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기가 아래 글을 썼지만 작자기록이 안되어 있어 글쓴이를 확인 할 수 없습니다.
혹시 본인 또는 아시분은 아래 댓글난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정진철로 밝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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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는,
사람이 죽고 사는 처절한 모습을, 뜻도 모른체 보아야했고,
풍요로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른체, 배고픔의 서글픔부터 배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가 배고픔을 잊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배움터로 보내어 뒷바라지 하는 낙으로,
당신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평생을 희생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슬픔을 알고 계셨지만
우린 슬픔이란 단어를 생각하는 것 조차 사치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황량한 속에서도,
경희 동산에 모인 우리는, 세상을 다 얻은 충만한 기분이었고
항상 주변에서 우뚝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부러울게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40 여년전, 경희궁의 문턱을 들어 서던 날,
먼 동이 트는 새벽 안개 속에서
우리는 능선의 꿈트림을 보았습니다.
그 꿈트림 속에서 사방으로 뻗어 내리는 힘줄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찬란한 태양은 그 위로 솟아 올라
줄기 줄기를 짙 푸른 숲으로 가꾸었습니다.
하늘의 정기를 흠뻑 먹은 그 숲은
우리의 꿈을 잉태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불어라 !! 바람아 !!
때로는 노도와 같이 광풍이 몰아 칠때도 숲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굉음이 천지를 뒤엎고
찢어질듯한 벼락에 바위들이 시퍼렇게 매맞아 울 때도
숲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뿌리만 단단하게 영글어
반짝이는 눈빛에 담겨있는 영롱한 무지개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4 . 19 의거, 5 .16 혁명의 격동속에서도 그 숲으로 우거진
우리 동산은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우리를 지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 땅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뿌리 내리고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해야 없어서는 알될 사람이 될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안되는지, 존경 받는 지도자의 품성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꿈을 키우던 3 만여평에 이르는 교정의 동산은
넓은 품성과 높은 이상을 심어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밴드반의 엘캪틴 행진곡이 울려 퍼지던 운동장에서 힘차게 부르던 교가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녹색 교복에 빳빳하게 대린 흰색 칼라를 세우고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가 선명했던 서울의 뺏지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무전 여행을 떠나 몰골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세잎 모표가 그려진
모자만은 벗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혹, 등교시간에 몇분 늦어 닫힌 교문을 원망하던 기억,
그러면서도 교문 밖에 있던 이북에서 축구 선수를 했다는 문방구 아저씨가
선생님이 계신지를 염탐해주는데 귀를 바짝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매점 뒤로 올라 기상대 쪽으로 빠지는 동산에서 명상에 잠기던 추억,
숲속에 있는 수영장에서 몸을 가꾸고,
도서관에서 밤늦게 책과 씨름하기도 하였습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던 연기를 보고 킥킥대기도 하였고,
어느 선생님이 예쁜 목선생과 연애를 한다는 소문에 열렬한 호기심도 가져 보았습니다.
한참 혈기가 왕성했던때라
방공호 있는 뒷산에 올라 맞장을 뜨며 힘을 겨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1 센티미터라도 더 머리 기르는데 예민했는지
그 짧은 머리로 경남 극장 기도를 속이고 가슴 조리던 추억도 있습니다.
푸른 잎이 나부끼던 즐겁던 그 옛날,
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그 빛처럼 푸룬 청춘을 노래하였습니다.
합창부에서, 연극반, 방송반, 생물반에서 정서를 배우고
앞뜰의 백엽상에서 과학을 배웠으며,
농구부, 야구부, 정구부, 아이스하키, 역도부에서 심신을 단련 하였습니다.
학교 밖 각종 써클에 나가 리더 쉽을 기르며 인기도 모았고,
문학의 밤 행사때는 금란 여고와 피어선 학생들도 많이 왔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교정 한 쪽에 서있던 포충탑에서
먼저 가신 선배들의 혼을 기리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데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화랑의 후예였습니다.
교정을 나선 우리는 세상을 향해 뛰었습니다.
때마침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전국을 몰아 치는 속에서,
피를 뿌리는 아픔도 보고,
아픈 상처에도 울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눈빛도 보았지만,
슬픔이나 미움까지도 가슴에 묻고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없이, 나도 뛰고 너도 뛰었습니다.
끓는 피 두주먹에 맨발로 뛰면서
우리의 동산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맘껏 펼쳤습니다.
조국이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고
춥고, 어두운 턴널을 빠져 나가도록 나라의 믿본 일꾼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이 헐벗은 세상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온몸을 던져 정열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 까지,
분야 분야마다 우리의 열정과 기백이 믿받침되어
조국의 번영을 이루게 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잠시 되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혼을 불러 넣어 주신 많은 은사님들은 벌써 고인이 되셨습니다.
또, 우리와 함께 숨차게 뛰어 오던 상당수의 친구들이 앞서서 유명을 달리했던
아픔을 새삼 되살립니다.
우리는 졸업 40 주년 여행을 떠나 반갑게 옛 얼굴들을 마주했습니다.
그 짧지 않았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처음 만난 얼굴도 있었지만
세월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금방 하나로 뭉치게 하는 남다른 힘이 바닥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은사님들이 심어 주셨고,
그것을 지키다가 먼저 떠난 친구들이 간직했던 서울인의 혼 일것입니다.
우리는 이역 만리 타향에서 너무도 꿋꿋하게 버텨온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누가 친구들이 겪은 그 수많은 눈물젖은 사연과 때로는 슬픔에 목이 맬때도
혼자 가슴을 삭이며 입술을 깨물던 그 역사들을 몇마디 필설로 대변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인의 혼으로 어제를 이겨내고 오늘을 이뤄낸 친구들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누가 어느 분야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 그런 것은 아주 하찮은 문제였습니다.
우리들이 본 것은, 자신과의 외로운 투쟁에서 승리하고, 정당한 승부로 행복을 쥐어,
이제는 고통의 흔적을 씻어내고 모두가 점잖게 익어가는 지성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이시여.
아직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좀 더 가다듬고 매듭지워줘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숨 돌릴 틈없이 달려 오면서 우리의 부인들은 꿈 많던 소녀의 꿈을 접고
오로지 가족만을 위하여 희생하고 이젠 검소한 파마 머리의 중년이 되었습니다.
이 선량한 여인에게 한 없는 사랑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사오니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옵소서.
하늘이시여.
이역 만리 타향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보다 더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보다 더 생각하고, 우리가 배고플때 같이 굶어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친구들에게 축복과 행운을 쏟아 주소서.
하늘이시여.
앞으로 10 년후, 그리고 20 년후, 그리고 30 년후에도 오늘과 같이 숨을 고르며
우리 함께 모여, 바둑으로 지혜를 겨루고, 테니스와 골프로 건강을 다지며,
산에 올라 정기를 맛보고, 은총으로 하느님을 우러르는 축복 받는 삶을 우리 모두가
누릴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과 정열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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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아주 멋진 글 읽을 수 있음에 感謝드립니다. 글쓴이 정진철은 자기 글인 줄도 모르고 지나다가 친구들이 북새통을 떠는 바람에 想起했다는군요 . 역시 펜을 잡았다 하면 名文章의 글만 줄줄이 쏟아내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요만서도... 우리 친구들 중에 元老文學藝術人으로서 대접받고 있는 前途有望한 文藝人에게 眞心으로 讚辭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