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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四 章 請負殺人 두두두두두! 황야의 저쪽 끝에서 무섭게 치달려오는 수백 기의 인마들이 있었다. 각종 깃발을 나부끼며 질풍처럼 치달려오는 인마들은 모두가 기치창검을 한 관군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전투에 임하듯 번쩍이는 갑옷을 입었고 중무장한 상태였다. ― 대명(大明) 부국강병(富國强兵) 영세제일(永世第一). 선두의 기마대는 이런 글귀가 새겨진 깃발들을 바람에 휘날리며 맹렬히 치달려오고 있었다. 쿠두두두두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들이 치달려 가는 멀리 앞쪽에 천금마옥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렇다. 지금 이들이 달려가는 곳은 바로 천금마옥이었다. 질풍노도와 같이 내달린 인마는 어느덧 천금마옥의 성문 앞에 다다랐다. 성문 처마 밑에는 천금마옥이라 새겨진 편액이 삐딱하게 걸려 있고 성문도 이미 활짝 열려진 상태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감옥 내에 커다란 변고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관군들은 성문 안으로 일제히 밀려들어갔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진동에 삐딱하게 걸려 있는 편액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맨 뒤쪽의 군마들이 들어섬과 동시에 흔들리던 편액은 마침내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퍼억! 편액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두 쪽으로 깨지고 말았다. 성안으로 들어선 관군들은 참혹하게 펼쳐진 참상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크고 작은 전각들은 무너지고 불에 타버린 채 잔해만 남아 있었고 넓은 광장 안 여기저기엔 수도 없이 널려진 관병들과 죄수들의 시신으로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맙소사!" "이게 도대체……!"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 누가 감히 대명의 극형지를 이런 꼴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런 배포를 가진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때 문득 관군의 수장인 오자명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으으으!" 그 신음소리는 관병들의 시신들이 널려 있는 광장의 뒤쪽, 부서진 대전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파앗! 오자명은 말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생존자가 있다! 모두 나를 따르라!" 그의 신형이 호선을 그리며 신음소리가 난 대전으로 날아갔다. 파파파파팟! 연이어 그의 뒤를 따라 관군들이 벌떼처럼 날아갔다. 콰쾅! 대전의 문을 박살내며 오자명과 수하들은 줄지어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처처처척! 그들은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이때 무엇을 발견했는지 오자명과 수하들은 일제히 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엄청나게 크고 호화스럽게 꾸며진 침상이 있었다. 침상의 한편에는 벌거벗은 채 제멋대로 죽어 있는 세 명의 알몸여인과 아예 고깃덩이로 다져진 채 참혹한 몰골로 침상에 기대앉아 있는 알몸의 성주가 보였다. 성주의 목에서는 끄르륵거리며 연신 가래 끓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끄르륵……! 끄륵! 그의 눈알은 파헤쳐진 채 시커먼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짓뭉개진 코와 입에선 연신 피거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욱……. 욱!" 오자명의 뒤에 서 있던 수하들 중에는 성주의 끔찍한 몰골에 비위가 상한 나머지 구역질을 해대는 무사도 있었다. 또한 일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뇌까리기도 했다. "맙소사……!" "저런 몸으로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건가?" 오자명이 그런 수하들에게 묵직한 음성으로 명했다. "부관만 남고 나머지는 주위를 샅샅이 수색하도록!" "존명!" 수하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 대전 밖으로 흩어져갔다. 오자명은 부관을 대동한 채 성주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성주는 연신 가래 끓는 소리를 토하며 금세라도 숨이 끊어질 듯 경련을 일으켰다. 오자명은 성주 앞에 다가가 우뚝 섰다. "신강성(新講省) 감찰도독(監察都督) 오자명이오. 천금마옥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초특급전서를 받고 달려왔소!" 성주는 할말이 있는 듯 뭉개진 입술을 달싹거렸다. 오자명은 성주에게 귀를 바짝 갖다대었다. "기운을 내서 좀더 크게 말해보시오." 성주가 전신을 경련하며 필사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구, 구십… 구… 호……." 오자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성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로선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재차 성주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구십구 호가 어쨌다는 거요?" 성주는 필사적인 힘을 다하여 할말을 하고자 했다. 