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십경 제8경 마장도성馬場濤聲 -잔디마다 파도가 스며들어 잔디도 소리 지른다-
신천마을은 성산읍 끝마을이다. 표선면 하천리와 천미천 사이 경계를 두어 내(川) 윗쪽은 신풍리 내 아래를 신천리와 하천리로 불리고 있다. 신천리의 옛이름은 '냇깍' 내의 아래라는 뜻의 제주사투리다. 조선시대에는 이웃 마을인 신풍리와 하나로 묶어 천미촌, 천미포 등으로 부르다가 신풍리와 구별지어 새내깍으로 불렀다. 신천리新川里란 이름은 새내깍을 한자어로 풀이한 것이다.
신천마을이 내세울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닷가에 넓게 펼쳐진 신천목장이다. 예전엔 신천마장, 천마장 등으로 불렸으며 조정에 진상하는 국마를 기르기도 했었다.
5-60년대만해도 제주도엔 잔디밭이 많았다.지금은 오름마다 삼나무라든지 소나무 무리가 억새와 어울려 좀처럼 옜날 잔디를 찾아 볼 수가 없다.그전엔 왠만한 오름엔 잔디밭으로 이어져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아마 시대가 변하여 방화(들불)도 없어지고 특히 소나 말을 방목치 않음으로 인하여 잔디가 없어진게 아닌가 여긴다.또한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한 산림녹화 정책도 잔디가 없어진 이유중에 하나일 터다.
성산십경중 제8경인 신천마장은 아직도 유일하게 잔디밭이 펼처져 장관을 이룬다.제주도 어디를 둘러봐도 신천마장처럼 바닷가에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진디밭을 찾아 보기가 쉽지않다.
넓고 길게 펼쳐진 신천마장 잔디밭을 둘러보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태평양을 마주하는 마장 앞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잔디와 어울려 그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제주가 낳은 최고의 서예가인 素菴 현중화 선생은 생존시 풍광 좋은곳에 들려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소암 생전에 그를 따르고 가르침을 받던 서예모임인 서귀포소묵회 여럿회원과 신천마장으로 소풍을 와 서로가 담소를 나누며 주연을 가졌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소암은 자갈밭이든 잔디밭이든 그 어떤 불편한 곳이든 장소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화선지에 위에 일필을하면 작품이 된다고 한다. 그날 적당하게 취기가 오른 소암은 일필휘지로 '팔운석八雲石' 세글자를 썼다고 한다. 신천마장 바닷가에 있는 구멍 뚫린 큰 바위, '고망난 돌', '창곰돌'이라 부르는데 김상헌선생의 남사록에는 팔운석이라 기록 되였다.
토운(吐雲), 이바위 구멍에서 8가지 빛의 구름을 내뿜는다는 전설이 있다. 신선은 9가지 빛의 구름으로 집을 지어 사는데 ,이곳에도 신선이 집을 지으려고 내뿜는 8가지 구름을 거두는데 한 가지 빛의 구름을 얻지 못하여 신선이 집을 짓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팔운석八雲石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지금도 마장 바닷가 고망난돌 맞은편 자락에 '八雲石' 이라 각한 돌이 세워져 있다. 소암 애제자인 오문복에 의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성산의 낳은 한문학자이며 향토사학자인 소농素農 오문복 선생은 팔운석이란 한시를 지어 전설의 팔운석의 가치와 아름다운 신천마장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는게 아닐까 유추해본다.
天斫巨巖立海빈 尖頭一孔龍脣 (천작거암입해빈 첨두일공용순)--물가빈 彩霞如出復如入 人說斫雲實不眞( 채하여출복여입 인설작운실불진)
하늘이 큰 바위를 깍아 바닷가에 세우니 뽀족한 머리의 한 구멍 용의 입술 같구나 채색노을 나오는 듯 다시 들어가는 듯 사람들은 구름을 내뿜는다 하나 그렇지 않아 (오문복.팔운석 전문)
한편 필자는 신천마장에 있는 팔운석을 보고는 비학한 글솜씨로 팔운석 시를 지어 세상에 내놓아 쑥스럽기 한이 없음도 밝힌다.
소암素菴은 탁배기 한 잔 들이켜 허연수염 쓸며 바다를 본다 취기 오른 소암 곁에 앉은 제자 소농小農에게 지필묵 대령하란다
바람 맞아 볼그래한 얼굴빛이 마장밭 잔디 처럼 해맑은 소암, 기분 좋은 듯 허허 웃는다
바다엔 새가 날아 다닌다 잔디밭엔 한 무리 학이 춤을춘다 바닷 바람도 소암곁에 살포시 앉았다
호방한 웃음 지으며 붓을 잡는다 바람과 학은 숨소리 멈췄다
" 八 雲 石 "
후일 제자 소농이 돌에 각을 했다지 그 돌, 마장 어귀에 심어 소암을 기린다지. (졸시, 八雲石. 전문)
신천마장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화가가 아니라도 마음 속에 그림 한 점 그릴 수 있는 곳이 신천마장이다. 시인이 아니어도 머릿 속에 시어 하나 간직할 수 있는 곳이 신천마장이다. 80먹은 어른도, 30먹은 청년도 신천마장에 오면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된다.신천마장에 오면 누구나 배우가 된다. 넘실되는 바다를 배경삼아 온갖 포즈를 취한다. 이내 가수가 되어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 소리는 바다로 퍼져나가 파도소리와 함께한다. 호연지기(浩 然之氣)가 아닐 수 없다.
지난일을 생각해 보면 애잔한 마음이 다가온다. 6-70년대만 해도 한라산을 빼곤 제주도 전체가 잔디밭이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름은 물론 바닷가는 의례 잔디밭으로 뒤덮혀 어느곳에서나 뛰어놀 수 있었고 도시락만 싸들고 나가면 거기가 소풍 코스였다. 이러한 제주도 자연 경관은 세월이 흐른 지금 이름모를 나무와 잡초들로 매워져, 시대의 흐름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싶지만 옛모습이 그리울 뿐이다.
외지자본이 판을치는 세상에 신천마장 잔디밭이 남아 있다는게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기적이라 하고싶다. 소유주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신천마장 만큼은 우리지역 자연경관의 랜드마크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빚은 최고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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