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ㄹ>-----------------------------------
*라따나경(빠알리어 Ratana-sutta)---보배경, 보경(寶經) 혹은 보주(寶呪)라고도 하며, 수호경 중에 대표격이다. 수타니빠따에 실려 있는 경으로서 남방 테라바다 불교의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이 수호경은 쿳다까니까야(소부)의 쿳다까빠타(Khuddakapatha :小誦經)에도 실려 있다. 마치 우리나라 <천수경>처럼 테라바다 불교권에서는 라따나경을 늘 수지독송한다고 한다. 수호경이지만 주문이 아니라 불ㆍ법ㆍ승 삼보를 찬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아래는 17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 라따나경에서 변역한 게송의 하나이다.
“이 세상과 내세의 그 어떤 재물이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여래에 견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깨달은 님 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할지이다-전재성역”
이 세상과 내세에서라도 부처님과 같은 보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따나경>을 <보배경>이라 한다. 빠알리어 라따나(ratana)는 ‘보배’ 또는 ‘보석’을 뜻하는 말이다. 세 가지 보배가 있다고 해서 <라따나경>에서는 불ㆍ법ㆍ승 삼보에 대해 찬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라마교(喇嘛敎, Lamaism)---티베트를 중심으로 한 밀교계 불교를 라마교라 한다. 현재 라마교는 티베트, 몽고, 만주, 부탄, 네팔 등지에 퍼져있다.
인도 출신 명승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Guru Padma-sambhava, 蓮華上座師)를 교조로 삼는다.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는 인도 나란타사에서 밀교를 수학, 747년 티베트왕 초청으로 입국, 티베트 고유종교인 Bön교를 흡수해 불교를 정착시켰다.
15세기 초에는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가 종교개혁을 단행해 신파(新派)를 만들었다. 이를 황파(黃派), 종래의 종파를 홍파(紅派)라 했다. 이때부터 몇 개의 분파가 생겼으나 황파가 점점 세력을 넓혔다. 따라서 현재의 티베트 라마교는 주로 황파이다. 승려인 라마를 불ㆍ법ㆍ승 3보와 함께 숭배하고 최고의 승려를 달라이라마(Dalai Lama)라 부른다. ‘달라이(Dalai)’는 바다란 뜻이고, ‘라마(Lama)’는 스승이란 뜻이다. 라마교 최고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정치ㆍ종교 두 가지 권한을 다 지배한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제14세로서 1959년 중국군을 피해 측근들과 함께 인도로 탈출, 인도 북서부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티베트 불교 참조.
*라마가경(羅摩伽經)---<고려대장경>을 원전으로 해서 일본에서 발간한 <신수대장경>의 제10권 p851~p876에 있는 경전이다. 중국 동진(東晋)시대 성견(聖堅) 스님이 AD 388~407년 사이에 한역한 경전이다. ‘라마다경’이라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다.
이 글귀에 나오는 ‘야소(爺蘇)’를 기독교의 교주 예수로 보느냐 아니면 야속한 범부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이 글에 나오는 야소를 예수라고 본다면, 예수라는 사람이 인도에 와서 부처님 제자가 됐다가 다시 돌아가서 불법을 펴면, 그의 가르침은 곧 기름을 부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등불이 아니고 밤낮에 구애 없이 밝은 해와 달과 같은 반야의 등불이 될 것이란 말이 된다.
어느 말이 맞는지 아직 확답을 얻지 못했다. 아무튼 예수님 가르침이 곧 부처님 가르침과 같은데, 편협한 인간들에 의해 성인들의 큰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자기네 편의대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기에 갈등이 끊일 사이가 없는 것이다. <라마나경>은 <화엄경> 계통 경전인데,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보현보살 등 500보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신 경전이다. 아래는 경의 내용 일부이다.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제타정사에 있을 때,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 스님과 신자 1250명이 함께 했느니라.
사리불언 하시불도종이(舍利弗言 何時佛道終耳) - 사리불이 묻되 언제 불교가 끝나나이까?
오도지전야 년오백후말세야(吾道之轉也 年五百後末世也) - 나의 도가 전한 지 오백년이 지나면 말세가 될 것이다.
사리불재언 년오백후 불도단이무계학호(舍利弗再言 年五百後 佛道斷而無係學乎) -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오백년 후에는 불도가 끊기고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없습니까?
