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검증보다 일정이 앞선 i-SMR
— 2035년 상용화 계획은 무엇으로 안전성을 입증하는가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들어가며
원자로는 정부가 준공 연도를 발표한다고 완성되는 설비가 아니다.
먼저 설계를 확정하고, 실제 운전조건을 대표하는 시험으로 설계가정을 확인해야 한다. 시험에서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나면 해석모델과 설계를 고치고 다시 시험해야 한다. 이 반복이 충분히 쌓인 뒤에야 규제기관은 그 설계가 법령과 안전기준을 충족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일정은 늦춰져야 하고, 핵심 가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사업을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곧 i-SMR 사업은 이 순서가 뒤집혀 있다.
미리 밝혀 둘 것이 있다. 이 글은 SMR이라는 기술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굵은 냉각재 배관을 줄이고, 전기 없이도 작동하는 피동안전계통을 채택하며,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 옮겨 조립하는 방향에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 개념상의 장점을 실제 원자로의 안전성과 운전성, 정비성, 경제성으로 입증했는가에 있다. 기존 경수로 기술을 활용한다는 설명만으로 새로운 결합설계의 성능까지 입증되지는 않는다.
이 장의 결론은 간명하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i-SMR의 설계 성숙도와 핵심기술의 실증 수준이 2035년 상용화 일정을 뒷받침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험을 하겠다는 약속과 검증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1. 2035년을 먼저 못 박았다
i-SMR 추진일정은 2028년 표준설계인가, 2030년 건설허가, 2032년부터 2034년 사이 원자로 설치와 핵연료 장전, 2035년 최초호기 준공으로 이어진다.
일정표만 보면 연구개발과 인허가, 건설이 빈틈없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자로 개발에서는 뒤 단계의 날짜를 먼저 고정할수록 앞 단계의 심사와 시험이 일정 준수 압력을 받는다. 특히 국가 전력계획이 특정 시점의 설비용량까지 반영하면, 기술개발의 실패나 지연을 정책적으로 인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표준설계인가는 개념이 유망하다고 인정해 주는 절차가 아니다. 앞으로 여러 곳에 반복해 지을 원자로의 기본 안전설계를, 규제기관이 미리 승인해 두는 제도다. 따라서 신청한 설계가 무엇인지, 핵심 안전기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해석 결과를 뒷받침하는 시험 근거가 무엇인지가 충분히 확정돼 있어야 한다.
개발사업이 목표 일정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일정이 기술적 판단을 대신하는 경우다. 시험이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은 정상이다. 반대로 다음 단계의 날짜를 지키려고 시험 범위와 규제 요건을 조정하거나, 핵심 자료의 나중 제출을 통상적인 보완으로 취급한다면 규제의 독립성이 약해진다.
일정은 검증 결과의 종속변수여야 한다. 검증이 일정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2. 남은 13건이 무엇인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계획 자료에 따르면, 표준설계인가 신청서의 서류적합성 검토 과정에서 225건의 보완요구가 제기됐고, 212건을 보완한 뒤 13건은 앞으로 제출하는 조건으로 서류적합성이 인정됐다.
숫자만 보면 대부분의 보완을 마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은 자료의 수가 아니라 그 성격이다.
나중에 내기로 한 자료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 것으로 제시됐다. 내진범주 I 구조물과 기초 해석, 제어건물 구조해석, 제어봉구동장치의 상세설계, 계측제어계통의 공통원인고장 분석. 여기에 통합제어실과 원격정지실의 기본설계, 항공기 충돌평가, 건물 단면과 배치정보도 안전성과 방호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이런 문서는 표현을 다듬거나 도면번호를 바로잡는 행정적 보완과 성격이 다르다. 안전기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사고가 났을 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설계 근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질문은 “13건이 남았는가”가 아니다. “남은 13건 없이도 본심사에 필요한 설계 경계와 안전 논리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가” 다.
서류적합성은 안전성 승인이 아니므로 후속 자료를 받으며 본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청서의 핵심 설계가 미완성이라면, 본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 대상 자체가 계속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규제기관은 완성된 설계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와 함께 설계를 완성해 가는 위치에 놓인다.
규제기관이 심판이 아니라 공동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 규제는 규제이기를 그친다.
3. 한 가지만 예로 든다면 — 무붕산 노심
기술적 쟁점은 여럿이지만, 하나만 따라가 보자. i-SMR이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우는 무붕산 노심이다.
붕산이 하던 일
기존 가압경수로는 냉각재에 붕산을 녹여 그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핵분열의 세기를 관리한다. 붕산이 중성자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농도를 높이면 반응이 눌리고 낮추면 살아난다. 말하자면 물에 타서 쓰는 조절 장치다.
i-SMR은 정상운전에서 이 붕산을 쓰지 않는다. 붕산을 줄이면 붕산이 뜻하지 않게 묽어지는 사고의 일부 시나리오를 없앨 수 있고, 수질 관리 부담도 준다.
