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4) 화공지계(火攻之計)
<이 장(章)에서 만나는 인물 소개>
* 조조(曺操) (155~220년)
자(字)는 맹덕(孟德)으로 패국(沛國) 초현 출신이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기민했으며 임기웅변이 매우 능했다.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그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걸출한 정치가요 군사가이면서 한편으로는 잔혹한 압제자였다.
그는 병법에도 뛰어나서 약세를 강세(强勢)로 전환하는 재주가 비상하여 치세(治勢)의 능신(能臣)이고, 난세(亂世)의 간웅(姦雄)이었다.
그는 죽기 4년 전에 스스로를 위왕(魏王)으로 봉하고 황제와 다름 없는 권력과 위세를 행사하다가 낙양에서 병으로 죽었고 후일 그의 아들 조비(曺丕)에 의해 무황제(武皇帝)로 추존되었다.
유비군이 영천에 도착하여 주전 장군을 만나 보니, 주전은 본래 사람됨이 몹시 거만한 데다가, 그 무렵에는 전세도 관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있었으므로, 지원 온 유비군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를 도와 주러 왔다구? 자네들의 주력(注力)은 어느 장군의 휘하인가?"
유비군은 유주 태수 유언을 비롯하여 청주 태수 공경으로부터 지원 받은 관군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기에 이를 본 주전이 이렇게 물었던 것이었다.
"제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은 제가 사사로이 양성해 온 군사와 노식 장군으로부터 지원 받은 군사로써 모두 천 오백 명이 올시다."
하고 유비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주전은 그 소리를 듣자 코웃음을 쳤다.
"자네가 양성한 군사라면 사군(私軍)이 아닌가? 그런 잡군(雜軍)을 가지고 어떻게 막강한 황건적 도당들과 맞붙어 싸울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차린 행색은 제법 관군 티가 나는구먼,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일부러 와 주었으니 한번 싸워 보기나 하게 ! "
주전은 사병들이 관복을 입은 것을 못 마땅 해 하면서도, 중랑장 노식 장군이 보냈다는 말을 듣고, 유비를 앞에 두고, 반신반의 하는 언사를 거침없이 쏟아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비는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을 무시한다고 펄펄 날뛰었지만, 유비와 관우가 좋게좋게 달래서 적들과 대치한 일부 구역을 할당받았다.
삼형제가 정작 싸움터에 나와 보니, 그들이 담당한 구역은 적의 최강 부대가 진을 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싸우기에 대단히 불리한 무성한 풀밭이 우거진 넓은 들판이었다.
정예 유비군 5백 명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유주와 청주를 거쳐오면서 모두가 기마병으로 변신한 바가 있다.
이런 유비군의 전략으로 보아서는 적진 앞에 펼쳐진 무성한 풀밭은 말의 다리가 빠져버려, 유비군의 최대의 장점인 기동력을 살릴 수 없는 불리한 지형이었다.
때는 여름인지라, 적들은 무성한 풀밭 속에 몸을 숙이고 숨어 있다가 불시에 맹렬한 기습을 가해 오곤 하였으니, 유비군이 작전을 전개하기에는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그러자 장비는 울화통이 터져서,
"그 죽일 놈이 우리를 도적의 밥을 만들려고 이런 곳으로 보낸 것이 틀림 없다 ! "
하고 말하는 등, 적들의 기습을 당할 때마다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비도 그냥 이대로 싸워 가지고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자 유비는 두 아우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전략을 강구하였다.
그날 밤이었다.
유비는 군사들에게 미리 마른 풀 한 묶음씩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린바 있었다.
밤이 깊기를 기다려 유비군은 소리를 죽여 풀밭 속으로 몸을 숨겨가며 적진으로 접근하였다.
적들은 이쪽을 깔보고 별반 경계도 없이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천여 명의 군사들은 적진에 바짝 접근해 가서, 어느 순간 제각기 마련해 온 마른 풀단에 불을 질러 들고, 하늘이 무너질 듯한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적들이 자고 있는 막사를 향해 내던졌다.
