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12장
심판과 구원 사이에 놓인 시온
1. 구조
이사야 예언서는 책 전체를 열어주는 장엄한 서곡과 함께 시작된다. 서곡은 심판(1,2-31)과 구원(2,1-5), 심판(2,6-4,1)과 구원(4,2-6)의 반복된 형식으로 구성된다. 서곡에 등장하는 ‘하늘’과 ‘땅’, ‘심판’과 ‘구원’ 등은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 66장에도 등장하여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하늘과 땅:66,1 ; 구원:66,18-23 ; 심판:66,24). 이처럼 이사야서 전체는 머리와 꼬리의 상관관계를 보여 주는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로 짜여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서는 하늘과 땅을 향해 선포하는 말씀이며, 시온과 그 백성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선포하는 큰 틀 속에서 전개되는 말씀이다. 아울러 어휘와 주제를 통하여 이사야서의 시작과 마침이 상호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은, 머리글이 제시한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의 환시’가 이사야 예언자가 등장하는 39장을 넘어,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인 66,24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증한다. 다시 말해, 이사야서의 구조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은, 이사야서가 세 권으로 분리된 책이 아닌 한 권의 책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강력한 표지이다.
이사야서는 소명 사화와 관련하여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예언자의 소명 사화는 예언서의 시작과 함께 전해진다. 이는 예언자가 선포하는 내용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라는 권위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와 함께 대예언서에 속하는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는 예언서를 시작하면서 예언자의 소명 사화를 보도한다(예레 1,4-10 ; 에제 1-3장). 그러나 이사야서는 소명 사화를 6장에 가서야 들려준다. 공시적 관점에서는 이사 6장을 소명 사화가 아닌, 하느님께서 이사야에게 특정한 임무를 맡기시는 장면으로 이해한다. 만약 이사야 예언자가 우찌야 임금이 죽고 난 후에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면(6,1 참조), 1-5장까지의 선포는 그의 선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 6장을 하나의 단일한 본문으로 바라보았을 때, 여기에는 소명 사화의 요소인 하느님의 등장, 죄의 고백, 정화, 사명 부여, 파견 양식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명 사화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충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시적 접근이 아닌 통시적 접근, 곧 이사야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소명 사화의 특별한 배열이 이사야서의 형성 과정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1장이 아닌 6장에서 원래 이사야서의 본문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이사야서는 6,1-8,18을 예언서의 핵심 본문으로 삼았으며, 이 본문의 구조는, 이사야 예언자의 소명 사화(6,1-13),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을 배경으로 ‘임마누엘 탄생 예고’가 이뤄지는 이사야 예언자와 아하즈 임금의 대화(7,1-25)와 이사야의 아들 탄생과 상징적 의미(8,1-18)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주목할 점은 임마누엘 탄생 예고를 둘러싼 전후의 본문은 화자를 1인칭인 ‘나’로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6,1-13 ; 8,1-18), 임마누엘 탄생 예고를 들려주는 본문은 3인칭 ‘그’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사실이다(7,1-25). 이렇게 ‘나’와 ‘그’가 분리된 전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직접 기록한 부분과 그의 제자 집단이 기록한 부분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를 엿볼 수 있다(8,16-18 참조).
임마누엘 문헌을 중심으로 포도밭 노래(5,1-7)와 새로운 다윗 후손에 대한 예고(8,19-9,6)가 각각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역할을 한다. 포도밭의 노래 이후 여섯 가지 재앙을 전하는 불행선언이 선포된다(5,8-30). 마지막 부분인 9,7-10,4은 ‘하느님의 뻗은 손’(9,11.16.20)을 후렴으로 삼는 심판의 노래(9,7-9,20)와 불행 선언(10,1-4)으로 구성된다. 이후 아시리아에 대한 재앙이 선포되고(10,5-34), 이사이의 새순에서 돋아나는 메시아의 예고가 이어지고 구원의 그림이 제시된다(11,1-16). 1-12장은 구원된 이들의 감사 노래와 함께 마무리된다(12,1-6).
조금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지만, 1-12장의 구조는 이처럼 편집 과정을 거쳐서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온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이야기가 제1편(1-12장)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로써 이사야 예언서가 전개할 구원 드라마의 시작을 선포한다는 사실이다. 1-12장의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장 구원과 심판
1,2-32 시온을 향한 심판
2,1-5 시온을 향한 구원
2,6-4,1 시온을 향한 심판
4,2-6 시온을 향한 구원
5,1-7 프롤로그 – 포도밭 노래
5,8-30 여섯 가지 재앙 선포
6,1-8,18 임마누엘 문헌
6,1-13 이사야 소명 사화
7,1-25 임마누엘 탄생 예고
8,1-18 이사야의 자녀와 상징
8,19-9,6 에필로그-새로운 다윗 후손 예고
9,7-20 하느님의 뻗은 손
10,1-4 불행 선언
10,5-34 아시리아를 향한 재앙 선포
11,1-16 이사이의 새순
12,1-6 시온에서 울리는 구원된 이들의 감사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