그러나 붕산이 담당하던 기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료주기 초기의 과잉 반응도는 가연성흡수체와 연료 배치로 눌러야 하고, 운전 중의 출력 조절에는 제어봉이 더 큰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무붕산 설계는 위험을 없앤 것이라기보다, 반응도 제어의 부담을 가연성흡수체와 제어봉구동장치, 노심설계, 계측계통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옮겨간 부담은 검증됐는가
부담이 옮겨갔다면, 옮겨간 자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고성능 가연성흡수체를 쓴다면 방사선을 쬐는 동안 흡수 능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부풀거나 갈라지지는 않는지, 피복재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제조 과정의 오차는 얼마인지를 실제 시험으로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무붕산 설계의 취약점이 드러난다. 기존 원전은 설계와 실물 사이에 약간의 오차가 생겨도 운전 중에 붕산 농도를 조절해 메울 수 있다. 무붕산 노심에는 그 여지가 없다. 그래서 연료와 흡수체의 제조 오차, 열수력 오차, 계측 오차가 겹쳤을 때를 훨씬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
제어봉구동장치의 중요성도 커진다. i-SMR은 이 장치를 원자로 용기 안에 넣는 방식을 택했다. 원자로 위쪽 구조물을 줄이고 제어봉이 튀어나가는 사고 가능성을 낮추려는 취지다. 그러나 이제 그 장치는 고온·고압의 냉각재와 방사선 속에서 수십 년을 버텨야 한다. 코일, 걸쇠, 위치센서, 전기절연이 침전물에 덮이고 닳고 열화되는 가운데, 제어봉이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히 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
공개된 일정에서 이 장치의 주요 기능검증이 2028년 표준설계인가 목표 시점과 맞물리거나 그 이후로 이어진다면, 규제기관은 분명히 답해야 한다.
검증시험에서 낙하시간이나 위치 정밀도, 내구성이 합격기준에 미달하면 2028년 인가 목표를 늦출 것인가. 원자로 내부의 설치 형상과 정비 방법까지 바꿔야 한다면, 관련 구조해석과 사고해석을 어디까지 다시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사전 답변이 곧 멈춤 지점(Hold Point)이다.
무붕산 기술을 혁신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이름이나 특허가 아니라 입증자료가 결정한다. 조절하는 수단과 확인하는 수단이 함께 완성되지 않았다면 무붕산 안전논리도 완성되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무붕산 노심은 성공이 확인된 결론이 아니라, 시험으로 확인해야 할 가설이다.
나머지 여섯 개 핵심기술 — 일체형 원자로의 열수력, 나선형 증기발생기의 검사와 보수, 핵심 안전계측, 원격정비, 네 개 모듈의 통합운전, 해양 용융염원자로 — 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장 끝의 표에 각각의 입증자료와 중단조건을 정리해 두었다.
4. 성공 일정만 있고 실패 일정이 없다
i-SMR 사업비 약 5,906억 원과 해양 용융염원자로 약 8,960억 원을 합하면 두 사업의 계획 규모는 약 1조 4,866억 원에 이른다.
국책사업에서는 기술적 성공 가능성만큼 실패를 발견하고 손실을 제한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실패를 숨기거나 다음 단계로 넘기는 사업은 예산을 많이 투입할수록 중단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쓴 돈과 정치적 약속이 과학적 판단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2035년이라는 목표가 신뢰를 얻으려면, 정부와 사업자는 최소한 세 가지 경우를 공개해야 한다.
첫째, 모든 핵심시험이 성공할 경우의 기준 일정. 둘째, 시험 결과가 해석과 맞지 않아 설계를 바꿔야 할 경우의 수정 일정. 셋째, 핵심 안전개념이 성립하지 않아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중단하는 조건.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첫 번째 경로만 강조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보이지 않는다.
성공 일정만 있고 실패 일정이 없는 연구개발은 계획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누가 멈출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단을 결정할 사람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독립된 기술검증위원회가 원자료와 시험 실패 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규제기관은 사업 일정과 별개로 인허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중대한 불합격이 발생했을 때 설계변경, 일정연기, 예산조정, 사업중단 중 무엇을 할지 결정할 책임 주체와 절차가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한다.
맺으며
SMR은 작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안전하거나 경제적인 원자로가 되지 않는다.
굵은 배관을 줄이고 피동안전계통을 채택하는 장점은, 빽빽하게 모인 내부기기, 아직 겪어보지 못한 열수력 현상, 좁아서 접근하기 어려운 검사와 정비, 여러 모듈을 동시에 운전하는 부담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장점은 설계 개념에서 주장할 수 있지만, 안전성과 경제성은 시험과 운전 경험으로만 입증된다.
i-SMR의 문제는 연구개발을 시도한다는 데 있지 않다. 국가계획이 2035년 상용화를 먼저 약속하고, 핵심설계와 시험과 인허가와 건설이 그 날짜를 향해 동시에 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국가 연구개발은 실패할 수 있다. 오히려 실패 가능성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일찍 발견하는 것이 과학기술 정책의 책임이다. 그러나 핵연료를 장전하는 원자로 사업에서는 실패를 건설현장이나 상업운전 단계까지 미뤄서는 안 된다.
실패를 허용한다는 말은 안전기준을 낮춘다는 뜻이 아니다. 검증 단계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과감히 설계를 고치고, 일정을 늦추고, 필요하면 사업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시험하고, 어떤 수치로 합격을 판단하며, 불합격하면 누가 다음 단계를 멈출 것인지가 정해져야 비로소 검증이라 부를 수 있다.
2035년이라는 날짜보다 먼저 확정해야 할 것은, 성공 일정이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고 멈출 수 있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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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i-SMR 표준설계인가 심사계획(안)」, 2026년 8월 27일 및 2026년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 공개자료. [2] Idaho National Laboratory, 무붕산 소형모듈원자로 노심설계 관련 연구자료, 2014. [3] KEPCO E&C · MPR Associates, 무붕산 SMR 노심 및 반응도 제어 관련 공동연구자료, 2014. [4] i-SMR 기술개발사업단, i-SMR 설계개요 및 개발일정 공개자료. [5] 정부 및 i-SMR 기술개발사업단,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사업 예산·사업기간 자료. [6] 해양 용융염원자로 관련 전략계획서·평가자료. [7] 이정윤, 「SMR 기술검토」 발표자료, 2026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