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거스르는 ‘역노화’… “고령화 시대 또 다른 대안”
[리버스 에이징 시대가 온다 #1] 노화와 싸우는 사람들
2023년에 출생한 아이들 중 100살이상 사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일부 전문가는 미국 기준으로 그 비율은 50%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백세인생을 누리는 셈이다.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노화’ 연구에 돈이 몰리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지난 4월 ‘2023년 글로벌 항노화 치료제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50년 전 세계에서 80세 이상 인구는 2015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항노화 치료제 시장은 2031년까지 연평균 17.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목 받는 것은 ‘역노화(리버스 에이징)’이다. 만성질환 등 노쇠에 따른 기능 저하를 지연하는 ‘항노화(안티에이징)’를 넘어 몸의 기능을 생리학적으로 젊어지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역노화 연구가 초점을 두는 것은 세포, 조직, 기관의 상태가 건강한 상태의 장수다.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명예 교수이자 인간유전체연구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신철 교수는 “가족도 자주 만날 수 없는 요양원 침대 위에 누워 무의미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수명 연장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노년기를 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역노화 연구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왜 늙는가?…노화와 싸우는 사람들
역노화의 최전선에 선 인물은 노화와 유전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 대학 교수다. 그는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죽음이 드문 일이 되는 세상이 오려면 아마 멀었겠지만, 죽음을 점점 더 먼 훗날로 미루는 일을 해낼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싱클레어 교수 연구팀은 올해 1월 역노화 현실화의 포문을 열었다.세계적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최신 연구는 노화 조절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은 노화의 원인으로 후성유전체 기능 이상을 지목했다. 후성유전체는 기존 유전체에 언제 어디서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할지를 표시하고, 때로는 이를 변형할 수 있는 화학물질로 표현할 수 있다. 싱클레어 박사는 타고난 DNA를 그랜드 피아노, 후성유전체를 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노화는 언제 일어날까? 흡연, 대기오염 등 각종 원인으로 DNA가 감당하기 힘든 손상을 입었을 경우다. 손상의 정도가 심해지면 후성유전체는 자신의 정보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이 엉뚱하게 이뤄지고, 결국 정상세포 유지 기능마저 꺼지면서 인간은 늙게 된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후성유전자 조절을 위해 성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들 때 사용하는 인자(Oct4, Sox2, Klf4)를 쥐에 주입했다. 이 인자들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교토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발견한 네 가지 유전자 조절 인자(Oct4, Sox2, Klf4, c-Myc) 중 세 가지다. ‘야마나카 인자’로도 불리는 이들은 피부세포에 주입할 경우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만들어낸다.
이 시도의 결과는 놀라웠다. 노화했던 쥐의 근육조직이 젊어지고, 시력이 회복되는 등 역노화가 나타났다. 아직 영장류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노화의 시간을 되돌렸다는 사실 자체로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장수를 위해서는 유전자조절인자 주입이 유일한 방법일까? 싱클레어 박사는 장수유전자 활성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장수유전자가 활성화할 경우 새 혈관이 형성되고, 심장과 폐가 더욱 건강해지는 등 역노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포 방어체계를 깨우고 작동시킬 수 있는 너무 심하지 않은 약한 형태의 역경(스트레스)가 필요하다. 간헐적 단식이나 소식, 육식 절제, 운동, 추위 노출 등이 대표이다.
