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사
발터 벤야민이 1939~40년에 <역사의 개념에
o10>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E
저술하기 전에 역사철학에서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을 변혁하여 치료하는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어떤 현재의
시간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변혁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은 이미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벤야민은 이 빈틈으로
유대전통의 메시아적 사유를 집어넣는다. 그러니까
독특한 신학적 사유가 슬그머니 역사철학의
사유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현대문화 속에서
볼품없는 난장이로 좌천된 신학이 어떻게
자동인형을 잘 조정하여 역사적 유물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으로서
죽은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으로서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다면 어떻게 메시아적
현존으로서의 현재가 억압의 역사로서의 과거를
치료하고 "계급 없는 사회"(Gesellschaft ohne
Klassen)로서의 미래를 도래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종교적 환상이 아닐까? 그러나 벤야민은
이런 의문들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운동과
대비시킴으로써 아포리아를 해결한다.
벤야민의 역사철학에서 과거의 역사가 억눌린
피지배자들의 무고한 희생을 담보로 잡고
있는 한 희망의 상징으로서의 미래는 없다.
역사철학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을 순서대로
승인하는 곳에선 어디서나 승리자들의 깃발이
나부낀다. 그러나 저 깃발은 헤겔이 자신의
역사철학에서 간파한 "이성의 간계"(List der
Vernunft)를 은폐하고 있다. 이것은 승리자들의
무의식으로서 역사철학의 건축물을 파괴해야
할 당위성(Sollen)을 제시해준다. 모든 역사는
야만의 역사로서 자기 배후에 피지배자들의
희생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벤야민의
역사철학 제7, 8테제에서 나타나듯이 모든 문명은
야만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저 야만성을 고발하고
피지배자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씌어진 새로운
역사철학의 사유가 요구된다. 그것은 오직 오직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으로 되돌아가는 역사의
역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연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의 노동을 통하여
문화로 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속엔
저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해골더미가 숨겨져 있다.
저 역사의 폐허더미를 밟고 앞으로 전진하는
정신의 운동은 정지되어야 한다! 이 역사의 운동을
정지시키고 과거의 희생자들을 향해 눈을 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를 가로질러 그것을
멈추게 하는 현재의 시간, 곧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메시아적 구원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 사변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운동으로서 정치적 계급투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만의 고유한 철학적 사유다.
벤야민의 역사철학 제9테제에서 언급되는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에 대한
해석은 새로운 역사철학의 과제를 더욱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이제 역사의 해석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손자"가 아니라
"억압을 통해 희생된 선조"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존재하는 한 역사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저들의 희생을 회복시킬 때까지 역사의 현재는
과거의 폐허더미를 메시아적 구원으로 바꾸는
것에 할애된다. 여기서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는 역사의 천사로 변형된다! 강하게 불어오는
폭풍을 타고 하늘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게르솜
솔렘의 해석처럼,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폐허로서 피지배자들의 해골더미를 이미 보았기
때문에 저 역사의 천사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천사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붕괴시키면서 동시에 회복시키는 현재의
시간에 정지한 상태로 눈을 크게 부릅 뜨고 역사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이 카이로스의 시간, 이
정지한 시간(nunc stans), 지금의 시간(Jetztzeit),
이것이 바로 메시아적 구원의 시간이자 혁명의
시간이다! 여기서 신학은 무너지고 마르크스의
신정론은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진정한 신학이라면 벤야민을 통해 새롭게
울려퍼지는 저 마르크스의 비판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 예도tv
파울 클레 「angelus novus 새로운 천사」 그리고 발터 벤야민미학자인 진중권은 파울 클레의 그림 앙겔루스 노부스(새로운 천사)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고백했다...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