그의 입술이 바르르 경련했다. "그놈들……!" 순간 성주의 눈자위가 홱 돌아갔다. 그는 말끝을 다 잇지도 못한 채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더니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성주에게 귀를 갖다대고 있던 오자명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침내 성주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성주가 뭐라는 겁니까?" 부관이 몸을 일으키는 오자명을 향해 물었다. 오자명은 뚜벅뚜벅 대전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켜 집단탈출을 기도했지만 전력을 다해 진압했다고 하는군." 오자명의 말에 부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의 상관이 한 말은 세 살 먹은 아이도 믿지 않을,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대답인 것이다. 오자명은 그런 부관의 내심을 아는지 아니면 일부로 모르는 척하는 건지 부관의 시선을 뒤로하고 걸어가며 무겁게 명을 내렸다. "상부에도 그렇게 보고하도록!" 부관이 석연치 않은 음성으로 그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자명은 우뚝 문가에 멈추어 섰다. 그는 천천히 부관을 향해 돌아섰다. 오자명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부관이 흠칫했다. "이곳의 후임자로 자네를 추천하려고 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오자명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어차피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이다. 머리만 잘 쓰면 평생을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내 말 이해 못하나?" 그제야 부관도 오자명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잘 알겠습니다!" 허공에는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시체를 파먹기 위해 무수한 까마귀 떼들이 날아다니고 부관은 관군들을 지휘하며 현장 수습에 여념이 없었다. 오자명은 대전 입구에서 뒷짐을 진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탈출했는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소외된 땅에서 있었던 일련의 피바람은 그렇게 세월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깨끗하게 단장된 성문의 지붕에는 천금마옥이라 양각된 새로 만들어진 편액이 내걸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황굴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죄수들과 여기저기서 연신 채찍을 휘둘러대는 무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탈출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과 체념의 땅, 천금마옥! 그 소름 끼치는 공포의 전설은 그 후로도 계속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장차 천하를 휩쓸어버릴 대풍운의 씨앗이 바로 그곳에서 발아했음을 아는 사람은 그래서 더욱 없었다. * * * 눈부신 햇살 아래 온갖 꽃들이 만발한 화원이다. 미풍에 실려오는 꽃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꽃에도 그것을 갉아먹는 벌레는 있기 마련이다. 활짝 피어 있는 꽃을 향해 송충이 한 마리가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송충이는 꽃에 바짝 접근했다. 이때 누군가 나무젓가락으로 송충이를 꾹 잡아서 집어들었다. 바로 사마덕조였다. 이곳은 북파무림맹의 후원에 위치한 화원 속, 많은 송충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 속으로 사마덕조는 방금 잡은 송충이를 집어넣었다. "올해는 유난히 벌레가 많군!" 사마덕조의 뒤에 서 있던 등표가 공손히 응수했다. "오랜 가뭄 탓일 겁니다." 사마덕조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비 구경을 한 지도 꽤 오래됐군!" 그는 꽃가지 사이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조금 전에 원로회의가 끝났다고 들었네만. 무슨 얘기들을 하던가?" 등표가 공손히 대답했다. "이젠 결단을 내리실 때가 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중론이었습니다." 사마덕조는 다시 한 마리의 송충이를 잡아 비닐봉지에 넣으며 혀를 찼다. "쯔쯧! 또 그 얘기로군!" 등표가 정색을 했다. "내분의 조짐이 엿보이는 남극벌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무적검맹과 환희천의 세력확장이 근래 들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사마덕조는 아무 말 없이 송충이를 잡는 데만 열중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서 무적검맹과 환희천이 전격적으로 대통합에 합의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마침내 사마덕조가 돌아서며 등표를 쳐다보고는 빙긋 웃었다. "군사의 생각은 어떤가? 무적검맹과 환희천의 대통합이 가능하리라 보나?" "성사여부를 떠나서 감히 그런 발상조차 할 수 없게끔 쐐기를 박아둘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사마덕조의 손에서 불길 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진 비닐봉지가 화르르륵 불길에 휩싸였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비닐봉지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 우수수수 흘러내렸다. 