기시 상수제자 야소자서래(其時 上首弟子 爺蘇自西來) - 그 때 훌륭한 제자인 예수가 서쪽에서 와서,
학이시습 이전어대진(學而時習 而傳於大秦) - 열심히 배우고 틈틈이 익혀 대진[로마]으로 전할 것이니,
하시야소래 오도지유무등야(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 - 예수가 올 때에 나의 불교는 기름 없는 등[無油之燈]처럼 되었겠지만,
야소재림 오도중흥(爺蘇再臨 吾道中興) - 예수가 재림하니[다시 불을 붙이니] 나의 도는 중흥할 것이다.
여등각료 야소지주 약불야(汝等覺了 爺蘇之主 若佛也) - 너희들은 확실히 알라 예수가 말하는 주는 바로 부처이니라.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급제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佛說是經已 長老舍利弗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尼) - 부처님이 이 경을 말하자 장로 사리불로부터 여러 스님들과 신도들,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신수봉행(一切世間 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信受奉行) - 모든 신과 악마까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했다.
위 문장 중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에서 야소에 대해 대체로 불교 측에서는 예수로 해석하고 있으나, 기독교 측에선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라마니경>이 초기경전이 아니고 대승경전이다. 따라서 부처님 친설이 아니다. 때문에 누가 있어 500년 후에 야소가 서쪽에서 올(爺蘇自西來) 것을, 어떻게 알아서 예언을 했겠는가. 때문에 기독교 측에서 위경이라 항의해도 변명하기가 궁색한데, 그래도 이상한 것은, 대승불경이라 하더라도 지금부터 2000여 년 전 경전이니, 그 무렵 예수가 인도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전혀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아전인수격으로 이기적인 해석을 배제한 양심적인 식견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이 나와서 불교ㆍ기독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떠나 인류의 등불이 될 해석을 해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예수 인도에 유학하다’ 참조.
*라마나 마하르쉬(Ramana Maharshi, 1879~1950)---인도 힌두 철학자이다. 큰 스승(大師)이라고 불리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비차라(vicāra, 자아 탐구)를 권했다.
그는 인도 남부 마드라스 마두라이 중류층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자아 탐구법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없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홀로 이리저리 계속 방황하다가 인도 타밀나두(Tamil Nadu) 북쪽에 위치한 아루나찰라(Arunnachala)라는 언덕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런데 마하르쉬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챈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마하르쉬의 이름은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는 어떤 공식적인 강의나 책을 쓴 적도 없으며, 아루나찰라를 한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탐구법만 꾸준하게 권유한 외에는 어떤 다른 가르침을 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르쉬가 세상을 떠나 지 6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하르쉬처럼 꾸준하게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성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한 서적, 특히 중세 신비주의 시인인 까비르(Kabir, 1440~1518)의 전기를 깊이 읽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전통적 수행법에 따라 자아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나는 누구냐?” 라고 스스로 묻고, 나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는 결국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도 아니다. 두뇌는 육체와 함께 썩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인격과 감정도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깊은 의문을 가졌다. 그 깊은 자아탐구는 그를 초월하는 의식 상태로 이끌었는데, 희열을 느끼는 이 상태를 힌두 철학에서는 ‘사마디(samādhi)’ 즉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그는 이후 고향 마을을 떠나 시바 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아루나찰라로 가서 은자가 됐으며, 그 뒤 인도에서 가장 젊은 구루의 한 사람이 됐다.
라마나 마하르쉬에게 크게 감명 받은 영국인 폴 브런턴이 〈인도의 신비를 찾아서(My Search in Secret India)>라는 책을 발간하자,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라마나 마하르쉬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죽음과 악은 비차라로 쫓아버릴 수 있는 환상일 뿐이며, 비차라를 실천하면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되풀이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비차라를 실천하거나 박티(Bhakti, 헌신과 신애)를 실천하면 된다고 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결과로 이끄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다. 결국 마하르쉬 가르침은 무의식의 혼돈과 자기조절 결핍 속에서 스스로를 상실해가는 인간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다.
