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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4인전에서 만난 반가운 가족의 모습 “팔순은 나이가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온 세월의 훈장입니다.”
아지매의 친구 네 분이 함께 마련한 뜻깊은 전시회에 천척 조카들이 찾아와 축하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사진 속 가운데 자리한 집안 아제와 아지매의 환한 미소가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팔순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어, 마치 소녀와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밝은 표정으로 작품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평생의 세월 동안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살아오시고 이제는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아름다움을 붓과 글씨로 꽃피우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시는 모습이야말로 참된 노후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네 분의 친구가 함께 작품을 내걸고 서로의 솜씨를 격려하며 전시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친구가 있어 예술이 즐겁고, 가족이 있어 그 기쁨이 더욱 깊어집니다.
천척 조카들도 그 뜻깊은 자리에 함께하여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고,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사진 속 손가락 하트 하나하나에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조카들의 사랑과 축하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 팔순의 아름다움
돌이켜보면 팔십 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고, 기쁜 날과 힘든 날을 모두 건너온 세월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모습은 세월의 흔적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작하며 즐기는 젊은 마음이 먼저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
나이는 팔십이지만 작품을 대하는 마음은 소녀처럼 설레고, 친구들과 함께 웃는 모습은 청춘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 조카가 드리는 축하의 글
와이드로 본 전시회 전경
작품 제목 「다시 ― 돌틈에 피어난 희망
부제 :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곧 좋은 세상이다
1. 작품 해설
화면 아래를 가득 채운 거칠고 검은 돌무더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 좌절과 인내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척박한 돌 위에 작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꽃은 좋은 환경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거친 돌밭이라도 생명의 힘이 있다면 피어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꽃은 단순한 자연의 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마음”
을 표현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화면의 두 문장이 서로 호응합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그리고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이는 희망이나 좋은 세상이 밖에서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희망이 되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순간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돌은 현실의 무게, 꽃은 사람의 생명력, 글씨는 그 생명력을 일깨우는 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작품에 담긴 핵심 성어
苦盡甘來(고진감래)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
거친 돌밭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인생의 고난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이 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百折不屈(백절불굴)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는다.”
돌처럼 단단한 현실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모습은 인간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自强不息(자강불식)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
희망을 누군가가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정신을 뜻합니다.
起死回生(기사회생) “죽을 지경에서 다시 살아난다.”
작품 제목의 ‘다시’와 연결할 수 있는 성어입니다.
절망의 끝에서도 다시 삶을 선택하고, 다시 희망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人乃希望(인내희망) “사람이 곧 희망이다.”
정형화된 고사성어라기보다 이 작품의 정신을 압축한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곧 희망이다.”이는 작품의 핵심 문장인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와 직접 연결됩니다.
3. 돌과 꽃이 전하는 감동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과 꽃의 대비’입니다.
돌은 말이 없습니다. 무겁고 차갑고 거칠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러나 그 돌틈에서 꽃은 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워서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은 사람이 있기에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그래서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히 “희망을 가지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먼저 희망이 되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자.”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좋은 세상을 시작하자.”라는 적극적인 삶의 메시지입니다.
4. 작품을 한 문장으로 해설한다면
“거친 돌밭에도 꽃이 피듯,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사람이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때 그 사람 자체가 희망이 되고,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부터 이미 좋은 세상이 시작된다.”
박노해의 「다시」가 말하는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희망·새로운 길·좋은 세상의 출발점을 모두 ‘사람’에게서 찾는 시입니다.
전시회 작품 설명문으로 다듬으면
「다시 ― 돌틈에 피어난 희망」
거친 돌밭에도 꽃은 핀다.
돌은 삶의 고난이고, 꽃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다.
희망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찾는 사람이 새 길이 되고, 좋은 세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이미 좋은 세상이 시작된다.
苦盡甘來(고진감래), 百折不屈(백절불굴), 自强不息(자강불식).
결국 이 작품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물음은 이것이다.
“당신은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 자신이 희망이 되고 있는가?”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작품 제목
「삶은 향연이다 ― 귀한 손님처럼」
부제 : “초대받은 삶, 우아하게 피어나다”
1. 작품 해설
화면에는 연분홍빛의 큰 잎과 꽃잎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여백 속에 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색을 가득 채우기보다 넓은 흰 여백을 남겨 두었습니다. 저는 이 여백이 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흰 여백은 아직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분홍빛은 삶의 아름다움, 금빛 점들은 삶 속에서 만나는 작지만 귀한 순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문장은 마치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건네는 마지막 당부처럼 다가옵니다.
