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난 시외버스는 거침없이 잘도 달린다. 이제 어둠이 깊어져 바깥 풍경 감상은 불가, 머리를 기대고 그 달콤한 잠을 청한다. 나만의 여행길 노하우, 출발후 전망이 좋으면 전망을 보고, 전망이 안좋으면 잠을 자고,아니면 조용히 눈을 감고 상념을 하고, 사고를 하기도 하고, 구상을 하기도 한다. 졸리면 자고 안졸리면 안자고...굴원의 어부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물이 께끗하면 세수하면되고, 물이 지저분하면 발 닦으면 되지...무에 그리 잘났다고 물을 탓하랴...이렇게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을 지나, 아름다운 이름, 미탄을 경유 밤 9시경 정선에 도착 한다.
도착해 보니 숙소가 바닥이다.
내일이 정선 아라리 축제라고 모든 숙소는 만실, 낭패다. 그러나 우리 인생사가 궁하면 통하고 ,인생처처에 유상수라는 말씀에 따라 이곳도 사람이 사는곳인데 이몸 하루 잘곳이 없으랴는 배짱과 동안의 여행 노하우(?)를 믿고, 우선 요기를 할겸 정선 시장으로 걸어서 간다.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정선 시장까지는 조금은 먼길, 터벅터벅 걷는다. 시원한 밤공기, 상큼한 바람, 하늘의 무수한 별들...제법 긴 다리를 건너서 혼자서 간다. 혼자라는 자유로움, 아마 누구와 같이 왔다면 많이 미안하고 당황스러워 했을 겄이다. 숙소도 준비 안하고 어디가서 자려고... 뭘 먹고...등의 여러 사유로 그분이 당황스러워 할것이고, 나 또한 미안해서 좀 거시기(?) 할것이고...이래 저래 혼자라서 편하긴 하다.
정선의 밤은 아직 한참 초저녁 인데 추석연휴 탓인지 상가의 불도 꺼지고, 가끔 운동하는 사람들외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걸어 걸어서 시장통으로 들어가니, 그래도 몇집의 식당이 문을 열고 있어서 다행이다. 한곳을 찿아 들어가 첫 마디, 혼자도 밥을 먹을수 있는지요...라고 묻는다. 혼자 여행하며 느끼는 고민중의 하나, 혼자 밥을 먹는것이다. 나는 상관이 없는데 혼자만의 밥을 차리는 것이 경제 논리에 맞지 않으므로...특히 남도 쪽은 한정식 백반, - 지역에 따라거는 백밥이라고도 부른다 - 은 가짓수가 많아 한사람 밥상을 차리나 두사람이나 세사람분의 차림이나 같은데... 경제성이 아무래도 안 맞을것 같다. 그래서 꼭 묻는다. 혼자도 밥줍니까... 마무리를 하고 가게 문을 닫으 시려는 분위기, 전형적인 강원도 정선의 얼굴(?)을 하신 주인 아주머니께서 위아래를 쓱 훑어 보시더니 앉으란다.
이시간에 밥을 먹을수 있다는 것도 고마워서 지금 되는게 뭡니까...국밥이 된단다. 그래요 그거 한그릇 주시지요...자리에 앉고보니 나보다 먼저 오신 술손님들이 두팀이 앉아 있다. 한팀은 명절을 맞아 고향에 오신 분들 같고, 한팀은 내일의 아라리 축제를 구경하러 오신 외지분들...음식을 준비 하시는 틈을 봐서, 아주머니, 이곳에서 하루 잘곳이 없을 까요 하고 묻는다...아주머니 말씀, 내일이 축제라 숙소가 다 찼을 텐디...어떻헌디야...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그팀중의 한분이 모텔은 다 찼을것이고... 민박집을 알아봐 주시겠다고 핸드폰을 꺼내 여기저기 전화를 거시나 그곳도 만실 인가 보다...나는 그져 어떻허나 하고 그냥 있을수 밖에 없고...잠시후 그분 말씀이, 우리집 넓은디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라고 하신다. 나의 곤란함을 아시고 자기집 에서 하루 자고 갈 것을 권유 하신다. 황당함과 고마움에 내가 쭈볕 거렸더니, 자기 집에 방이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역시 인정의 정선이다.
