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또다시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잇따라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더군다나 가족이 함께 자살하면서 안타까움이 더 컷다.생활고에 시달리며 우울증에 힘들어했던 30대 주부가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고, 막노동을 하던 60대 노인이 지하 셋방에서 100만원의 화장 비용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는 역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사람들은 이참에 우리 사회의 복지 현실을 다시 문제 삼는다. ‘복지 예산 100조 원 시대의 불편한 진실’이라 꼬집고,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양극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임에도 현 복지 정책은 수동적, 소극적이고, 사각지대가 많다는 것이 한 결 같이 제기하는 문제이다.사실 한두 번 들어본 문제 제기가 아니기에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디 이번에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한편으로 이렇게 복지 제도의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솔직히 나는 복지 제도의 확충과 보완으로 이번과 같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복지에 관해 전문적인 이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복지 제도에 대한 불신을 지니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이번 문제를 보면서 더 근원적으로 인간의 실존적 ‘고통’ 문제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세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만큼 고통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고통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의 문제에 집중되곤 한다. 아예 고통이 없는 삶을 모색해보지만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고통의 전모를 확연히 알고 싶지만 알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정체가 모호해진다. 결국 고통에 관한 의미 있는 성찰은 고통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그것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현세의 삶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의 상황 중에서 원인이 분명하고 어느 정도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견뎌낼 만하다. 나 자신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어쨌든 내가 지금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닥쳐오는 고통은 더 막막하고 견디기 힘들다. 이런 답답한 고통이 주어졌을 때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현세의 삶이 시도 때도 없이 던져주는 극심한 고통, 납득할 수도 없는 답답한 고통을 끝내 견뎌내는 힘은 현재 나의 삶과 나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다. 그리고 나의 당당함은 초월적 진리에 대한 온전한 신앙에 근거한다. 초월적 진리의 마땅함을 확신하기에 그에 따른 나의 선택과 행동은 현세의 상황이 어찌되든 늘 당당할 수 있다. 이런 당당함을 간직했을 때 현세적 기준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비록 현실의 상황이 내가 계획하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해도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특히 신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초월적 진리에 대한 신앙을 변함없이 지킬 뿐이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인간으로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 진리의 흐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신앙으로 모든 것을 내맡기며 그저 견뎌낼 뿐이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로 1,6-7)이런 말이 지금 당장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자칫 공허하고,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고통, 원인을 탓할 수 없는 고통은 아무리 따져보고 대항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다. 그렇게 고통이 주어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그저 견뎌낼 수밖에….오지섭 교수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서강대, 가톨릭대, 한신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서강대 종교연구소 책임연구원, 종교학과 대우교수로 재직중이다.■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지섭(서강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