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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신검(飛流神劍) 제2권 - 차례 - 1. 선우철과의 만남 2. 얽혀진 은원 관계 3. 포위된 고묘 4. 원수냐!은인이냐? 5. 무덤 속의 여인 6. 살독수 독살풍장 7. 밝힐 수 없는 과거 8. 잔금섭혼신편의 비밀 9. 익공관주 10. 빙선일월장 11. 무림칠절 12. 고화룡의 처절한 웃음 13. 선봉의 기학 14. 처참한 신세 1. 선우철과의 만남 순간 가벼운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나가떨어진 그 사나이는 옷을 툭툭 털며 벌떡 일어났다. 선우철은 비류신의 냉담한 표정과 거만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홍부용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합니다만 나도 저분의 성함을 모릅니다.” 선우절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곧 싸늘한 눈빛으로 바깥에 서 있는 네 명의 사나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을 급습한 사람이 누구냐?” 그들 네 명의 대한은 갑자기 정신이 든듯 놀란 표정으로 땅에 꿇어앉았다. “소인들은 무공이 약하여 소장주의 명을 어겼으니 그 죄의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 선우철은 고개를 저으며 호통을 쳤다. “내가 묻는 것은 다만 누가 너희들을 습격했느냐다!” 제일 오른쪽에 꿇어앉은 사나이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괴이하게 생각한 소인은 즉시 두 사람에게 탐색하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곧 두 마디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깜짝 놀란 우리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혈도를 찔렸습니다. 너무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선우철이 차갑게 비웃었다. “그들의 수법으로 보아 너희들은 물론 그들의 등판조차도 바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막대한 과오를 범했으니 어떤 처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땅에 꿇어앉아 있던 네 명의 사나이들은 그의 말에 전신을 부르르 떨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즉시 죽음으로써 속죄하는 것입니다.” 비류신은 선우철의 희로(喜怒)에 따르는 위풍(威風)을 보자 내심 몹시 놀랐다. 선우철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너희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은 인력이 가장 필요할 때이므로 특별히 용서해 주겠다. 어서들 일어나 거라!” 네 명의 사나이들은 그 소리를 듣자 희색이 만면하여 일제히 대답했다. “소장주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 …”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연 네 줄기의 백색 광채가 뿜어 나왔다. 그리고 바로 네 마디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핏줄기가 사방으로 뿜어지며 네 개의 머리는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네 줄기의 백색 광채는 다시 질서가 있게 선우철의 옷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고화룡, 비류신, 홍부용 등 세 사람은 선우철이 웃는 얼굴로 담담하게 살인하는 잔인한 수법을 직접 목격하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더구나 그들은 선우철이 암기를 쓰는 수법이 지극히 정묘하고 실로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음을 알 수 있었다.아무리 무공이 고명만 고수라고 한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당하는 일을 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선우철은 시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곁에 서 있는 사내들에게 명령했다. “시체를 치워 버려라!” 홍부용이 나서며 얼음장같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철! 당신이 만약 우리를 놔주지 않겠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겨룹시다.” 선우철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극히 잔인하고 험악했던 그의 안색이 어느새 온화하고 친근감이 넘쳐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홍 낭자, 내가 어찌 낭자에게 그럴 수 있겠소? 그러니 홍 낭자는 곧 떠나도록 하시오.” 이에 비류신은 갑자기 고화룡을 향해 말했다. “고 선배님, 우리도 이만 갑시다.” 그는 곧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나 선우철이 갑자기 손을 쳐들더니 탁탁 세 번 손뼉을 쳐댔다. 