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MASK는 자신의 가면을 감싸쥐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면이었던 파편들인가. 잠에 들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벗지 않던(어떻게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밥을 먹는 것이 가능했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가면, 오크의 그레이브도, 펜들아카데미의 교수들이 펼치는 살인기 "분필 개틀링"에도 , 드래곤이 지근지근 밟고 지나가도(실제로 밟혔는지는 안물어 보는 것이 상식이다) 부서지지 않던 가면이 산산히 금이 가서 분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종구맨은 강했다. 하프테일의 마법은 중화 시켰고, 그녀의 공격은 발로 차버리거나 피하여 무산시켜버렸다. 빠르고 강했다. 하프테일은 지친다는 걸 느꼇다.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다. 에인션트 드래곤인 그녀가 이 인간 앞에서 마치 어른에게 놀림받는 아이 같을 정도 였다.
"왜 드래곤 폼FORM으로 싸우지 않지?"
"!"
"무시하는 건가?"
종구맨의 질문에 하프테일은 이빨을 사려물었다. 무시가 아니다. 그녀는 지금 드래곤으로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가디언이 행한 도박의 사소한 결과였다. 대이적마법이 분명 B.I가 좀더 완벽한 지옥의 존재로 거듭나게 해주는데는 성공했다. 그 덕에 ABDON이 B.I의 자아를 부수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ABADON이 된 이상, 빛을 가진 사고의 편린을 가진 B.I란 자아는 얼마 못가서 무너지거나, 큰 데미지를 받아야 했다. 인간,마족, 동물, 신족, 아니 모든 사물에는 기원이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굳이 말하자면 전세의 전세의 전세의 전세...... 그 생성된 모습은 모두 다를지라도, 그 모든 전생傳生에는 하나의 성향, 방향성, CODE란 것이 있다.아카식 레코드에 등록된 존재-곧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용납되는 존재라면 그것은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기원이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고, 기원이 없는 것은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것이다. 아카식 레코드보다도 중심. 그 혼돈-태초의 무엇. 혹자는 신 그자체라고도 부르는 소용돌이의 말단의 무수한 줄기들. 그 대원에서 뻗어나온 무수한 강들의 기원이라 불리워지는 가능성, 혹은 방향성인 것이다.
B.I라면 그의 기원은 "어둠"인 것이겠지. 그리고 기원을 각성한 자는 그 기원에 반할 수 없다. 지성으로서의 이성도 감정도 없는 그 기원. 그 기원을 각성한 B.I는 ABADON이 되는 순간, 어둠의 황자가 되는 순간, B.I로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블루드래곤의 가디언은 그 법칙을 뒤틀어 버렸다. 그리고 우주를 함부로 움직인 대가, 세계 자체를 비튼 주문에 대한 그 반주현상. 던져진 돌의 반작용으로 밀려난 보트. 그 방향성은 반대로 하프테일의 몸을 하나의 고정상으로 만들었다.
즉, 언제까지인지, 어떤 조건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폴리모프가 불가능하다. 하필 그녀에게 현재 최고의 아군을 만들어준 인과가, 그녀 자신의 악재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육체와 브레스를 제외한 드래곤의 모든 것이 지금의 그녀에게 있었다. 아니, 사실 똑같은 성능이라면 인간을 상대하는데는 드래곤처럼 큰 덩치는 사실 오히려 불필요하다. 아무리 빨라도, 결국 헛점이 생기니까. 더군다나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는 잡학사전 덕에 인류형 육체가 사용할 수 있는 기능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기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전이란 것은...
"이, 괴물같은..."
핀티르는 이를 악물었다. 龍言이 터졌다. 마치 노호같은 목소리였다.
"타라!"
"싫어."
그녀는 水 속성의 지배자이다. 그러나 용언은 그 이전에 세계-를 구성한 마나에 호소하는 힘 그 자체. 따라서 그녀의 권능은 그녀의 목소리가 향한 의식인 종구맨과 그를 둘러싼 주변을 태워버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에 강렬한 진동을 통해 가열된 마나의 힘은 그대로 그녀에게 돌아갔다.
인간을 태우는데 드는 열량은 엄청나다. 최신의 기술을 사용해서 인간을 화장하는데도 두시간에서 네시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일순간에 일어난다 생각할 때 순간 팽창되는 공기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힘이 그대로 핀티르의 몸을 내팽개쳤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카학!"
