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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전쟁’에 관한 환상(10:1~21)
1. 이스라엘 민족이 귀환할 시기에 다니엘이 본 환상(1~3)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왔다가 본토로 되돌아가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렸을 것이며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나이 많은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고향 가나안 땅의 모습을 머리로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토로 귀환하는 저들의 앞날은 결코 평탄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윤택한 삶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폐허가 된 고향 땅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은 오래전에 파괴되고 없었으며 성벽은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한때 화려한 모습을 하고 떠들썩했던 예루살렘 성안의 거리는 옛날과 전혀 다른 썰렁한 분위기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칠십 년’ 만에 고향 땅으로 귀환하게 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앞으로의 삶이 윤택하게 전개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돌아가서 그들이 행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했으며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성안의 거리를 정비하고 집들을 다시 지어야 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다니엘 역시 그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렵고 힘든 여건들을 직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실하게 잘 이겨 나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형편 가운데 있는 다니엘의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다니엘을 비롯한 신앙이 성숙한 성도들은 그 모든 것이 앞으로 오실 메시야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지만 어린 성도들은 단순한 민족주의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도 있다.
귀환이 허용되고 나서 첫 번째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였을 즈음인 고레스 왕 삼 년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큰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 본 내용이 장래 이스라엘 민족과 연관되어 일어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장래 일어나게 될 큰 전쟁이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환란과 고통을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전체적인 상황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미래에 발생하게 될 큰 전쟁의 일반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할지라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니엘이 환상을 본 후 깊은 슬픔에 빠졌던 이유는 앞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해야 할 이스라엘 자손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다니엘은 나이 많아 곧 인생을 마감하게 될 노인이었다. 반면에 약속의 땅 본토로 귀환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다지 성숙한 성도들이 아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를 진정으로 기다리며 그의 구속 사역을 소망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그 어려움을 잘 견뎌야 하는데 다니엘로서는 그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본 다니엘은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금식했다. 즉 21일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고기를 비롯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았으며 얼굴과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슬픈 마음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힛데겔(티그리스) 강가에서 본 실제적인 환상(4~9)
(1) 환상 가운데 나타난 천사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본 후 3주간이 지난 정월 이십사일,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티그리스 강가에 있었다. 그때 그는 거기서 아름다운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순금 띠를 띠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 빛 같았으며 그의 눈은 횃불 같았다. 그리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았고, 그 음성은 무리의 소리와 같이 들렸다. 그 얼굴과 의상은 영화롭고 위엄 있는 왕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그 ‘한 사람’은 이스라엘과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싸우실 자였다.
이 ‘사람’(천사)이 누구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가브리엘이라고 한다. 그러나 9장 21절에서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이 천사를 가브리엘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새로 등장한 천사의 모습이 매우 상세하고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가브리엘의 모습을 뒤늦게 자세히 소개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초대 교회에서는 에스겔 1:26~28과 요한계시록 1:12~16 등을 바탕으로 이 천사를 성자 예수님으로 해석했지만, 10~14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천사가 하나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감히 어떤 영이 하나님의 앞길을 21일 동안이나 막아설 수 있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름 모를 천사로 남겨 둔다. 천사가 입은 ‘세마포 옷’은 가는 베로 만든 흰색의 옷으로 정결과 신적 권위를 상징한다. 천사가 허리에 두른 ‘우바스 순금 띠’는 우바스 지역에서 생산된 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말하는 것으로 ‘허리띠’는 종종 뛰어난 지도력과 능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다니엘이 특별한 실제적인 환상을 경험하고 있을 때 티그리스 강가에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시각적으로 환상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청각적으로 엄청난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공포에 빠져 떨며 도망하여 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다니엘은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았으며 도망하여 숨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온몸에 힘이 완전히 빠졌으며 자신의 얼굴빛이 변하여 마치 썩은 시체같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감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다니엘은 천상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은 잠이 들게 되었다.
