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도를 걸으신 천사 같은 내 어머니
심영희
우리 집 벽 액자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내가 서서 찍은 사진이 있다. 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옛날을 회상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부모님을 매일 대면하지 못한다.
남매였던 어머니는 외삼촌이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졸지에 외동딸이 되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물론 아버지의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외손자 외손녀들을 무척 예뻐 하셨다. 성품이 착하신 외할머니의 외동딸인 우리 어머니께서는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정도를 걸으셨고 천사 같다라는 주위의 칭송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평생을 타인과 다툼 한번 안하시고 가족과 이웃을 잘 챙기셨다. 시골 동네라 많은 주민은 아니지만 이웃 어른들의 생신 날이나 제삿날을 참 열심히 챙기셨다. 지금처럼 고가의 선물은 아니지만 이웃의 대소사에 꼭 정을 표시하셨다. 그 선물을 배달하는 일은 주로 작은 언니와 내가 담당했다. 어머니께서 정성껏 싸주신 선물을 이웃집에 전해드리고 올 때는 내 마음도 항상 즐거웠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약자에게 더욱 많은 것을 베푸셨다. 오륙십 년대 먹고 살기 힘들 때 부농이었던 우리 집에는 늘 객식구가 많았다. 많은 일꾼들이 밭에서 일을 하면 이웃의 아주머니 서너 명이 와서 일꾼들이 먹을 점심, 제누리, 저녁밥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아주머니들께 먹을 음식을 한 보따리 싸 주셨다. 누구든 배고프면 안된다고 집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인심을 쓰셨다.
고운 마음으로 집 꽃밭이며 정원에 꽃나무를 키우시며 내 집에 든 사람은 그냥 보내면 안된다고 한 끼라도 밥을 먹여 보내셨다. 또 집안에 세면실이 없던 시절에는 어머니는 아버지 세숫물을 떠다 대령하였고 출장을 가시고 안 계셔도 아버지 진지를 떠서 식는다고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놓으셨다. 가장을 잘 섬겨야 집안이 화목 하다는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이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못할게 없었던 어머니! 틈틈이 옥수수와 채소를 팔아 자식들 통장에 저금을 하도록 하셔서 늘 아들딸이 저축 상을 받아왔다.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은 절약 외에도 “착하게 살아라”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며 자식들이 착하고 올바르게 살기를 강조하셨다.
그렇게 정도만 걸으시고 착하게 살던 어머니께서 간경화와 당뇨병으로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4년 동안 “춘천 한림성심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어머니 병간호는 내가 전담했다. 병원에 한 달 이상 입원해야 하기에 아버지와 함께 오셔서 늘 특실에 입원하시기 때문에 부모님과 나는 한방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다.
내과 전문의 최문기 선생님이 어머니 수명이 길어야 4년이라는 진단을 내렸기에 나는 더욱 병간호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의 진단처럼 어머니께서는 4년의 투병생활 끝에 이승을 떠나셨다.
백세가 훨씬 넘으신 어머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떻게 사람이 화내거나 다투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고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늘 동네 어른들이 너희 어머니는 천사 같다고 칭송하며 천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 인품 좋은 어머니가 오늘은 더욱 보고 싶다.
약 력(심영희)
ㅇ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1995)
ㅇ 수필집 「아직은 마흔아홉」 외 3권/시집 「어머니 고향」/
포토 에세이집「감자꽃 추억」/민화 에세이집「역사와 동행하는 민화이야기」 출간
ㅇ 동포문학상/한국수필문학상/소월문학상/황희문화예술상 시부문 금상/
춘천여성문학상/한국문협 수필분과 수필의 날 2022년 수필작품상 수상
현:한국문인협회 문단정화위원/한국수필가협회 이사/새한국문학회 강원지회 회장/강원문협 이사/춘천문협 회원/춘천여성문학회 고문/한국민화협회 홍보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