*라자그리하(산스크리트어 Rājagṛha, 王舍城)---라자가하(Rājagaha)라고도 하는데, 이 경우 rāja(왕)+gaha(집)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한역으로 왕사성(王舍城)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 중인도 지금의 비하르(Bihar)주 파트나(Patna) 남쪽에 있는 라즈기르(Rajgir) 지역에 위치했던 마가다국(Magadha, 摩伽陀國) 수도이다. 당시 마가다국을 다스린 왕은 빈비사라(Bimbisara)왕이었고,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영취산(靈鷲山)이 왕사성 동북쪽 약 3㎞ 지점에 있었다.
부처님 제자들 중에 ‘10대 제자’라고 꼽는 핵심 멤버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왕사성 근처 출신이 많았다. 그것은 불교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라자그리하 일대가 마가다국의 영토였고, 마가다국왕이 불교를 지지하고 재정적인 후원을 많이 했기에 이 지역에서 유능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된 것을 의미한다. 브라만 출신의 사리불(舍利弗, Sariputra)과 목건련(木健蓮, Maudgalanaka)의 고향도 모두 라자그리하 일대여서 자연스레 불교의 중심교단이 여기에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에도 사리불과 목건련의 고향이 이 근처임을 밝히고 있다.---→빈비사라(頻毘娑羅), 왕사성(王舍城, 산스크리트어 Rājagṛha/라자그리하) 참조.
*라후라(羅睺羅, Rahula)---한역해서 라운(羅雲)이라고도 한다. 붓다 아들이면서 출가해서 제자가 됐다. 어머니는 야소다라(Yasodara, 구이/俱夷)임. 붓다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밀행(密行) 제일이라 했다, 밀행 제일에서 ‘밀행’이란 남들이 알지 못하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계율을 세밀한 부분까지 실천한 것을 말한다. 배운 바 그대로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실천했다고 한다. 라후라는 7세에 출가한 최초의 동자승으로 주로 부처님 제자 사리풋타(Sāriputta)가 보살피고 지도했다고 한다.
‘라후라(라훌라)’는 훼방꾼, 장애(障礙)라는 뜻이라고 한다. 라후라가 태어나는 날 석가모니가 출가를 하시면서 더 머뭇거리다가는 태어나는 저 애가 장애가 돼서 출가하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서 ‘라후라’라 이름 지어줬다고 한다.
*라훌라바드라(羅喉羅跋陀羅, Rahulabhadra, 200년~300년경)---용수(龍樹)의 제자 제바(提婆, Aryadeva: 170년~270년)의 제자, 용수의 손제자로서 반야(般若)와 공(空)사상에 밝았으며, 용수가 주장한 팔불(八不)을 주석해 중관학파 성립에 기여했다.
*람 라즈(Ram Raj)---인도 신불교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의 한 사람. 2001년 11월 4일 수천 명의 힌두교 최하층민인 달리트(不觸賤民)들이 불교로 개종하기 위해 뉴델리 암베드카르 바반(Ambedkar Bhavan) 광장에 운집했다.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한 이 개종집회(Diksha ceremony)는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년)가 주도했던 신불교운동 이후 반세기만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람 라즈는 최하층 카스트 힌두교도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All India Schedule Castes and Scheduled Tribes를 통솔하는 총수이다. 삭발한 머리에 손에는 오색의 불교기(佛敎旗)기를 든 수천 명 군중들이 불상과 암베드카르 사진 앞에서 팔리어로 된 찬트(전례음악)를 낭송하는 가운데, 람 라즈는 “이 순간이 수천 명 달리트(不觸賤民)들이 힌두교를 거부하기로 결심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선언했다. 당초 백만 명의 달리트들이 운집해 인도 역사상 최대 규모 개종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다수 사람들이 경찰력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람 라즈는 이 개종의식에서 삭발하고 람 라즈라는 이름 대신에 우디트 라즈(Udit Raj)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그것은 자신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힌두교와 결별은 곧 카스트 제도에 대한 거부를 의미했다. 람 라즈는 이 집회 의미가 “어떤 특정한 공동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카스트 제도를 허물고 싶을 따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불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곧 카스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람 라즈는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세계의 다른 종교들에 비해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불교 가르침은 인도 다른 종교와는 달리 모든 추종자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기 때문에 불교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달리트(dalit),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신불교운동(Neo-Buddhism Movment) 참조.
*랑달마(Rang Darma, glang darma)의 폐불(廢佛)사건---티베트에서 10세기 초 토속종교인 뵌(Bon)교와 불교 세력 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랑달마(Rang Darma)의 폐불(廢佛)사건은 티베트의 정치세력을 약화시키고, 불교는 분산돼 약 1세기 가량 침체기를 걷게 된다.