순간 사람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나타났다. 각자 주위에 몸을 감추고 경비하고 있던 경장의 사나이들이 신속히 달려 나온 것이다. 그들이 장검을 일제히 뽑아들자 어둠은 은광으로 환해졌다. 그 무리들은 방형(方形)의 진을 펴가며 사방으로 막아섰다. 비류신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싸늘한 광채가 번뜩였고 입가엔 냉소가 흘렀다. “선우철, 당신이 이들 수하에게 나를 포위하여 공격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오.” 선우철은 잔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렇다면 귀하가 한 번 시험해 보시오.” 이때 흑도사괴가 갑자기 걸음을 옮겨 비류신에게 서서히 접근해 갔다. 그들이 비류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자 홍부용은 내심 흠칫했다. 그녀는 곧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사괴! 당신들은 수치스런 행동을 삼가시오. 패싸움을 하겠단 말이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살독수 강파문이 돌연 허리를 굽히더니 재빨리 왼손을 뻗쳐 비류신을 움켜쥐었다. 그의 공격은 정확하여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비류신은 그의 왼손이 옷자락에 막 닿으려는 순간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리고 몸을 날려 강파문의 장세를 피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은 신룡출운(神龍出雲)의 초식을 맹렬히 뻗쳐 갔다. 그는 소대호에게 수년에 걸친 정원(精元)을 전수받은 후 내력이 막강하게 증강되었다. 그러나 일장을 때리는 데 있어 과연 어느 정도의 경력을 쏟아낼 수 있을 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일장에는 모두 육성 이상의 진력이 실려 있었다. 그의 장풍은 비할 데 없이 날카로웠으며 마치 거대한 파도가 하늘을 덮으려는 듯한 위세로 뻗쳐갔다. 강파문 등 흑도사괴는 무림의 명성이 쟁쟁한 고수들이었으며 강파문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사나웠다. 그는 비류신을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자신의 공격이 비할 데 없이 신속한 것이라 자부하고 있는 만큼 듣도 보도 못한 인물에게 관심이 갈 리 없었다. 강파문은 일반 무림 인물들 중에서 자기의 장세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상대는 무명의 소졸이므로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기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우뚝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자 내심 크게 놀랐다. ‘설마… 저 자가 절기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이때 그는 다시 이 성의 공력을 증가시켜 더욱 빠르게 일격을 뻗쳤다. 그러나 상대를 움켜잡지 못했다. 더구나 비류신의 몸을 솟구치는 기이한 신법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는 즉시 진기를 끌어올려 암암리에 공력을 주입시켜 단번에 상대방을 격파시키려고 했었다. 바로 그 순간 비류신의 강맹한 장풍이 밀어 닥쳤다. 살독수 강파문은 과연 강호의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그는 무림에서 수십 년 간이나 명성을 떨친 관록이 있어 보통 인물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비류신의 장세가 기이하면서도 강맹한 것을 보자 생각을 달리 했다.그리고 감히 경시하던 태도를 바꾸고 즉시 오른손에 경력을 모아 상대방의 공세를 맞받았다. 쌍방의 두 갈래 강경한 장력이 마주치자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사방에서 먼지가 말려 올라갔다. 강파문은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충분한 공력을 운집하지 못했지만, 전신의 경력은 이미 칠성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쌍방의 장력이 맞닥뜨리는 순간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살독수 강파문은 의외의 일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주위에서 관전하던 여러 고수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봉화염은 가장 간사하고 계략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지금 사괴가 연합하여 선우철을 상대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므로 겉으로는 매우 선우철의 편을 드는 척 꾸몄다. 봉화염은 살독수가 상대방의 일장에 당하자 즉시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비류신의 뒤에서 공세를 뻗쳐 갔다. 홍부용은 놀라서 소리쳤다. “비 공자! 뒤를 조심해요!” 