자다가 기습을 당한 적들은 불덩어리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유비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창검을 휘둘러 적의 목을 베고, 횃불을 던져 적의 옷에 불을 질러 타죽게 하거나, 적의 군마가 놀라 달아나게 만들었다.
이를 테면 한바탕 화공(火攻)으로 적을 송두리째 전멸시키는 중이었다.
마침 그때, 저만치 반대편에서 불을 보고 달려드는 한떼의 군사들이 있었다.
그들 군사들은 붉은 깃발을 드높이 내달고, 관군의 갑옷을 입고 벼락같이 나타났는데, 머리에 누런 수건을 덮어쓰거나 천을 매단 황건적 놈들을 여지없이 후려 갈기며 유비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중에 장수인 듯한 마상(馬上)의 걸출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는 키가 칠 척에 수염이 가느다란 것이 첫눈에 보아도 날렵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이보시오 ! 거기 잠깐 머무르시오 ! 귀공은 어디서 오는 군사요?"
관우는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상대방도 이쪽에서 말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급작스럽게 말을 멈춰 서면서 물었다.
"나는 낙양(洛陽)에서 남하해 온 오천 기(騎)의 관군이다 ! 그대는 누군가?"
하며 마주 외쳐 오는 것이었다.
"관군?"
유비는 그 소리를 듣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관우는 유비와 장비를 돌아 보며,
"주전 장군과는 다른 별동대(別動隊)인 모양이오."
유비는 그 소리를 듣자, 군사들은 뒤에 남겨둔 채 두 아우만을 대동하고 앞으로 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혼란의 와중에 실례가 많았소이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킨 의용군들로 제가 총 대장 유비입니다. 자(字)는 현덕이라 하지요."
"그렇습니까? 나는 조조(曺操)라는 사람으로 자는 맹덕(盟德)입니다. 조정의 명을 받고 관군 기병 5천 기의 사령관을 맡고 있죠."
유비가 수인사를 건네며 다가가자, 저쪽에서도 자기를 밝히며 다가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훌륭한 화공지계를 쓰셨소. 덕분에 우리는 달아나는 황건적들을 힘들이지 않고 벨수 있었소이다."
가까이 다가 온 조조는 유비군의 승리를 치하하며,
"나는 지금 낙양에서 관기도위(官騎都尉)를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 군사 오천 명을 거느리고 장보와 장량을 치러 왔소. 그런데 귀공이 먼저 적의 주력부대를 보기 좋게 화공 전술로 격파해 버렸으니, 나는 도망치는 무리만을 쳐부수게 되었던 것이오. 원컨데 이제 앞으로도 합심 협력하여 하루 속히 세상을 바로잡도록 합시다."
이렇게 두 사람의 호걸은 만나는 첫 순간부터 서로간에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러는 동안, 전투는 적의 잔당을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가서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조조는 유비에게 말한다.
"우리는 조정의 명에 의해 다시 이동을 하여야 하겠소. 이만 실례하오."
그러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 보며 명한다.
"전원, 대열을 갖추라 ! 출발 ! "
"유비님,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요. 그때까지 무운(武運)을 빌겠소 ! "
조조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관군놈들이 모두 쭉정이 같은 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런 옹골찬 사람도 있구려 ! "
지금까지 조조를 지켜 본 장비가 떠나가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도 철수하기로 하자."
유비는 본진으로 돌아 오면서, 조금전에 만났던 조조라는 인물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조조라는 그 사람, 젊은 나이에 병법과 행동거지가 심오한 경지에 이른 것 같구나...훗날 저 사람은 이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인물이 될 것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유비의 예감은 적중하였다.
이후 조조는 나라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여, 유비의 경쟁 상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군막(軍幕)에서 잠을 자고 있던 주전은 보초병의 보고를 받고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장군님 ! 지금 유비군과 대치하고 있는 적의 주력부대 쪽에서 큰 불길이 번지고 있습니다."
"뭐야? 적이 습격하는 것인가?"
