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원효대사(617~686)는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사상과 철학은 불교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원효는 세속적 권력과 명예를 버리고 진리를 찾아 떠난 수행자였으며, 삶과 죽음, 고통과 행복에 대해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의 행복론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모든 갈등과 차별을 넘어선 하나 됨 속에서의 참된 행복을 강조합니다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해골물 일화를 통해 득도한 신라의 승려. 속성은 설, 아명은 서당, 신당, 이름은 사례이며 원효는 출가한 뒤의 이름으로 의상과 함께 고구려의 고승으로서 보덕에게 <열반경>, <유마경> 등을 배웠다. 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당항성으로 가는 중 어느 토굴에서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에 있던 물을 달게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 보니 토굴이 아닌 무덤에서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고 깨달은 뒤 유학을 포기했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법가사상 등에도 해박했으며,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다. 현재는 원효대교와 원효로 등으로 이름을 기리고 있다.
수도사
위치:평택시 포승면 원정7리
수도사는 신라 문성왕 14년(852) 염거화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졌다.그러다가 나말여초 국가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남양만에 수적이 들끓어 비워두었다가 15세기 경 폐사되었다.
이 절은 신라의 고승 원효(617~686)의 5대 성지 가운데 하나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다시 말해서 젊은 시절 의상과 함께 도당유학을 가다 당항성 부근 무덤 안에서 잠을 자던 원효가 밤중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큰 깨달음을 얻은 장소라는 것이다. 현재 절 경내에는 유물은 없고 옛 절에서 부도로 쓰인 것 같은 석재 몇 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