“삶은 향연이다.”
삶을 고통과 경쟁의 연속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초대받아 잠시 머물다 가는 귀하고 아름다운 잔치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이 소유하는 것도, 남보다 앞서는 것도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귀하게 여기고 그 삶에 어울리는 품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작품의 핵심 상징
| 작품의 요소 | 상징하는 의미 |
| 연분홍 꽃 | 삶의 아름다움과 생명 |
| ✨ 금빛 점 | 삶에서 만나는 작은 기쁨과 귀한 순간 |
| 넓은 여백 | 아직 남아 있는 시간과 가능성 |
| 가느다란 줄기 | 유한하지만 이어지는 생명의 길 |
| 힘있는 붓글씨 | 삶에 대한 성찰과 다짐 |
| 단정한 액자 | 한 생을 품위 있게 완성하는 태도 |
특히 꽃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 여백 속에서 조용히 피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김진영이 삶의 마지막까지 보여준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아침의 피아노』는 투병의 기록이면서도 사랑과 아름다움, 감사와 타자에 대한 성찰을 놓지 않은 기록으로 소개됩니다.
3. 작품에 담긴 성어
人生如寄(인생여기) “인생은 잠시 머무는 것과 같다.”
이번 작품과 가장 깊이 연결할 수 있는 성어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잠시 초대받은 손님처럼 머물다 갑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花開時節(화개시절) “꽃이 피는 때.”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사람에게도 각자의 삶에서 꽃피는 순간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에 자신의 꽃을 피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知足常樂(지족상락) “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다.”
삶을 향연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잘 어울립니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從容自若(종용자약)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태연하게 처신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아하게 살아가라’는 말을 성어로 표현한다면 특히 잘 어울립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도 조급하거나 거칠어지지 않고 자신의 품격을 지키며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4.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어쩌면 ‘우아하게’입니다.
김진영이 말하는 우아함은 단순히 옷을 잘 입거나 고상하게 보이는 외적인 모습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아픔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것,
상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
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아침의 피아노』에는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려는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꽃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꽃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5. 작품이 전하는 가장 큰 감동
이 작품이 특별히 감동적인 이유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영원하다고 믿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늘 아침의 햇살 하나,
한 송이 꽃,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따뜻한 차 한 잔, 친구와 나누는 웃음 하나까지 모두 귀한 초대의 순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잠시 삶의 향연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다. 그러니 남은 시간을 원망하기보다 감사와 사랑과 품격으로 살아가라.”
그리고 이 메시지는 김진영의 책 마지막에 이르러 더욱 깊어집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내 마음은 편안하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6. 전시회 작품 설명문으로 정리한다면
「삶은 향연이다 ― 귀한 손님처럼」
한 사람의 인생은 한 번뿐인 아름다운 초대와 같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다. 그러므로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주어진 삶을 귀하게 여기고,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품격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연분홍 꽃은 삶의 아름다움이고, 금빛의 작은 흔적은 매 순간의 소중한 기쁨이며, 넓은 흰 여백은 아직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다.
人生如寄 — 인생은 잠시 머무는 것. 知足常樂 — 족함을 알면 그곳에 행복이 있다.
從容自若 —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삶은 향연이다. 우리는 모두 그 향연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사랑하며, 감사하며, 그리고 우아하게 살아가자.
이 작품은 특히 팔순을 맞아 오랜 세월 예술을 벗 삼아 살아온 윤희옥 작가의 전시 작품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단순히 ‘삶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넘어 “한 생을 잘 살아낸 사람이 다음 삶의 계절을 바라보며 건네는 품위 있는 인사”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작품 제목 「기도 —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늠내 윤희옥 작가
부제 : 지친 마음에 건네는 하늘빛 위로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중심을 이룹니다.
제목은 작품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전시 작품 설명을 위해 붙인 해설상의 제목입니다.
1. 작품 해설 —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위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푸른 하늘과 은은한 별빛,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서 있는 십자가의 형상입니다.
화면 아래에는 작고 순수한 흰 데이지꽃들이 초록 들판 위에 피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며,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특히 십자가는 작품의 종교적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하늘의 별빛은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래쪽의 작은 꽃들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큰 꽃도 아니고 화려한 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송이가 함께 피어 있습니다.