3. 천사의 도움과 그의 고백(10~13)
(1) 천사를 만난 다니엘
그때 다니엘을 어루만지는 한 손길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로서 다니엘은 그 손길을 느끼고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천사는 다니엘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임을 말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할 사명을 띠고 왔음을 밝혔다. 다니엘은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내신 특별한 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천사는 두려움을 느낀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격려했다. 그리고는 다니엘이 3주 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던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 천사는 다니엘에게 그에 대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2) 페르시아 왕국 군주의 방해와 미가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자신이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그것은 페르시아 왕국의 군주가 자신을 21일 동안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페르시아 군주에 의해 막힌 기간은 다니엘이 앞의 2절에서 언급한 세 이레, 곧 21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한 기간과 연관되어 있다. 페르시아 군주란 페르시아 제국의 수호천사를 가리킨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들은 각각의 수호천사들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천상의 존재들은 해당 도시국가들을 특별히 돌보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고가 본문의 근저에 깔려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호천사의 이름은 ‘둡비엘’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수호천사는 ‘미가엘’(10:21)이다. 미가엘은 쿰란에서 발견된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이라는 책에서도 명백히 이스라엘의 수호천사로 등장하고 있다. 미가엘은 신약성서에 두 번 등장한다. 유다서 1:9에서는 사탄과 싸우는 천사로 나오고, 요한계시록 12:7에서는 용의 천사들과 싸우는 군대를 지휘하는 천사로 활약한다.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러 가는 천사를 위해 페르시아 제국의 수호천사와 싸운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의 민족의 운명은 천상의 존재들 간의 전쟁 결과에 달려 있다는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달은 후 슬픔에 빠져 금식하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진정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메시지를 주시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사자를 보내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를 중간에서 가로막는 세력이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을 수호하는 천사(군주)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이 티그리스 강가에서 그 환상을 본 때는 고레스 왕이 즉위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고레스 왕은 즉위하자 곧바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예전의 바벨론 제국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관용 정책을 폈다. 유대인들의 본토 귀환을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역사적인 현실 가운데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흥 페르시아 제국과 고레스 왕을 훌륭한 우방이라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사로잡혀와 고생하는 저들에게 가나안땅 본토로의 귀환을 허락하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의 전 과정을 통해 페르시아 왕국과 그 군주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의 우방이 아니라 도리어 견제해야 할 위험한 적국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과 한 편이 될 수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는 다니엘에게 가려는 하나님의 천사를 무려 21일간이나 가로막았다. 그 기간 동안 천사는 페르시아의 진영에 머물고 있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21일 동안 다니엘은 깊은 슬픔에 빠져 금식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는 당시에도 실제적인 현상과 더불어 영적인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때 억류된 천사를 도와 문제를 해결한 천사는 미가엘이었다. 그가 페르시아 군주에 의해 막혀있는 천사를 도와 다니엘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다니엘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4. 다니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14~19)
하나님께서는 깊은 근심에 빠져 있던 다니엘에게 천사를 통해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다. 마지막 날, 곧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장래에 일어나게 될 일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사를 보내 거룩한 뜻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다니엘은 처음 그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기쁘고 반가워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땅을 향해 둔 채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본 후 ‘인자와 같은 이’가 다니엘의 굳은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다니엘은 입을 열어 앞에 서 있는 자를 향해 말했다. 그 환상을 봄으로써 힘을 얻고 즐거움이 더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근심이 가득하게 되어 힘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편안하게 호흡할 만한 정도의 힘도 남지 않아 대화를 나눌 기력마저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또 ‘사람의 모양 같은 이’가 다니엘을 어루만지며 강건하도록 힘을 더해주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다니엘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고 강건한 마음을 가지도록 격려했다. 그 말을 들은 후에야 다니엘에게 힘이 솟았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5. 세상 나라들의 군주들과 싸우는 천사(20~21)
하나님께서는 환상과 더불어 다니엘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고 약속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도리어 앞으로 발생할 ‘큰 전쟁’에 관한 예언을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를 저항하는 사악한 전쟁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물론 그것은 실제적인 현상과 더불어 일어나는 영적인 전쟁을 의미한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영적인 전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없는 전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전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싸움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하나님의 천사는 다니엘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는 돌아가서 페르시아의 군주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겠다는 말이다. 페르시아가 멸망하면 그 후에는 새로운 나라 헬라가 등장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언했다. 이는 헬라 제국의 세력이 등장하게 되면 또한 그에 맞서 싸우겠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에게 주어진 이 천사의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페르시아 와 헬라는 실체적인 지상 왕국들을 지칭하고 있다. 실체를 지닌 지상 왕국이 선민인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인데, 그들을 무찌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 줄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이미 그 점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들에 맞서 싸우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자를 미리 보내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궁극적인 위로가 되며 힘이 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출23:20~21)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출23:27~28)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 대항해 실제적으로 싸우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신 뒤를 따라가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 우리 시대 역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앞서 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성도들의 도리이다.
다니엘서에는 대적자들을 대항해 궁극적으로 싸울 자는 천사장 미가엘 밖에 없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한 세력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력을 동원해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단10:21)
다니엘서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위기와 패배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이며, 그들의 천사가 그들을 지키고 있는 한 결코 뿌리째 뽑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미가엘이라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천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포로민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또한 이 메시지는 여러 모양의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천사의 앞길을 막았던 페르시아 왕국의 군주는 누구인가? 그는 분명히 천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를 대적하는 것을 보면, 그는 악한 천사였다. 아마도 이 나쁜 천사들이 신약이 말하는 사탄이었을 것이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의 군주로 불리고 있다. 그의 활동 범위가 페르시아 제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악한 천사는 사탄에 의하여 페르시아를 관장하도록 임명을 받았거나, 사탄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세상을 다스리던 권세 중 가장 큰 것이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사탄은 당연히 이 제국에 많은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만약에 사탄이었다면, 그가 어떻게 천사를 21일 동안이나 막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일을 깨닫게 해주려고 왔다고 했다(14절). 문제는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카비 시대라고 주장한다. 다니엘 11장에 나오는 예언들이 마카비 시대에 대부분이 성취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취되지 않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카비 시대가 바로 다니엘서의 마지막 때라고 단정 짓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천사가 다니엘을 찾아온 것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 글은 어떤 것인가? 이 것은 7장 10절의 ‘책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들’이 과거에 인간들이 행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기록문서라면, ‘진리의 글’은 다가올 사건, 즉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 섭리와 구원 계획을 담고 있는 글이다.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진행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다니엘서는 처음부터 우리 눈에 비추어진 세상일들이 현실의 실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10장도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정세 뒤에는 영적인 갈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