티베트 토속종교인 뵌(Bon)교는 무속, 태양, 달, 산, 나무 같은 정령 숭배가 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 중에 자신들을 뵌뽀(Bonpo)라고 부르던 뵌교도들은 종교적 수행의 한 형식으로 동물 희생제의(祭儀)를 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불살생과 비폭력을 삶의 실천적 원리로 제시하는 불교와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0세기 초 랑 다르마(Rang Darma)가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비불교도였다. 랑 다르마는 선대 뵌교 장관들의 도움으로 중앙 티베트의 불교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박해는 특히 비구 상가(僧伽)에 심하게 행해졌으며, 수많은 스님들이 강제로 환속되고 살해됐다. 그 결과 거의 반세기 이상 중앙 티베트에는 불교를 공부하는 승원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많은 밀교 수행자(Tantrika)들은 일반인의 모습으로 은밀히 수행을 계속했고, 랑 다르마는 5년간의 실정(失政) 끝에 한 불교 승려에 의해서 살해됐다. 랑 다르마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은 공석이 된 왕위를 놓고 서로 심한 다툼을 벌였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계승하지 못하고, 이후 약 3세기 반가량 유력한 중앙 집권자가 들어서지 못한 티베트는 지방 영주들에 의해 각 지역들이 하나의 독립국가처럼 다스려 졌다.
랑 다르마의 박해와 왕조의 몰락으로, 세 분의 고승님이 동부 티베트의 캄(Kham) 지방으로 이주해 거기서 승가의 계율 전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었다. 이 세분의 스님들에게 법을 모두 이어받은 제자는 라첸 공빠 랍쌜(bLa chen dgong pa rab gsal, 952-1035)이었는데, 약 반세기 가량 중앙 티베트에서 사라졌던 승가 계율의 법맥은 그와 중앙 티베트에서 온 10명의 제자들에 의해 다시 이식되게 됐다. 그래서 10세기 중반 중앙 티베트의 승원들은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고, 번역 작업과 수행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
이 폐불 사건을 계기로 티베트 불교의 성격을 전전기(前轉期)와 후전기(後轉期)로 구분한다. 전전기 불교는 왕실의 지원 아래 일관된 사원 건립과 역경사업이 이루어졌다면, 후전기 불교는 뚜렷한 종파불교를 형성하게 된다.
*레비(Sylvain Lvi, 1863~1935)---실뱅 레비(Sylvain Lévi)는 프랑스의 동양학자로서, 프랑스에서 산스크리트 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인도, 네팔,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이전에 유럽에서 구할 수 없었던 유식학파의 중요 문헌을 비롯한 여러 중요 대승불교 문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러 새로운 판본, 번역본을 내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는 1920년대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 샨띠니께딴(Shantiniketan)의 대학에서 티베트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힌두 문명이라고 하면 발상지인 인도에만 국한시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동남아시아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남아시아에 최초로 등장한 국가는 대부분 인도문명을 바탕으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히려 인도보다 더 인도적인 문명을 꽃피웠다. 실뱅 레비는 인도의 문화 전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혜의 어머니, 인도는 자신의 신화를 인근 국가에게 전하고 전 세계에 가르쳐왔다. 법과 철학의 어머니, 인도는 아시아의 3/4에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하나의 이념, 하나의 예술을 주었다. 인도는 신성한 언어, 문학, 여러 제도를 알 수 없는 세계의 극한까지 전파했다.”
레비의 말처럼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 문명은 다른 토양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오늘날의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다. 특히 힌두 문명은 캄보디아의 토착민인 크메르인에게 종교와 경전, 성직자, 세계관, 하나의 문자 체계 등 세련된 생활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힌두 문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앙코르 문명이다.
그리고 레비는 벨기에 사람 루이 드 라 발레 뿌생(Louis de La Valle Poussin, 1869-1938) 등의 제자를 길러내 유럽 불교 연구 발전에 공헌했다.