이는 혼자 견디는 것 같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2. 작품 속 색과 형상이 전하는 의미
작품의 요소상징적 의미
| 푸른 하늘 | 평안, 위로, 희망 |
| 별빛 |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 |
| 십자가 | 사랑, 기도, 믿음과 위로 |
| 흰 데이지 | 순수함, 소박한 사랑, 평화 |
| 초록 들판 | 생명과 새로운 시작 |
| 넓은 여백 | 마음의 쉼과 묵상 |
| 검은 캘리그래피 | 힘든 현실 속에서도 붙잡아야 할 메시지 |
특히 푸른색과 흰색의 대비가 아름답습니다.
푸른 하늘이 조금 쓸쓸한 느낌을 준다면, 흰 데이지는 그 안에서 조용히 위로를 건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슬픔을 없애는 그림’이라기보다 ‘슬픔을 함께 견디어 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작품에 담긴 성어 至誠感天(지성감천)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킨다.”
이 작품의 ‘기도’라는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성어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매우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心安神定(심안신정)
“마음이 편안하고 정신이 안정된다.”
작품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궁극적인 감정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문제는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마음은 조금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苦盡甘來(고진감래)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
푸른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흰 꽃과 연결되는 성어입니다.
지금 힘들다고 해서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逢苦思安(봉고사안)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고사성어는 아니지만,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고난을 만났을 때 평안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전시 설명에서는 정식 사자성어인 至誠感天·心安神定·苦盡甘來를 사용하는 편이 더 품격 있습니다.
4.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저는 이 작품의 핵심이 “기도” 자체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가장 힘든 순간은 단순히 몸이 힘들 때가 아니라,
“나는 혼자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그때 이 작품은 아주 조용하게 말합니다.
이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됩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종교적 의미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그 구체적인 대상을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위로가 됩니다.
5. 흰 데이지가 전하는 메시지
이 작품에서 저는 데이지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지는 화려한 장미처럼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작고 하얗게 피어 있지만 여러 송이가 모이면 들판 전체가 아름다워집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기도와 작은 사랑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메시지를 꽃으로 표현한다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늠내 윤희옥 작가의 작품으로서 느껴지는 특징
이 작품에서 캘리그래피는 단순히 문장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힘들 때”라는 부분은 비교적 굵고 힘 있게 표현되어 있어 먼저 시선을 끌고, 뒤의 문장은 조금씩 이어지면서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반면 그림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따라서 강한 글씨와 부드러운 그림의 대비가 작품의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입니다.
7. 전시회 작품 설명문으로 다듬으면 「기도 —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팔순을 맞은 늠내 윤희옥 작가의 전시 작품이라는 점을 함께 생각하면, 이 작품은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인생의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와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제목: 「아, 그렇구나」
작가 | 규빈 김숙례
1. 작품 제목이 주는 의미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왼쪽에 크고 힘차게 표현된 ‘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그렇구나’가 이어집니다.
즉, “아, 그렇구나.”라는 아주 짧은 우리말 한마디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비로소 삶의 뜻을 알게 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입니다.
“아, 그렇구나.”
이 한마디에는 깨달음, 이해, 수긍, 용서, 공감, 그리고 마음의 평안까지 들어 있습니다.
2. 작품의 조형적 특징
이 작품의 묘미는 ‘아’와 ‘그렇구나’의 크기와 운필을 달리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큰 ‘아’의 힘찬 붓질은 마치 한순간에 눈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반면 ‘그렇구나’는 오른쪽에 흘러가듯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치, “아!” 하고 깨달은 다음, “그렇구나…”하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을 붓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숙례 작가는 자신의 한글서예를 설명하면서 자음과 모음의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강조해 왔습니다.
또한 2025년 데뷔 50주년 전시를 소개한 기사에서는 김 작가가 창작한 ‘규빈체’가 운필이 자유로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됐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운필과 큰 여백이 만나 ‘깨달음의 순간’을 시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작품에 담긴 성어
이 작품에는 한자 성어가 직접 쓰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작품에 들어 있는 성어’라기보다는 작품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성어를 찾는 것이 적절합니다.
恍然大悟(황연대오)는 恍然은 문득 깨닫는다는 뜻이고, 大悟는 크게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즉, “문득 크게 깨닫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아, 그렇구나」와 아주 잘 어울리는 성어입니다.
