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와 난고손여행2 - 휴가 깊은 산속 백제마을 난고손의 시와쓰 마쓰리!
규슈 동남부 미야자키 에서 니찌렌 특급 기차를 타고 50분을 북상하여 휴가시 日向市(일향시)
역에 내려서는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고 산속으로 1시간을 들어가면....
미카도 (神門) 면 난고손 (南鄕村) 백제 마을 구다라노 사토 (百濟の里 백제노리 ) 가 나오는데
백제 의자왕의 아들 정가왕을 모시는 신사와 보물전인 서정창원이 있다.
663년 백제 부흥운동이 실패하고 왜국으로 망명한 백제인들은 교토 북쪽 오미 (近江 근강) 국
간자키군 등에 자리를 잡았는데 672년 임신의 난 이 일어나니 쫃기는 신세가 된다.
의자왕의 아들 정가왕 (禎嘉王) 일행은 정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배 두척에 나누어 타고 피신하였는데,
풍랑으로 미야자키현 가네가하마 에 상륙하였다가 대해인이 보낸 추격군과 전투가 벌어진다.
남쪽 가쿠치우라 해변에 상륙해 내륙으로 들어가 키죠초 木城町(목성정) 히키에 정착한
아들 복지왕자 가 소식을 접하고 구원하러 왔을 때는 이미 전사한 뒤였다고 한다.
매년 음력 12월 18일에는 히키의 복지왕자 일행 18명이 90km 떨어진 미카도에 있는
아버지 정가왕을 보러 가는 시와쓰(師徒) 마쓰리 가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300여년을 이어 내려온다는 시와쓰(師徒 사주) 마쓰리의 유래를 살펴보자면....
백제가 망한후 복신과 도침, 흑치상지등의 백제 부흥운동 이 일어난다.
부흥군은 왜국 조정에 볼모로 가 있는 의자왕의 아들인 왕자 풍 을 왕으로 모시고자 하니...
당시 왜국 여왕 사이메이(제명) 는 백제 무왕의 딸이요 의자왕의 누이동생 이었다.
그 전에 아스카의 왜국 여왕은 교고쿠인데 실권은 백제계 외척인 소가씨 가 쥐고 있는지라
왕자 나카노에 (중대형)은 사신으로 온 신라 김춘추의 조언을 받는다.
중신 가마타리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소가노 이루카를 참살하니 타이카카이신 (대화개신) 인데
삼촌을 옹립했다가 다시 어머니를 왕으로 모시니 교고쿠 사이메이(제명) 여왕이다.
풍 은 631년에 왜국에 온 이래 나라(奈良) 분지에 소재한 미와산에서 벌을 키우며 살았다는 데,
동생인 새성(塞城) 과 숙부인 충승(忠勝) 등도 왜국에 있었다.
제명은 아들 중대형과 함께 백제 구원을 위해 661년 9월 풍 에게 왜군 5천명을 딸려
귀국시키니 풍은 백제에 도착해 왕위에 올라 나당연합군과 전투에 들어간다.
이후 제명여왕은 츠쿠시(築紫 후쿠오카) 에 궁궐을 짓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장정을 징집하며
식량과 무기를 갖추어 663년 1,000척의 배에 2만 7천명의 왜군 을 실어 백제로 보낸다.
당시 백제 부흥군 의 숫자는 3만 명이 훨씬 넘었고 신라군과 당군을 격파하고
사비성을 포위하며 200여성을 회복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왜군의 함대가 백강(금강) 하구에서 당나라 함대와 전투를 벌여 화공을 당해
400척의 배를 잃는 패배를 당하니 풍왕은 고구려로 피신하고 왜군은 철수 한다.
부여용 왕자와 후일 712년에 고사기를 짓는 의자왕의 증손자 오노 야스마로 등....
왕족과 귀족중에 당나라에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왜국으로 망명 한다.
( 이후 한반도에는 백제 왕족과 귀족은 없어졌으니 우리 핏줄에서 그들은 사라졌다는 뜻이지요! )
덴지왕(중대형)은 이때 한반도를 버리고 왜국으로 피신한 백제 유민을 동원해
규슈와 서부 일본에 황급히 성곽을 축성한다.
나당연합군 의 추격에 대비해 규슈와 서부 일본에 성곽을 축성하고도 안심하지 못한
덴지왕은 수도를 아스카에서 내륙쪽인 오미의 오쓰(大津 대진) 로 천도한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 에 “백제 주유성 이 마침내 당에 항복하였다. 이 때에 국인이 서로 말하길
“주유가 항복하였다. 일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 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겠는가?”
이후 668년 고구려 마저 망하자 한반도와의 탯줄이 끊긴 왜국 (倭國) 은
천도를 하고 홀로서기를 하니 국호를 일본(日本) 으로 고친다.
일본서기보다 425년이 늦은 고려 중엽인 1,145년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에는
왜국 사신들이 말하기를 “해돋이 와 가까운 곳이어서 그와 같이(日本) 이름을 지었다”
라고 신라본기에서 국호를 왜국에서 일본으로 고친 연유를 적고 있다!