몸이 뒤로 젖혀지며 공중으로 뜨는 순간 그녀는 몸의 탄력을 이용하여 그대로 돌아 바닥에 소드 이터를 박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 같다.그러나 그 순간 종구맨의 얼굴이 그녀의 눈으로부터 20센티정도의 거리에 다가와 있었다.
"헉"
광자가 흐른다. 퍼지는 것은 빛. 억겁을 닮은 찰나, 종구맨의 망토 밑의 주먹이 천천히 여유있게 다가온다. 여유? 아니다. 이것은 공포. 공포에 의해 수없이 가속된, 긴장된 신경이 그녀의 인식-지각 능력을 시간의 속도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속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속된 시계, 시간 감각과는 달리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공포로 인해 마비된 몸 만큼 지각 신경은 예민해지고, 다시 그 천천히 곱씹어야만하는 공포는 다시 몸을 마비시켰다.
떨고있다어째서떨고있는가그대는권능의권속그런그대를떨게하는것은무엇인가고작인간하나가지고의권속을농락하는가그작은존재가그대의심장을무슨수로쥐어잡는가그가
가진힘이무엇이기에세계를호소하는권능을공포로마비시키는것인가그대는진정으로그것이두려운것인가그것이무엇인지도모르며두려워한다는것은어리석은인간들이하는일
그대는인간이아니다깨달아라그대의겉모습이보여주는것은그대의것이아니라어딘가에서주어진것일뿐이리니시원한물이목을축임은그것이어여쁜금잔에담겨있기때문이아니
라 그것이본질이기때문이라! 위.대.한.자.눈.뜨.라
용이 자신의 의지를 담아 토해낸 말 한마디가 세계에 대한 호소력이라면, 용이 자기 자신에게 그들의 강대한 정신력을 담아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는 자기 세뇌에 가까웠다. 가까스로 그녀가 자신을 추슬렀다. 다가오는 종구맨의 주먹이 여전히 느렸고, 그녀는 자신의 속도를 되찾았다.
그녀의 턱을 노리고 날아든 주먹이 공기를 찢으며 다가온 순간, 하프테일은 턱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눈 앞까지 올라간 주먹을 발로 걷어차 올렸다. 고속의 이동물체에 용의 발 힘으로 가속력을 더하자 종구맨이 순간 자신의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발을 강하게 내딫는다. 흐르는 몸놀림으로 명치를 노리며 팔을 슬쩍 접어 손에서 어깨까지 근육과 관절을 응축하고 허리를 긴장 시킨다. 주먹이 그의 명치에 닿은 것과 내뻗은 발이 지면이 동시에 닿는 순간, 하프테일의 발이 지면을 강하게 박차자 그녀의 발 주변에 지름 1큐빗 가량의 초소형의 크리에이터를 생성하며 긴장된 근육의 고삐가 일시에 풀리면서 그녀의 주먹에 가공할 만한 힘이 튀어 나갔다. 고류무술에서 흔히 말하는 발경의 수, 그 중에서도 근거리에서 사용하는 척경. 마치 공성추에 비견할 힘이었다.
쿠웅!
그녀의 발구름인지, 아니면 발경에 의한 파괴력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모두 종구맨이 절대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종구맨의 명치가 건물에 깔린 사람의 그것처럼 잔혹하게 뭉개어진 모습을 그 상황에 눈을 돌린 자들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亂神은 나즈막히 읊조렸다.
"거절한다."
그 순간, 종구맨의 신체가 급속히- 마치 B.I가 자신의 부서진 육체를 재구성하는 모습처럼 회복되면서 눈에 보일 정도의 충격-아마 충격이 공기를 밀어내면서 공기의 밀도차로 주변이 일그러지는 모습일 것이다-이 하프테일에게 쇄도 했다.
카앙-!
"웃...."
종구맨에게 가한 충격이 그대로 돌아 왔다면 절대 적은 데미지는 입지 않았을 하프테일은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혀 충격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샤프하면서도 탄탄한 몸을 지닌 사제가 이미 가면이라 부를 수 없을 잔해를 얼굴에 매단채 두손으로 그것들을 감싸쥔 모습이 보였다. 하프테일은 나즈막하게 그 이름을 되뇌었다.