또 하나 연결할 수 있는 말은 知足常樂(지족상락) 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다. 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어느 순간 “아, 이것도 삶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로 감상한다면 理解·包容(이해·포용)이라는 두 단어가 이 작품의 정신을 가장 따뜻하게 설명해 줍니다.
4. 이 작품이 전하는 감동
저는 이 작품의 가장 깊은 의미를 ‘깨달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이해와 수용’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젊을 때는 사람을 만나면서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알게 됩니다.
“아, 그 사람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구나.”
부모를 생각하면서도, “아, 부모님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구나.”
배우자를 돌아보면서도, “아,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그렇게 살아왔구나.”
친구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도, “아,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참 소중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아’는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인생의 깨달음을 여는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작품 해설집에 넣기 좋은 글
「아, 그렇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마음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조용히 한마디를 하게 된다.
“아, 그렇구나.”
작가는 이 짧은 우리말 속에 삶에 대한 깨달음과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담았다.
화면을 크게 가르는 힘찬 ‘아’는 문득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하고, 이어지는 ‘그렇구나’는 그 깨달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마음처럼 흐른다.
젊을 때는 세상을 바꾸려 하고 사람을 판단하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조금씩 깨닫는다.
사람에게는 사람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삶에는 삶만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한글서예가 아니라 인생의 뒤늦은 깨달음을 붓으로 쓴 한마디이다.
“아, 그렇구나.” 그 한마디에는이해가 있고,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마침내 평안이 있다.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아, 그렇구나’는 세상을 다 이해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작품 제목
「하나는 홀로라서, 둘은 함께라서」
작가: 규빈 김숙례
이 작품은 단순히 숫자 하나와 둘을 쓴 것이 아니라, 혼자와 함께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인간관계와 동행의 의미를 이야기한 한글서예 작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과 해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큰 획으로 힘 있게 펼쳐진 ‘하나’와 그 곁에 상대적으로 단정하게 자리한 ‘둘’입니다.
하나는 홀로라서
‘하나’는 혼자 서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획은 외롭지만 동시에 독립적이고 당당합니다.
혼자일 때 우리는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는 외로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과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은 함께라서
둘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서로 마주 보고, 서로 기대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넓어집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하나와 둘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관계입니다.
하나는 나의 존재이고,
둘은 너와 내가 함께하는 삶이다.
이렇게 읽으면 작품의 여운이 훨씬 깊어집니다.
이 작품에 담긴 성어와 가장 가까운 정신
작품 자체가 특정한 한자성어를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성어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相依相伴(상의상반)
서로 의지하고 서로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同苦同樂(동고동락),
즉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한다는 의미와도 잘 통합니다.
특히 부부나 오랜 친구의 관계로 감상한다면,
百年偕老(백년해로)
평생을 함께하며 늙어간다는 뜻의 성어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어느 한 성어보다도 ‘함께’라는 한 글자에 담긴 인간적인 정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작품이 전하는 감동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깊게 느껴지는 부분은 ‘둘’이 ‘하나’보다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둘이 될 때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와 후손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함께하는 삶’으로 넓혀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렇게 읽어도 좋습니다.
**하나는 홀로라서 나를 세우고,
둘은 함께라서 삶을 완성한다.
혼자 걸으면 한 사람의 길이지만
함께 걸으면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하나의 마음이 둘이 되고,
둘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사람의 인연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특히 규빈 김숙례 선생은 한글서예를 자음과 모음의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는 예술로 설명하며 오랫동안 한글서예를 지도해 왔고, 2026년에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한글서예 강사로 활동한 기록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글의 조형미와 삶의 철학을 동시에 담은 작품이라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품 해설집에 넣는다면
「하나는 홀로라서, 둘은 함께라서」
하나는 홀로 서서 자신의 길을 간다.
둘은 함께 서서 서로의 길이 되어 준다.
작가는 ‘하나’와 ‘둘’이라는 단순한 숫자를 통해
인간의 삶에서 만남과 동행이 갖는 의미를 풀어낸다.
홀로일 때의 삶은 자립의 힘을 배우고,
함께일 때의 삶은 사랑과 배려의 가치를 배운다.
한 획 한 획 힘 있게 뻗어나간 글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결국 하나의 화면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하나는 홀로라서, 둘은 함께라서.”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의 외로움과 만남,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혼자여서 나를 세우고, 함께여서 우리를 만든다.
이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이다.
