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발제 - 정재원 / 지도: 문예준
인간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의무인가?
먼저 “인간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의무인가?”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인간 존엄 주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인간 존엄’을 설명하자면 요즘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예를 들어 돈이 없어서 노숙하는 사람을 폭행했지만, 노숙자도 ‘인간’이기에 폭행한 사람은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이라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의 계급으로 따지자면 양반 밑에 상민, 상민 밑에 천민이 있는데, 양반은 인간 취급을 받았지만, 천민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고, 현대주의에 ‘인간 존엄’이라는 단어는 당연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도 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처벌받지 않고 돈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어서 문제다. 최근 2023년 3월 28일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본인이 자수해서 체포되었는데, ‘전우원’ 씨가 말하기론 “본인 집안이나 지인이나 사회적으로 돈이 많으신 분들께서 자본을 사용해서 직접적으로 처벌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으며,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4월 3일 기자 간담회에서 ‘전우원’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계획에 대해 “아직 밝히기 어렵다.”면서 “투약한 약물의 종류와 횟수 및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구속영장 신청 기준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었다. 나는 이러한 점들이 ‘인간 존엄’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어서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선까진 모든 인간이 불공평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으면 대부분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직까진 ‘전우원’ 씨의 형량이 정해지진 않은 것 같지만, 내가 봤을 때 문제는 더 큰 죄를 지어도 더 약한 죄를 지은 사람보다 형량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을 순 없다. 왜냐면 위의 ‘전우원’ 사건처럼 죄를 지었는데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을 존중해 주는 것에 대한 기준을 설명하자면, 사람을 때렸을 때 같은 경우 피해자들은 모두가 인간이기에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서 가해자는 처벌받는 게 맞는 것이다. 하지만 처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는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돈으로 해결할 수 없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누구는 돈이 없어서 죄를 지었는데 큰 처벌을 받았지만, 돈 많은 사람이 같은 죄를 지었을 경우 더 약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모두가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간은 모두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존중받기 위해선 범죄자들이 돈을 활용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다. 그 범죄자들이 부자가 됐든, 거지가 됐든 죄를 지으면 정확히 “법대로 처벌받아야 한다.” 생각하고, 모든 인간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아는 것보다 타인을 아는 것이 더 용이한가?
먼저 내가 모르는 ‘용이하다’에 대해서 찾아봤다. 찾아보니 “어렵지 않고 매우 쉽다”라는 단순한 뜻이었다. 그러므로 “타인을 아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쉬운가?”라는 말인데, 내 생각은 타인을 아는 것보다 더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을 알아가기가 더 쉬우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타인을 알아가는 것은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 정도 걸린다. 하지만 스무 살인 나도 자신을 알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20년을 살면서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기에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근데 꼭 내가 아니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다.
교장쌤께서 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선 책을 정말 종류별로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미래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고,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교장쌤의 말씀을 듣고 요즘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정말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 같다.
반면 타인을 알아가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에 비해 쉽고 오래 안 걸리는 것 같다. 왜냐면 처음 본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서서 말 걸고 친해지면 석 달 안에는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생각엔 나를 아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가 타인은 내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새롭게 만난 친구가 탁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지만, 그 친구는 자기가 탁구를 좋아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본인이 무언갈 잘한다고 해도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못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백과사전 비슷한 곳에서 찾아봤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스스로 솔직해지고, 스스로 사려 깊은 질문을 해보고, 일기 매일 쓰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나도 매일 일기 비슷한 업무 일지를 쓰고 있는데 정말로 나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뭐든 경험해 봐도 나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겁이 많아서 많은 경험을 안 해봤다. 그래서 샨티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도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해, 나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뭔가 청년반을 하고 나서 업무 일지를 써온 뒤로는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일지를 써서 알아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스무 살이 되고 난 뒤에는 뭐든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위험한 거 빼고는 안 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뭐든 다 경험해 보려는 자세가 좋은 것 같다.