국밥이 준비되는 동안 잠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있는데, 식당 바로 앞 좌판에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집 민박 홍보를 하고 계신다. 좌판에 앉아 메밀 부꾸미를 하나 시키놓고, 민박 손님들이 오시면 자기집을 소개해달라는 홍보 마케팅(?)을 하고 계는 것이다. 잘 됐다 싶어 저 오늘 하루를 자야 되는데요...라고 제안, 바로 흥정을 하고 내가 식사중이니 식사끝나고 함께 이동을 하기로 한다. 자기네 차가 있으니 함께 이동을 하기로 하고, 5천원짜리 국밥을 한그릇 신속히 비우고, 앞팀의 그분들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다음 그분 들을 따라 나선다. 바깥분은 교직에 계시다가 퇴임을 하시고, 두 내외분이 정선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신월리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신단다. 차가 하도 낡아 금방 주져 앉을것 같은, 정말 폐차장으로 가기 일보 직전의 그 차를 얻어 타고 밤길을 한참 달린다.
나름의 강원도 산골의 정서와, 토속적인 시골집에서 정가운 분위기의 하룻밤을 기대하고 도착한 숙소에서 급 실망, 방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고, 싸늘한 날씨에 가동하지 않은 보일러, 냉방에 화장실을 가서 보니 가관, 으악... 전에 누군가 보신 대변이 그대로 굳어져 있다. 일을 보시고 물을 아니 내리신 것이다. 물도 안나오고....다시 나가 주인께 구시렁 거렸더니 물은 나온다. 환장 하겠네...방은 먼지 투성이, 거기에다가 냉방, 먼지 알레르기 인지 재채기, 콧물은 계속 나오고, 화장실 엉망, 이제 다른곳으로 갈곳도 없고, 선택의 폭이 없다. 내 이래서 침낭을 꼭 챙겨서 다닌다. 침낭, 요놈이 요래저래 꽤나 요긴하다. 한 10여년전에 산 아주 얇은 오리털 침낭, 펴면 이불이 되고, 쟈크를 채우면 침낭이 되고, 집어 넣으면 쿳션, 베게, 이동중의 무릎 독서대, 보온 또한 만만치 않아 실내에서는 요놈 하나로 충분하다. 그래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자...뭐라고 하고 싶어도 나이 잡순 어른들께 뭐라고 할것인가...그져 하루 견뎌야지 뭐 별수 있나...ㅉㅉ
그렇게 냉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다가 잠을 청한다. 아직도 바닦은 따뜻 해질 기미를 안보이고... 백석의 남신의주 박씨 봉방이 생각난다. 아마 백석이 느꼈던 방씨 봉방의 분위기가 이랬으리라...바람소리는 스산하고, 멀리 개울소리를 위안 삼아 객지에서의 하루를 유한다. 아마 정갈한 분위기와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다면 저 바람소리와 개울물 소리가 얼마나 정가웠을까...를 생각하며, 다 마음먹기 마련 이라는 원효의 일체유심조를 생각하며, 집 떠나면 개 고생이라는 말씀도 생각하며 나름의 위로를 하고 잠을 청한다. 우리는 이 고생을 뻔히 알면서도 왜 길 떠남을 할까...숙소 예약하고 식당 예약하고, 물 흐르듯이 척, 척, 척, 연결이 되면 이런 불가측성의 묘미도 없으리라...한 밤에 잠못 이루고 뒤척이다 나와 본 하늘, 이제 기울기 시작한 보름달이 , 영롱한 별들과 함께 산마루에 기울고 있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읽었네... 식당 아주머니 집에가서 자지 ㅉ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