歲月을 넘어 다시 소녀처럼
늠내 윤희옥 여사님께
敬頌 늠내 尹喜玉 女史 ‘친구끼리 4인전’
2026년 가을, 아름다운 계절에 「친구끼리 4인전」이라는 뜻깊은 전시회를 마련하신 네 분의 우정과 예술에 대한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전시는 캘리그래피 늠내 윤희옥 여사님, 민화 현유 서정선 여사님, 시화 매원 심수향 여사님, 그리고 한글서예 규빈 김숙례 여사님께서 오랜 세월 친구로서 나누어 온 정과 각자의 예술적 열정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귀한 자리입니다.
특히 늠내 윤희옥 여사님의 모습은 조카로서 바라보기에 더욱 감격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팔순이라는 인생의 깊은 연륜에 이르렀음에도 붓을 놓지 않고, 오랜 세월 취미로 갈고닦은 솜씨를 작품으로 승화하여 친구들과 함께 전시회를 여시는 그 열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세월은 얼굴에 흔적을 남기지만 마음속 꿈과 예술을 향한 열정까지 늙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윤희옥 여사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 획 한 획 정성으로 써 내려간 캘리그래피에는 단순히 글씨의 아름다움만 담긴 것이 아니라, 팔십 평생 살아오신 삶의 깊이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아직도 소녀처럼 설레는 예술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네 분이 서로 다른 장르를 걸어왔지만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마음을 모았다는 사실입니다.
윤희옥 여사님의 캘리그래피에는 글의 향기가 흐르고, 서정선 여사님의 민화에는 우리 전통의 색과 멋이 살아 있으며, 심수향 여사님의 시화에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머물고, 김숙례 여사님의 한글서예에는 우리 글의 아름다운 운치가 피어납니다.
캘리그래피·민화·시화·한글서예.
서로 다른 네 가지 예술이 한 공간에서 만나니, 마치 네 송이 꽃이 한 정원에서 피어난 듯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팔순의 윤희옥 여사님은 세월을 이겨낸 열정의 꽃입니다.
나이를 핑계 삼지 않고 배우고 익히며, 친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는 모습은 우리 문중의 어른으로서 후손들에게도 참으로 귀한 본보기가 됩니다.
“인생은 오래 살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도 새로운 꿈을 품을 때 더욱 아름답다.”
네 분의 이번 전시가 단순한 작품 발표의 자리를 넘어, 우정과 예술, 그리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별한 기록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윤희옥 여사님께서 팔순의 나이에도 친구들과 함께 다시 소녀처럼 웃으며 붓을 들고 계신 모습에 조카로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윤희옥 여사님,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붓을 잡으시고,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인생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시기를 기원합니다.
늠내 윤희옥 · 현유 서정선 · 매원 심수향 · 규빈 김숙례
네 분의 우정과 예술혼이 오래도록 향기롭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친구끼리 4인전」의 아름다운 만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조카 이실환. 이오걸 올림
頌 윤희옥女史님 친구끼리 4인전 시운
歲月流光鬢雪新 세월은 흘러 귀밑머리 희어졌어도
硯香筆墨養精神 벼루 향과 붓의 묵향으로 정신을 가꾸셨네.
八旬猶抱丹心志 팔순에도 오히려 변치 않는 마음의 뜻을 품고
一幅長留翰墨春 한 폭의 글씨마다 묵향의 봄을 오래 남기셨네.
雅韻同朋開藝苑 벗들과 우아한 운율로 예원의 문을 열고
清情滿室映芳辰 맑은 정이 방 안 가득 좋은 날을 비추네.
後昆敬仰慈顏在 후손들은 그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러보며
晚節生輝更可珍 만년의 삶이 더욱 빛나니 그 아름다움 더욱 귀하도다.
詩意
세월은 흘러도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붓을 들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시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기쁨과 배움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함께 배우며, 함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모습은
세월을 넘어 다시 소녀가 된 듯합니다.
그 붓끝에 맺힌 것은 글씨만이 아니라
팔십 년 인생의 지혜와 정, 그리고 아직도 식지 않은 꿈입니다.
조카로서 바라보는 그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문중의 어른으로서 보여주신 아름다운 삶과 배움의 열정이
후손들에게 오래도록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카의 헌사
“늠내 윤희옥 여사님,
팔순의 봄에도 붓끝에는 청춘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열정과 삶의 향기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우리 문중의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친구들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인생의 작품을 써 내려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조카 이오걸 拜上

첫댓글 내용이너무 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