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가 되고 싶은 까닭은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개마고원 편지로 두 번째 드리는 새해인사입니다. 개마고원 모든 농부들의 마음을 모아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꾸러미 식구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의미있는 2013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먹거리 이야기를 시작한지도 7개월이 되었습니다. 우리 식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섯 가지 먹거리 이야기, 먹거리가 아니라 거의 공포물에 가깝지요? 이 이야기들이 언제 끝나게 될지 저도 모르지만, 한 해가 시작되는 이번 달 만큼은 괴로운 이야기를 한번 접고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개마고원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도 한 해가 훌쩍 넘었으니 제 이야기를 할 때도 된 듯 합니다.
저는 아직 진짜 농부가 아닙니다. 한 주의 반은 농사로, 또 반은 생업으로 갈지자를 놓고 있는 ‘반농반도’의 예비농부이자 초보농부지요. 하지만 다리는 양쪽에 걸치고 있어도 마음만은 아마 150% ‘농’에 가있는 듯 합니다. 무언가를 심는다는 것은 거기 마음을 두는 일이더군요. 몸이 오면 마음도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안 옵디다. 몸 가는데 마음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는데 몸도 간다는 진리를 비로소 실감하고 있습니다.
꼭 두 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농장에 농사 돕는다고 갔다가 개마고원 농부들과 자주재배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첫 해에는 다른 농장일을 돕고, 둘째 해인 작년에는 홀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신비원에서 보내준 19가지 곡물과 채소들을 심었지요. 고라니 밥상 차렸다는 말을 들을 만큼 수확이야 빈약했지만 땀만큼은 제대로 흘렸습니다. 생전 처음 삽질도 원없이 해보고, 곡괭이질, 써레질, 호미질, 낫질… 그러고 보니 모두 ‘질’자로 끝나네요. 노동을 천시했던 과거가 낱말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두 해 농사를 지으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이 아니라 아주 가고 싶어졌습니다. 참 모를 일입니다. 땀 흘리는 힘든 일에 왜 그렇게 마음이 가는지… 똑같이 땀 흘리는 일이라도 공사장에서 일했다면 아마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 농사의 ‘농’자와도 아무 인연이 없는 말짱 도시내기입니다. 농사를 거들어 본적도, 심지어는 구경조차도 해 본적이 없지요. 그런데 왜 농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이렇게 크게 갖게 되었는지 저도 저를 모르겠더라구요. 까닭을 찾아봤지요. 지금껏 두 개 찾았습니다. 그 두 개는 개마고원의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꾸러미를 먹는 소비자이기도 한 저의 특수한 입장을 반영합니다.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게요.
첫 번째는, 꾸러미 소비자로서 찾아낸 까닭입니다. 아무것도 투입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 속에서 나오는 먹거리들에 홀딱 반한 겁니다. 제가 꽤 일찍부터 깨우친 바가 있어서 ‘생태주의자’연 하면서 음식도 유기농만 먹은지 오래 되었지요. 아주 오랫동안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주재배 먹거리를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꽤 견고하다고 믿고있던 세계가 바닥부터 무너지는 느낌이었지요. 그러고 나서 새로운 세계의 지평이 열렸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맛에 대한 감각입니다. 과거에 저의 먹거리 선택은 맛이 아니라 지식에 의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먹어왔던 먹거리들의 맛은 모두 희미했습니다. 당연히, 먹거리에 맛을 부여하는 것은 양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요. 그런데 자주재배 먹거리들은 달랐습니다. 저마다 고유한 맛을 뚜렷하게 갖고 있었지요. 그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깊은 우물 속에서 길어올린 맑은 샘물처럼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잠자고 있던 감각이 깨어나 일러주더군요.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이야.” 라구요.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양념이 옅어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리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아주 간단해졌지요.
또 음식의 맛을 분별하는 감각도 살아났습니다. 가끔씩 하던 외식이나 아이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먹었던 패스트푸드들의 진정한 맛을 알아버린 것이지요. 그러고 나니 그 전에는 의식이 거부했던 그런 음식들을 지금은 혀의 감각이 거부합니다. 뭐가 다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감각의 거부라는 게 참으로 막강하더군요. 배가 고파도, 남들 다 먹어도, 손이 안갑니다. 의식적 거부라면 꾹 참아야 되지요.