손을 툭툭 털며 사마덕조는 등표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가라앉아 있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표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골치 아픈 얘긴 접어두고 우리 술이나 같이 한잔할까?" 그러나 사마덕조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등표는 강력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남궁세가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북파무림맹의 힘이면 능히 하늘조차 무너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삼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 "애초에 맹주님께서 남궁세가를 끌어들인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잖습니까?" 등표의 불을 토하는 듯한 열변에 사마덕조는 허공을 응시하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젠가 사위가 이런 말을 하더군." 등표의 동공 속으로 순간 기광이 스쳐 지났다. "군계(群鷄) 속의 일학(一鶴)은 언제나 모든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법이므로 어설프게 두각을 나타날 바에야 군계에 묻혀 사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겠느냐고……!" 사마덕조의 말에 등표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흠칫했다. 그런 등표를 뒤로한 채 사마덕조는 저벅저벅 화원을 걸어나갔다. "백인(百忍)은 천하경영의 근본이며 남아의 승부 일생에 한번이면 족한 것이야!" 등표의 공손한 예를 받으며 사마덕조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화원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껄껄껄! 어차피 받아놓은 밥상인데 삼 년(三年)에 삼 년을 더 기다린들 그게 어디로 가겠는가?" 사라지는 사마덕조의 뒷덜미를 등표는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탁! 마치 여인처럼 희고 아름다운 남궁사의 손이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자객이라……!" 그는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서산에 걸린 태양은 아직 노루꼬리만큼 남아 있었고 수목이 우거진 풍치 속의 팔각정자엔 석양의 아름다움이 비쳐들고 있었다. 정자의 원탁엔 남궁사가 찻잔을 마주한 채 앉아 있었고 그의 앞 한 발짝 떨어진 곳에는 수하인 뇌광(雷光)이 시립해 있었다. 남궁사는 천천히 일어나 정자의 난간으로 다가갔다. 난간에 이른 그는 뒷짐을 쥐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 친구들 꽤 그럴듯한 발상을 했군그래." 뇌광이 신중한 기색으로 설명했다. "피차 출혈이 따르는 전면전보다 자객을 대량 투입함으로써 일단 적진부터 흔들어 놓고 보자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남궁사는 고개를 약간 돌려 뇌광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끌어들인 자객은 어느 정도나 되나?" "남극벌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적검맹과 환희천은 막대한 자금을 뿌려가면서 거의 무차별적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남궁사가 피식 웃었다. "자객들만 살판났군!" "조건만 맞으면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자객의 특성입니다. 특히 유사시엔 군대보다 오히려 더 큰 효용가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셔서 조속히 조치를 취하심이 옳을 것 같습니다." 남궁사는 제자리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자네 말대로라면 어지간한 자객들은 이미 대부분 팔려갔다는 얘긴데……." 그는 손을 뻗어 앞에 놓인 찻잔을 집었다. "아직도 손 뻗칠 데가 남아 있나?" 뇌광이 눈빛을 강렬하게 빛냈다. "정말 쓸만한 자가 아직 한 명 남았습니다." 뇌광의 말에 남궁사는 차를 마시다 흠칫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적검맹과 환희천에서 엄청난 거액을 싸들고 찾아가서 영입 작전을 펼쳤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남궁사가 찻잔을 놓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무릇 자객이란 돈을 받고 청부를 받는 법, 그러나 아무리 거액을 제시해도 거절하는 살수라면 무언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자가 분명했다. "그게 누군가?" "혹시 마도수(魔道手)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남궁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도수……?" 뇌광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년 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전문직업살수입니다." "경력은 오래되지 않은 친구로군!" "그러나 그가 이년 간 벌인 청부살인은 자타가 천하제일의 살수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돕니다." 