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 먼 곳에서 오셨던 오라버님. 서로 아쉬워하며 길을 떠나셨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지라
인천공항의 길. 새벽길이 깜깜했는데도 우리 자매는 마다하지 않고 운전을 하여 배웅하였다. 오라버니는
사십여 년 전에 이민길에 올라 온 가족이 고생 끝에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로 이젠 은퇴하시고 좀 쉬실 만
하니 억울하게도 늙음도 동반되는 그런 나이가 되셨다. 그동안 기저귀 차고 이민길에 올랐던 조카들도
모두 가정을 이루고 온 가족의 사진을 보니 이십 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루셨다. 살면서 보니 그 무엇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큰 울타리라는 것을 느낀다
그간의 고생과 노력은 가족들을 잘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이민자의 가정이지만 모두 제자리에 잘 메김 함은
오라버니와 올케언니의 수십 년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드디어 이민 가지 않고 여기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얘기해 보았다.
그 당시 한국은 사는 환경이 많이 열악하고 젊은이들의 꿈이 아메리칸드림이었다. 집집마다 이민열풍에
어떻게 해서라도 조국을 떠나 더 큰 나라로의 진입만이 살길이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 당시에는 유학도
많이 가서 돌아와 후학양성에 우리나라도 이처럼 발전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너무나 그리워하는 가족이기에,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손잡고 웃음이 그치지 않았는데 ,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다녀가셨는데 우리의 가족사랑은 해를 더할수록 깊어짐을 느낀다.
어머니는 세 아들을 두셨는데 큰아들 둘째 아들이 같은 해에 미국으로 보내시고 마음은 항상 그리움의 연속이었다.
가엾은 어머니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 싶고 그리우셨을까 지금의 시대와 그 시대는 너무나 달랐다.
보고 싶어 못 참아도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는 때라, 그리고 낮과 밤이 생소히 달라 속으로만 애태우셨을 어머니.
마음이 자상한 둘째 오라버님은 어머니를 위하여 그 어려운 시절에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였다
어머니는 미국에 보낼 선물을 가끔 준비하셨는데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들러 소포를 꼼꼼히 싸서 옆에서 나는 편지를 써서 동봉하곤 하였다. 지난 세월 어머니의 정성이 야말로 지금의 둘째 오라버니가 한국의 가족을 더욱 그리워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오라버니 가시기 전날 나와 동생에게 편지봉투를 하나씩 주셨다. 가시고 나서 보니
'사랑하는 동생에게'
하늘에 계신 어머니 역할을 하는 동생에게 항상 고마움과 가족의 정을 많이 느낀다.
건강하게 행복한 삶이 되기를 항상 바란다
라고 쓰여있고 백 불짜리 달러가 꽤나 많이 들어있었다. 마음이 찡하다.
이젠 자식들이 거기에 다 있으므로 언젠가 가실 자리도 마련하셨다고 한다.조지워싱턴 메모리얼 파크라고.
생소하지만 그런가 보다고 했는데, 누구나 어디서나 이방인인 것을~~
지금도 건강하시지만 사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마음속 빌어본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밤사이 소복소복 눈이 내리더니 마음속에 그리움. 더욱 커지는 듯 합니다.
문우님들 계절의 변화에 더욱 건강하시고 쌓인 눈에 마음담는 건강하신 하루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