끼니마다 먹으면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나니 그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아까워서 껍데기도 뿌리도 버리지 못합니다. 자연히 알뜰하게 먹게 되고, 쓰레기도 없어지고, 냉장고까지 빕니다. 꾸러미를 먹으면서부터, 다음 배송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냉장고가 텅 비는 것에 사실 저도 놀랍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과거에는 무더기로 쟁여놓았다가 반 이상은 버렸거든요. 식생활이 이렇게 바뀌니 유기농보다 다소 비싼 꾸러미를 먹으면서도 식비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살맛나는 일이지요.
꾸러미 소비자로서 농사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이런 멋진 먹거리들을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자주재배 농부들이 너무 적다는 것이 안타깝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초보농부로서 찾아낸 까닭인데, 한 마디로 ‘진짜농부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진짜농부’가 된다는 것은 뭘까요? 농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생각해온 질문입니다. 하지만 답하려 하면 할수록 멀리 달아나는 질문이기도 했지요. 말짱 도시내기답게, 농부가 된다는 것은 제 삶에 있어 가장 멀리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멀어서 그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란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많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연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자연이라는 것을 모르고 컸습니다. 제가 알았던 자연이란 ‘국,산,사,자’의 자연이었지요. 어렸을 때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었고, 꽃밭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냥 거기에 있는 사물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싹을 밀어올리고, 잎사귀를 달고, 꽃을 피웠습니다. 그래 봐야 저는 꽃이 예쁜 줄도 몰랐고 초록빛 잎사귀들이 신비롭지도 않았지요.
제가 처음으로 자연이라는 것과 대면한 장소는 놀랍게도 책 속이었습니다. ‘작은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체로키 인디언의 이야기에서였지요. 그 책 뒷면에 쓰인 어떤 이의 감상문이 생각납니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나면 결코 읽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난 사람들은 이제 그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보지 않는다.> 과연…. 그 일이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저의 세계 속으로 자연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지요. 그것은 너무나 커서 저의 세계를 대폭 넓히지 않고서는 들여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너는 누구인가’를 물었습니다.
가끔, 그리고 아직도 그것이 무슨 일이었던가를 생각합니다. 답은 부분적으로는 얻어졌고 또 부분적으로는 미궁 속에 남아있지요. 저는 그 일이 제 안에 잠자고 있던 유전자를 흔들어 깨운 것이었다고 여깁니다. 도킨스라면 자신이 이름붙인 ‘밈(Meme)’이라는 모방유전자에 해당하는 문화심리라고 설명하겠지만, 저는 좀 다르다고 느낍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전승(傳承)입니다. 문화적 전승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혈연적 전승일지도 모르지요. 후에 읽은 수많은 인디언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공명하는 제 안의 유전자의 꿈틀거림을 수없이 경험해왔습니다.
두 번째 자연과의 대면은 산이었습니다. 산에 들면 산이 제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그것 또한 너무나 거대해서 저를 비우지 않고서는 들여놓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사람이 살도록 구획되어 있는 바깥에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이 세계는 사람의 장소 바깥에만 존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궁리가 시작되었고, 산이 사람의 장소로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람이 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에서 살고 싶다는, 되지도 않을 일을 끊임없이 꿈꾸고 상상하면서, 제 안에서 일제히 일어서 소리치는 유전자의 숱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초보농부로 일하며 흙을 만지면서, 작물들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세 번째 자연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밖에서 바라보았던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그것은 온전히 자연에 스며드는 일이었습니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기나긴 시간동안 울려왔던 제 유전자의 공명에 순응하는 일이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도시내기가 농부가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길고도 힘든 노동을 묵묵히 견뎌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씨앗이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는 기나긴 시간을 서성이며 기다려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장마와 가뭄, 폭풍과 우박을 고스란히 맞아내는 일이고, 병들어 오그라드는 잎사귀들을 가슴 졸이며 지켜봐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달려드는 벌레들에게 피를 빨리는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일이고, 뽑고 돌아서면 또다시 자라나는 억센 풀들을 대책없이 바라봐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작물들을 그러안고 빈곤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제가 묻어야 할 삶이 있다고 여깁니다. 머지않아 어엿한 ‘진짜농부’가 될 겁니다. 제 손과 땀으로 키운 먹거리들을 식구들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생각만 해도 농부가 된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2013년 1월 개마고원에서
첫댓글 가슴에 스미는 공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