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語(산어) - 산에서 읊다.
初入金剛 聞利嚴曠無居僧 尋到掛錫 卽咏山語 以書窟壁之傍
초입금강 문리엄광무거승 심도괘석 즉영산어 이서굴벽지방
<처음 금강산에 들어와 거처하는 스님이 없어 텅 비어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 머물며 산어라는 시를 읊어 벽에 걸다.>
蕭洒古巖窟 소세고암굴
쓸쓸함을 달랠만한 오래된 암굴을
聞尋一路微 문심일로미
들은 대로 희미한 외길을 따라 찾아드니
溪明堪照影 계명감조영
시냇물 맑아서 그림자 비치고
谷靜可忘機 곡정가망기
골짜기 고요하여 상념일랑 다 잊었다네
蘿蔔芽初長 나복아초장
무싹도 쑥쑥 일찌감치 자라나고
葡萄葉正肥 포도엽정비
포도잎도 널찍하게 커가는데
成然聊入睡 성연요입수
저절로 편안히 졸다가
夢斷出雲歸 몽단출운귀
꿈 깨자 구름 벗어나 돌아왔네.
蕭洒(소세) ; 쓸쓸함을 씻다. 쓸쓸함을 달래다.
蘿蔔(나복) ; (야채)무.
正肥(정비) ; 바로 살찌다. 건강하게 자라다.
이 글은 「허응당집(虛應堂集)」의 맨 처음 나오는 시다. 대사는 이 암굴에서 수행한 적이 있었거나 아는 스님이 이 암굴에 있어서 예전부터 자주 들렸던 곳으로 짐작된다. 텅 빈 굴을 보고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시를 굴벽에 적어 놓았음을 술회하고 있다.
사람이 떠난 쓸쓸한 수행터에는 시냇물도, 포도잎도, 골짜기도, 무싹도 그대로 있어서 편안한 느낌에 대사는 잠에 빠져든다. 마치 고향을 찾은 느낌이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