".....MASK?"
"괜찮은거요?"
.....나보다는 당신이 더 문제있어보이는데 란 말을 목구멍까지 올렸다가 가까스로 말을 삼킨-사실 겉에 보이는 피해래봐야 가면 깨진 것 밖에 더 있냐?-핀티르는 검을 고쳐쥐었다.
B.I의 눈에 들어온 것은 MASK의 가면이 깨진 모습이었다. 그는 허망한 표정을 떠올렸다.-눈,코,귀,입 중에 제대로 보이는건 입 밖에 없는 얼굴에도 그런게 있다면 말이다.(그러고보니까 머리털도 없다.)
[위험한데, 이거.]
B.I정도의 노련한(이라 쓰고 정신나간이라 읽는다), 거기다 강하기 까지한 모험가가 위험하다고 하다니 대체 어떤 상황인 걸까. 그 때, 세영의 라이트 브링거가 아바돈의 어깨 죽지를 베었다. 그만큼 MASK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일까. 아바돈의 오른쪽 어깨죽지가 베인 모양 그대로 땅에 떨어지려는 것을 그의 왼팔이 붙 잡으며 다시 원래 자리에 붙였다. 상처의 단면에선 암흑원소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프잖습니까.]
오른쪽 어깨 죽지를 왼손으로 고정시킨 상태로 세영의 라이트브링거 2격을 몸전체를 뒤틀어 덜렁거리는 오른손에 매달린 소드이터로 막은 아바돈은다시 한번 꼬리로 세영의 몸을 후려 갈겼다. 카를은 그새 덤벼든 햄마왕의 해머를 흘리며 잘 통하지 않는 검격 보다는 주먹이나 발길질 등으로 햄마왕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MASK의 가면이 마침내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거기엔 말쑥하지만 엄청난 미남도,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닌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마치 길거리를 걷다 만났었던 듯한 자연스러움. 그가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느껴지는 거대한 신성력. 그야말로 아바돈이 곤란해할 정도다. 그리고, 그의 눈엔 서글픈 감정과 약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종구맨이 입을 열었다. 흉악, 아니 추악할 정도의 요사스런 웃음을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진 입에 담고서.
"네가 신족의 말예 [긍정]인가."
"그렇습니다. [거절]이여."
두 남자는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거절과 긍정. 그들의 기원. 그 말 뜻을 핀티르는 알고 있었다. 기원에 각성한 자는 기원에 지배되며, 기원을 일깨우지 않은 자라도 그의 특수한 능력이나 성향, 재능 역시 기원에 예속된다. 그리고 그 기원을 각성하고, 그 극한에 치다른 자는 기원 그 자체에 이른다. 거기에 이른 자들은 대개 그 기원의 세계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인지 오기 싫은 것인지, 하다못해 가는 다다르는 순간 소멸 되는 것인지. 하지만, 거기에 접속할 수 있는 자는 아카식 레코드를 쓰고 지울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른바 <신>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접속된 채로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한다.
"거절이여."
MASK가 입을 열었다. 거기엔 기묘한 감정들이 마치 흘러넘친 수프의 조그만 건더기들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긍정이여.""
"당신은 정말로 불행한 자로군요."
"뭐?"
"기원이 거절인 탓일까 하는 겁니다. 당신은 결국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신은 자신의 아픔을, 손해를 거절했고, 학주의 냉혹한 파괴와 탄압을 거절했지요.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제국 Pendle. 그 지배권마저도 부정했지요. 그러나 주위에 있어 당신은 여전히 지배자였고 당신은 대신 왕으로서의 의무인 지배 그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아니, 외려 지방 영주들이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는데도 "이긴 녀석이 다 가져라"하는 식으로 방치해버렸습니다. 난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어째서 모든 것을 거부 하는 것입니까. 거절은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지요. 나의 죽음을 원한 상대에게 죽음을. 나에게 왕으로서의 일을 요구한 자들에게 그 일을."
그 남자의 지적에 종구맨은 별 어려움 없는 모습으로 한마디를 뱉었다.
"거부는 유상무상의 모든 존재의 권리다."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없으니까."