비류신은 이미 무양무음진경의 무예를 익혔으니 어찌 평범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상대의 옷자락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듣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왼손을 쳐들어 뒤로 뻗쳤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내뿜은 그의 장력은 정확하게 상대를 공격했다. 한 줄기 허공을 찌르는 경기가 흑도괴마 봉화염의 공세를 향해 맞닥뜨려갔다. 봉화염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인지라 몸을 솟구칠 때 이미 암중의 경계를 하였다. 이윽고 비류신의 일장이 뻗쳐 오자 그는 즉시 두 팔을 활짝 벌리더니 갑자기 오 척 높이까지 치솟았다. 한 줄기 강한 강풍이 발을 스치며 지나쳤다. 흑도괴마 봉화염은 재빨리 지면에 내려서며 쌍장을 맹렬히 앞으로 뻗쳤다. 그 일격은 그의 필생의 공력을 끌어올려서 뿜어낸 것이라 그 위세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납기 짝이 없는 한줄기 장력이 비류신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번개같이 뻗쳐 갔다. 그와 동시에 살독수 강파문도 비류신의 등을 향해 일장을 격출 했다. 그들 두 사람은 단번에 비류신를 격살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고화룡과 홍부용은 더욱 손쉽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화룡과 홍부용은 비류신이 협공을 당하는 것을 보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두 분은 모두가 무림에서 유명한 인물인데 후배 한 사람을 둘이서 상대하다니, 만약 그런 소문이 강호에 퍼지게 된다면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그들은 신속히 앞으로 덮쳐갔다. 적면귀 사심독과 독살풍장 맹호철이 크게 호통을 쳤다. “두 사람은 모두 물러가시오!” 순간 강맹무쌍한 두 줄기 장풍이 홍부용과 고화룡을 향해 밀어닥쳤다. 비류신은 이괴가 전력을 다해 자기에게 협공해 오는 것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류신은 호탕하게 웃어 제치면서 돌연 왼발을 앞으로 크게 내딛더니 몸을 홱 돌리고 쌍장을 좌우로 날렸다. 그는 쌍장을 좌우로 뻗는 순간 맹렬한 기세로 손바닥을 돌렸다. 그리고 양쪽으로 뻗었던 쌍장을 재빨리 다시 거두며 소리쳤다. “뒤로 물러가라!” 고함소리와 함께 거두어들였던 쌍장을 다시 번개같이 뻗쳤다. 순간 흑도괴마와 살독수는 휘청거리며 황망히 몇 발자국 물러섰다. 고화룡과 홍부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 고수들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봉화염과 강파문이 협공을 가할 때 비류신이 뻗쳤던 쌍장을 도로 거둬들이자 막강한 흡인력이 두 사람의 상반신을 밑으로 기울어지게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줄기의 강맹한 잠력이 맞닥뜨려오자 가슴의 혈기가 끓어져 마침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괴이한 무공인가, 모두 놀라 멍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비류신은 상대방 이괴를 격파시키고 자기도 갑자기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그는 소대호에게 전수받은 정교한 비기(秘技)를 펼쳤을 때 그 무예에 완전히 숙달치 못했으므로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그러므로 비류신은 두 명의 강맹한 장력이 그의 몸을 짓누르고 뻗쳐 왔을 때, 그것을 비록 심후한 내력으로 격퇴시켰으나 그의 오장육부는 가벼운 타격을 입어 약간의 선혈을 토해냈던 것이다. 그렇지 많았더라면 두 적은 절대 그 정도로 끝나지 않고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봉화염은 비류신이 피를 내뱉는 것을 보자 그가 중상을 입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비류신에게 덮치면서 외쳤다. “강형! 어서 그 놈을 죽여 버립시다. 그는 사문(邪門)의 무예를 익힌 것 같소.” 그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펼쳐 비류신을 움켜잡으려고 맹렬히 덮쳐갔다. 그러나 비류신은 태연자약했다. 그리고 몸을 잽싸게 돌리고 왼손을 비스듬히 뻗쳤다. 다시 왼손 다섯 손가락을 반쯤 구부려 마치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후 봉와염의 팔을 향해 짚어 갔다. 그 일 초는 겉으로 보기에 몹시 가벼운 것 같았다.그러나 손을 뻗쳐간 위치는 비할 데 없이 정확했다. 몸을 한 바퀴 홱 돌리는 사이에 상대방의 공세를 피했으며 그와 동시에 반격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봉화염은 상대방이 뻗친 일장을 막거나 피하는 것이 모두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오른팔을 번쩍 쳐들어 비류신의 등 뒤 명문혈(命門穴)을 향해 비스듬히 일장을 날렸다. 고수들이 서로 겨루며 손발을 쓸 때 그 거동마다 모두 충분히 상대방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비류신은 일격이 빗나가자 곧 몸을 활짝 펴고 마치 시위를 벗어난 화살같이 오 척 앞으로 날아갔다. 살독수 강파문은 킬킬거리며 괴이하게 웃었다. 