덴지왕은 병으로 죽게되자 동생 대신에 어린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 데....
중이 되어 요시노 산에 은거했던 덴지의 동생 대해인이 672년에 거병하니 바로 “임신의 난” 이다.
백제 파병 실패와 중앙집권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동쪽 나고야 지방의 호족들이 대거
대해인 편에 가담하니 그는 수도 오쓰를 함락하고 덴무 천황 으로 즉위한다.
당시 일본에는 가나 문자 가 생기자 시가를 짓는게 유행했는 데...
760년대에 편찬된 만요슈 萬葉集(만엽집) 에는 무려 4,536 수의 시가가 실려있다.
우리나라의 향가 는 1,075년에 혁련정이 편찬한 균여전에 11수,
1,281년에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14수등 모두 25수 이니
만요슈는 시기도 400여년 이 앞서거니와 그 양도 신라의 40배 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만요슈에 나오는 저자 중에 가장 빼어난 이는 덴무천황 天武天皇 의 비(妃) 인
누카다노 오키미 額田王 (액전왕) 를 든다.
이 여인은 덴지왕의 동생인 대해인(덴무)의 처로 “십시” 라는 딸까지 두었는데
형인 중대형(덴지왕) 이 빼앗으니 불화의 시작이라.....
덴지는 왕위를 동생 대해인이 아닌 어린 아들 대우 왕자에게 물려주려니
동생의 반발을 염려해서는 대해인과 액전의 딸 십시를 아들 대우의 정비 로 맞이한다.
그러면 아내와 왕위를 빼앗긴 동생 대해인의 분노가....
장차 외손주 가 왕위를 이을 것이니 수그러들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네?
누카다 오키미(액전) 는 동생과 형 두 남자를 사랑하고 두 남자의 몸 을 받아들인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었으니 그 두 사람이 모두 천황 이 되었음에랴!!!
결혼식후 사냥 연회에서 대해인은 두 번째 처인 우노가 있음에도
누카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가가니 당황한 누카다 가 시가를 읊는다!
꼭두서니 자란 밭 인줄 친 밭을
이리 저리 서성대면 밭지기는 안 볼까요
그렇게 그대사 소매를 흔든다면.
그러자 대해인이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고 한다.
꼭두서니처럼 아름다운 그대가 미울라치면
이미 남의 마누라인데도
내 어찌 사랑하리오.
1,300년을 이어져온 시와스 축제 는 90㎞ 떨어져 있는 목성정(木城町) 히키신사에 모신
장남 복지왕의 위패가 1년에 한번 아버지 정가왕과 재회 하는 예식이다!
순행할 때에는 후쿠로가미라고 부르는 영체(靈體) 를 주머니 모양의 헝겊에 싸
장대 끝에 달아 왼쪽 어깨에 높게 내걸어 순행하는 작법을 완고하게 지키고 있다.
히키 比木神社(비목신사) 에서 어여(御輿) 에 영체를 옮겨 실어 순행하는 형태보다
한층 더 고풍스러운 양상을 전하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히키를 떠난 일행이 미카도 싱코 神門神行 (신문신행) 에 나서
섣달에 美美津(미미진) 강에서 목욕하는등....
닷새를 걸어 미카도에 도착하면 무카에비 迎え火(영에화) 라고 혼백을 맞이하는 큰 불을 피운다.
그런다음 가쿠라 神樂(신악) 라고 해서 미카도 고유의 춤이 펼쳐지고
서로 헤어질 때가 되면....
오사라바 おさらば 라고 해서 얼굴에 검은칠 へぐろ(헤구로) 을 하고 이별을 슬퍼한다.
이 시와쓰 (師走 사주) 축제는 일본 문화청의 학술조사 결과 일본 내에서도 매우
古式(고식) 으로 남아 있는 예로써 기록 보존 해야 할 문화재 라는 국가 지정을 받았다.
또한 고대 백제의 풍습이 남아 있어 한국에서 파견된 학술조시단도 1996년에
“백제 왕족 전설의 수수께끼를 풀다”
라는 제목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난고손 (南鄕村 남향촌) 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신예선사에는 백제 왕족의 유품으로 전하는 보물로 아주 오래된
판자지붕 신전이 있는데 2000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관광시설에 대해서도 남향촌민들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1990년에 백제 왕궁터에 세워져 있던 객사를 재현한 백제관 을 개관하였다.
기와와 포석(鋪石)을 한국에서 들여왔으며 서까래와 대들보를 장식하는 단청은
한국의 단청 기술자 7명이 왔고 현판은 전 총리 김종필 씨의 자필로 씌여져 있다.
그리고 마을 뒷산에는 부여의 백화정을 재현한 육각형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키즈나의 종” 이 매달려 있으니...
부여 전설에 부자지간 또는 연인지간에 이 종을 울리면 맹세가 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연인의 언덕”이라고 부른단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