종구맨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베어문 과일의 즙처럼 흘러나왔다. 고위 성직자로선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기에 그것은 MASK의 미간을 좁혀지게 만들었다. 황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이, 아니 사람이 그것을 하는 이유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칼로 잘라야 해서 칼로 자르는게 아니야. 칼이 있으니까 칼로 자르는 거다. 이 세상의 모든 기본 원리다. 그러는 너야말로 어째서 그리도 많은 것을 긍정할 수 있는거냐."
"간단합니다.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것으로, 설령 실존하지 않더라도, 개념이나 머릿속 공상으로의 존재만이라도 어디까지나 긍정되기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뭐야, 그러면 나에 대해서 [거절]하고 이 난리를 칠 필요가 뭐가 있나. 성당에나 처박혀서 모든것에 고개나 끄덕이며 살아가면 될 것을."
"거절과 용서 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니까요."
말이 끝나는 순간. 언어가 입을 떠난 순간. 청각을 자극하고 그것이 해독되어 의미를 얻는 순간. 두 명의 신이 맞붙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싸움 들에 비해 외려 단순했다. 종구맨이 MASK의 메이스를 [거절]하는 순간, MASK의 메이스는 자신에게 되돌려지지 않고 오히려 종구맨에게 그대로 떨어졌다. 종구맨의 거절에 의한 반격이 아닌 자신의 공격임을 [긍정]한 것이다. 거부와도 같은 긍정이었다. 물론 거절과 긍정을 반복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이 무의미함을 깨달은 종구맨은 그 메이스를 피함과 동시에 MASK의 왼쪽 허리에 오른손으로 훅을 꽂아 넣었다. 강렬한 타격에 아찔한 MASK였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뜨는 동시에 내지른 종구맨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종구맨의 팔을 타고 올라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선 모양으로 그 힘을 그대로 실은 돌려차기를 황제에세 선물했다. 그렇게 서로 치고 받는 두 사람은 금새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종구맨이 자신의 상처를 거절하자 그는 금새 상처가 나았고, MASK는 특유의 무한할 정도로 느껴지는 신성력을 몸에 두른 것 만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신성주문의 순서를 건너뛰어 [효과]만을 긍정한 것이다.
[크으....]
암흑원소와 달리 신성력은 존재 자체만으로는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적어도 암흑원소에 대한 영향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바돈의 오른쪽 어깨죽지가 기어코 떨어져 나갔다. 인간과의 혼혈의 몸을 사용하는 카를로서는 약간의 기능저하를 느낄 뿐-더군다나 월광의 힘을 사용하는 아스타로트는 암흑원소라기보다 광기의 정신원소계열에 더 가까운 구성존재였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순수한 암흑의 혈통인 아바돈에게 MASK의 신성력은 너무도 버거웠다. 게다가 결정적인 라이트 브링거의 참격은 아바돈의 오른팔을 완전히 몸에서 분리시켰고, 그것은 곧 소멸했다.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한번 세영의 라이트 브링거와 햄마왕의 워해머가 아바돈에게 쏟아졌다.
촤촤촤촤촤촤-!
비가 오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무수한 공격이 쏟아지자 카를란테가 아바돈을 밀쳐내며 공격들을 흘려내었다. 공기를 찢던 참격들이 드래곤슬레이어에 쏟아지자 비오는 소리는 금새 우레와 같은 소리로 바뀌었다. 그 사이 아바돈은 턱을 벌려 라이트 브링거에 당한 어깨죽지의 남은 부분을 물어뜯어 버렸다. 절단면이 움찔하더니 비온 후의 죽순이 돋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다시 우상반신이 재생되었다. 재생속도로만 치면 카를에 맞먹는 속도였다.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든 아바돈이 다시 세영과 햄마왕의 연격을 카를과 함께 막아내었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힘과 속도가 떨어져 있었다. 반면 세영의 라이트 브링거는 사방에 흐르는 강한 신성력에 호응하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카를란테! 내 자리를 맡아라! 황제를 친다!]
"MASK에게 다가가면 더 위험합니다!"
[저 녀석이 발동 걸린 이상.....스윗치를 넣은 녀석이 있는 한은 밑도 끝도 없이 신성력이 가득찰 거다!]
아바돈이 카를란테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었다. 기절하다시피한 가북의 가늘게 뜬 눈에 그 모습들이 비쳤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다.