뇌광은 침을 튀겨가며 마도수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파양호의 터줏대감인 벽력신군(霹靂神君)과 강호제일의 골칫덩어리 성숙팔괴(成熟八怪), 거기다 녹림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혈영마제(血影魔帝) 등 이십여 명의 절정고수들이 그의 손에 차례로 제거당했습니다." 뇌광은 한차례 침을 삼켰다. 남궁사는 뇌광의 설명을 심각한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 후 마도수는 일약 살수업계의 새로운 공포로 자리잡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남궁사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무언가 내심으로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남궁사를 바라보며 뇌광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신상내력이 신비에 가려진 것이 변수로 작용할 소지도 없지 않으나 일단 영입이 성사되면 능히 천군만마에 비견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침내 뇌광은 설명을 마친 뒤 남궁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네가 누구를 그토록 칭찬하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군." 남궁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시간 나는 대로 내가 직접 그 친구를 만나보겠네!" * * * 항주(抗州). 상유천당하유소항(上有天堂下有蘇抗)의 근원지인 항구도시다. 검은 장막을 펼친 듯한 어둠이 거대한 항구도시 항주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환락의 도시 항주는 대낮보다 더 밝은 빛으로 온통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돈푼 깨나 있는 한량들이 드나드는 환락가에는 오색찬란한 등불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야화들의 간드러진 교소가 어울려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화려하게 걸려 있는 오색등불 사이로 십천루(十天樓)란 간판이 걸린 그럴듯한 규모의 주루가 보였다. 주루 안은 많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어 왁자지껄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사방에서 시끄럽게 외치는 손님들 사이에서 점소이는 바삐 움직이며 무척 허둥대고 있었다. "이봐, 여기 술 시킨 것 어떻게 됐어?" "너 일루 와봐! 누군 손님이고 누군 거지냐?" "저 자식 저거 완전히 똥오줌 못 가리는군그래!" 점소이는 허둥지둥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예예, 곧 나갑니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때 입구의 주렴을 걷으며 검은빛 일색으로 치장한 위지강이 들어섰다. 점소이는 위지강을 발견하곤 흠칫하더니 이내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어서옵쇼!" 점소이는 허리를 숙여 넙죽 인사를 했다. 그는 이층 쪽을 안내하며 친절하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아래층은 만원인데 이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위지강은 손님이 가득한 실내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자네 고향이 남포(南浦)라고 했나?" 점소이가 씨익 웃었다. "잘못 아셨군요, 소인의 고향은 운강(雲江)입니다만!" "운강은 매화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 순간 점소이가 흠칫했다. 그는 주루 안 손님들의 눈치를 살핀 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점소이는 계산대 옆으로 나 있는 어두컴컴한 통로로 위지강을 안내했다. "따라오시죠." 어두컴컴한 통로로 위지강을 안내해 가는 점소이를 쳐다보며 주루 안의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지껄였다. "아니 저 자식은 가져오라는 술은 안 가져오고 또 어딜 기어가는 거야?" "내가 주인이라면 저런 놈은 당장 모가지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통로 끝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통로 끝에 다다른 점소이는 조그만 문을 가리켰다. "저 문으로 나가시면 안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점소이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위지강은 뚜벅뚜벅 문을 향해 다가갔다. 끼이익! 그가 손잡이를 가볍게 비틀자 문이 활짝 열렸다. 위지강은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은 꽤 넓은 화원이었다. 온갖 기화이초들이 만발한 화원엔 만월의 월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은빛 월광을 받으며 화원 중앙에는 누각 한 채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위지강은 무심한 시선으로 누각을 응시했다. 저벅저벅! 이윽고 그는 화원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을 옮겼을까? 위지강은 공기 속을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막 화원 한복판을 지날 때였다. 후아아아앙!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갑자기 주변이 온통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였다. 위지강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쿠쿠쿠쿠쿠! 보통사람의 세 배 정도는 됨직한 거대한 체구의 흑포괴인이 그를 덮쳐오고 있었다. 