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값으로 주었으니(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27장 5-10절『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 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가격 매긴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가룟유다 간에 은 30 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가롯유다에게 은 30을 다시 주면서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면서 네가 당하라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므로, 유다가 다시 그 돈을 받아서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음을 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불의의 삯을 받고 예수를 파는 자가 결국은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교훈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가룟유다의 잘못된 행동만을 본다면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역사공부 하는 것이다. 가롯유다를 통해서 깨달아야만 하는 것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불의의 삯으로 무죄한 피를 팔고 돈받은 것에 대하여 모든 죄를 가룟유다에게 돌리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재물을 받쳐야 한다는 율법적 근거를 대면서 신도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가 강요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다는 은 30 받은 돈을 다른 곳에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그 돈을 성소에 던져넣고 나온다. 가룟유다는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항상 헌금을 받아왔던 자들 이었기 때문에 은 30 을 다시 성소에다 갖다 던져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세상의 물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을 원하시는 것이다. 가룟유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은 돈 때문인 것이다.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오만과 불손종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일부 교회에서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해서 율법인 방법으로 건축헌금과 십일조를 하도록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값이라』가룟유다가 쓸모없다고 던져버린 은 30을 다시 주우며 『이것은 피값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들하고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도록 한 돈을 일컬어서 피값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 30 과 예수님과 동격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은 30은 여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진리 말씀이 없는 교회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여전히 율법에 빠져 있는 교회들을 말한다.
가룟유다가 성소에 은 30을 다시 갖다놓고 떠나버린 후에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모여서 이 돈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은 30을 성전고 (지금으로 말하면 성소안에 있는 금고) 에 넣어두는것이 옳지 않다고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말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는 제사장들에게는 이단인 것이다. 성소는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치며 의식을 행하는 거룩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단에 속하는 예수를 판돈을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넣어두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깨달아 알지못하고 있던 소경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돈을 가지고 무슨 이유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사야서 64 장 8 절에서『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토기장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손으로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은 거짓목자요 삯꾼목자들이다. 하나님의 밭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샀다는 말이다. 육적으로 보면 흙으로 된 밭을 산 것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들은 이 돈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산 것이다. 삯꾼들은 영적으로 성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은 30을 가지고 하나님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을 죽이려고 하는 이리들과 같은 자들이 것이다. 오늘날도 삯꾼 목자들은 성도들을 현혹시켜, 율법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흘리신 피로 교회를 샀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므로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왔다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가고자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런데 나그네가 거쳐야 할 곳이 있는데 그 곳이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유형 건물이 아니라, 거듭난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두고 말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생명의 말씀을 듣는다. 성도들이 모이는 곳은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교회가 나그네의 묘지로 삼게 되었는가? 거듭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6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옛사람이 죽은 무덤이 되면서 부활의 영광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그네로 이 세상에 왔다가 교회에서 진리말씀으로 거듭나서 천국인 우리의 본래의 하나님의 집인 본향천국으로 가야 하는데, 오늘날의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없으므로, 나그네가 거듭나지 못하고 결국은 나그네의 묘지 (무덤) 역할밖에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지도 않고, 믿기만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거짓 삯꾼들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으면서도,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아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게하는 율법적 삭꾼들로 인해서 그렇게 무덤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32장 6-15절까지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라 하리라 하시더니,...............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그리고 위의 말씀은 스가랴 11장 12-13절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에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