"우가우가 대사님.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옆에서 보좌관이 말을 걸어와 그동안의 흐릿했던 기억들이 바늘위의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렇다. 황제 붕어 후, 종구맨같은 그런 강력하고 넘치는 카리스마의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은 공화국이 되었다. 수많은 억지로 결합되었던 많은 영토는 독립이란 명목하에 반동을 시작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제국, 아니 공화국 Pendle은 그들의 자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독립국의 절대 다수의 부분을 포섭하여 연합을 결성했다. 우리는 저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켰고, 우리는 왕이 없는 것만 뺀다면 이전과 바뀌지 않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난 그럼 잠시 대성당에 교황을 뵈러 가겠네."
"예. 대사님. 조심 하십시오."
우리의 그 전투.... 그 끝에서 황제를 붕어시킨......죽인 우리들은 그 직후 제국을 휩쓴 혼란을 막기위해 [그들]이 있던 자리를 물려 받았다. 나는 현재 사법부대사다. 정말 묘한 경우다. 마법을 배워 사법을 다스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대성당의 로비를 가로질러 가장 깊숙하고 소박하며 아름다운 문을 열었다.
"아, 왔구나. 아니지. 사법부대사 가북=우가우가공 오셨습니까."
"예, 교황폐하. 폐하를 알현하나이다..............윽."
"......음? 왜 그러시나?"
"아니, 역시 형이랑 서로 존댓말 쓰자니 뭐 하네요."
".....역시 그런가?"
MASK선배는 늘 그렇듯이 그 튼튼한 가면을 또 어디서 구해와서 늘 쓰고 있다. 그러나 그 때,그 전투에서 그는 항상 제어하던 신성력을 너무 폭주 시켰다.실제로 그는 아직도 20세이지만 그의 얼굴은 실제 나이보다도 10살은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손도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그는 웃으며 꺾인 20대인제 뭐 30대 같다고 이상할 건 없지 않느냐며 웃곤 한다.하지만 단순한 육체의 노화가 저정도라면 내부의 손상은 말조차 할 수 없는 레벨이겠지. 최연소 교황, 그리고 최연소 대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언제나 우리가 그 에버그린 동산에서 시간을 때우며 하곤 하던 레벨의 이야기들이 오후의 햇살 속에서 공중으로 녹아들어갔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선배는, 교황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하며 나지막하게 읖조렸다.
"녀석은 살아있다. 그건 내가 보장하지."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뭣보다 제 마스터가 그 "사람" 찾으면 또 한번 대련해 보고 싶다고 꼭 찾아서 데려오랬습니다."
"이번에 다시 붙으면 분명 녀석이 질 걸."
선배는 용과 악마가 붙는 장면을 상상하는건지 무지무지 상큼한 웃음-임이 분명한 분위기-을 활짝 피웠다. 지금 벽보에 붙은 공개신문엔 카를 녀석.....아니 통령각하인가? 하여간 공화국연방 Pendle의 초대 통령인 카를란테 D. 아스타로트의 정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물론 주변의 다른 대신이나 대사들의 보좌도 중요했지만, 녀석에게는 검과 같은 과단성과, 어진 근본의 마음, 그리고 아스타로트 대공의 긴 경험이 있었다. 꼭 머리랑 정치가 비례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옛날의 카른도 아니었으니까 뭐.... 어쨋든 녀석은 잘하고 있다. 아직 임기가 한참 남은 녀석이 좀더 큰일 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내 역활이니까. 원래 어딘가 2%부족한 1인자 보다는 철저한 서포트를 자랑하는 2인자가 더 대단한 법이라구...으흐흐...