*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싯다르타가 태어난 곳. 인도 가비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산인데, 인도 국경에서 4km 정도 떨어진 현재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동산이다.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는 곳 주변에 작은 강줄기가 있고, 싯다르타의 나라, 카필라바스투는 이곳 룸비니에서 서쪽으로 30여 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 좁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저만치 싯다르타의 탄생지, 마야데비 사원이 보인다. 마야부인은 만삭의 몸으로 그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부처님 생모 마야부인이 출산일이 가까워 친정으로 가던 도중, 음력 4월 8일 이곳 무수(無憂樹)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불을 낳았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해당하는 곳으로 폐허로 방치돼 있었는데, 1896년 독일 고고학자 알로이스 포이러(Feuhrer)가 여기서 돌기둥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아소카왕 석주였는데,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인 아소카는 기원전 250년 석가모니불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룸비니 동산을 찾아 네 개 불탑과 꼭대기에 말 형상을 얹은 돌기둥(아소카 석주) 하나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 이 석주에는 재위 20년에 룸비니를 찾은 사실과 룸비니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한 내용 등이 새겨져 있다. 이에 의해 룸비니가 세상에 알려졌고,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으며,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8세기 혜초(慧超) 스님이 이곳 룸비니를 다녀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사방에 도둑 떼와 맹수들이 들끓었으며 사람의 자취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도둑이나 맹수들이 없고,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에는 마야데비 사원이 세워져 있다. 마야데비 사원에는 마야부인당(摩耶夫人堂)과 목욕지(池)가 있고, 아쇼카대왕의 석주(石柱)가 있다.
5세기 무렵 이곳을 다녀간 중국의 법현(法顯) 스님은 '마야왕비가 목욕한 연못은 많은 스님들이 그 물을 퍼 마신다'라고 기록했고, 7세기에 다녀간 현장(玄奘) 스님은 "이곳에는 석가족들이 목욕하던 연못이 있다. 물이 맑아 마치 거울과 같으며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싯다르타 연못은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할 수 없을 만치 탁하다.
*룽다(Lungdar)---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희망, 소원, 안전 등을 기원하며 거는 깃발. 얼핏 만국기처럼 보이는 이 오색찬란한 깃발은 청(靑, 하늘), 백(白, 구름), 적(赤, 불), 녹(綠, 물), 황(黃, 땅)의 순서로 단다. 푸른색은 시린 하늘을 상징하며, 흰색은 히말라야 만년설을, 붉은 색은 열렬한 불심을, 초록색은 푸른 물을, 누른색은 풍요로운 대지와 곡식을 상징한다.
*륵나마제(勒那摩堤, 산스크리트어 Ratnamati)---보의(寶意)라 번역. 중인도 사람. 학식이 고명하고 사리에 밝으며 특히 선관(禪觀)에 통달했다. 508년 중국 낙양(洛陽)에 와서 칙명을 받고 보리유지(菩提流支)와 함께 <십지론(十地論)> 등 번역에 종사했다. 그러나 번역 사업을 하면서 보리유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따로 한 벌을 번역했다. <십지론>ㆍ<법화론>ㆍ<보적경론(寶積經論)> 등에 두 가지 번역이 있음은 이런 까닭이다.
*리그베다(Rigveda)---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문헌으로, 브라만교 근본경전인 4베다 중 첫째 문헌인 <리그베다 상히타> 약칭이다. ‘리그’는 성가(聖歌), ‘베다’는 경전, ‘상히타(sahitā)’는 경전 집성(集成)을 뜻하는 말이다.
제식(祭式) 때에 제관(祭官)이 부르는 찬가를 모아서 기록한 것이며, 베다 문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10권, 1,028의 운문찬가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은 기원전 1000년을 기점으로 해서 그 전후 수백 년에 걸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암송에 의해 후세에 전해지다가 차츰 정비 ‧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베다는 인도에 이주해 온 아리아인(Aryan)인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유방법과 종교적 지식을 모아 편찬한 성전의 명칭으로 리그베다(Rig-veda), 사마베다(Sama-veda), 아주르베다(Yajur-veda),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네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그 성립이 오래된 것이 리그베다로서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베다시대라고 하며, 바라문 문화 제1기에 해당한다.
신들을 찬미하는 시가모음집인 리그베다에는 무수한 자연신들이 등장한다. 대개 태양이나 불, 바람, 강과 같은 자연 현상의 다양한 힘(에너지)들, 또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신격화돼 천신으로서 숭배되고 찬미되고 있다. 이런 신들 가운데 인드라((因陀羅, 산스크리트어 Indra, 帝釋天)는 최고 천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의 거룩한 행위에 대한 찬미 외에도 리그베다는 부(富), 다산(多産), 장수(長壽), 승전(勝戰) 등과 같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들을 간구하는 기원을 함께 담고 있다. 인드라(제석천) 등 리그베다 내용 일부가 불교에도 받아들여졌다.
