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2월 나는 군수사령부 제x보급창 의무 물자 저장 단
군 속으로 보임을 받으면서 또 다른 인생문을 열었다.
전군에 필요한 의무 물자, 고가의 의료 장비와 마약류 의약품
일반 의약품과 수술 바늘 등 부속 재료, 치과재료와 붕대 거즈까지
산소탱크와 아세틸린 통, 엑스레이 장비와 부속 자재까지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의 생명을 위한 물품이 정확하게 보급되었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맡은 책임자로서 청구서 대로 정확히 출하 되었는지 를
총괄 리스트, 증빙서, OAR 카드 3가지가 일치 하는지 확인하는 막중한 업무로
세명의 여직원과 같이 근무에 열심히 하였다.
하지만 철도청 신 마산역에서 근무하던 마무리가 덜되어 중리역에서
부산까지 출퇴근은 어려워
부대 가까운 하숙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하숙집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방에 세 명이 넘게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눈치, 코치 속에 살아야만 했다.
새벽 3시부터 일어나는 일용직 노동자 아저씨
늦은 밤 열두 시 넘어 퇴직하는 직장인
은행원도 있었고, 공학도, 건설업자, 엔지니어도 있었으며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 매일 세상사를 논하는 철학자도 있었네.
열다섯 소년부터 예순을 넘긴 어르신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꿈과 사연을 안고
좁은 방 하나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었네.
세수는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화장실은 남녀가 같이 쓰는 물 내리는 앉은 변소 하나밖에 없었네.
그것마저 그 동네에서는 괜찮은 하숙집이라 소문이 있었지
그 시절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검소하고 치열했는지
이제야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구먼
비좁은 방에서 몸을 누였지만
저마다의 꿈속에는 겨울철 따스함이 있어 좋았고
여름철 밤새워 흔들었던 부채를 손에 쥐고 고단함에 지쳐
넓은 광야를 달리는 코를 힘차게 울려 버렸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믿으며
나는 또 묵묵히
새벽을 향해 숨 고르며 달리곤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