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기 돌봄과 영적 성장
상담심리학자인 채준호 신부는 <어린 시절을 반복하는 인간>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은혜도 받지만 상처도 경험한다. 자라서도 각자의 어린 시절 체험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지금 자신의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뒤틀린 반응 패턴은 흔히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어른이 되었으니, 이런 뒤틀린 반응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필요가 있다. 즉,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거나 엇나가는 마음의 패턴을 이해하고 돌보면서 성장해 가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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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과도 공명한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15).
그렇다면 이런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성장할 것인가? 먼저 자신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과 욕구 등의 반응을 의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이런 반응에 올바로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다. 곧 진단이 올바를 때 합당한 처방이 가능하다.
어린아이가 칭얼거릴 때, 좋은 부모라면 결코 이 아이를 야단치거나 시끄럽다고 이불로 덮어버리거나 벽장 속에 가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아이의 반응을 더 가까이 지켜보면서, 잠투정인지,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아니면 아픈지 등을 먼저 알아본 다음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안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반응을 돌보고 성숙하는 길이다. 이와 같이 심리적인 자기 돌봄은 미숙한 자아를 올바로 대하는 태도와 유용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이는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기인한 것뿐 아니라 살면서 부대끼며 씨름하는 온갖 난제와 난관을 다루는 데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과 태도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참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한계를 경험하곤 한다.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숙한 반응이 비록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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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라도 지금 자신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또 어떤 때는 어린 시절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한계에 직면하여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성장할 것인가? 자신이 다루기 어려운 현실적 난제와 난관에 부딪쳤을 때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이를 다룰 것인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위에서 언급한 심리적 돌봄의 유용한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제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과 조력을 얻어야 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전문가에게서 도움을 구해야 한다. 이는 어린 시절 체험만이 아니라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현실에서 난관과 난제에 직면하여 성숙하게 자신을 돌보고 성장하는 일은 스스로 만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성숙한 태도와 효과적인 행동은 유능한 전문가를 찾아 의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나 자신의 미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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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혹은 돌봄과 성장이 필요한 자아에 대해서 누가 진정한 전문가인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은총을 베풀고자 먼저 초대하시는 주님 아니신가!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을 때, 이런 자신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받아주시어 성숙하게 하시는 우리 모두의 참부모요 최고의 전문가는 바로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런 자신의 상태와 처지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할 때일수록 자기 돌봄과 성장을 위해 우리가 더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분은 돌봄과 성장이 필요한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신 사랑과 은총의 주님이 아니신가!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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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스스로를 돌보고 성장하여 구원과 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허상과 유혹을 거슬러 더욱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돌봄과 성장이 필요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자신을 의식하며 개방하되, 자기 몰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앞서 묵상기도와 관상기도에서 설명하고 안내했던 것에 유념하면서 기도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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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서울: 성서와 함께, 2021. pp. 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