타인을 알아가는 것은 조금 애매하다. 왜냐면 사람마다 적응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질 때 짧으면 3주, 길면 2달 정도 걸린다. 나도 학기 초에는 1과정 아이들과 거의 말을 안 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아주 친해졌다. 과거의 나 같았으면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는데 짧으면 3달, 길면 한 학기 정도가 걸렸다. 친해지는 기준은 내 생각엔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타인을 알아가려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연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타인에게 다가서는 게 두려울 경우, 먼저 한 사람과 1대1로 대화하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한명 한명씩 늘리다 보면 언젠가 많은 사람과 친해질 수 있고, 타인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자신과 타인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을 알아가기가 더 쉽지만, 타인을 알아가는 것, 자신을 알아가는 것 둘 다 꾸준한 연습을 습관으로 들이면 알아가기 쉬워진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가?
나는 이 주제를 고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가?”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기준으로 생각했다. 그 전엔 헷갈렸었다. 왜냐면 두 문장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땐 이 주제를 “왜 우리는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의 뜻으로 알아들었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왜 노력해야 하는가?”는 노력을 할지말지 선택하기 전을 말하는 것 같고, “노력하는가”는 나를 알아가는 중에 앞에 ‘왜’가 붙으니 말 그대로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나의 지금 사정이랑 연관되어 있어서 같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나는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 외, 한 가지 더 있다. 이번 발제 전 주제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타인을 아는 것이 더 용이한가”인데 내가 말 한 결론은 타인을 아는 것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기 때문에 그 주제를 이어갈 만한 발제가 이번 주제 같아서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스스로를 알아 가는 데 있어서 노력하는 이유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본다. 그래서 보통 직업을 갖지 못한 20살부터 30살이 되기 전까지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물론 20살부터 30살까지가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를 아주 잘 아는 10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20~30 사이 사람들이 직업을 갖지 못해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해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대부분 사람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스스로를 잘 알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니까 그것을 이용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연습하고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인이 운동을 좋아하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식당에서 요리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해서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나를 알아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람은 개개인의 목표가 전부 다르고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MBTI’로 비교를 해봤다. 마지막에 들어가는 ‘P’의 경우는 좋게 말하면 상황에 따라 빠르게 판단할 수 있고, 안 좋게 말하면 계획이 너무 없다. 하지만 반대로 ‘J’의 경우는 좋게 말하면 계획이 철저하고, 안 좋게 말하면 계획 없이는 못 산다. 이렇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P’에 가까우면 미래에 있을 일을 제대로 생각을 안 하고 직접 겪었을 때 판단을 한다. 쉽게 말하면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이것, 저것 뭐든지 해보면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도 1년 반 전쯤에는 ‘P’였지만, 지금은 ‘J’에 좀 더 가깝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고1~2 당시에 성인이 되려면 먼 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정말 성인이기 때문에 내 미래가 걱정되어서 직업을 찾기 위해 나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 그 이유 같다. 지금은 나도 ‘J’와 ‘P’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J’에 좀 더 가깝다. 작년에 사주를 봤을 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을 것이고,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뭐든 닥치는 대로 경험해 볼 것이라고 했다. 대운이 있는데 모든 사람은 10년마다 바뀐다고 했다. 나는 아홉 살 때 바뀌었다고 해서 10년 뒤인 열아홉 살 때 또 바뀐다고 했다. 그래서 열아홉 살 이후부터 스물아홉 살이 되기 전까진 뭐든 해보다가 서른 살쯤부터 내가 갈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간다고 나왔다. 하지만 사주는 정확한 나의 미래가 아니고, 본인이 노력하면 바뀌는 것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상황이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뭐든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사실 청년반을 할 생각도 애초에 없었고, 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보니 지금 나는 청년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먼 미래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지 궁금해서 최대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 행복한 일을 찾기 위해선 나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른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행복하다 해도 안 힘들게 살 순 없다. 왜냐면 본인이 아주 좋아하는 일이라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낮긴 해도, 이왕 돈을 벌려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을 것 같다.
첫댓글 자신의 미래를 찾아가기 위해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재원이 정말 멋있네요. 아자아자!!!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수많은 질문을 해보는 것은 필자가 이야기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그밖에도 건강한 성체로서 인간의 생애의 다양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자기이해의 심화와 확장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를 응원합니다.
- 한석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