그 때, 흐려져 가는 의식의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마스터 하프테일의 수류맹공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종구맨에게 타격을 주는 즉시 그것은 마스터에게 다시 되돌아갔지만-후에 듣자니 거절이라는 능력이라고 했다.-마스터는 수계원소의 지배자. 그것은 마스터에 흡수됨과 동시에 다시 마스터의 힘이 되었다. 그런 순환의 틈틈히 마스크 선배가 종구맨에게 공격을 가했고, 종구맨은 마스크 선배의 공격과 수류 공격 둘 중 하나에는 당했다. 즉 황제는 두가지를 동시에 거절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떤 조건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싸잡아서 거부하는건 가능했던 모양이지만. 그러나 종구맨은 더더욱 기이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MASK선배에게서 뿜어나오는 신성력을 그가 훔쳐내더니 그가 신성주문을 사용한 것이다. 신성주문의 사용자는 사회의 평가와 관련없이 세계 그 자체의 시스템으로 부터 성직자로 분리되며 성직자끼리는 서로 맞대결이 불가능하다. 신은 성력끼리는 서로 간섭이나 싸움이 불가능하게 정해놓으신 거다. 더군다나 MASK선배의 신성력은 가면이 없이는 제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종구맨이 결국 그 두사람을 압도 한다 고 느꼈을 때였다. 카가가강 하는 땅에 연속적으로 앵커를 박아넣는 듯한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아바돈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몸은 신성력의 근원인 MASK선배에게 다가갈 수록 붕괴하고 있었다. 그러나 MASK선배는 성력을 거두지 않고-물론 어차피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종구맨을 변칙적으로 공격하기 시
작했다. 마스터도 아까처럼 거절당해도 의미없는 공격-수계공격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아바돈을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엔 이미 강대한 암흑의 왕자는 없었다. 마치 검댕을 잔뜩 뭉쳐 만든 인형이 바람에 흩어지듯, 연기나 안개처럼 암흑원소가 무너져 휘날리고 그 가장 앞에는 늑대에게 갑주를 씌워놓은 듯한, 그러니까 아바돈이 인간형이 아닌 네발 짐승형이었다면 싶은 모습의 생물이 달리고 있었다. 아바돈, 아니 B.I선배의 유생체 형태였다. 그리고,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며 마스터의 공격을 받아내고 MASK선배를 공격하는 종구맨을 MASK선배가 붙잡았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을 깎으며 달려간 검은 탄환은 종구맨을 꿰뚫었다. 신성력을 몸에 두른 MASK선배와 그를 꿰뚫은 암흑. B.I선배..... 종구맨도 그것을 거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B.I선배는 허무한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검은 연기는 어딘가로 모두 함께 날아갔다.
"어째서....어째서 너희는 둘중 하나가 죽을 걸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서로를 용인할 수 있었던 거지?"
평생을 거절로 살아온 종구맨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너졌다. MASK선배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세상이 빛과 암흑이라는 혼돈의 태극으로 구성된 것은 그것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보다 큰 것을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야. 결국 우린 모두 하나인 거야."
"....쳇."
마스터는 드래곤 폼으로 돌아올때까지는 어차피 엘프의 모습으로 있을테니 되찾은 드래곤 하트가 자신과 완전 동화 될 때까지는 제국 Pendle과 그 곳의 인간들을 봐주겠다며 시한부 용서의 선포를 했고, 피곤하다고 웃으며 우리를 제국으로 텔레포트 시키고는 자신도 별장으로 귀환했다. 이후는 세상사람들에게 몇가지 사실을 은폐왜곡하는 것이었고, 결국 우리는 제국의 새로운 영웅이 되었다. 그뒤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 대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는 미숙한 생물이다. 아니, 生이란 것의 방향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상처 입어야만 우리는 아픔을 배우고 공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운다. 종구맨은 죽었다. 하프테...아니 마스터는 무엇에 상처 받았는지는 몰라도 조금은 사람이 조용해지고 무거워진 것 같다. MASK선배는 몸을 상했다. 아마도 B.I소멸 당시의 영향이 좀 있었으리라. 세영은 카를과의 격전에서 살았지만 검을 쓸만한 몸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화국군 검술훈련소의 소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 햄마왕은 우리를 노리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황야로 떠나갔다. 카를은 함부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검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직책이 되었다. 어쩌면 가장 적게, 하지만 소더로서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통째로 내버리는 가장 많은 것을 잃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9클래스의 마법사가 됨과 동시에 스스로 마법을 버렸다. 개인적인 심정의 이유이니 묻지는 말았으면한다. 지금도 왠지 모를 마법에의 혐오감은 언제 생긴걸까? 그때의 전투? 혹은 공화국 건립과정에서 동족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써야만했던 마법?모르겠다. 우리는 언제 서로를 용인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는 아마 우리는 일상을 살고, B.I를 추억할 것 같다. 그리고 종구맨도. 해골맨도.
어찌됐건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오늘따라 침대가 그립다.
꿈을 꾸었다.