그는 비류신의 뒤에 바짝 달라붙어 커다란 팔을 번쩍 쳐들고 날카로운 경풍을 일으키며 번개같이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봉화염도 번개 같은 속도로 장력을 휘둘렀다. 이때 갑자기 비류신의 눈에 사람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광채가 번뜩였다. 그는 크게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비호같이 몸을 날려 살독수의 일격을 피했다. 그리고 번개처럼 두 사람 곁으로 덮쳐 갔다. 상대가 쌍장을 연달아 격출 하자 장영(掌影)이 하늘을 덮는 가운데 순식간에 십이장을 뻗쳤다. 그 공격에는 일장마다 경풍이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으며 속도 역시 번개처럼 신속하여 그의 괴이한 초식은 비할 데 없이 절묘하였다. 두 명의 적은 무공이 매우 고강했으나 비류신의 맹렬한 공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연신 뒤로 물러나며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비류신의 훌륭한 공세는 주위에서 관전하는 고수들의 놀라움과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선우철 역시 경악하여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강호 무림에 언제 저런 젊은 고수가 출현했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문득 한 가닥 영감이 뇌리를 스치자 그는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홍부용은 비류신의 공세를 보자 내심 매우 기뻤다. 그녀는 비류신과 이틀 동안을 함께 지낸 적이 있으며 또한 그와 함께 수차에 걸쳐 적과 겨루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비류신의 무공이 전보다 고강해졌고, 초식이 더 기묘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하여 비류신의 공력이 하루하루 엄청난 차이를 내며 증가하는지, 이것은 무림의 상규(常規)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비류신과 처음 함정 안에서 겨루었을 때도 비류신의 내력은 싸울수록 더욱 강해졌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의 공력은 자신보다 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공력은 이미 홍부용을 능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공력이 증강된데 대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고화룡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비류신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졌다 한들 역시 자기와 홍부용을 제압시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비류신의 장세에 막강한 경력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가 놀라운 것은 비류신이 전개하는 초식은 어느 것이나 모두 알아보기 힘든 정묘한 절초라는 데 있었다. 비류신을 공격하던 두 적들은 연속 후퇴하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노련한 고수가 한낱 이름 없는 소졸에게 쩔쩔매다 보니 실로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 그들의 살기는 더욱 치밀어 올랐다. 살독수 강파문은 비류신의 공세가 약간 늦추어졌을 때 기회를 틈타 재빨리 뛰었다. 이에 비류신은 즉시 오른발 뒤꿈치로 땅을 딛고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렇게 방향을 돌린 다음 곧 왼손을 앞가슴에 세우고, 오른손으로 살독수가 뻗치는 팔을 맹렬한 기세로 내리쳤다. 살독수는 자신의 일격이 빗나가자 즉시 위험을 무릅쓰고 잽싸게 몸을 솟구쳤다. 그러나 비류신의 손을 미처 피하지 못하여 어깨에 일장을 맞고 밖으로 격퇴 당했다. 그는 공력이 심후한 탓에 비류신의 일장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계속 뒤로 물러났다. 비류신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적당하게 위력을 과시했다고 해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살독수가 부상을 입은 것을 보자 즉시 몸을 솟구쳐 덮치려 했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봉화염이 요란한 고함을 지르며 덮쳐오고 있었다. 비류신은 흑도괴마 봉화염을 가장 미워했었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상대방이 선수를 뻗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비류신은 재빨리 쌍장을 합쳐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봉화염의 가슴을 향해 힘껏 뻗쳐갔다. 봉화염은 일개 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흑도의 맹주였다. 그는 평생을 두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수들과 겨루어 왔었다. 