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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전업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잘 알려진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었다 하더라도 2쇄를 넘기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어찌 시인에게만 채워진 족쇄이랴. 소설가도 일류가 아니면 밥 빌어먹기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소설은 허구이나, 시는 진실이다. 시인은 그 시대 양심의 보루이다. 쟁기가 흙 속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듯이 시인은 세상에 싱싱한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감성만의 자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게 해야 한다. 그저 사랑타령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랑타령의 시들만 10쇄 이상 팔릴 뿐이다. 그도 몇 시인에 한정된다. 민중과 역사, 정의와 평화를 고민했던 김남주 시집도 절판된 지 오래다. 시인이 시를 써서 밥을 빌어먹을 수 없는 시대. 한때 재봉틀 보조까지 하며 건강한 시를 썼던 시인. <거미>(창작과비평)라는 첫 시집이 세상에 거미줄을 쳤던 2002년, 쟁쟁한 시인들에게 올해의 시집이라고 할 만큼 주목을 받았던 후배. 한때 고무신을 신고 꽁지머리를 하고 값싼 '솔' 담배를 피우며 하루종일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시를 썼던 가난뱅이 시인.
천변에 주차를 하고 향교로 향할 때였다.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올해 초 일반예식장에서 다짐했던, '이벤트가 되어버린 일반예식장의 혼례주례를 다시는 서지 않겠다는' 기억이었다. 하객의 반 이상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마치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 같았다. 20분만에 끝난 결혼식, 칼을 찬 예쁜 도우미들까지 등장하지만 일생 한 번이라는 진지함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혼례의 주례자가 신랑 입장을 선언하자, 청사초롱을 든 예쁜 한복을 입은 여자 아이 둘이 앞서고 친구들이 든 가마를 타고 신랑이 입장한다. 다음은 신부가 꽃가마를 탔다. 첫 예식은 쌍을 바꾸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나무기러기를 신랑이 상에 올렸다. 다음 예식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손을 씻는다. 그런 다음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고 신랑이 한번 답례한다. 예식은 계속된다. 신랑신부가 혼례상 너머로 술을 주고 받았으며, 이번에는 표주박이 등장했다. 신랑 신부가 표주박에 술을 따라 서로 바꾸어 마시는 예식이었다. 박 하나를 갈라 만든 표주박은 평생 한 박의 표주박처럼 행복을 가득 담고 살라는 뜻이리라.
다음은 원광대 문창과 후배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판소리의 고장 전주 향교에서 올리는 혼례답게 판소리 한마당도 뜨락을 가득 메웠다. "다음은 신랑신부의 답사가 있겠습니다. 시인이니까 답사를 시로 읊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당신에게 땅이 되겠소. 모든 것을 받아주는 그런 땅이 되겠소. 오래오래 품어서 떡잎 한 장 하늘로 올리겠소. 그리고 하늘로 하늘로 푸른 가지 쭉쭉 뻗어 올려 주렁주렁 사랑의 열매를 맺겠소. 오래 오래 행복한 나무 한 그루를 보살피는 땅이 되겠소." "다음은 시인인 신부에게 신랑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합창합시다!" "박!", "박성우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 "성우를 사랑합니다." "우!", "우리 박성우를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역시 시인은 다르군요."
"만세! 만세! 만세!" "마지막으로 신랑신부 부모님들 앞으로 나오셔서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마주보아야 열매가 열린다는 은행나무 암수가 한마당에 있는 향교. 땅이 되겠다는 신랑을 일생 사랑하겠다는 신부와 신랑이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은행이 앵두처럼 주렁주렁 열린 암컷 은행나무도 축복해 주는 가을, 그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드높다. 초등학교 교사인 신부는 전국 공무원 응모 시 부분에서 장원을 했다. 부부가 시인이니 이보다 더 행복한 혼인이 어디 있으랴. 시인이 시인과 만났으니 일생을 시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또 '거미'의 시인이 전업시인으로 살 수 있으니 이제 걱정 따윈 놓아도 되리라. 가만 보니 아니다. 한편 더 걱정스럽기도 하다. 예술의 진정성은 가난한 생활에 있지 않던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첫 시집의 노동과 가난의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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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수~ 멋진 혼례입니다. 박성우 권지현 두분,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행복하게 사세요...
연대팀으로부터 받은 시집의 바로 그 주인공이시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찡 허네유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