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퇴계 이황선생과 더불어 두터운교정(交情)으로 지냈는데.공이 우의정으로 계시고
퇴계선생은 에조판서로계실때인서기1567년6월에명종(明宗)임금이 어린나이로 왕통을잇게되어
조정에서는 원상(院相)을두어 공께서는 정원(政院)을 지키고앉아서 정사(政事)를 결제하셨는데
퇴계선생은 공에게 간곡(懇曲)하게 벼슬에서 물러나게 해달라고 하시므로 공은 극력만류(極力挽留)
하시면서 오히려 퇴계선생으로 하여금 실록총재관(實錄總栽官)을시키자 퇴계도 공의성의(誠意)때문에
머물러 계시다가 서기1569년(선조2년)3월에퇴계선생이 벼슬을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실때
공은 퇴계선생에게백구파호탕(白鷗波浩蕩)만리수능순(萬里誰能馴)이라 글을써서 주었더니
퇴계선생은 그에대한답(答)으로상련종남산(尙憐終南山)회수청위빈(回首淸渭濱)이라하셨는데
그뜻은,넓은물결만리길에,날아가는 갈매기 누가붙잡아 길들일수있을까.
그래도 종남산에 미련이남아위수가 에 떠나가며 머리돌리네. 라는뜻이다.
향리에 돌아가신 퇴계선생과는서신이 수도없이왕복하였고공은퇴계선생에게돌아와서 국가를위하여
일해줄것을간곡(懇曲)하게 말씀하셨으므로퇴계선생도 자신이 물러가는것이 잘못이라고 답서(答書)에
기록한곳이 여러번있음을 퇴계집에서 볼수있다
또한율곡이이(栗谷李珥)선생 은 공 을무척숭배(崇拜)하시었는바 서기1583년(선조16년)에 변방에적호(賊胡)가
자주침범(侵犯)하여 경보(警報)가 급하였는바 공은 영부사(領府事)로 빈청(賓廳)에 여러대신들과같이앉아서
공은 기력이 피로하시어 눈을 감고 계셨는데 병조판서인 율곡선생이 와서 뵈이므로 공은 눈을 감은채로
누구냐" 물으시니 율곡은 "병조판서이이(兵曺判書李珥)옵니다"대답하시니
공은 지금나라에서 급한일이 많은데 이판서는병무(兵務)에 착실히근무한다하니 아주반가운일이나 더욱나랏일에
힘써주기를바라오" 하시니 율곡은 절하고 그 명령을 받은 다음 물러나와서 사람들을보고
"대신의체면(體面)을 오늘에야 처음보았다"고 말씀하시고 항상공을 숭배 하였다
또한 공이 영의정을 거처서 좌의정으로 다시계실때에 서애유성룡(西涯柳成龍)선생은승지로 계시면서
모든정사(政事)에뜻을같이하셨다 서애 선생은공을 일러 대신의체통을아시는분은 오직 이분만한 사람이없다고
늘말씀하시었고 따랐으며 동고이준경(東고李浚慶)선생이 돌아가실때 임금께 차(箚)로서 붕당(朋黨)에 우려하시면서
"장차 나라에화근이될것이라"하고 율곡과삼사(三司)에서는
이준경의말은 허무한 말이니 관직을 뺏고죄를주자고하여논란(論難)이많았다
그런데 공과 서애선생은 뜻을 같이하여 선조 께 간곡(懇曲)히 말씀드려 이준경선생의죄를 면(免)하게하였다
공은 유극량(劉克良)장군과는 인연이깊다
즉 유극량은 선조때의무장(武將)으로 字는중무 요 시호(諡號)는무의(武毅)이며 본관은 백천(白川)인데
선조초에 무과(武科)에급제하여 임진왜란때는조방장(助防將)으로 죽령(竹嶺0을수비했다
그런데 적병이 서울로 밀려들자 임진강으로후퇴하여 왕명을받들어 경기해서지방의 장정을모아서수어사(守禦使)신길(申佶)과
함께방어 임무를맡았다 극량은 죽령에서 돌아와 신길 의 예하에서싸우다가 신길이 적병을 경시하고
강을건너가 싸우려고하였다 그런데 유극량은 왜병이 우리군사를유인하는것임을알고 신길의손을붙들고 말렸으나
신길은듣지않고 배 에올랐다 유극량 은 이것을보고 대장이건너갔는데 내가 감히앉았겠느냐 하고 곧뒤를따라건넜다
신길장군과유극량이 다 건너지 못하여 적병이 무수히이르니 신길은 낭패되어 배를돌렸으나 반은 건너지못하여죽고
유극량은 말에서 내려 땅에앉아서 왜적을향하여 싸우다가 날이저물고 화살이 다하여 마침내 적의탄환에넘어지고말았다
유극량은 벼슬이 부원수(副元帥)에 이르렀으나 그어머니는 묵재공(*휘언필,字자미, 호 묵제,시호文僖,인제공의부친)
비자(婢子)로서 대를이어 인제공의비자(종)으로도 있었는데 묵제공이 명나라 성절사로 가셨다가 돌아오실때에
명나라왕으로 부터선물로 받아오신옥잔(玉盃)이 있어 귀히 여겨 오는데 유극량의어머니될 여종이옥잔을닦다가 깨뜨리고
죄를당 할까 두려워서 도망을하여 나왓다가 호랑이 한테 물려서 어느 먼고을 농가 에 던져 지게되어
유극량의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살다가 유극량을낳게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인 유극량이 무과에급제하자 그 어머니는 자기의신분과과거의일들을 유극량에게 털어놓자
유극량은크게 놀라면서서울로 올라와서 인제공을 뵙고 사실을 말하고 나라에 상소하여 과거 한것을깎게 하고
다시 종 이되겠다고 하였다. 인제공은 이말을 들으시고 극력으로 거절하시며 네가 내종이 아니어늘왜 이런말을하는고"
한즉 극량이 말하기를 "어머니에게 이미 말을듣고야 어찌 감히 법 을 무릅쓰고주인 을 배반하여 임금을솎이오리까"하였다
인제공은더욱 그 의(義)에 감복하시고 옛날 종의문권을찾아 돌려주고 조정에 끌어 들였다
극량은 깊이 사례하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언제던지 인제공을 만날때는 상전이라 불렀으며,혹 문안을 올때도 동구밖에서 말에서 내려걸어와빕고
무슨물건을 드릴때도 극량은 자기 손을 손수 들고 오는것이었다
극량이 일찌기 위장(衛將)이 되어 분열식을하는데 인제공이 마침,금중(禁中)에 입직하였다가 말할것이있어서
작은종이에 몇자 적어서 유극량을 불렀다
극량은 그것을 보고 곧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총부관(摠府官*오위도총부도총관혹은부총관)이 이것을보고
"분열식은나라의중대한 일이어늘 그대가 어디를 이렇게 경솔히 나가느냐"고 막았다
극량은 돌아보며 "옛날상전이 부르시는데 일각인들 지체하여서 되오리까" 하고 곧 떠났다
그후 극량은 귀(貴)하게된후에도 항상 인제공을 대할때는 노예(奴隸)의예(禮)로써 극진히 대하였다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