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환절기
계절이 바뀌면
신근식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걷기는 흔히 자유, 건강, 고요함, 자연, 태양이 떠오르지만 지금도 ‘걷기예찬’, 느리게 걷는 법‘ 등의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걷는 것 보다 뛰는 것, 산에 오르는 것, 조금 과격한 운동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 연륜이 물들어가는 중년이란 그런 나이인가 보다. 계절이 바뀌면 희망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철이 바뀌는 것을 우리는 환절기라고 하여 건네는 인사말에도 “몸조심, 감기조심 하라”고 한다. 특히 이때에 병약한 노인들은 잘 돌아가신다. 오늘도 어느 곳에서도 어김없이 부고장이 날아 왔다. 대학동기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 듣는 바에 의하면 아흔네 살에도 건강하셨다는데 며칠사이에 갑자기 일을 당하여 몇몇 친구들과 문상가려고 하였다. 장례식장이 제천이라고 상주가 직접 연락이 왔다. “오늘 제천에는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사고 날까 봐 오지 말라”고 한다. 사실 문상갈 수 없는 처지인데 속으로는 잘되었다고 하였다. 오늘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작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
12월 중순에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제법 쌀쌀한 날씨가 되었다. 특히 내일은 전국이 영하권 날씨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나는 항상 걷기 전에 일기예보를 살핀다. 날씨와 온도에 맞추어 운동복 입거나 운동 준비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걷기를 좋아했던 것은 작년 4월부터다. 허리 디스크 수술 이후에 다른 심한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별도리 없이 걷기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에 6년을 살았다. 그곳은 낙동강 다리를 중심으로 달성군과 성주 경계선이다. 우리 집은 낙동강 다리가 끝나는 부분에 있다. 대구에서 볼 때 우측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서 해가 떠 서쪽으로 질 때까지 양지 바른 전원주택이다. 아마도 그 동네에서 낙동강이 보이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다.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 마다 뷰(View)가 좋다고 한다.
매번 계절이 바뀌면 봄에는 함박꽃이 함박 피었고, 여름에는 장미 넝쿨에 장미가 양귀비꽃처럼 아주 탐스럽게 조롱조롱 달린다, 가을에는 국화꽃이 만발하여 소박하고 향기로운 집이다. 집은 전체가 나무로 된 집이다. 바깥은 잔디로 둘러져 있고 그 밑에는 약 165㎟(50평) 되는 텃밭도 있다. 그 텃밭에는 감나무 열 그루, 뽕나무 세 그루, 매실나무, 대추나무, 오가피(五加皮)나무 등이 있다.철마다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따 먹는다. 식구들이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나 혼자 그 많은 과일을 두고두고 먹는다. 땅은 게을러서 그런지 채소나 작물을 짓지 못하고 겨우 열무를 심어 입 갈음한다. 텃밭은 사실 그야말로 풀과 전쟁이다. 풀을 거의 다 뽑아갈 때면 처음에 시작한 곳에서 또 풀이 나기 시작한다. 그것 말고도 여름엔 모기와 싸워야 했고 정말 밭은 계륵(鷄肋)과도 같다. 계륵은 먹기에는 양이 작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그런 양상이다.
풀을 뽑는 일은 내 몸과 정신적 치유라고 생각한다. 일주일 중 평일 6일은 대구에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일요일 택하여 텃밭에 나가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틀고 간단한 음식을 챙겨서 풀 뽑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니까 풀과의 전쟁이 쉬워졌다. 좋은 음악 들으며 쉬는 시간에 맛있는 간식 먹고 일 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져서 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다.
책 좋아하다 보니까 습관에 관한 책을 읽고 스스로 습관이 좋아졌다. 밤 12시 까지 늦게 자는 버릇을 밤 열 시에 무조건 취침하는 것으로 실현하다. 그리하여 아침에 두 시간 일찍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낙동강 위로 떠오르는 해님 보고 기도 한다., 기도는 원래 자신부터 빌면 안 된다고 하여 내 주변에 관계되는 사람 모두가 잘 되라고 한다. 내 가족과 나를 위해 기도한다. 그 다음에 간편식 (건강식품, 주스, 사과 반쪽) 먹고 강가에 운동하러 나간다.
강둑길을 뒤로 걷기 한다. 뒤로 걸으면 다리근육이 새로 생겨 좋다고 누가 조언을 하여 주었다. 정말 해 보니까 효과가 있었다. 강가에 도착하면 또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 강가 숲길에 제일 큰 나무를 정해서 기도한다. 그 나무는 당산나무라고 정하고 여기서는 무조건 나를 잘되게 해달라고 한다. 들어 주고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긍정적으로 하는 일이 모두 잘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항상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한다.
숲길 세 바퀴 돌다보면 옆에 스쳐가는 식물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길바닥 보면 개미집을 수없이 지어 놓았는데 혹여나 밟을까 조심조심 한다. 개미는 왜 그렇게 집을 많이 지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 집은 팽이 윗부분처럼 동그랗게 잘 지었는데 하도 예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도 해본다. 어차피 비가 오면 금방에라도 사라질 것을 보면서 “미물도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숲길을 다 돌고 다시 강둑으로 이번에는 달려서 집까지 간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하루 운동이 되었으리라 믿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즐겁게 내가 좋아 하는 일 하러 나간다.
그렇게 자연을 벗 삼아 한적한 강가에서 유희하다가 올 8월 4일에 이사 하였다. 아파트에 살면 어떻게 아침 운동 할 것인가 걱정을 했지만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16층이다. 앞에 경관이 비록 성서산업공단이지만 그 주변에 강정보의 디아크도 보인다. 또 이름 모를 건물에 네온사인도 비치어 야경이 좋다. 자연만 보다가 새삼스레 도시 생활로 다시 돌아오니 어느 듯 장년의 나이지만 새롭게 가슴이 설레고 욕망이 꿈틀거린다.
도시에서 12월로 접어든다. 날씨가 계속 영하로 떨어져 아침 운동을 피했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생각보다 운동하기가 좋다. 아파트 바로 앞에 후문이 있어서 뛰어 나가면 제일 먼저 메타세콰이어(metasequia) 나무가 쭉쭉 뻗은 샛길로 걷는다. 또 흙으로 된 운동장 맨발로 걷고, 다시 학교 운동장 세 바퀴 달리고 나오면서 운동기구 시설물을 모두 이용하고 나면 운동량이 충분하다. 비로소 하루가 보람차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행복감이 충만하게 느낀다.
계절은 누가 말려도 저 할 일을 꼭 한다. 더운 계절에서 추운 계절로 바뀌는 2월~4월, 추운 계절에서 더운 계절로 바뀌는 9월~10월인 것이 환절기라 한다. 그러나 나는 환절기를 접어두고 생리적으로 추워지는 이 계절이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문화 일도 잘 되기를 희망하며 또 쉽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은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면.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