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시장에 가면
한명란
모처럼 친정 엄마 다니시던
방신시장을 간다.
시장 초입 한쪽 구석에
머리 하얗게 센 할매
박스 뜯어 좌판 만들고
쑥, 달래, 냉이 봄 향기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밭에서 방금 온 딸기요!”
고함 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모자 획 돌려 쓴 총각 환하게 웃고
내 손은 어느새 초록 잎 뽐내는
딸기 한 소쿠리 집어 든다.
코끝 유혹하는 닭튀김 집을 지나고
참기름 냄새 진동하는 기름짜는 곳도 지나고
지글지글 녹두전 해물파전 전집을 지나서
늘씬하게 뽑혀 나오는 가래떡집 앞에 선다.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신 날은 언제나
따끈한 가래떡과 달콤한 꿀을 내 놓으셨다.
가래떡 세 줄을 산다.
탕, 탕, 탕!
생선가게 아저씨가 아저씨 몸짓만한 대구를 손질한다.
주꾸미는 고무 통안에서 얌전히 까만 눈알만 굴려대고
낙지는 수족관 모서리에 발 하나를 애써 올리고 나가려 바등대며
전복은 죽은 듯 있다가도 손 만대면 살았노라 꿈틀 거린다.
어느 갯벌, 어느 바다 밑에서 자유롭게 살다 왔을까?
지금은 낙지보다 주꾸미라고 한 철인 주꾸미가 인기다.
왁자지껄한 시장 안 어디선가 애절한 노래 소리 들리고
사지 온전하지 못한 사람 시장바닥 온 몸으로 기어 구걸한다.
너, 나, 모두들 무심한 듯 익숙한 듯 지나치고
낡은 유모차에 의지한 꼬부랑 할머니
꼬깃꼬깃한 지폐 꺼내 어렵게 어렵게 통 안에 넣는다.
많이 가졌다고 돕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배운다.
붉은 빛 휘향한 제주 흑돼지 정육점을 지나고
사람들 줄 길게 선 순댓집을 지나면
직접 기른 콩나물 손수 만든 두부 가게 나오고
콩나물들, 노랑 머리통 내밀고 활짝 웃고 반긴다.
어릴 적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 이불 쓰고 엄마 사랑 독차지한 콩나물시루.
사실은 그 사랑 내가 먹고 자랐지!
무거워진 장바구니
그럼에도 꼭 들리고 싶은 곳
친정 엄마 생전의 단골 나주 죽 집
"엄니는 호박죽 반 그릇도 채 못 드셨어.
돈은 꼭 한 그릇 값을 내시고는.
우리 집 양반 병나서 이 장사 치울 뻔 했는디
그 집 엄니 덕분에 나 지금까지 먹고사네."
이제는 어림잡아 엄마 나이 되어 갈 때마다 같은 말만 하시네.
사람 사는 정 넘치게 담은 호박죽 두 그릇을 산다.
한 그릇은 시장 초입 좌판 할매를 위해서.
휠체어에 친정 엄마 태우고 왔을 때는
나주 죽 집 아주머니도 못 알아보고
자꾸만 옷집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옷만 고르셨다.
엄마도 멋 부리고 꽃구경하고 싶은 여자였는데.
살아생전 딱 한 번만이라도 팔짱 끼고 왔더라면
생기 넘치는 방신시장길 얼마나 행복할까?
첫댓글 저도 어려운 시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역시 시는 너무 어렵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올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이 시에 담겨 있네요. 저도 어머니 모시고 다니지 못했던 것이 마음 아픕니다. 나중에야 휠체어에 어머니를 앉히고 대형 마트에 모시고 갔더니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유모차 끄는 할머니가 통 속에 넣는 꼬깃꼬깃한 지폐를 기억하며 드는 생각. 죽 반 그릇 먹고 한 그릇 값 꼭 냈던 어머니가 죽집 아주머니 얼굴도 못 알아보고 알록달록한 옷만 만지던 모습. 생전에 딱 한 번이라도 팔장끼고 왔더라면 하는 부분에서 맺혀 있던 눈물이 주주룩 흘러버립니다. 시장은 온갖 추억이 있는 곳. 저도 어머니와 다니던 시장의 기억이 생생한데 모두 재개발되어 없어져 버렸습니다. 시장 풍경, 옆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겹습니다.
마트에 가면 가끔은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나온 딸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 어머니는 행복하시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방신시장 풍경이 그려지네요.
어머니께서 건강할때 같이 오지못해서 안타까워 하시지만 그래도 휠체어에 모시고 구경 시켜드렸으니
효도하신거지요.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그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장 구경 잘 했습니다. 시장은 요즘 마트와 다르게 정겨운 곳 입니다.어머니가 시장 보셨다는
추억을 하며 그리워 하고 계신 작자와 함께 추억합니다. 어머니 팔짱을 끼고 여러 곳을 추억하
고 싶은데 어머니는 기운이 많이 없으십니다. 진작 그랬어야 하는데 늦게야 깨닫습니다. 돌아
가시 면 더 다가올 것입니다. 어머니 생전에 계실때 후회하지 않게 잘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항상 죄송합나다. 이 글을 읽고 어머니께 더 잘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눈
에 들어오는 시장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