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하게 살아가기
송순자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또다시 핸드폰에 손이 간다. 여기저기 볼만한 것을 찾아 유튜브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데쓰클리닉’이란 제목에 호기심이 갔다. 잠이 오지 않은 한밤중에 ‘데쓰클리닉’이라! 어쩐지 깊은 밤에 선택하기에는 섬찟했다. 그러다 요즘 일본에서 잘 나간다는 사업이 이사업이라고 들었다. 장수로 가는 시대에 홀로 ‘고독사’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죽은 자가 남기고 간 온갖 살림살이는 남은자들의 몫이 되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것을 정리해주는 업체가 성황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장례절차에서 유품정리까지 맡아서 해준다는 것이고 때로는 유품을 정리하다가 온갖 영수증과 죽은 자의 삶을 볼 수 있는 것들에 눈물이 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금이나 통장이 발견하여 생존 시기도 알 수 있다고 하며. 발견 된 소중한 것들은 유족에게 전달해준다. 건강할 때, 힘이 있을 때 내가 남긴 것들을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살아가기 바쁘고 부모님이 남긴 물건들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도 고민될 것이다.
물건마다 부모님의 손때가 묻고 추억이 담긴 것들을 자녀들이 정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이 남긴 물건은 어마어마했다. 장독대에는 오래 묵은 장류부터 장아찌까지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고 색마저 바랜 장류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집된장보다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마트에서 사다 먹는다. 어머니의 장독에는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고 어머니의 맛을 간직해 두었던 것들이 굳어지고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누구도 가져가겠다는 말이 없다.
어머니는 몇 년씩 묵은 젓갈류를 해마다 담그셨다. 그 창고 앞을 지나갈 때면 젓갈이 숙성되어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풍기었다. 난 그 앞에서 숨을 들이쉬며 맛을 느끼며 지나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창고에서 고소한 맛이 솔솔풍기는 듯하다. 오래 숙성된 젓갈로 어머니는 온갖 김치를 담그셨다 어머니의 김치는 누구나 와서 먹어본 사람들은 극찬을 아낌없이 하시었다.
그런 어머니는 딸들에게 젓갈 담는 것, 김치 담그는 것을 전수해주지 못하시고 어느 날 갑자기 중풍이 왔다. 그 후로 어머니는 영리하고 억척스럽고 무엇이든 맛을 잘냈던 분은 오간 데 없고 이기적으로 변하셨다. 우리 형제들에게 아픔만 남기시고 그렇게 많은 것을 두고 영원히 우리와 이별하셨다. 그 많은 어머니의 유품은 정리할 엄두도 못낼만큼 많은 물건이었다. 살아있을 때 정리를 했더라면 남은 자들에게 고민과 갈등을 덜어 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데쓰’ 어떻게 들으면 피하고 싶은 말이지만 직면해서 이제부터라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미니멀하게 산다고 한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살아가기를 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입지도 않고, 쓰지도 않은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서랍마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많다. 이제는 골라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할 것 같다.
남편의 낚시도구 가방을 꺼냈다. 늘 시간이 되면 낚시를 갔었는데 지금은 시들해졌다. 잡다한 공구들을 정리했다. 뒷 베란다에 보관하기에는 자리만 차지했던 큰 항아리를 ‘당근마켓’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매실장아찌를 담가 던 것들이다. 한동안은 짱아찌나 식초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항아리 값이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오래 사용했으니 그것으로 되었지뭐! 혼자 위로하고 정리했다. 내가 이와 같이 정리를 하지 않으면 분명 내 자녀들이 시간을 내서 피곤한 일을 하게될 것이다.
오늘은 과감한 결정을 하고 정리를 하니 홀가분해졌다. 좀 더 가볍게 살고 더 줄여가면서 살아가야겠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은 물건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는 것은 부담이 될 것이다. 책꽂이에 책은 얼마나 많은가 다 읽었던 책이고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고 그대로 둔 것인데 필요 없을 것 같다. 내 주변에 도서관은 근거리에 있다. 책장에 책을 진열해놓고 사는 시대도 아닌 것 같다. 인쇄물에서 나오는 나쁜 물질이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장식장이고 과시용 일.뿐이다.
입지 않은 옷들도 점차 골라내어 정리를 해야겠다. 체형도 변하는지 젊을 때 입었던 옷은 젊음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입고 다니기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런 옷들이 옷장에서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있다. 주방에 그릇은 얼마나 많은가 커피잔이며 큰 접시, 물컵 등은 쓰고도 남는다. 예전에는 집에서 돌잔치며 반상회모임을 했다. 집들이도 집에서 했기에 큰 접시와 범랑냄비 등을 많이 사용했다. 큰 교자상에 떡벌어지게 음식을 내놓았다. 그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집에서 모임들을 했다. 지나고 보니 정겨운 시대였다.
이웃과 살가운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에 사용되었던 그릇들도 이제는 무겁기만 하고 쓸일이 없다. 이것도 정리를 해야겠다. 살아있을 때 나눔을 하면 편견도 없을 것이다. 천천히 ‘데쓰클릭닉’준비를 해야겠다. 미리미리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가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정리를 한 내 삶을 보고 내 자녀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궁금하다.
‘우리 엄마가 죽음 준비를 잘하고 가셨구나’!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은 슬픔이 밀려온다. 남은 생애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