흑포괴인은 번쩍이는 안광을 제외하고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먹물 같은 장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예 통째로 깔아뭉갤 듯 무지막지한 기세로 내리 덮치는 흑포괴인의 공세는 채 위지강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거센 폭풍처럼 그의 옷자락을 휘날리게 만들었다. 쿠아아아앙! 지척지간을 덮쳐오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위지강은 옷자락을 나부끼며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그의 무심한 태도는 누가 보더라도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대로 흑포괴인의 공세에 격중된다면 위지강의 전신은 필시 풍비박산 나버릴 것이 분명했다. 막 흑포괴인의 공세가 그의 몸을 난타하려는 순간이었다. 위지강이 엄지로 검의 손잡이를 퉁겨 올렸다. 슈파파파팟! 동시에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은 눈부신 검광이 좌우로 번뜩였다. 쿠콰쾅! 잔뜩 바람든 고무공이 일시지간에 터져 버리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순간 위지강을 향해 내리 덮치던 흑포괴인의 거구가 산산조각으로 폭발했다. 허공에는 흑포괴인의 옷 조각과 육편들이 공포스런 모습으로 어지럽게 휘날렸다. 그 속에서 어느 사이에 빼들었는지 위지강은 검을 손에 든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휘휘휘휙! 이때 휘날리는 육편 조각들 속에서 늘씬한 체구의 미녀들이 날아올랐다. 미녀들은 모두 다섯, 그런데 은은한 월광 속에 나타난 미녀들은 놀랍게도 전라(全裸)의 몸매였다. 그녀들은 허공에서 한바퀴 몸을 뒤집으며 어지럽게 서로 교차했다. 그 순간 그녀들의 불두덩이쪽 검은 치모가 일목요연하게 위지강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위지강은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이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야야아!" 한순간 밀궁까지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미녀들이 검을 치켜든 채 악랄한 기세로 위지강을 덮쳐들었다. 추악! 사정없이 내리치는 한 미녀의 검을 그는 교묘하게 상체만 비틀어 피했다. 쉬이익! 위지강의 검이 무섭게 허공을 갈랐다. 미녀의 나신은 정수리부터 밀궁까지 정확하게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녀는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뜬 채 내장을 모두 쏟아내었다. 파팟! 위지강의 검이 또다시 현란하게 움직였다. 또다시 한 미녀의 목에 구멍이 뻥 뚫렸고 다른 한 명은 복부가 관통되면서 창자가 흘러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미녀 중 셋이 염왕 앞으로 간 것이다. 파파팍! 나머지 두 명의 미녀가 다급하게 몸을 날려 좌우로 갈라졌다. 그들은 위지강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뒤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스스스스! 갑자기 그녀들의 나신이 흐릿해지더니 마침내 물처럼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쿠쿠쿠쿠쿠!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무섭게 지면을 가르면서 두 줄기의 검기가 위지강의 앞뒤를 공격해왔다. 마침내 우뚝 서 있는 위지강을 향해 검기는 급속도로 쇄도해 들었다. 푸확! 푸화확! 동시에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벼락치듯 미녀들이 솟구쳐 올랐다. 번쩍! 흙먼지를 가르며 눈부신 검광이 한차례 작렬했다. 이윽고 가라앉은 먼지 속에서 검을 비스듬히 내리그은 자세로 서 있는 위지강의 모습이 보였다. 두 명의 미녀 또한 자세가 각각이었다. 한 명은 찌르는 자세를, 다른 한 명은 검을 올려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위지강의 눈빛은 무심했다. 그러나 두 명의 미녀는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뜨고 있었다. 퓨류류류! 철컥! 위지강은 허공에서 한차례 검을 휘두른 뒤 검집에 집어넣었다. 미녀 하나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미녀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녀는 다리를 한껏 벌려 검은 체모가 무성한 중요 부위를 드러낸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죽어 나자빠진 시신들 속에 위지강은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짝짝짝짝! 이때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위지강은 고개를 약간 쳐들었다. 박수소리는 누각의 이층 난간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절세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여인은 한마디로 요물이었다. 탱탱한 피부를 지닌 그녀의 나이는 이십대였다. 몸 구석구석 어느 한곳이 사내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인의 몸은 뇌살적이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다음에야 철석간장을 지닌 사내라도 당장 욕정을 느낄 것이다. 여인은 한껏 요요로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사내들의 넋을 뽑아버린다는 탈명오희(奪命五姬)의 알몸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철담금심(鐵膽金心)……!" 