이외에도 그는 장수 유전자 활성화를 위해 포도껍질 등에 많이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이나, 알코올 발효 증진제로 발견된 NAD 등을 보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효과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산소가 텔로미어를 늘린다? 주목받는 고압산소치료(HBOT)
하버드 대학이 후생유전학을 통해 노화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면,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 대학(Tel Aviv University)은 고압산소치료(HBOT)를 통한 역노화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HBOT는 2기압 이상의 압력이 가해진 밀폐된 공간 안에서 100%에 가까운 고농도 산소를 흡입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평소보다 혈장 내 산소 농도가 10배 이상 증가돼 이를 통해 산소 부족으로 유발되는 다양한 현상과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텔 아비브 대학 메디컬센터 사골(Sagol) 고압산소 의학 센터의 샤이 에프라티 교수 연구팀은 2020년 HBOT를 통한 역노화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불과 3개월 간의 치료를 통해 텔로미어 길이가 최대 20%까지 증가했고, 노화세포는 치료 종료 후 약 37% 감소했다. 세포 속 염색체 끝단에 있는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은 세포의 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HBOT의 조직 회복 효과는 피부 조직에도 효능이 검증됐다. 2021년 연구지 ‘노화(Aging)’에 발표된 연구에서 이스라엘 텔 아비브 대학팀은 건강한 6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고압산소치료가 피부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했다. 석달간 고압산소치료를 시행한 결과 참가자들의 피부표본 조직은 콜라겐 밀도와 피부 탄력 섬유의 탄력도가 증가했다.
고압산소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원래 고압산소는 일산화탄소 중독이나 감압병(잠수병) 치료에 이용됐다. 일산화탄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제대로 실어 나르지 못해 체내 산소 농도가 떨어질 때 고압산소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의 반감기를 5시간에서 20분으로 줄여 중독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
체내 조직에 순간적으로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면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처로 혈관이 손상되거나 부종(붓기)이 생긴 부위는 혈액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과정이 원활히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고압산소 챔버 안에서는 혈액 내 혈장에 녹는 산소량이 대기압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난다. 손상 조직에도 고농도의 산소를 주입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화상이나 당뇨발(당뇨병성 족부 궤양)의 치료다.
특히 당뇨병성 족부 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고압 산소 치료 요법은 직접적인 치료 효과를 인정받아 2018년 미국 당뇨병학회 진료 지침에 오르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2019년 1월 건강보험 지원 범위에 포함됐다. 일산화탄소 중독, 화상, 돌발성 난청, (접합 수술 및 방사선 치료 이후 발생한) 조직괴사 등에 모두 보험이 적용된다.
고압산소 챔버의 산소 포화 효과는 흔히 피로 회복이나 재활에 사용된다. 인체 산소 포화도를 최적화해 운동 후 쌓인 피로를 풀고, 근육통을 완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헐리우드의 배우들이나 유명 스포츠선수들이 자택에 고압산소 챔버를 두고 컨디션을 조절하기도 한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 ‘두산 베어스’는 공식적으로 인터오션 사의 고압산소챔버를 선수들의 피로회복, 심신안정 및 재활 촉진 장비로 도입했다. 순천, 연수, 광양 지역 소방관들의 피로 회복을 위해 6000만원 상당의 고압산소챔버가 들어서기도 했다.
하나이비인후과 병원 부설 H리버스에이징 센터의 원장도 겸임하고 있는 신철 교수는 “원활한 산소 공급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됐었다”면서 “이미 1930년대 독일의 생화학자인 오토 바르부르크 박사는 몸에 산소가 부족할 경우 정상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산소 없이 살아가면서 생긴 것이 암세포라는 것을 밝히면서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면 암세포 성장이 억제된다고 단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9년에는 피터 랫클리프 옥스포드대학교 교수가 몸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면 항산화제를 섭취하는 것보다 항산화력이 훨씬 높아져 암 치료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시대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노화 관련 연구에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로 인한 질병 환자의 급격한 증가는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사례는 이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최근 발표한 2021년도 ‘간병급여비 등 실태통계’에 따르면 간병보험급여와 자기부담을 포함한 간병비용은 11조 291억엔에 달해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2018년 기준으로 간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이미 6500억엔 (약 6조 5000억원)에 달했다. 병든 노인이 늘어나는 사회는 경제도 병드는 걸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코메디닷컴 (kormedi.com) 윤은숙 기자 입력 2023.07.11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