"예, 지금 알아보려고 병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는 순간에 말을 탄 정찰병이 달려와 급히 말에서 내리면서,
"장군님 ! 유비군이 황건적의 진영을 급습하여 적의 진지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뭐라고? 유비가 이끄는 의병이 적의 주력부대에 야습(夜習)을 가했다는 말이냐?"
"예, 그리하여 수많은 황건적 놈들을 베고 물리쳤습니다."
"미련한 놈들, 병법은 개뿔도 모르면서... 그래 적들은 전멸시켰느냐?"
"기습이 대 성공을 거두고 유비군이 지금 개선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고작 천 오백 명으로 그 많은 황건적들을 물리쳤다는 말이지...? 것 참, 어쨌거나 통쾌한 일이다. 젊은 친구들이 제법인걸?"
그러나 그 순간 주전은 번뜩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음 ! 가만있자, 불과 천 오백 명의 병사를 가지고 황건적 놈들을 박살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뭘 했나...? 사태가 이렇다면 내가 무능했단 애기밖에 안 되지 않나 ...?)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주전은 유비군이 당당히 개선을 해오자 유비의 전공을 인정하기는 켜녕, 오히려 원망까지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적들은 완전히 섬멸 시킨 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사방으로 헤뜨려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었구만. 쫓겨난 황건적이 어디로 갈 것 같은가? 필시 광종 땅에 있는 황건적들과 합류할 게 뻔 하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광종에 황건적 수가 늘어나서, 가뜩이나 어려운 노식 장군이 더욱 고전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나?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놈들의 합류를 막으려는 속셈이었다구. 그걸 자네들이 억망으로 만들어
버린거야...!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내일 아침에는 당장 여기를 떠나 노식 장군을 구하러 가라 !"
하고 말하면서, 말끝에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농사나 지어먹던 것들이니 병법을 알 리가 없지...."
"무엇이 ! "
주전의 말을 듣자, 장비가 빨끈 성을 내면서 *장팔사모(丈八蛇矛)에 손을 댔다.
그야말로 주전의 말에 울분이 끓어 올라서 이것을 내휘두르려고 작정했던 것이었다.
그 순간, 평소의 장비의 급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관우가 장비의 앞을 막아서며,
"이보게 아우 !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관군과 싸워서는 안 되네 ! 우리는 관직은 비록 없지만, 의로움으로 뭉친 사람들이야 ! 용맹은 하늘을 찔러도 깃발이 있는 관군은 아니잖나? 관군과 대적해서는 안 되네 ! 만약 자네가 관군과 대적하려 한다면 우리가 황건적과 다를 게 뭔가 ! 이보게 참게, 참아 ! "
"그렇다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승전한 사람들에게 치하는 하지 못 할 망정, 오히려 내일 이곳을 당장떠나란 말입니까? 좋소, 유비 형님 ! 우리야 그렇다 치고, 목숨을 걸고 싸운 부하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실 겁니까?"
장비는 이번에는 유비를 돌아다 보며 열화와 같은 성화를 부렸다.
유비가 조용한 어조로 장비에게 말한다.
"아우가 여기서 화를 내고 관군과 싸우기라도 하면 우리가 의용군을 조직한 뜻이 어긋나고 말걸쎄 !"
그러자 관우가,
"형님의 말씀이 맞네 ! 우리는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던가?"
"알아요 ! 하지만 너무도 화가 난다구요 ! "
"우아아아~ !"
장비는 관우와 유방의 설득에도 끓어 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울부짖었다.
장비의 이런 모습을 본 주전은 더이상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서둘러 자기 군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장팔사모(丈八蛇矛)란?
칼의 끝이 뱀의 모양으로 굽어져 있어서, 적을 베면 상처를 크게 만들 수 있는 무기로써, 전체 길이와 최초 사용시기에 대한 논란은 많으나, 나관중이 지은 <삼국연의>에 장비가 주로 사용하였다는 무기로써, 그 길이는 4미터를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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