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트푸르트 이모저모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65만이 살고 있는 5대 도시중 하나다.
한마디로 도시의 특성을 교통도시, 금융도시 , 박람의 도시로 표현 할 수 있는데 구 지금의 건물들은 2차 셰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신도시 형태로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건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각종 박람회가 자주 열려 관광수입도 많이 올리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마인강을 중심으로 강북쪽엔 제법 높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주로 세계의 각국 은행지점이 420여개 들어서 있어가히 세계의 금융허브라고 불리어 진다고 한다. 시가의 남쪽에 구시가지 형태의 주택가가 밀집 되어 있고 박물관이 많이 들어서 있다.
프랑크푸르트 기차역는 우리나라 서울의 구 서울역 의 모델이기도 하여 생소한 우리들 눈에도 오래된 건물들은 일제가 만든 이미 철거된 우리나라 중앙청과 같이 지붕에 파란 돔 형태의 건물의 형태로 지으진 건물들이 많았다.
2. 아우토반 질주 본능
"무제한 질주" 본능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는 로마신성제국 때 우리가 방문한 6개국 나라까지 식민지 침략길로 사용되던 도로를 히틀러가 2차 셰계대전 침공길로 사용하기 의해 확장 포장 한 고속도로로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속도가 무제한 낼 수 있는 도로는 아니었고, 무제한 구역에서만 가능하고 , 고속도로 중간중간 제한속도가 표시되어 있어서 그 구간에는 규정 속도로 달려야 하는데 곡선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쭉쭉 뻗은 직선도로가 특색이었다. 유럽은 규정속도 위반은 우리나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하여 운전자들이 감히 규정을 위반하지 안는다고 인솔 가이드가 설명했다.
특히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없고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다는게 특색으로 여겨졌다.
히틀러가 전쟁준비를 하면서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건설한 목적은 침공길을 닦기 위한 것도 있지만 1939년 세계대공황 때 실업자및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토목공사를 시작한 목적도 있다고 한다. 그 때 미국의 루스벨트도 테네시 강 4대유역 개발 등을 통해 경제를 살리는 국가적인 토목공사를 한 예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 한참 논쟁이 되는 대운하, 4대강살리기도 묘하게 이 고속도로를 보면서 내 뇌리에 와 닿는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대다수의 자동차가 세게적인 BMW 사의 자동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 그 와중에서 우리나라의 현대, 기아차를 찾아내기란 거의 힘들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잘 만들고 미국등에서 수출의 효자노릇을 하지만 6개국 방문 내내 우리나라의 자동차는 정말 찾기 힘들었다. 유럽연합 (EU) 와의 무역을 위해선 서로간의 통상교류를 강화해야 할 국가적인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BMW 자동차는 바에른 지방에서 모터를 움직이는 기계 - 원래 헬리콥터를 만드는 군수업체였는데 독일이 히틀러 때 2차세계대전 전쟁을 일으키고서 많은 기계와 엔진, 기관총, 소총등을 만드는 철로 된 군수물자를 만드는 회사들이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전쟁용품에서 실생에 필요한 물품 - 밥솥, 자동차, 의약품을 만드는 회사로 전환하여 셰게적인 기업 - 쌍둥이 마크로 유명한 히슬러 밥통 , 칼, 비비크림,, 폭스바겐 등의 유명한 상표가 되었다고 설명을 하는 가이드를 보면서 우리 일행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케네디알머길을 따라 오전 프랑크푸르트 시내 관광에 나섰다.
3. 뢰머광장
호텔에서 부실하게 잠을 잔 우리 일행은 호텔 조식 에서 주로 꽈배기 빵( E-MART에서 파는 빵 과 비슷) 과 우유 한잔, 계란 1개 , 과일 한 조각등으로 익숙치 않은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30분 호텔에서 프랑크푸르트 30분 거리의 황제 대관식이 거행된 역사의 마당 뢰머광장을 관광하기 위하여 몸을 실었다.
여기서 말하는 리무진 관광버스 (우리나라 관광버스 보다도 의자 앞뒤, 옆 폭이 훨씬 좁은)에 올랐다. 이 현지 관광버스 기사는 이름이 "조지" 였는데 키도 크고 잘생긴 폴란드 아저씨로서 <퓨마관광버스> 회사의 사위라고 하는데 상당히 친절하고 한국말도 간혹 하는 유머있고 멋진 기사 분이었다.
6일간의 동행을 마치고 폴란드 방문길에서 1주일 근무하면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폴란드 자기 고향에서 헤어짐 때 정이 들어 우리 모두가 무척 아쉬어 했던 참 좋으신 기사분이 아니었는가 싶다.
이 멋진 폴란드 기사 "조지" 의 안전한 운행으로 도착한 뢰머광장(Rpmerplatz) = "로마인의 집 " 이라 불기도 하고 원래 귀족의 기념행사를 하던 것이 현대에 와서는 각종 정치인, 스포츠 스타의 연설, 환영행사가 열리고 각종 축제, 시장의 역활을 하는 광장 주변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다리로 연결 되어 있는 건물들이 신기해 보였고 많은 건물들이 건물간 공간을 전혀 주지 않고 연결되어 있어서 신기해 보였다.
( 신 시청청사)
(뢰머광장 신 시청사와 분수대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뢰머광장 구 시청사)
푸랑쿠푸르트 대표적 명소인 이곳은 1562- 792년에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어 "황제의 성당" (Kizer Dom)이라고도 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을 중심으로 중앙에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유스티티아- justitia) 이 서있고 , 광장 왼쪽 시청사가 웅장에게 서있는데 원래는 황제의 대관식으로 쓰였는데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3개의 뽀족한 건물 가운데 이름인 뢰머를 따서 뢰머광장이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광장 오른쪽에는 위 사진처럼 아름답게 채색되고 이쁘게 지어진 구 시청사 건물이 위치하고 있어서 한마디로 뢰머 (Romerplatz)광장은 한마디로 독일식 건물의 정수이자 프랑크푸르트의 자랑스러 하는 대표적 관광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축구선수 차범근 해설가가 현여시절 프랑크푸르트 분데스리그에서 12시즌 306경기에서 98골을 넣어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인사를 이곳에서 연설하며 받은 장소라고 하여 가슴 한편으로 뿌듯했다.
4. 괴테 생가
뢰머 광장 관광을 마친 우리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반 괴테>- (1742 - 1832)의 "젊은베르테르의 슬픔" 을 집필한 생가를 구경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엿다.
대표작으로 희곡 <파우스트> 로 근대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 어렸을 적 13세 때 부터 시집을 낼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신동인 괴테가 평생동안 짝사랑한 연인 <롯데> 의 모델이기도 한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은 친구의 약혼녀인 롯데를 짝사랑한 괴테가 자신의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경험을 하다가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고 쓴 이 소설로서 현재까지 수많은 전 세계인이 즐겨 읽는 명작이 아닌가 싶다.
괴테의 집은 출입이 통제되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집은 별로 크지도 않고 도시 변두리쯤 되는 장소에 붉은 담장 넝쿨이 어우러 진 소박하고 아담한 2층집이엇는데 2층까지 줄이 매어져 있는 것이 특이햇다. 자기가 너무나 사랑한 괴테의 누이 코를넬리아의 불행한 삶도 괴테의 문학사상에 영향을 많이 끼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괴테의 생가)
첫댓글 한 단원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넘 짧습니다,/./// 다음에 또 들러겠습니다,
계속 이어서 쓸 예정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틈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