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Dec 2015
김추자 권사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뜻을
목사님에게 밝힌 날이다.
누가 들을새라
대덕한빛교회 본당 방송실로 몰래 데려갔단다.
그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두 분의 인연은 그로부터 몇 해 전,
먼저 필리핀에 권사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오픈 예배에 목사님이 설교자로 건너가
현지 필리핀인들의 뜨거운 은혜가 시발점이 되었다.
출국 아침에 "은목사님 대신 당신이 바뀌어
가는 것엔 반드시 아버지 뜻이 있다" 라는 내 말을 목사님도 기억하고 있다.
후에 영국에서 한인교회와 영국인 교회를 동시에
섬겨주길 바라는 운영위원이 대전까지 오기도 하여 잠시 혼동되었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신 사건이 생긴다.
목사님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설교며, file들이 악성 바이러스로 황당하게
모두 날아가 버렸다
목사님이 갑천에서 얼마나 애타도록 주를 찾으며
간구한 일인지 모른다. 다시 쓴다는 일이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구하고자 회사에 보내기 전, 마지막 점검에서 정말 기적처럼
한 파일이 살아 남는데 그것이 「New Church」
Born Again School 자료다.
그 당시, 하필 제목이 '뉴 처치'였는지 깜짝 놀랐다.
파일 사건으로 우리는
'I am doing a new thing.Now it springs up'
말씀처럼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9년 여를 말씀을 받고 기도하며 기다리며 인내한다는게 쉽지 않았다. 어느 날엔 성전에서
5시간을 내리 기도하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로 대신한 기도, 그간 손수건이 세 장이 찢어졌다.
2010년, Heb10:36 너희가
인내가 필요함은.... 인내의 인 자만 들어도 싫었던
그 힘든 시기를 주어진 외국인 영어예배 사역에
충성함으로 기도하며 이겨 나갔다.
목사님은 휴일인 월요일도 사무실에 갔고
매일 퇴근하면 다시 출근하여 말씀 연구를 하고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였다. 그 덕에
갑천이 나의 유일한 나들이고 관광지이자
온 우주였다.
그때 나는 보았다. 70~100 명 중에서
말씀으로 변화되어 거듭난 청년을,
주님의 열 두 제자를.
2015년 5월 시댁 형제 모임이 있었던 날로 기억한다.
그 날 우리는 마음 가운데 어떤 서운함으로
돌아 오는길에 낙심이 되었다.
바로 다음날 새벽에
"주님은 아무 일도 안하시나봐요"
탄식으로 내뱉던 말이 기도의 전부였다.
오후에 이원호 장로님께서 목사님 사무실을
방문했다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신통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께서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니?"
그 음성이 내 안에서 들렸다.
훗날 초기 개척 멤버로 제일 먼저 뜻을
밝혀 주셨다.
짧지만 그렇게 시작된 죽동한빛교회 이야기다 💕

2016.12.31 송구영신 & 첫 가정예배,
이원호 장로+성은실 권사 댁에서~~*




정민호 목사, 사택에서~~*

김준겸 집사+김명희 권사 댁에서~~*


성전에서 첫 예배
첫댓글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
- 오랜기간 동안의 미등록 유랑 신자 생활을 하다가 이곳 죽동에 사무실을 15년 2월에 개설하면서 죽동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에는 부동산 사무실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지요 물론 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요 그래서 둔산중앙장로교회와 노은중앙교회를 중심으로 유랑 신자 생활은 계속 유지했네요
- 그러던 어느 날 부터 죽동 이곳에 교회를 보내달라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네요,제대로된 교회(아시다시피 유성에는 이단 교회들이 많아요)를.....
- 그러던중 대덕한빛교회 유경이네 집(?)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부목사님이 죽동으로 개척준비한다고......."
- 결국 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죠....ㅋㅋ
맞아요^^ 죽동지기님
처음부터 지켜보시던
집사님 그 눈길을
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