그러나 비류신의 이런 장세는 전혀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상대방의 무공이 몹시 고강하다는 것을 알고 감히 그를 경시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즉시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올려 덮치려던 몸을 멈추는 동시에 왼손을 옆으로 후려쳤다. 비류신은 오른발을 잽싸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앞으로 뻗쳤던 쌍장을 갑자기 벌리며 왼손을 갈고리같이 낚아채는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 봉화염이 옆으로 후려쳐오는 장세를 향해 손가락을 뻗쳐 낚아채면서 오른손을 번개같이 봉화염의 가슴께로 뻗쳤다. 그 일초의 변화는 몹시 절묘했다. 주위에서 바라보던 고수들은 실로 생각지도 못했으며 처음 보는 묘수에 마른 침을 삼켰다. 또한 그 공세의 변화는 그지없이 괴이하여 흑도의 일류고수들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봉화염은 과연 험악한 위기를 수없이 겪었던 거물이었다. 비록 상대방의 공세에 놀랐으나 그래도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려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비류신은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어떻게든지 상대를 상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기에 그가 물러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번개같이 앞으로 덮쳐가며 마치 그림자처럼 봉화염의 뒤를 바싹 추격해 갔다. 흑도괴마 봉화염은 몸을 채 가누기도 전에 갑자기 가슴에 충격을 느꼈다. 그는 마치 한 줄기 산과 같이 무거운 장경(掌經)에 눌려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이때 한마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귀하는 인정을 베푸시오!” 그 말과 함께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치솟았다. 그러자 비류신은 갑자기 한 줄기 싸늘한 경기가 급속히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비류신은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오른손을 신속히 움직여 자기에게 뻗쳐오는 경기를 향해 맹렬하게 반격했다. 그는 몸에 가벼운 진동을 느꼈다. 쌍방의 강력한 경기는 정면으로 충돌했으며 즉시 사라졌다. 이때 비류신은 경기를 뻗쳐낸 상대방도 어깨가 휘청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비류신이 급히 그곳으로 눈길을 돌리자 선우철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약간 고개를 숙이고 공수를 하며 말했다. “비형의 정묘한 무공에 나는 몹시 감탄하는 바이오. 오늘밤 나는 실로 견식을 넓혔소이다. 아까 내가 눈을 뜨고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한 무례한 점을 용서해 주기 바라오.” 비류신은 그의 말을 듣자 미간을 찌푸렸다. 한편으로 그는 내심 놀라움과 기이함을 금치 못했다. 상대방이 가볍게 떨친 일장이 즉시 자기의 장력을 해소시킨 것으로 보아 그의 무공도 몹시 심후하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철 역시 비류신의 막강한 잠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쌍방의 장력이 마주칠 때 그의 가슴에 혈기가 치밀어 올랐었다. 선우철은 비류신이 묵묵히 서 있을 뿐 대꾸가 없자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비형은 무공이 그처럼 심후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니 그 수양의 깊이에 더욱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오.” 비류신은 처음부터 선우철에 대하여 몹시 좋은 인상을 품고 있었다. 다만 선우철이 웃는 얼굴로 부하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보자 매우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웃으며 친밀하게 자기를 대하는 것을 보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옹졸한 인물의 행동이라고 생각됐다. 비류신은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우 소 장주는 무림에 명성을 떨쳐 천하에 이름이 널리 펴져 있거늘 나 같은 보잘것없는 소졸이 어찌 감히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겠소.” 홍부용이 비류신에게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방긋 웃어 보였다. “비 공자는 오늘부터 무림에 명성을 떨칠 수 있게 되셨어요.” 강파문과 봉화염은 그 말을 듣자 차갑게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다시 공격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옆에서 은공조식하며 상세를 치료하고 있었다. 