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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무거동(無去洞)-본래 범서지역을 무거라 하였는데 삼호동과삼북동을 합쳐 무거리라 함. ◈무거동과 경순왕(敬順王)-신라 경순왕은 국운이 다하여 영취산 문수보살에게 계시를 받으러 가다 여기에서 동자승이(더이상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고 하곤 사라졌다. 왕은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깨닫고 (하늘은 이미 과인을 버렸으니 어쩔 수 없도다)하여 세 번 탄식 하였다. 간곳없이 사라졌다(무거(無去) 세 번 불러 본 자리(삼호(三呼) 세 번 탄식한 자리를(삼탄(三嘆)이라 했는데 삼호(三呼)는 삼호(三湖)로 삼탄(三嘆)은 삼탄(三灘)이 됨. 왕이(이젠 할 수 없다)고 체념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는데 신복마을 남쪽이라한다. ◈삼호(三湖)-태화강에 섬과 마을 사이에 호수를 형성하여 항시 배가 떠 있었다. 큰물이 질 때 마다 사호(沙湖웅덩이)가 생겨 삼호라 한다. ◈신복(新福)-정월대보름에 제사지내는 신복제당이 있었다. ◈헐수정-신복 옆에 있는 마을 ◈불승골-겨울철에 따뜻하여 나뭇꾼들이 쉬었다. ◈산막(山幕)-무거동에 있는 골짜기, 산막이 있었다. ◈엄좌수 봇도랑-무거동에 있는 보(洑)엄좌수(嚴座首)가 막았다고 한다. ◈율수정(聿修亭)-시촌(柿村)이홍문(李弘文), 송수당(松水堂),이규백(李圭白)이 놀던 정자, 후손들이 추모하여 세움 ◈와와(臥瓦) 와미(臥尾) -격동으로 넘어가는 가파른 재. 은월봉(隱月峰)아래로 흐르는 삼호산이 마치 누운 소의 형상. 월평(月坪)쪽이 머리가 되고 와미는 엉덩이 부위. 옥티는 뒷발부위. 울산 언양 지방에는 재(峴)를 한자로 가차되어 기와를 (재애) 재애집(기와집) 재애개이(기왓조각) 재엣굴(기왓가마) 등으로 재(고개 峴)과 재애(기와) 혼동하여 이 고개를 (누운재)(누울재)(눕재)로 한자 표기로(臥瓦)가 됨 |
첫댓글 광우씨 울산의 지명 소충한 자료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