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회고록 -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을 상생하는 공동체로 ④
청과동 옥상을 태양광 패널로 덮으면 기온이 떨어질텐데
반여농산물시장은 9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2000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설계 공모에 의해 건축되었지만 시장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인들은 배제된 채 공무원과 디자인 전문가들이 참여해 결정함으로써 시장의 기능성이 무시된 잘못된 설계였다고 생각한다.
먼저 건물 배치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판매효율을 떨어뜨렸다. 가장 많은 물량을 취급하는 청과동 매장이 남쪽 편에 위치하고 북쪽에는 사무실과 창고들이 배치되었다. 무배추동은 청과동을 나가서 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장 거래가 활발한 청과동 매장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무배추동으로 가려면 사무실과 창고를 거쳐 밖을 나와 한참을 가야 해 무배추동과 양념동 상인들 불평이 많았다.
건물 지붕도 문제다. 1만 평이나 되는 넓은 청과동의 지붕은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파도 모양을 만들기 위해 휘어진 철판을 지붕 재료로 쓰고 철판 위에 우레탄을 덧씌웠다. 그래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면 철판 지붕이 달아올랐고, 매장 온도가 30도 이상 치솟아 상인들이 더워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이로 인해 농민들이 힘들여 지은 청과들이 쉽게 변질되어 상품성이 떨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한여름의 뜨거운 직사광선에 지붕 우레탄에 균열이 발생해 폭우 때마다 비가 샜다. 그 바람에 건설 6년 만에 심한 곳은 지붕을 교체해야 했고, 일부는 덧씌우기를, 나머지는 도색 등 대대적인 하자보수공사를 해야 했다. 그 당시 덧씌우기와 도색을 하는 데만 3년마다 3억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었으니, 지붕 디자인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청과동을 쾌적하게 만드는 일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자연채광을 위한 창문이 부족해 24시간 조명을 켜야 하고, 환기가 잘 안 돼 커다란 선풍기를 계속 돌려야 했다. 한겨울에는 철판 지붕의 한기가 바로 내려와 실내가 너무 추워 개인 온열기가 없으면 매장에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여농산물시장 건물은 비상식적인 설계로 인한 전형적인 에너지 낭비형 건물인 것이다.
게다가 상인들에게 필수적인 냉동창고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시설을 불법 증개축하고 사무실을 불법 개조하여 냉동창고를 설치해야 했다. 이로 인한 전력의 과부하로 항상 대형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실제 기자가 근무하던 2006년 관련 상가동 냉동창고들이 큰 화재 피해를 입기도 했다. 관련 상가동은 2층에 냉난방시설을 했지만 연료낭비가 심하다 하여 사용하지 않았고, 정작 냉난방시설이 필요한 1층 매장에는 냉난방이 되지 않아 수년째 냉난방시설을 요구한 끝에 별도 예산을 확보해 시설을 해야 했다.
그 외에도 청과동 2층에 설치 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수백 개의 난방기, 필요 없이 큰 사무실, 이용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들로 인해 끊임없이 상인들의 불평과 민원이 제기되고 있었다. 서비스동에 있는 목욕탕은 이용객의 수요 이상으로 턱없이 크게 지어 수탁업자가 운영수지를 못 맞추어 결국 폐쇄해야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과동의 지붕이었다. 그전에 지어진 다른 농산물도매시장처럼 흔한 슬래브 지붕을 만들어 그 위에 1만 평의 주차장을 만들었다면 주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직원들과 둘러본 엄궁, 대구, 창원도매시장 등 반여시장보다 오래된 대부분의 도매시장들 옥상은 슬래브에 넓은 채광창으로 매장 안이 상대적으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편이고 지붕관리에 예산이 들지 않았다.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 직원들과 함께 지붕 위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 온도를 낮추는 장치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직사광선을 일부라도 막아 더위를 완화하고 전기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