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새롭게 나를 지어가는=피워내는 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서로 도움으로 사랑을 꽃피워 내어야 합니다.
나는 새롭게 새롭게 나를 지어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도 지어 가야 합니다. 아름답게, 논도 밭도 아름답게 지어 가야 합니다. 씨앗도 하늘로, 따아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지어 가야 합니다. 한울님으로, 하늘이 내려 주신 바 그대로 지어 가야 합니다. 지어 가야 한다는 말글은 '지고 가야 한다'로 쓰여도 좋습니다.
나는 나를 새롭게 새롭게 지고 가야 합니다. 지어 가야 합니다. 한없는 지음=만듦-지고 감-영원한 진화=진보, 발전은 경쟁이나 투쟁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따뜻함=녹여내는 혁명=자기혁신=새롭게 지어감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나를 지어감은 따뜻한 빛의 원리에 입각해야 합니다. 따뜻함으로 딱딱한 것은 녹습니다. 녹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가 자라납니다. '자란다'는 성장은 '잘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란다는 따뜻함에서-사랑의 열기로 진보, 발전하고 새롭게 새롭게 창조해 간다는 뜻입니다.
진보, 발전, 창조는 따뜻함=사랑의 은혜입니다. 사랑은 그리움에서 비롯됩니다. 그리움은 사랑으로 자라서, 사랑은 모든 목숨을 한없이 자라나게, 크게 만들어 줍니다.
빛은 사랑이십니다. 빛은 텅 빈 따스함이나, 텅 빈 빛으로 딱딱한 가슴=세상을 녹여 냅니다. 따뜻한 혁명=녹이는 혁명으로, 빛은 목숨입니다. 사랑은 따스한 빛이며 그 사랑의 빛으로 모든 목숨을 살려 내는 살림의 바탕이 되나니, 사랑의 깊이는 빛의 깊이이며, 빛과 사랑은 목숨의 샘이며 흐름입니다.
넉넉한 나의 살림살이는 바로 집단이기주의적인 이념을 넘어, 개별(조각=파편적인) '나'를 비우고 우리 모두인 '나'로 넉넉해지자는 것입니다. 나-나에서 울-나(울나, 한울나)로 새로 태어나는 건짐(구원)받은 나의 비롯음이 바로 텅 빈(나) 넉넉함(울나)입니다.
바로 사랑의 따뜻함으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적, 원수의 모든 몸들을 하나 하나 녹여서 사랑의 몸(집, 마을, 가정), 우리, 우주로 새롭게 창조해 낸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혁명은 사랑의 혁명입니다.
"덧씌워진 나를 몽땅=텅 비움으로 가득 넘치는 넉넉한 나=우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텅 빈 넉넉함'이란 내가 없는 나입니다. 씨가 땅에 뿌려져 나를 썩히고 드디어 알로 넉넉하게 해 놓는 삶=살림살이야말로 텅 빈 넉넉함입니다. 하나 하나의 '나'를 녹여서=텅 비게 하여 우리가 바라는 '나라'를 지어 내려고 넉넉하게 함이 다름 아닌 따뜻한 혁명=텅 빈 넉넉함입니다.
따뜻한 혁명=녹이는 사랑의 혁명은,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면서 우리 모두가 넉넉하게 되는 경제=살림살이 원칙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가지지 않음으로 우리의 가짐은 더욱 많아집니다. 더욱 많이 갖게 됨이 바로 '넉넉함'입니다. 텅 빈 넉넉함은 나를 비움으로써 우리가 넉넉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넉넉해짐은 하나 하나의 '나'도 넉넉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살림살이가 바로 녹이는 혁명의 바탕입니다.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제3부 '따뜻한 혁명을 위하여' 중에서)
첫댓글 '내가 없는 나' 이것이 '참 나'
'사랑은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제물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사랑의 마음이 싹튼다.
강 시인님께서 거룩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소명을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