위지강은 조용히 선 자세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한번 검집을 나오면 반드시 피를 보고서야 거두어들인다는 일견사혈견휴(一見死血見休)의 필살쾌검(必殺快劍)……!" 여인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과연 살수세계의 새로운 신화(神話), 마도수의 소문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군요!" 그녀는 교태가 철철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위지강을 뜨거운 눈길로 응시했다. "하지만 너무하셨어요. 워낙 큰 거래라서 단지 약간의 확인절차만 밟으려고 했을 뿐인데 어쩜 그렇게 무정하게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는 거죠?" 위지강이 무심하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싸움에는 연습이 없으니까!" 스스슥! 위지강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우뚝 선 자세 그대로 누각 안으로 날아들었다. 공간을 단축해 날아오는 위지강을 여인은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안색이 급변했다. '무력부풍(無力 風)! 최소한 일갑자 이상의 공력이 뒷받침되어야 펼칠 수 있는 극상승신법(極上乘身法)을 벌써 약관의 저 나이에……?' 스슷! 그녀가 놀라는 사이 어느새 위지강은 여인 앞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섰다. 눈가를 내리그은 검흔과 잘 연마된 무쇠처럼 차갑고 강인한 모습, 그러나 세상 그 어느 사내보다도 잘생긴 위지강을 바라보며 여인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혼이 달아난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저 강렬한 아름다움이라니…….' 위지강은 흠칫하는 여인을 지나쳐 활짝 열린 누각의 실내로 들어갔다. "술 냄새는 아까부터 코를 찌르는데 권할 사람은 어째서 구경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여인은 자신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선 위지강을 얼떨떨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훗!" 마침내 여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뚜껑도 열기 전에 기선을 빼앗겼으니 오늘은 아무래도 염서시(炎西施)가 일생일대의 강적을 만난 모양이로군!' 여인, 염서시는 술상이 차려진 탁자에 앉아 있는 위지강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쪼르르르! 염서시는 하얀 섬섬옥수를 들어 화려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녀는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위지강을 향해 눈을 살짝 흘겼다. 그 모습 또한 요염하고 뇌살적인 자태가 아닐 수 없었다. "술을 좋아하시나 보죠?" 위지강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술보다 물을 더 즐겨 마시는 편이오." 염서시는 술병을 가만히 탁자에 놓았다. "그건 왜 그렇죠?" "술은 몸을 덥게 하지만 물은 몸을 차갑게 식혀주니까!" 염서시가 뇌살적인 미소를 보냈다. 매우 의미가 깊은 웃음이었다. "그럼 술보다 물을 준비해 놓을 걸 그랬나 보죠?" "아니……!" 위지강은 술잔을 집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술잔을 탁자에 탁 놓으며 염서시를 주시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남극벌의 꽃 염서시 수음희(水音熙)가 부어주는 술이라면 독주라도 마다할 의향이 없으니까." 염서시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머? 아직 인사도 드리지 않았는데 저를 어떻게 아시죠?" 위지강은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 "당신은 내가 오늘 이곳엘 처음 온 줄 알지만 이미 열 번도 넘게 들락거렸다면 믿겠소?" 염서시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곳을……? 열 번도 넘게 드나들었단 말인가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의뢰인의 조상 십대까지 파헤치는 건 마도수의 첫번째 습관이니까!"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근자에 들어 강호를 진동시키며 무림인들을 공포에 절게 만들고 있는 마도수가 바로 위지강, 자신이란 얘기가 아닌가? 염서시는 졌다는 듯 양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정말 못 당하겠군요. 누구를 상대하면서 나를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칭찬으로 알겠소." 위지강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했다. 염서시는 다리를 척 꼬았다. 얼음처럼 매끄럽고 투명한 다리가 치맛자락 사이로 은근슬쩍 드러났다. "좋아요, 어차피 다 들통났으니 이제부터 허심탄회하게 거래를……." 이때 위지강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아니!" 염서시는 위지강의 갑작스런 태도에 흠칫했다. 위지강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어." 그는 누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 쥐새끼가 들끓는 시궁창에선 누구와도 거래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염서시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저쪽으로 멀어져 가는 위지강을 의미 깊은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스스슷! 