어두운 별하나 없는 밤.
거짓말처럼 창백한 달 아래
다리가 부러진 듯한 검은 늑대가 초원을 걷고 있었다.
절룩, 절룩.
걸음걸음마다 피가 배어나온다.
그럼에도 그는 절룩절룩 초원을 걸어간다.
흰옷을 입은 사내는 평평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돌을 배게삼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검은 이불을 덮었다.
강렬한 피로에 그가 잠든지 두어시간 후
강한 혈향과 할떡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검은 늑대는 사내를 안다.
사내도 잠에서 깨면 검은 늑대를 이해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검은 늑대는 자신의 피가 묻지 않도록 배려하며
사내의 온기를 빌리기 위해 그의 옆에 드러 누웠다.
춥지는 않은 초원.
하지만 체온을 나눠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좋고 쾌적한 것임에 분명한 날씨였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기------------------------------------------
끝났습니다. 108 번뇌 만큼의 화수 끝에 말이죠.
예전 펠멜 시리즈라던가 지금까지 엔딩본 릴레이가 아예 없던건 아닙니다만,
릴레이소설이 제대로 엔딩 보는 걸 본게 얼마만인지. 흐흐;;
마지막 화 제목은 상처 할 때 상자입니다.
이것은 희망과 절망을 떠나 세상은 언제나 상처로 가득차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이리 써봤습니다.
물론 상처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 좋든 싫든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간에 상처를 입고 입히는 존재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108화 본문보다 더 많습니다만, 너무 길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도 재미겠지요.
간단히 각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고서 끝낼까 합니다.
종구맨. 음....뭐 종구형이라는 거야 다들 아실거고....
강렬한 카리스마, 힘, 그리고 공포. 이 세가지가 주축이 되는 캐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겐 거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세영. 창수형. 건실하고 성격은 좋으나 자신이 믿는 것에는 목숨을 거는 일반적인 영웅상.
예, 저는 그런 영웅과 싸우는 입장에 서보고 싶었습니다.(너 성격 진짜 비뚤어졌다...)
J......흑풍회는 질색입니다.젠장. 오히려 세영이나 다른 인물보다 알게모르게 인간미 넘치는 캐러.
가북. 요즘 소설 꼭 나오는 독설가 타잎 캐러. 제가 아끼는 후배중 하나이며, 정곡을 찌르지만 독설의 사이에 묻어나오는 휴머니즘적인 성격이 맘에 듭니다.
MASK. 사람좋고 서글서글한, 남의 부정보다는 긍정을 더 하고자하는 그런 느낌. 그런 캐러.
B.I가 작중에서 그래도 완전히 비뚤어지지 않고 온갖 억압과 멸시에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자란건 그의 덕.
카를. 생각없어 보이는 불사 소더. 하지만 나름의 사정과 순정을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칠면서도 순박한.....근본적으로 착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 거기에 마지막엔 아스타로트대공의 지성까지 물려받은 친구....완벽하네..
햄마왕. 열라 파워캐러.;;;; 석화의 사안을 포스의 폭발만으로 부숴내는 ;;;; 사실 작중에 귀엽게 동요를 부르며 싸우는 것도 넣을까했으나 기회가 없엇.....
B.I 가장 날뛰고, 가장 셌으며, 나중엔 가장 찝찝하게 되어버린 ..... 사실 행방불명까지는 아니고 그냥 병원에서 요양하며 살아가는 환자 정도로 만들려 했으나[우주의 기사 데카맨 블레이드]가 떠올라서 기각.
하프테일. 뭐, 누님이 쓰고 싶어서리..... 사실 큰 의미는 없음;;; 인간을 증오하고, 인간을 배우고, 인간을 용서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것까지 해낸....그런 인물.(아니 용물)
뭐, 대충 이정도입니다. 아우 피곤해...... 마지막화 늦게 올려서 죄송하구요.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적어도 이거 보실때면
아침아니면 낮일테니;;)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주고, 받은 상처로 밖에는 서로를 추억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첫댓글 수고 했다. 거짓말 쟁이!
토토로대마왕이 없는 상황에서 종구맨이 출연했기에.. 인정못해 ㅠㅠ !
...따뜻한 결말로 끝날 줄이야.
잘 읽어 봤어야지....[꿈]이라니까