*리비도(Libido)---기본적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적 욕구로,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리비도는 정신분석학 용어로 성본능(性本能), 성충동(性衝動)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뜻한다. 이 말은 보통 말하는 성욕, 다시 말해 성행위를 바라는 욕망과는 다른 넓은 개념으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적 에너지를 뜻한다. 프로이트는 구순기, 항문기에는 자신의 몸을 리비도 집중의 대상으로 삼는 자기성애가 주된 양상이며 성기기에 접어들어 이성을 대상으로 삼는 성충동이 개화한다고 말한다. 남근기에 겪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어머니의 몸을 대상으로 한 대상충동과 자기성애의 갈등이다.
인간에 있어서, 현재적 욕망이란 프로이드 학파에서 말하는 리비도(Libido)로서, 현재의 만족감과 연결된 성욕이다. 미래지향적 욕망이란 미래의 만족을 위한 욕망, 아이를 위한 욕망, 더 나아가 사후에도 삶을 연장하려는 욕망이다. 카마(Kama), 즉 성적 욕망은 현재적 욕망(육체적 사랑)인 동시에 미래지향적 욕망(자식을 가지고자 하는 사랑)의 근본이 된다. 그리고 현재를 추구하는 욕망과 미래를 추구하는 욕망 모두 업이 되어 쌓이게 된다. 이러한 업을 짓지 않기 위해서 상정된 금욕은 자기 억제의 고행을 넘어 인도의 세계관이 가지는 존재론과 구원론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리비도는 현재적 욕망으로서 생물학적 본능이며, 원초아(id)에 속한다. 유식학에서의 제7식 말나식과 제8식 아뢰야식이 원초아에 해당한다. 따라서 리비도 역시 제7식 말나식과 제8식 아뢰야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리스 데이비스(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5~1922)---팔정도를 세상에서 최상승의 진리로 알고 실천한 영국의 대표적인 불교 학자이다. 그는 경전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가 중요시되는 서구사회에서 빠알리 경전을 연구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준 선각자다. 리즈는 영국의 콜체스터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다. 브링 톤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그는 법정 변호사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독일의 브레즈라우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해 철학박사가 됐다. 1864년 실론에서 판사로서 일하는 동안 사찰의 율장을 공부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 1872년 귀국 후에도 법관으로 일하면서 빠알리 경전언어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1882년에는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빠알리어 교수가 됐고, ‘빠알리 성전협회’를 창립해 동서의 많은 학자들과의 교류를 맺게 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경전을 학문차원이 아니라 종교인의 자세로 연구하고 이를 삶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수행 이력은 오늘날까지 많은 불교학자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1895년에는 <불교인의 성서들> 시리즈를 시작했고, 여기에는 수십 권의 영문 번역이 수록됐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불교입문서>, <본생담>, <율서>, <불교의 역사와 문헌>, <불교의 인도>, <빠알리어 영어사전> 등이 있다.
*린포체(Rinpoche)---티베트불교의 특징으로 린포체란 살아있는 부처(活佛) 산부처(生佛), 큰 스님이란 뜻이다. 윤회설에 의해 환생(還生)이란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과거생에 출가 수행자로 수도에 전념하다가 죽은 후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했다는 것이 증명된 사람을 말한다. 티베트불교는 사람의 환생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어린아이 중에서 자신의 전생을 증명한 아이를 떠받드는데 그 아이를 린포체라고 한다. 증명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이 죽기 전에 미리 자신이 어디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가 전생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른 스님들이 특정 인물을 찾은 다음 각종 질문을 해서 선정하기도 한다. 린포체의 환생증명에 대한 상황은 보통 3살에서 시작해 6세에 걸쳐 시험을 하는데 보통 달라이라마께서 예증을 통해 린포체로 증명을 하는 것으로 방식을 정하고 있다.
----------------------------------------------이상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편집 기술이 서툰 나머지 이 <불교 용어 일람>을 한 곳에 모아서 집성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용자께서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곳에 모아서 나름의 편집으로 편리하게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편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