이때 그녀의 뒤쪽에서 인영 하나가 솟아올랐다. 매우 준수하게 생긴 화복 차림의 청년이었다. 그러나 청년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심지가 곧고 정심한 인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는 굳어 있는 염서시의 뒤에서 사라져 가는 위지강을 쏘아보았다. 청년의 눈에서는 섬뜩한 살기가 폭출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잘못 짚은 것 같소. 너무 다루기 어려운 인물이오." 청년의 말에 염서시는 비로소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달뜬 음성을 토했다. "상관기(尙官己)! 잘못 짚은 건 너야. 저런 위인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붙잡아둘 가치가 있어!" 청년의 안색이 썩은 돼지간처럼 검게 변했다. 그런데 상관기라면 최근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만검산장(萬劍山莊)의 소장주 유성검(流星劍) 상관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상관기와 염서시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휘황찬란한 만월 아래 펼쳐진 화원. 온갖 꽃들이 흐드러져 저마다 자신의 자태를 활짝 뽐내고 있었다. 툭! 위지강은 꽃 한 송이를 꺾어 들었다. 그리고 꽃을 코에다 가져다댄 뒤 향기를 음미했다. 이때 그의 뒤에서 맑고 영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을 좋아하시나 보죠?" 위지강은 쥐고 있던 꽃송이를 멀리 내던졌다. "이 집엔 꽃이 많군!" 염서시는 요염한 미소를 머금은 채 꽃밭 속을 사박사박 걸어왔다. "제 눈치가 느렸군요." 그녀는 그윽한 육향을 풍기며 위지강의 바로 뒤까지 다가섰다. "말씀만 하세요. 당신만 좋다면 어떤 꽃이던 안겨드릴 테니까요." 위지강의 입술이 슬쩍 한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그 속에는 남극벌의 꽃 염서시도 포함되는 건가?" "물론이에요." 염서시는 흘러내린 흑발을 한 손으로 매만졌다. "강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본 사내 중 가장 강하고 최고니까요." 위지강은 돌아서서 염서시를 응시했다. "강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몸 속에 정액을 쏟아 넣을 수 있다는 뜻인가?" 여인에게는 매우 치욕적인 언사였다. 그러나 염서시는 위지강의 그런 노골적인 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달덩이같이 풍만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박사박 걸음을 옮겼다. "자고로 계집이 시선을 두는 사내는 네 종류로 구분되죠." 꽉 쪼이는 치마 속에서 팽팽한 탄력으로 인해 터질 듯한 엉덩이를 그녀는 고의적으로 살살 흔들었다. "사급(四級)은 그저 눈길을 주는 정도예요."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란히 걸어서 화원 저 멀리 사라지는 두 사람을 상관기는 질투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삼급은 몹시 좋아하며 따르게 되고 이급 정도가 되면 강요하지 않아도 치마끈을 끌러줄 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게 되요." 위지강은 흥미로운 눈길로 염서시를 쳐다보며 물었다. "일급은?" 염서시의 눈빛이 요염하게 빛났다. "목숨을 걸죠." 그녀는 위지강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하지만 그런 사내는 이 세상에 흔치 않아요." 염서시의 눈길이 점차 뜨거워졌다.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시선으로 위지강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아직 내가 처녀라면 믿으시겠어요?" 위지강의 성목이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 "주변에 사내들이 꽤 많은 걸로 아는데 모두 고자라는 얘긴 아닐 테고?" 염서시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날 따라다니는 사내는 많아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까지 내 몸 속에 정액을 쏟아 넣을 자격이 있는 사내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당신을 제외하고는……!"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신비스런 눈빛을 발산하는 염서시의 시선을 위지강은 덤덤하게 받아넘겼다. 염서시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눈빛은 더욱 끈적끈적해졌고 입에서는 달콤한 단내를 뿜었다. "뭘 망설이는 거죠? 손만 뻗으면 날 안으실 수 있을 텐데……!" 위지강이 희미하게 웃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그는 안색이 확 굳어지는 염서시를 스쳐 지났다. "난 피 배인 날고기는 되도록 삼가는 편이라서 말이오!" 염서시는 바위처럼 굳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위지강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염서시가 야릇한 미소를 떠올리며 위지강을 돌아보았다. '돌부처의 혼백도 빨아들이는 마라섭혼공(魔羅攝魂功)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무용지물로 만든단 말인가?' 염서시는 야릇한 흥분과 열기로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요염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엇인가, 이것은? 오히려 나를 걷잡을 수 없이 들뜨게 하는 이 심정은…….'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