비류신은 선우철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기는 했으나 그를 경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우철은 유쾌한 듯 웃었다. “명성을 떨치는 일은 비형 같은 고수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오." 비류신은 상대가 자기를 치켜세우자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선우 소장주의 과찬은 실로 감당키 어렵구려.” 선우철은 정색하고 말했다. “저의 말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며 비형의 무예는 실로 화경에 이르렀소.” 청풍명사 청룡백호가 다가오며 껄껄 웃었다. 그는 비류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비 노제, 모두들 싸워 보지 않고는 사귈 수 없는 것이라네. 자! 아까는 오해를 했으니 어서 저쪽으로 가서 술잔을 나누며 오해를 씻어 버리도록 하세.” 비류신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함부로 남을 노제라고 부르다니, 참 염치없는 놈이구나.’ 그는 냉랭히 대꾸했다. “여러분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그러나 불초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소이다.” 청풍명사는 비류신에게 한마디로 거절을 당했으나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비 노제가 이곳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면 우리도 강요하지 않겠네. 다만 젊은 나이에 그런 절묘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노제의 사부님은 필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기인이 분명할 것일세. 그분이 도대체 누구인지 우리들에게 그 존함을 알려 줄 수 없겠나?” 그의 이 물음은 다른 여러 고수들도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당세에서 도장맹주인 창천신자 선우휘와 소대호, 그리고 황천선구 등 세 인물이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고 그 외에는 바로 무림칠절 뿐이었다. 그런 탓에 비류신의 그런 기막힌 무공으로 보아 그의 사부가 어떤 인물인지 실로 추측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비류신은 여전히 냉랭하게 대꾸했다. “가사께서는 이미 별세하셨으며,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청풍명사는 예리한 눈초리로 비류신을 훑어보았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씁쓰레 웃어 보였다. “비 노제가 말하기 싫다면 나 역시 더 이상 묻지 않겠네… …” 비류신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면 그만이지 무슨 권리가 있어 더 이상 물어볼 수 있단 말인가? 실로 뻔뻔한 놈들이구나… …’ 비류신은 강호에서 온갖 냉담과 멸시 그리고 슬픔을 겪어왔다. 그러므로 그는 간사한 무림의 인물들을 몹시 증오했다. 그가 알기로 늠름하고 멋있는 풍채에다 얼굴에 인자한 기색이 가득어린 인물일수록 더욱 악독하고 교활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청풍명사는 나타날 때부터 멋있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비류신의 눈으로 볼 때 경계를 요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청풍명사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러나 자네의 무공으로 보아 당세에서 자네를 그렇게 키워 줄 수 있는 인물은 세 사람 뿐이네. 자네가 만약 황천선구의 제자가 아니라면 필시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의 제자일 것일세. 황천선구의 그런 성격으로 보아 절대 남자 제자는 기르지 않을 것이네. 그렇다면… …” 비류신은 몹시 놀랐다. 그러나 태연하게 냉소를 치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소대호의 제자가 되겠군! 그렇지 않소?” 그 말을 들은 선우철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한 가닥 살기가 스쳐갔다. 그는 낭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존경해마지 않소! 이제 보니 비형은 무림 삼대고수 소대호의 고명한 제자였구려… …” 홍부용은 비류신의 경력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선뜻 나서며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들은 저분을 소대호의 제자라고 생각하세요? 흥! 황천선구 등 세 인물보다 무공이 고강한 사람은 없단 말인가요?” 청풍명사가 웃으며 받았다. “홍 낭자의 말씀이 옳소. 무학이란 무궁무진한 것이오. 그러나 당세 무림에서 무공 조예가 그들 삼대 인물보다 고강한 사람은 선대의 마두들 말고 아마 찾아내기 힘들 것이오. 그러나 그 선대의 마두들은 이미 당대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소.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그들 을 격동시켜야만 비로소 그들은 다시 무림에 나타날 것이오. 