필증을 교부한 '1호 협동조합'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5월 '의기투합'을 한 이후 4개월 만이다.
어려운 '회사' 만들기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은 많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 일은 없었어요. 하하하." 백 이사장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김 감사가 말을 이어 받았다. "자기 마음 같지 않죠. 많이 얘기하고 조율해 가는 게 협동조합인 것 같아요. 중간에 의견 조율을 잘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요. 조합원 교육 받을 때도 강사들이 제일 강조했던 것도 '말조심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나 싶었는데, 장벽이 하나 생겼다. 협동조합 설립 이후 등기를 내는 과정이 험난했다고 한다.
"등기비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90만 원이래요. 개인사업자로 하면 안 들어가는 돈인데. 협동조합하면서 정관, 의사록 등도 공증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도 10만 원 넘는 돈이 들어가고. 문서 업무에만 100만 원 넘는 돈이 들어가네요."'진격의 주부들'에게도 법무·행정 업무는 버거웠다고 한다. 특히 구청 및 각종 사회적경제 지원 단체의 도움을 얻어 협동조합 설립 신고 단계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 이후 등기 등 실질적인 회사의 법적 지위를 갖추는 단계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게다가 급한 대로 개인사업자로 문을 연 가게를 협동조합 법인 명의로 바꾸는 일도 남아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주식회사랑 쓰는 용어도 다르잖아요. 주식회사에서는 직원이라고 하는데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라고 하고, 주식회사에서는 판매라고 하는 것을 협동조합은 공급이라고 그래요. 지금은 입에서 협동조합 용어들이 붙어 나오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협동조합 등기 과정에서 퇴짜 맞고 주저앉는 데도 많은가보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한 번에 됐어요. 안 그랬으면 힘들었을 거예요."그나마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법인 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단다. 사업도 제법 안정적이라고. 수익이 나서 아직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적자는 나지 않는 상태란다. 사업을 하는 김 감사의 남편은 "사업을 시작하면 처음 몇 달은 어려운 게 당연한 거"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백 이사장과 김 감사는 연말이면 그래도 수익이 생기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사업이 안정을 이루는 데는 '협동조합' 도움도 컸다. 구청에서 협동조합 교육을 함께 받았던 동기들이 반찬을 사 가고,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행사가 있을 경우 도시락을 단체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단골도 조금씩 늘고 있다.
도움만 받는 건 아니다. 웰빙수라간도 협동조합다운 운영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은행은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를, 식재료 구입은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나 두레 생협을, 배달은 한국퀵서비스협동조합을 이용다고 한다. 협동조합 제 6원칙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실천하고 있는 것. 김 감사는 "'협'자 들어가는 곳은 같은 '협'으로서 도와야죠"라고 말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도시락을 만들어 홀몸노인과 결식아동 지원을 해주고 있다. 협동조합 제 7원칙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다. 사회 서비스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협동조합'이 아닌 일반적인 '직원 협동조합'이지만 협동조합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상당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많이 못 벌어 2명 밖에 지원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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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빙수라간. ⓒ프레시안(김하영) |
이렇게 의욕이 넘치는 웰빙수라간의 지금 가장 큰 고민은 홍보.
"얼마 전 한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물어보시더라고요. '혹시 조합원만 반찬을 살 수 있나요?' 우리 간판에 '성북협동조합이라고 써있잖아요. 조합원만 구매를 할 수 있는 아이쿱이나 한살림, 두레 같은 생활협동조합과 착각을 하신 거죠."지금까지는 가게 문을 열고 협동조합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블로그도 열심히 쓰고 짜리시도 돌리는 등 홍보를 적극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유쾌한 에너지가 흘렀고, 사업하는 재미가 느껴졌다. '가정에 소홀해져 아이들 불만은 없냐'는 질문에 김 감사는 "새벽에 나와야 할 때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고 밥 챙겨 먹고 잘 하고 있다"면서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앞으로 목표는?
"웰빙수라간 2호점, 3호점을 내는 게 목표예요. 지금 이 가게 규모에서 직원 조합원을 더 늘릴 수는 없고, 다른 지역에라도 반찬 가게를 하고 싶다는 엄마들이 있으면 저희들이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많은 엄마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오겠죠?(웃음)"
작년 12월 이후 수많은 협동조합이 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곳은 적다. 심지어 몇몇 전문가들은 내년에 5~10%정도 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협동조합을 정부와 지자체의 또 하나의 지원제도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와 법에 맞추어 만들기만 하면 운영 가능한 사업체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장시간의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돈과 사업중심이 아닌 관계와 사람중심의 사업체이다.
8월말까지 전국이 2300여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중에서 착실한 준비와 신뢰관계 형성과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있다. 바로 웰빙수라간협동조합이다.
성북구협동조합협의회의 교육과 컨설팅을 받았고 서울시협동조합상담센터인 사회투자지원재단과의 전화상담과 방문상담을 통해 설립되었다. 조합원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성북구(서울시)의 협동조합, 지역단체들과 협력하며 자신들의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시작도 교육이고 끝도 교육이다" "협동과 연대만이 협동조합의 살길이다"
김종일/사회투자지원재단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