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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갑오년과 조병갑선정비- 김윤숭(지리산문학관장)
지난해 말 함양군청에서 시민단체의 요청으로 함양상림공원에 있는 함양군수선정비림 속의 조병갑선정비 처리문제를 두고 역사단체와 연석회의를 갖고 토론했다. 지난해가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라서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기록물을 훼손하거나 변형시켜선 곤란하고, 존치하되 별도 조치 쪽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함양은 여느 고을과 다르다. 좌안동 우함양의 자부심이 강하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사현 일두 정여창 선생이 탄생한 고을이며 세계문화유산 남계서원, 목민관의 귀감 고운 최치원 선생과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모신 백연서원 등을 비롯한 20여개의 서원이 임립한 고을이고 천령삼걸이 배출된 양반고을, 선비고을이다. 아무나 수령으로 왔다고 해서 맘대로 탐학을 일삼고 가렴주구를 자행할 수 있는 만만한 고을이 아니다.
더군다나 조병갑은 서얼 음관 출신이다. 수령이라고 해서 어디서 목에 힘주며 횡포를 부릴 수 있었겠는가.
함양에 조병갑선정비가 있는 것이 역사적 치욕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탐관오리의 대명사 조병갑이 함양에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는 것이 함양의 자랑거리가 돼야 한다. 자부심과 긍지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조병갑선정비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탐관오리의 대명사, 가렴주구의 화신,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원흉 조병갑도 양반고을, 선비고을 함양, 선비정신 삼엄한 함양에선 탐학성을 발휘 못하고 선정을 베풀 수밖에 없었느니라. 그 증거가 이 선정비이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얼마든지 함양의 자존감 넘치는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전개할 수 있다.
조병갑선정비는 선정비의 실상을 연구할 수 있는 주요사료이다. 금석문, 역사기록물, 문화유산이다. 지금은 그것만 보러 일부러 찾아오니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오히려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조치해야 한다.
조규순의 선정비는 태인과 함양에 있다. 함양에는 함양군수 조규순, 조병갑의 부자 선정비가 있다. 필자가 1996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문화재 조사 때 그 비문을 해석해준 적이 있다. 조규순은 암행어사의 보고에 의하면 가는 곳마다 청렴, 공평해 주민들이 잊지 못한다고 했으니 그의 선정은 의심할 것이 없겠다.
조병갑은 1844년에 태인 관기와 현감 조규순의 사이에 얼자로 태어나 1913년 일제 치하에서 죽었다. 조병갑은 부친 조규순이 강화부유수 물망에 오르던 해인 1863년 규장각 검서관으로 첫 벼슬하니 서자 출신들이 하는 관직이다. 조병갑이 고부군수로서 탐학을 일삼아 고부민란을 촉발시키고 갑오동학농민혁명으로 확산되고 청일전쟁을 초래해 일제의 영향력이 강해져 마지막에 경술국치 망국의 끝을 보고 말았다.
한 작은 고을의, 한 작은 존재인 관료의 부정부패가 결국은 망국의 한을 부른 것이다. 어찌 한 작은 관료라고 내가, 혹은 그가 좀 부패해도 한 작은 부정부패에 뭐가 어찌 되랴 하며 함부로 저지르거나 내버려두거나 할 수 있겠는가. 갑오년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김윤숭 지리산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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