비 노제의 늠름한 풍모로 보아 성격이 그지없이 괴벽하고 인정을 모르는 그들 노 마두들이 길러낼 수 있는 제자가 아니라 생각하오.” 비류신은 그 말을 듣자 풍부한 견식과 세밀한 관찰에 실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흥!” 홍부용이 코웃음을 치고 나서 되물었다. “창천신자 선우휘 등은 이미 십팔 년간이나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거늘 그 세 사람 외에 다른 고수들은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하지 않았을 것 같소? 그들이 세 인물보다 강해질 수 없다는 법이 어디 있소?” 선우철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무림에서 누가 그들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단 말이오?” 홍부용은 어디까지나 싸늘하게 말했다. “나의 은사인 백화선녀는 어떤가요?” 청풍명사가 즉시 받아 말했다. “빙화동의 백화선녀는 칠절 중의 한 사람이오. 그분의 무공 조예는 실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는 막강한 것이오. 만약 그분이 십팔 년 간 심혈을 기울여 비학을 수련했다면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분이 열심히 무예를 연마하는 사이 다른 사람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무공을 닦았을 것이니 심한 실력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오.” 청풍명사는 여기까지 말하자 나직이 한숨을 내뿜고 나서, “홍 낭자의 말뜻은 저 비 노제도 그분의 제자란 말이오?” 홍부용은 그를 싸늘한 눈초리로 쏘아보며 비웃었다. “강호에서는 나의 은사께서 남자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소. 흥!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는 군요? 솔직히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는데 저분은 나의 은사의 사숙께서 심혈을 기우려 길러내신 제자에요.” 비류신은 엉뚱한 사부를 칭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만은 그도 하는 수 없이 그녀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선우철은 홍부용에게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홍 낭자는 비형에게 사숙이라 불러야 하겠구려. 그렇다면 낭자의 사숙조(師叔祖)는 어느 분이시오?” 홍부용은 그가 자기를 비웃는 것을 눈치 채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안색이 변하면서 앙칼지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혹시 나에게 어떤 유감이 있나요? 흥! 솔직히 말해 나의 사숙조의 성격은 매우 괴팍하오. 저 분은 사숙조에게 무공을 전수받은 후 그 어른의 곁을 떠나왔으며 전혀 무림에 발을 디딘 적이 없어요. 그러나 사숙조께서는 유일한 남자 제자를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약 저분이 강호에서 무슨 사고라도 내어 사숙조의 성격을 격발시킨다면 필시 전체 무림을 한바탕 뒤집어엎을 것이오. 흥! 아마 당신의 부친 선우휘도 아마 나의 사숙조께는 이십 초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에요.” 그녀는 극히 총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상대방이 악독한 계략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비류신이 소대호의 제자라는 것을 눈치 채게 한다면 비류신이 몸에 지니고 있는 몇 가지 보물들을 필시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추호도 빈틈없이 거짓말을 꾸며댔다. 상대방 고수들은 심기가 매우 뛰어난 인물들이었으므로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 했다.사실 백화선녀에게 어찌 세상에 살아있는 사숙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몇 명의 거물들 속에서 한 사람만은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원래 소대호가 유실(幽室)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고인이 된 구대문파의 장문인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소대호가 이미 별세했다는 사실은 물론 더욱 모르고들 있었다. 그러나 비할 데 없이 간사한 청풍명사는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우철이 다시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을… 가부께서는 오히려 낭자의 사숙조와 겨뤄보기를 원할 것이오.” 비류신은 뼈를 에이는 듯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까 당세 무림에서 소대호, 선우휘, 황천선구 만이 무공의 조예가 가장 높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 세 사람 중에서 누가 제일 고강하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